일상 속의 3D 프린팅

2019. 3. 11. 07:50pxd 다이어리 & 소소한 이야기
Sungi Kim

2017년 10월 말, 3D 프린터를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만지작거리며 몇 가지 물건들을 만들어보았는데요, 제가 경험한 것들을 공유하면 3D 프린팅이 조금이나마 체감이 될까 하여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예전에 쓴 글이지만 지금도 의미있을 것 같아서 공유합니다).

3D 프린터

제가 구매한 기기는 Prusa i3 MK2s 모델입니다. 가정용 3D 프린터 시장에서는 꽤 유명한 브랜드 및 기기이고, 조립을 해야 하는 기기입니다. 물론 조립까지 된 제품도 구매할 수 있는데, 조립킷은 $699, 완성품은 $899입니다(그런데 블랙프라이데이 이후 조립킷이 $599로 내렸어요 orz). 그리고 배송비와 관세까지 합치면.. 좀 많이 듭니다. Prusa의 제품에서 흥미로운 것은, 주요 연결 부속 파트들이 대량생산한 것이 아닌 3D 프린팅을 한 것이라는 점인데요, ‘자기복제-생산기계’라는 Rep Rap 오픈 소스 운동의 이념을 충실히 따르려고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구매자에게 ‘3D 프린터는 이렇게 활용하는 거야’ 하고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조립을 합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정교하게 조립을 해야 합니다.

  

조립하고 돌려보면, 쨘. 아래와 같은 품질이 나옵니다.

만든 물건들

라즈베리파이3 케이스

  

사실 사놓고 별로 갖고 놀지 못한(하지만 최근 apple home bridge로 열일 중) 라즈베리파이인데요, 라즈베리파이 케이스의 3D 모델링은 많지만, 딱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없어서 직접 디자인하고 뽑아서 씌워줬습니다. 멋진 디자인이라기보다는,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맞춘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 케이스 위로 넓적한 전선들이 나와야 하거나 이것저것 핀들을 꼽아야 할 수 있거든요. 아주 큰 제한조건이죠. 열 배출을 위해 외부와 통하는 공간들도 필요했고요. 그리고 위아래 케이스의 파팅 부분에는 암수로 끼울 수 있는 부분을 만들었습니다. 프린팅 재료는 PLA라는 것을 썼는데, 이것은 약간의 탄성이 있어서, 두껍지 않다면 살짝 휘어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접착제나 볼트-너트 없이도 고정됩니다.

모니터 스탠드

    

아직 몇 개 디자인하고 뽑아본 게 없긴 하지만, 그중 제일 인기가 좋은 모니터 스탠드입니다. 예전부터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시중에 판매되는 모니터 스탠드들은 제가 원하는 크기를 못 찾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직접 만들기로 했습니다. 3D 프린팅된 것이 어느 정도 강도가 있기는 하지만, 무거운 것을 제대로 지탱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기 때문에 모니터를 놓는 판은 나무 판재를 사용했습니다(이케아 선반을 샀어요. 마감도 잘 되어있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판을 프린팅 하는 것은 비용과 시간 대비 효율적이지 않은 선택입니다. 이 정도 크기를 뽑으려면 아마 20시간은 넘을 것이고, 재료도 많이 써야 할거거든요. 참고로 저 스탠드 다리 2개를 뽑는 데에는 대략 4시간이 걸렸습니다.

아이폰 & 태블릿 거치대, 리더기 홀더

    

그리고 스탠드에 끼워서 쓸 수 있는 아이폰 거치대와 태블릿 거치대를 만들었습니다. 아이폰은 제가 핑거스트랩을 쓰고 있어서, 자석으로 고정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사용한 지 한 달 정도 되었는데, 이 거치대가 꽤 유용합니다. 만들고 보니 스탠드도 그렇고, 이 거치대들도 기능에 따른 형태, 그 최소한만 만족하고 있는 것 같네요;;


  

그런데 자석을 이용한 아이폰 거치대는 저한테만 맞는 거라, 다른 사람들은 쓸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범용으로 쓸 수 있는 거치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태블릿 거치대입니다. 생긴 게 다 비슷비슷하죠? 틀을 하나 잡고 나면, 여기저기 쓸데가 많습니다.


 

요건 카드리더기입니다. 3D 프린터는 SD카드로 데이터를 옮겨서 뽑아야 하는데, 일반 USB 리더기로 하기에는 매번 귀찮아서, 고정해놓고 쓸 수 있게 하였습니다.

행주 걸이

  

이건 너무 간단해서 부끄럽긴 하지만, ‘행주걸이가 필요해’ + ‘긴 나무젓가락을 샀는데 쓸데가 없어’ + ‘자석을 써볼까?’ 해서 만들어본 녀석입니다. 아마 발품을 팔아 여기저기 가게를 돌아다니면 훨씬 기능적으로도 좋고 예쁜 물건들이 있겠죠. 하지만 만들어보기로 합니다. 냉장고 옆에 자석을 사용해 붙였더니 벽에 고정해야 하는 걱정이 없어서, 만족해하며 쓰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압출extrude(단면의 선을 만들고 쭉 뽑아낸) 형태의 구조만으로도 많은 것을 만들어볼 수 있다는 것을 아실겁니다)

마치며

몇 개 되지는 않지만 이렇게 만든 것들을 생활에 사용하고 있으니, 3D 프린팅에 재미가 슬슬 들고 있습니다. 물론 만들꺼리들이 매일 생기는 게 아니라, 자주 만들지는 못하지만요.

대학교에 다닐 때(오래전 일이지만), 저는 컴퓨터실 관리자이자 3D프린터 관리자였습니다. 그때는 3D프린터라고 부르기보다는, Rapid Prototyping Machine이라고 불렀죠. 파우더를 사용하는, 비싼 실험실 장비와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디자인한 제품의 형태를 직접 보기 위해 프로토타입을 뽑는 것인데, 이건 정말 '보기'위한 용도이지,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그에 비해 요즘의 FDM방식의 저가형 3D프린터들은 실생활의 도구를 만드는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최근 뉴스들을 보면 실제 항공기 부품용으로 금속을 프린팅하여 제작하기도 하고, 다양한 산업에서 이미 중요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게 ‘언젠가는 집에서도 물건을 뽑아서 쓸 것이다’ 라고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막연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저는(혹은 우리는) 그렇게 미디어에서 이야기하는 ‘집에서 프린팅하는 물건’을 책상, 전자레인지, 조명, 컵 같은 물건들을 상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 몇십 년 걸릴거야..’ 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요, 실제로는 그런 것들과는 다른 것들이 가정의 3D 프린터에서 출력되어 사용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디자이너라면 이런 3D 프린팅에 관심을 둬보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특히 디지털 스크린의 Interface, 디지털 서비스의 UX를 벗어난 분야에서, 작은 것이라도 문제를 찾고, 제한된 조건에 기능적인 해결을 위한 구조를 잡고, 그 기능에 맞는 형태를 디자인하고 사용해보면 디자인에 대한 사고도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이너니까요. 물론, 저는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 계획하고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3D 프린터로 뭘 뽑지? 를 먼저 생각하면 정말 안떠오르더군요)

지금까지 제가 만든 것들은 3D프린터에서 뽑힌 그대로의 것을 도구로 사용한 것들 뿐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재료들과 복합해서 쓴 경우들도 있죠. 자석이나 나무, 막대기 등등. 3D프린터 부품 이야기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모든 것을 3D프린터로 만들기보다 적절하게 다른 재료와 함께 만들어질 때 기능을 더욱더 잘 수행하는 것으로 보이니, 이런 것도 한번 생각해보시면 재밌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좀 더 멋지게 생긴 것들을 만들어지고 싶어졌습니다. Color, Material, Finishing까지 신경 쓴 물건을 말이죠. 아직은 마땅히 떠오르지는 않지만, 다음에는 한번 시도해봐야겠습니다.

3D 프린팅을 할 수 있는 다양한 무료 모델링들이 올라와 있는 사이트와, 위에 제가 만든 3D 모델들을 공유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https://www.thingiverse.com/SungiKim/desig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