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을 띄우다 : 알렉산더 칼더 회고展

2013. 8. 13. 00:26GUI 가벼운 이야기
알 수 없는 사용자


한남동 삼성 리움(Leeum)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움직이는 조각, 알렉산더 칼더> 회고전(이하 칼더전)에 다녀왔습니다. 회고전(retrospective)은 '어떤 특정인의 지나온 발자취나 업적 등을 돌이키며 여는 전시회'(출처 : Daum 국어사전)를 의미합니다. 이번 칼더전은 리움이 뉴욕 칼더재단과 함께 기획한 것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회고전(118점의 작품)입니다.


날짜 | 2013년 7월 18일(목) ~ 10월 20일(일) * 매주 월요일 휴관
시간 | 오전 10시 30분 ~ 오후 6시 (매표 마감 오후 5시)
장소 | 삼성미술관 Leeum(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747-18)
공식 홈페이지 | http://leeum.samsungfoundation.org/html/exhibition/main_view.asp?seq=28&types=2
입장 요금 | 일반 8,000원 / 청소년, 경로우대, 장애인, 국가유공자 5,000원 / Day Pass 14,000원
전시 설명 | 한국어 전시 기간 중 매일 오전 11시, 오후 1시, 3시 / 영어 주말(토,일) 오후 2시


전시개요

움직이는 조각, 모빌의 창시자로 알려진 알렉산더 칼더(1898-1976)는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미술가일 뿐 아니라 현대조각사에서 가장 중요한 조각가 중 한 명이다. 미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생활 속에서 미술을 접하며 자라온 칼더는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후 조각가로 전향하여 예술적 천재성을 발휘하였다.
칼더는 1930년대 초반 파리에 머물면서 몬드리안과 미로, 뒤샹, 아르프 등 파리 미술계를 이끌던 작가들과 교류하며 추상미술과 초현실주의 등 당대 최신 미술의 영향을 받았다. 칼더의 가장 대표적인 작업인 모빌과 스태빌은 이렇게 칼더의 예술적 재능과 동시대 아방가르드 미술, 움직임을 구현하는 그의 공학적 지식이 조화를 이루어 탄생한 20세기 최고의 혁신적인 조각이다.
삼성미술관 Leeum이 뉴욕 칼더재단과 공동으로 기획한 이번 전시는 국내 최대 규모의 회고전이다. 총 118점에 달하는 출품작은 그의 전 생애에 걸친 대표적인 작품들을 망라하여, 모빌과 스태빌은 물론 칼더 예술의 근원이 되는 초기의 철사조각과 작가의 조형적인 탐구를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포함한다. 먼저 블랙박스에는 칼더의 예술이 형성되는 1920년대의 작업과 추상미술의 영향을 받아 모빌과 스태빌이 등장하는 가장 획기적인 시기인 1930년대 작업이 선보인다. 그라운드 갤러리에는 변화와 성숙의 경지에 들어선 1940년대와 1950년대의 다양한 작품들과 말년의 대형 기념조각 프로젝트들이 소개된다.
이번 전시는 칼더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다룸으로써 그의 조각이 갖는 미술사적 의의와 중요성을 되돌아보고, 그간 모빌과 스태빌에 편중되어 있던 칼더의 예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저는 리움미술관에서 회원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Members private viewing 기회를 통해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전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수석 큐레이터의 강연을 1시간 가량 듣고, 간단한 다과를 먹은 후에 전시를 보았습니다. 도슨트의 전시 설명을 들을 때는 대체로 작품을 함께 보면서 전시장 내에서 설명을 듣는 게 일반적인데요. 이럴 경우 작품을 보면서 설명을 듣는다는 장점은 있지만, 작품을 제가 원하는 만큼 볼 수 없다는 점이 단점이었습니다. 이번 기회에는 설명을 먼저 듣고 관람을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을 갖춘 상태에서 제가 좋아하는 작품을 원하는 시간만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회고전이니만큼, 칼더의 생애를 한 번 정리해보겠습니다.


1. 될성 부른 떡잎이었던 어린 시절
<출처 : christies.com>

칼더의 집안은 예술가 집안이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조각가였고 어머니도 화가였거든요. 어린 칼더의 놀이터는 조각가 아버지의 작업실이었고, 어릴 때부터 조각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칼더를 위해 아버지는 칼더를 위한 작은 공작실을 지어줬다고 합니다. 칼더는 11세 때 구리판으로 조각을 만들어 부모님께 선물했습니다. 이 때의 작품조차 균형미와 조형미가 살아있고 더욱 놀라운 건 어떤 작품은 툭 치면 움직일 수 있는 키네틱 조각의 특성을 이미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별명이 '쓰레기꾼'이었을 정도로 어릴 때부터 못 말리는 재활용쟁이였다고 합니다. 항상 쓰레기를 주워와서 2살 많은 누나와 뭔가를 만들어내는 걸 좋아하던 소년이었던 칼더의 특성은 어른이 되어서도 고스란히 이어져 유명한 예술가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고물을 이용해 뭔가를 만들어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선물하곤 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칼더가 아내 루이자의 43세 생일선물로 주었던 선물이라고 합니다.


2. 8년간의 엔지니어 생활, 그러나 다시 예술의 세계로
예술가 집안에서 예술가의 기질을 맘껏 뽐내며 자란 칼더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대에 입학합니다.
칼더의 공대 진학에는 예술가인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하는데요. 지금이나 백년 전이나 예술가들이 배고픈 건 마찬가지여서 아버지가 칼더에게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공대를 추천했다고 하네요. 공대 졸업 후 칼더는 4년간 엔지니어로 생활합니다. 하지만 예술에 대한 열망을 누르지 못하고 결국 28세에 뒤늦게 Art Students' League라는 미대에 입학합니다.


1920년대는 칼더가 예술에 대해 학습하고 자신의 작품관을 형성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칼더는 유럽, 그 중에서도 예술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파리에서 당대의 많은 작가들과 교류합니다. 특히 근대 추상미술의 선구자 몬드리안(Piet Mondrian)과의 교류는 칼더가 '추상미술'에 깊이 매료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몬드리안과 함께하는 동안 칼더는 여러 추상회화를 실험하지만 자신이 그림으로 성공하긴 힘들다는 걸 깨닫습니다. 빈틈없는 성격의 몬드리안과 자유로운 칼더는 부딪히는 부분이 많았지만 칼더는 몬드리안에게서 배울 점은 배우면서 '공간 속 움직임'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발전시켜 나갑니다.


3. 조각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1930년대는 칼더가 작가로서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서 자신감이 넘치던 시기였습니다.
1931년, 칼더는 모터의 힘을 이용해 최초의 움직이는 조각을 제작합니다. 공대생이었던 칼더에게 모터를 이용한 작품을 만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죠. 하지만 칼더는 지루한 것, 대칭적인 것, 반복적인 것을 싫어하는 자유로운 영혼이었습니다. 반복적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모터는 칼더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죠.


1933년, 칼더는 드디어 조각을 천장에 매답니다.
바람, 공기, 사람들의 움직임에 의해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조각의 형태를요. 이것이 움직이는 조각, 키네틱 아트(Kinetic Art)의 시작입니다. 지금은 그리 새로워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당대에는 그야말로 '혁신'이었습니다. 조각의 역사는 몇 천 년이 넘었지만 그 어떤 조각도 땅에서 떨어질 줄 몰랐으니까요.

칼더의 작품을 본 마르셀 뒤샹은 이를 보고 '모빌(Mobile)'이라는 이름을 붙여줬고, 장 아르프는 칼더의 움직이는 조각들과 대비되는 정지해있는 조각에 대해 '스태빌(Stabile)'이라고 칭했다고 합니다. 한국어로 보기에는 모빌, 스태빌이 좀 '있어 보이는' 단어들인데 사실 모빌이나 스태빌은 '움직임' 과 '정지함'을 의미할 정도로 직설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스태빌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썼던 장 아르프도 처음에 제안했던 뉘앙스는 "움직여서 모빌이라고? 그럼 이렇게 안 움직이는 건 꿈쩍임(스태빌)이냐?'와 같이 약간은 비꼬는 식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칼더는 이를 듣고 "스태빌? 좋은데?"하면서 받아들였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열린 귀를 가졌던 예술가였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칼더가 작품에서 가장 중요시했던 요소는 '역동감'인데요. 그는 균형미와 조형미를 갖춘 역동감을 추구했습니다. 지루함, 대칭성, 반복을 싫어했죠. 이러한 작품 철학을 가진 칼더는 '자연'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동물의 움직임에 매료되어서 많은 동물을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4. 대중을 생각하던 예술가
1943년, 칼더는 뉴욕 MoMa(Museum of Modern Art)에서 최연소 미국 작가 회고전을 열게 되는 영광을 누립니다. 칼더는 살아있을 때 거장으로 인정받고 행복한 삶을 살았던 예술가입니다.

<출처 : MNUCHIN Gallery>


또한 40년대는, 미국이 2차 대전에 참전하면서 철판이 부족해지게 되었는데 칼더는 '청동조각'이라는 새로운 재료와 형식을 실험합니다. 사실 청동은 육중하고 둔해지기 쉬운 소재인데 칼더는 청동을 소재로 사용하면서도 역동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출처 : calder.org>


칼더는 Calder Jewelry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장신구를 작업하기도 합니다. 철사나 구리와 같이 저렴한 재료를 이용해서 만들어 $15~150에 판매했는데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두 발이 있는 물고기 모양의 브로치를 비롯한 장신구들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물고기의 발가락까지 표현한 칼더의 표현에서 위트와 유머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1960~70년대에 칼더는 대형 공공 조각 위주로 작품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던 칼더는 1975년 U.N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강연을 들으면서, 칼더는 위대한 예술가인 동시에 위대한 혁신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혁신성이 비단 예술 분야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도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칼더에게 배우는 혁신 요소 5가지

1. 남의 말에 귀 기울이기
흔히 예술가하면 자신의 작품 철학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너무나 뚜렷해 '고집불통'인 사람을 상상하게 되는데요. 칼더는 놀라울 정도로 열린 마음을 가지고 남의 의견을 수용할 줄 알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과는 맞지 않던 몬드리안에게서도 배울 점은 배우고 비꼬듯이 '스태빌'을 말하던 장 아르프의 의견도 열심히 '주워담는' 그의 모습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열린 태도로 수용하는 자세를 배우고 싶었습니다.

2. 틀에서 벗어나 생각하기
칼더의 작업 과정은 일반적인 작업 과정과는 달랐습니다.
[대부분 '어떤 걸 만들어야겠다'는 개념 잡기 -> 작업 시작]
의 순서를 거치는데, 칼더는 반대로

[일단 철판을 자르고 -> 늘어놓고 -> 쭉 연결해서 -> 모빌을 만든 뒤 -> '오, 유칼립투스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면 그 작품에 '유칼립투스'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런 과정 때문에 칼더 작품에는 무제Untitled 작품도 참 많죠)

이렇게 틀에서 벗어나고 기존의 프로세스를 파괴하는 과정에서 혁신도 이루어질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3. 버린 것도 다시 보기
칼더는 정말 못말리는 재활용쟁이였습니다.
<출처 : artsy.net>

[Santos]라는 제목의 위 작품을 보면 두개의 점이 콕콕 박혀 있는 게 보이는데요. 이는 스테이플러 자국으로, 이 작품이 그려진 나무판이 원래 칼더의 작품을 운반하는데 쓰였던 나무판(칼더의 작품은 모빌이기 때문에 나무판에 스테이플러로 고정시켜 운반했어야 했다고 해요)이기 때문에 이런 자국이 있는 겁니다. 그 정도로 칼더는 재활용을 사랑했고 어떠한 고물도 작품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습니다. 남들이 가치가 없다고 버린 것에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또는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4.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융합시키기
칼더와 같이 위대한 예술가가 원래는 공대생이었고 8년간 예술가는 상관없는 분야에서 일했다는 것은 거의 충격이었습니다. 뒤늦게 자신의 꿈을 위해 미대에 진학한 용기도 놀랍지만 예술가가 되어서도 공대에서 배웠던 지식(모터 기술 등...)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칼더는 시대를 앞서간 진정한 '융합'의 인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칼더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완벽한 '균형미'는 그가 공대에서 배운 수리적 지식에 일정 부분 영향을 받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과연 칼더는 엔지니어로 보낸 8년의 세월을 후회했을까요? 아니면 그 때의 지식을 알토란같이 작품에 잘 반영시켰을까요?

5. 성실하기
평범한 진리이지만,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칼더는 정말 성실한 예술가였습니다. 조수도 없이 혼자 일하면서 혼자 만들어낸 작품이 무려 2만 4천점이나 됩니다.(그가 작가로서 활동한 시간은 약 50년 정도이니 단순하게 계산해보면 1년에 무려 480점의 작품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지루한 것, 똑같은 것을 싫어하는 칼더였으니 2만 4천점의 작품은 어느 것 하나 똑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작업이 생활이었고, 생활이 작업이었을 만큼 성실했습니다.
그는 분명 천재였지만 그는 자신의 천재성을 발현시킬 수 있는 성실함도 겸비한 사람이었습니다.


즐거운 관람 되시길 바랍니다 :D


++)
이번 칼더전에는 의외로(?) 합리적인 가격의 예쁜 기념품들이 많아 구매욕이 생기는 걸 겨우 참았습니다.

위 상품처럼 칼더의 작품이 프린트된 에코컵도 있었고, 너무 귀여운 어린이용 티셔츠도 있었습니다. 동선이 꼬이면 지나칠 수 있으니 아트상품에 관심 있는 분들은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참고##전시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