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산책 10] 오래된 연장통

2013. 12. 13. 08:25리뷰
알 수 없는 사용자

'심리학 산책'은 UX 디자이너를 위해 심리학 책들을 총 10회에 걸쳐서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연재 의도와 전체 책 목록은 아래 글을 참고하세요.
[연재 소개] UX 디자이너가 읽어야할 심리학 책 10가지


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 전중환 지음


왜, 진화심리학

아래와 같은 궁금증을 가져보신 적 있으신가요?

- 왜 유재석의 자학 개그에 박장 대소할까?
- 왜 드라마 주인공을 제발 죽이지 말라고 방송국 게시판을 도배할까?
- 왜 카페에 가면 창밖이 내다보이는 구석 자리에 앉을까?
- 왜 눈물, 콧물 흘리면서도 매운 음식이라면 사족을 못 쓸까?
- 왜 남녀의 쇼핑 리스트에 올라 있는 물건은 다를까?

모두들 우리 행동과 생각의 이유에 대해 묻고 있죠. 이렇게 '우리는 왜 이렇게 행동하고 생각할까'라는 물음을 가질 때 심리학에서 어느 정도는 답을 구하실 수 있습니다. 이 '심리학 산책' 연재도 그런 의미에서 보고 계신 분들이 많이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심리학 산책에서 그 동안 소개해 드렸던 책들은 주로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동작하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이러저러하게 움직이기 마련이고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는 식이지요. 그래서 정작 '왜' 그런가에 대해서는 약간 다른 관점의 답이 필요합니다.

사실, 위 목록은 바로 이 책 "오래된 연장통'에서 다루는 의문들이고, 이 책이 다루는 '진화심리학'이 '왜'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답은 기본적으로 '진화'에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진화심리학은 사회심리학이나 지각심리학과 같은 분류가 아닙니다.  

얼핏 들으면 진화심리학이라는 이름은 심리학의 한 세부 분야를 일컫는 것처럼 들린다. ...(중략)...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진화심리학은 인간 심리의 모든 측면에 대한 새로운 접근, 즉 진화적 접근이다. (p.29)
진화론이 인간 심리의 모든 측면을 다룰 수 있다는 점을 저자는 십분 활용하여 이 책을 일상 생활의 다양한 장면들로 꾸몄습니다. 덕분에 독자들은 진화심리학의 넓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재미라는 덤과 함께요.  

참고로 pxd에서는 이 책의 저자 전중환 교수님을 모시고 진화심리학에 대한 강연을 들은 바도 있습니다.
[pxd talks 28] 진화심리학을 통해 알아보는 아름다움과 귀여움


마음의 진화, 본능

많은 분들은 진화라고 하면 흔히 신체적인 측면을 떠올리게 될 뿐, 마음과 같이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보신 적이 없으실 겁니다. 생각해 본다고 해도 생존에 직접적인 행동과 관련된 것라거나 다분히 본능적인 수준의 심리 반응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요,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를 뛰어 넘는 상위 수준의 현상에 대해서도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됩니다.  아래에 이 책의 목차 일부를 적어 봅니다.

- 문화와 생물학적 진화
- 다윈, 쇼핑을 나서다
- 웃으면 복이 왔다
- 도덕의 주기율표
- 음악은 왜  존재하는가
- 종교는 피할 수 없는 부대 비용

문화적 차이, 소비 행동, 유머와 개그, 도덕, 음악, 종교 등은 본능적인 것은 아닌데 어떻게 진화로 설명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역설적으로 이런 현상들이 바로 본능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본능은 별로 흥미롭지 않은, 유전적으로 고정된 행동 패턴을 의미한다. 눈을 볼펜으로 찌르는 시늉을 하면 눈꺼풀을 깜박이는 게 당연하다고 사람들은 여긴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본능은 기나긴 진화 역사를 통해 한 종의 구성원들이 보편적으로 지니게 된 심리나 행동 기제의 산물이다. 보편적인 심리 기제가 각각의 생태적, 사회적 입력에 반응하여 다양한 결과물들을 만든다. (p.189)

그래서 도덕이라는 것도 '도덕 본능'에 의한 결과물이라는 것이고, 종교는 진화의 부산물 또는 부대비용이라고까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화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진화심리학의 돌직구

설명이 가능한가의 여부와는 별개로, 도덕적 행동, 문화권에 따른 차이, 종교 등에 관한 것은 자연과학으로 설명하기에 어려운 주제입니다. 전통적으로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의 영역으로 인식되어 왔고, 게다가 종종 가치 판단과 연결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쉽게 때문입니다. 진화심리학도 그러한 모양입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행동에 대한 진화적 설명은 종종 거센 반발에 부딪힌다. (p.56)
 
논란을 불러오는 주제로 대표적인 것에는 남여의 성차에 관련된 문제도 있죠. 이것을 포함해서 여러 예민한 주제들도 이 책에서는 에둘러서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에 대해 과학적 설명이 필요하고, 그것이 그 문제를 다루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인과적 설명은 그러한 문화적 차이를 낳은 보편적인 심리 기제가 무엇이며 왜 그러한 차이를 낳았는지에 대한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p.65)
 
어떤 성차는 남녀 모두를 난감하고 불쾌하게 만든다. 그러나 어떤 현상을 없애고자 한다면 먼저 그 현상이 일어난 원인을 과학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p.47)

많은 대중들을 위한 글에서 용기를 낸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동시에 독자들에게는 이 내용들을 차분히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진화론의 깊이

진화론이 세상에 미친 영향력은 어마어마 합니다. 그에 비해, 우리와 같은 일반인이 진화론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수준은 상당히 단편적이고 피상적이죠. 중학교나 고등학교 과학시간에 배워서 우리의 머리 속에 남아있는 것은 '용불용설은 틀렸고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가 이루어진다' 정도 아닐까 싶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생존에 좀 더 적합한 개체들이 더 잘 살아남기 때문에 그런 속성을 가진 집단이 번성하게 되고, 그런 과정을 통해 해당 종의 형태가 변화해 나간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자연선택이 유전자 수준에서 이루어진다는 설명이 있다는 것, 알고 계셨나요? 더불어 그 설명을 통해 인간의 이타적 행동을 진화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도요. 이해하기 쉽지는 않는 내용이지만, 현대의 진화론을 좀 더 잘 이해하기에 필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세번째 연장 : 유전자를 위한, 유전자에 의한 행동' 부분에서 소개되고 있으니 주의 깊게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시면 리처드 도킨스가 지은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책이나, 이 블로그에 소개된 바 있는 '초협력자'라는 책을 참고하세요. 

진화론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또 있습니다. 진화론은 이미 알려져 있는 현상에 대한 사후 설명일뿐이라는 것이죠. 이런 오해를 푸는 것도 우리가 가진 진화론 이해의 깊이를 더하는 데 필요합니다.  

아인슈타인이 별빛이 휘어지는 현상을 정확히 예측한 걸 보시오. 그에 비하면 진화는 역사적 사실들을 사후 설명하기에 급급하잖소?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다른 모든 과학처럼, 진화과학은 산만하게 흩어진 여러 현상들을 간결한 이론으로 통합하여 설명해 줄 뿐만 아니라, 미처 몰랐던 사실에 대한 신빙성 있는 예측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p.139)

진화론이 예측을 할 수 있고 그 결과가 증명될 수 있다는 구체적 사례들은 책 여러 부분에 걸쳐서 소개되고 있으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UX 디자이너에게

진화론에 대해서는 누구가 어느 정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진화심리학에 대해서는 낯선 분들이 많겠지만, 조금이나마 들어 보신 분들이 계실 수도 있겠지요. 이 책을 읽으시고 나면, 이전에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어떤 점이 다른지 되짚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인간 심리의 모든 것을 진화의 관점으로 볼 수 있는 눈이 뜨이셨겠죠? ^_^ 그렇다면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심리적 현상들을 진화로써 설명해 보는 시도를 해 보세요. 일상 생활에서 보던 현상도 좋구요, 아니면 UX 디자인에 관련되어 고민되던 사용자의 반응에 대한 것도 좋습니다.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도덕적 행동처럼 가치 판단에 관련된 영역에 대해서도 진화심리학은 과학의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을 이해하셨다면, 인간의 심리를 있는 그대로, 평소 자신이 가졌던 가치관에 의해 흐려지지 않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UX 디자인의 영역에서, 사용자의 마음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면 어떨까 합니다. 


10회로 계획된 '심리학 산책'은 이 책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UX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심리학 책들을 소개하고자 노력하였는데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물론 다른 분야에서 공부하시거나 일하시는 분들에게도 좋은 책들입니다. 이 연재를 계기로 심리학에 대해 조금 더 알게되고 흥미를 가지게 되셨다면 이제 자신만의 심리학 산책을 시작해 보세요. 심리학의 세계는 넓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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