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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 역사'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14.12.23 WebTV Design Guide by 이 재용
  2. 2013.09.25 UX 분야에서 단 한 권의 책을 추천한다면? The Media Equation (3) by 이 재용
  3. 2013.01.16 두들(Doodle, 구글 로고 변형)의 역사 by 이 재용
  4. 2012.10.31 90년대 3대 메타포 UI 실패 사례 (3) by 이 재용
  5. 2012.06.18 최초의 마우스, 최초의 네비게이션, 최초의 애플 컴퓨터 by 이 재용
  6. 2012.06.07 대한민국 HCI-UI-UX의 역사 (13) by 이 재용
  7. 2010.07.05 구글과 애플의 미니멀리즘 베끼기 경쟁 (6) by 無異
  8. 2010.04.14 “Apple처럼 oooo하게 해 주세요” (4) by Limho
  9. 2010.04.01 Adobe Photoshop & Illustrator Release History & Splashes (5) by 조준희 cho junhee
  10. 2010.03.29 Apple, Blackberry, Orange 이름의 유래 by 이 재용
2014.12.23 01:00

WebTV Design Guide


WebTV라고 하면 어떤 분들은 과거가 아련히 떠오를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게 뭐지?' 라며 생소해 하실 것 같다.

TV로 TV 프로그램만 시청할 것이 아니라, 인터넷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Perlman 등이 1995년 설립한 회사인데,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되어 msn-TV가 되었다가, 2013년 9월 30일 종료된 서비스 회사이다. (위키백과 참고)
기본적으로 작고 검은 상자(셋탑박스)가 있고, 이것을 브라운관 TV에 연결하면 TV에서 인터넷, 메일 등을 볼 수 있는 서비스이다. 초기에는 컴퓨터는 없지만 인터넷을 하고 싶은 계층을 목표로 만들었다.
흥미로운 건, 이 회사 때문에 Interactive TV라는 한바탕 붐이 일었고, 국내에도 이러한 기술을 제공하려는 회사가 10여개 이상 만들어졌다가 망해갔다. 사실 그 전에도 Teletext라는 제한된 '정보' 서비스가 TV 화면에도 나오긴 했지만 매우 제한적이었다면, 간단한 셋탑 박스를 연결해 기존의 TV를 인터랙티브하게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낙담을 안겼다.

그리고 그 때부터 시작한 TV에서의 '인터랙티브' 바람은 때로는 "Digital TV"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IPTV"라는 이름으로, 또 때로는 "스마트 TV"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찾아왔다. 다들 나타나게된 배경은 서로 매우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호소하려는 부분은 비슷한 점이 있다. 그 중 현재 의미있게 살아 남은 부분은 IPTV와 디지털 셋탑의 VOD 서비스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야기가 잠깐 옆으로 샜는데, 하여간 이 WebTV는 초기 TV 화면에서 어떻게 정보가 보여질 것인가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한 것으로 TV UI 역사에 큰 기여를 했고, TV UI 디자이너라는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냈다. 1996년까지 거의 매주 8명 정도의 사용자에 대한 사용성 평가를 진행하는 등, TV UI 에 대해 거의 최초로 매우 깊이 있게 연구를 한 집단이다.
Design brief: WebTV Networks By Elissa Darnell, Interactions March-April 2000

특히 기존 TV UI는 모두 제조회사 내에서 디자인과 구현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외부로 가이드를 공유할 필요가 없었는데, WebTV의 경우, 외부에서 만든 콘텐트(즉 웹페이지)가 자신의 WebTV에서도 잘 보이도록 만들어야 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TV UI에 관해 연구하고, 이를 외부에 공유하여, 마침내 최초의 TV UI/GUI Design Guide를 만들어 배포하게 된다.

이것이 이 글을 쓴 이유다. '최초의 TV Screen Design Guide'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WebTV의 초기 화면
WebTV는 홈페이지를 통해서,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가이드라인 형태로 발표했다. 
(원래 주소는 webtv.net인데, 이미 없어진 회사라 아카이브에서 연결 가능. 이것은 1999년 7월 수정된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 디자인 가이드 
http://web.archive.org/web/19990508121855/http://developer.webtv.net/design/designguide/Default.htm
를 살펴 보면,

화면 크기 (Screen Dimensions)에서는 544 x 372 크기로 하길 권하고, 최소 16 포인트 이상의 글자를 쓰기를 권장한다. CRT가 색을 내는 특성상 완전히 하얀 색 배경은 문제가 있을 수 있고, 붉은 색은 매우 쉽게 번지며, 한 픽셀 굵기의 수평 라인은 Interace라는 건너뛰기 주사 방식에 의해 떨릴 수 있다. 

100만 정도의 가구가 구입을 했고, 그들은 한 달에 40시간 이상 사용을 했다. 그들의 예상대로 고객 대부분은 이 제품을 구입하기 이전에는 '인터넷'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고객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용자에 대해 매우 잘 알았기 때문에, TV 앞에서 정보를 구하는 사용자의 특성과 TV(대부분 브라운관 CRT) 디스플레이라는 특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Interactive TV 사용자 경험 연구의 초석을 다졌고, 전세계 TV UI 디자이너에게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많은 피엑스디 UX 디자이너들이 TV (혹은 스마트 TV)의 화면과 경험을 설계하고 디자인하는데, 우리가 갖고 있는 많은 이해와 지식의 출발이 되는 WebTV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이 안타까와서, 피엑스디의 디자이너들에게 알려주기 위하여 이 글을 작성하였다.

참고
1997년의 Nielsen Norman Group TV 사용성에 관한 자료
WebTV Usability Review (1997) Jakob Nielsen
TV Meets the Web (1997) Jakob Nielsen
[참고##UI 역사##] [참고##가이드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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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5 00:14

UX 분야에서 단 한 권의 책을 추천한다면? The Media Equation

컴퓨터는 이제 너무 흔한 물건이어서 더 이상 우리의 철학적 관심을 받고 있지 않는 듯 보이지만, 지금 한 번만 이 스크린을 보고 잠시 생각해 보자.


우리에게 과연 컴퓨터(스마트폰, 스마트TV 등)는 무엇인가?


1990년대는 이러한 철학적 질문으로 가득찬 시대였다. 아쉽게도 그 생각들은 끊어져 더 이상 요즘의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지만, 나는 이러한 철학적 질문이야 말로, UX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내게 UX에서 추천하고 싶은 책을 물을 때, 솔직히 나는 머뭇거린다. 수많은 2000년대의 책들이 좀 더 선명하고 소화하기 좋은 형태의 지식으로 가득 채워 출간되는 반면, 나에게는 여전히 90년대의 책이 내 생각의 근간을 이루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이러한 내 생각이, 그 시대의 책들이 정말 중요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단지 내 생각의 형성기에 본 각인 효과로, 새로운 생각을 해야할 사람들에게 곰팡이 냄새 나는 옛 책을 내미는 경험자인척 하는 악취미여서 그런 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에게 정신적 충격을 주었던 책들은 Computer as Theatre (1991), City of Bits (1996), The Society of Mind (1998), Contextual Design (1998), The Inmates are Running the Asylum (1998)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한 권을 꼽는다면, The Media Equation (1996)을 꼽을 것이다.

미국에 있을 때 이 책을 접한 뒤로, 관련된 후속 논문들을 계속 찾아 읽으면서 그 철학적 의미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이었는데, 얼마전 피엑스디에서 진행하는 심리학 산책 토론회에서 이 '미디어 방정식'을 다루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말해서 

CASA : Computers Are Social Actors.

컴퓨터는 우리에게 무엇일까에 대한 오랜 연구의 결과는, 우리는 컴퓨터를 인간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인간도 아니라 우리와 사회적으로 교감하는 인간. 우리는 컴퓨터에게, 인간에게 하듯이 예의를 갖추며, 컴퓨터가 아부하면 엉터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좋아하고, 컴퓨터와 팀을 이루면 그 컴퓨터를 더 좋아하는 등, 다른 인간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 것과 똑같이 컴퓨터와 상호작용을 한다는 점이다.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uman Computer Interaction)의 본질은 '사회적' 상호 작용이었다. 컴퓨터가 아주 아주 원시적일 때부터 인간은 컴퓨터를 사회적 참여자(Social Actors)로 생각하고 있었다. 컴퓨터가 인간을 어떻게 대하든, 컴퓨터가 얼마나 단순하든 복잡하든, 아주 단순한 계산기든, 아주 복잡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든, 상관없이 인간은 컴퓨터를 친구로, 팀메이트로, 그리고 적으로 대한다. 그리고 그 후 20년간, 인간은 컴퓨터를 어떻게 하면 좀 더 상대방(사용자)을 알아보고,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추고, 사용자를 배려하게 만들까, 인간이 생각하는 사회적 참여자로서 더 인간답게 만들까를 고민해 왔다. 컴퓨터가 사회적 상호 작용을 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UX의 철학적 본질이다.

흥미로운 건 17년만에 이 책을 다시 살펴봐도, 여전히 이 질문은 유효하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컴퓨터는 무엇인가? 우리는 컴퓨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많은 부분에 대해 우리는 여전히 응답하고 있지 못하다. 수 십년이 흘러 그 당시보다 엄청나게 발달한 컴퓨터 앞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내 컴퓨터는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 매일 매일 아침마다 나에게 천진난만한 얼굴로, '너는 누구냐?'면서 암호를 요구한다. 같은 은행, 같은 ATM 기계 앞에서 나는 늘 같은 액수의 돈을 찾는데, 오늘도 나에게 암호를 물어보고, 또 돈을 얼마나 찾을 거냐고 물어본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도 가족간의 서열을 파악하는데, '스마트'TV는 가족 중에 누가 채널권을 갖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 한다.

물론 부분적으로 컴퓨터는 더 예의가 밝아졌다. 자신의 에러를 함부로 사용자 탓으로 돌리는 에러 메시지도 많이 없어졌고, 내가 반복하여 취하는 동작을 근거로 내 취향을 알아내거나, 내게 어울리는 것을 추천해 주는 센스도 늘어났다. 이제는 내가 카메라를 수평으로 찍었는지, 수직으로 찍었는지도 기억하고 있고, 알아서 내 자료를 클라우드에 저장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도 그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인간은 컴퓨터를 인간으로 인식하는데, 컴퓨터는 나를 인간으로 인식하지 못 한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UX를 공부할 때 읽어야할 가장 중요한 책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아직 이렇게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ㅎㅎ) 나는 The Media Equation 이라고 대답하겠다. 구식이든 말든.

* 사실 단 한 권의 책을...에 이 책(Media Equation)과 쿠퍼의 책(The Inmates...)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했다. 제목을 '두 권의 책...'이라고 하기에는 좀 어색하고, 그렇다고 한 권이라고 하면서 쿠퍼의 책을 안 하기도 이상하고... 그래도 좀 더 근본적인 질문에 가까운 책을 고르기로 했다. 다음 번엔 같은 제목으로 쿠퍼의 책에 대해서 쓰더라도 뭐라하지 마시길...

[자세한 책 내용 보기]
[심리학 산책 7] 미디어 방정식 (책 소개, 꼭 보시길)
[심리학 산책 7] 미디어 방정식 : 독서 토론회 스케치 (토론회 매우 재미있게 진행되었고, 매우 잘 정리되었습니다)
[독후감] 관계의 본심

* 이 책의 우리말 번역은 상태가 매우 안 좋다고 전해들었습니다. 저는 영문으로 읽었습니다.
[참고##심리학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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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6 00:23

두들(Doodle, 구글 로고 변형)의 역사

어떤 이름 있는 날이 되면 포털 사이트들은 모두 자신의 로고를 그 날의 의미에 맞게 변형을 합니다. 요즘은 안 하는 곳이 없지만, 처음 이러한 시도를 할 때는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기업의 브랜드는 굉장히 중요한 자산인데 그것을 훼손하다니! 하지만 이제는 재미있는 기업이 되려면 누구나 해야하는 일로 자리 잡았죠. 이러한 로고 변형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구글에서는 이것을 두들(doodle, 낙서의 의미)이라고 합니다.

1998년 여름(8월 30일), 구글의 창업자 두 명은 Burning Man Festival에 참여하면서, 자기들이 없을 때 사이트가 망가지거나 하면, 누군가 회사에 전화를 할테고, 그 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으면 이상하게 생각할텐데, 어떻게 모두 다 페스티발에 참여해서 회사가 비었다는 사실을 재미있게 알리지? 궁리한 끝에, 로고를 변형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최초의 두들인데요, 기록에 따르면 1998년에 세 번 정도 변형을 했다는군요. 그 이후에 꽤 정기적으로 로고를 변형하였다고 합니다(Oodles of doodles)

우리 나라 언론에도 잘 알려져 있다시피, 구글 최초의 한국인 직원인 데니스 황이 2000년 인턴 시절부터 이 두들을 계속 디자인하고 있다고 하죠. 이 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검색해 보시거나 동영상(구글 웹마스터 데니스 황의 낙서 스토리)을 보시면 됩니다. 구글 블로그에도 소개글이 있습니다. 또 사용자가 제안을 할 수 있는 것도 아시죠? 

구글에서는 전세계 어린이/학생들을 위해서 로고 변형 경진대회 (Doodle 4 Google)도 매년 몇 나라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2008년 스웨덴을 시작으로 2009년 인도, 2010년 미국 등의 행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2012년 미국 대회에는 11만명이 응모하여 초등 2학년생이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National Winner인 Dylan Hoffman의 해적시대(Pirate Times)는 2012년 5월 18일 24시간동안 게재되었다.



구글의 과거 모든 두들을 보고 싶으시면, http://www.google.com/doodles/ 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네이버의 경우 2008년 12월 25일 처음으로 로고 변형을 내 보내었나 봅니다. 네이버에서는 '스페셜 로고'라고 부르네요.
과거 로고를 모두 보시려면 http://story.naver.com/naverbrand/main.nhn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다만 플래시로 만들어진 사이트라, 많은 디바이스에서 접속이 안 될 것입니다. 김재현님 감사합니다!)

2008년 12월 25일 처음 시도된 로고 변형 중 하나


다음 등 다른 국내 포털도 이렇게 자사의 로고 변형 역사를 보여주는 페이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네요. (구글의 경우는 '구글 로고 변경'이라고 하면 쉽게 나옵니다)

모든 회사의 로고 변형 아이디어를 비교한 피엑스디 블로그:
2010/05/06 - 어린이날 포털사이트들의 로고를 클릭하면 어떤 정보가 보여지나? 두들 분석
을 꼭 보세요. 각 회사의 아이디어 차이가 느껴집니다.

[참고##UI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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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1 07:56

90년대 3대 메타포 UI 실패 사례

메타포는 잘 사용하면 사람들이 쉽게 인터페이스를 익힐 수 있지만, 잘못 (혹은 과도하게) 사용하면 사용성도 떨어뜨리면서 학습성마저 해칠 수 있다. (자세한 장단점 비교는 스큐어모피즘 참고)

90년대에는 유명 회사들도 이런 황당 시도를 많이 했는데, 덕분에 많은 UI 디자이너들이 배웠다. 기억나는 3대 황당 메타포 실패 사례 소개.

1. IBM Real Thing Series 1997

1997년부터 1998년까지 IBM에서는 일련의 Real 시리즈를 내놓았는데 Real Phone, Real CD 등이 있었다.

Real Phone:http://hallofshame.gp.co.at/phone.htm

IBM측의 소개를 보자.
welcome to the future; one without distracting windows and menu bars. the realphone is an experiment in user interface design for a new, real-world user interface style..

지금 시점에서 보면 웃기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당시 IBM 사람들은 이것이 정말 획기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진짜 전화기를 흉내 내더라도, 프로그램은 진짜 전화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전화번호를 입력하는데 키보드를 쓸 수도 없고, 이름으로 검색을 할 수도 없고... 그냥 마우스로 퀵버튼을 누르거나 화면상의 숫자 버튼을 마우스로 눌러야 하는데, 이건 손으로 누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기만하다. 컴퓨터의 장점을 다 포기하고, 그렇다고 전화기의 편리함도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더 웃긴 건, Real CD. 1998
http://hallofshame.gp.co.at/realcd.htm
화면의 대부분은 프로그램 로고로 채워지고 있다. 듣고 있는 CD의 표지가 보였으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당시엔 인터넷의 속도나 데이터로 불가능했다. 결국 아주 작은 콘트롤 몇 개로 조작해야한다. 역시 컴퓨터가 가진 장점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정말 웃겼던 건, 그래 전화기는 원래 전화가 된다 치자, CD는 원래 플레이가 안 된다. CD 껍데기 들고 옆을 눌러 소리나는 CD는 없었다. 그럼 대체 왜 "Real" CD인가?

하여간 사람들에게 큰 교훈을 주고, 씹는 즐거움을 주었다.


2. Apple의 QuickTime 4.0 1999

http://hallofshame.gp.co.at/index.php?file=qtime.htm

Quicktime 4.0은 매우 멋진 인터페이스로 기억되지만 너무 리얼 메타포를 추구하다가 오바한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 가장 황당한 건 바로 볼륨 조정 다이얼(dial)이다. 인터페이스의 좌하단부에 나오는데, 이것이 마우스로 조작하려면 굉징히 힘들게 만들었다. 아래부분에 마우스 포인터를 놓고, 둥글게 위로 올리고, 다시, 아래쪽에 포인터를 놓고 둥글게 위로 올려야 조작이 되었던 것. 아... 이런 건 비디오로 설명해야 쉬운데, 하여간 저렇게 둥글게 생긴 다이알은 손가락으로 돌리면 쉽지만, 마우스로 돌리면 굉장히 어렵다. (이렇게 돌리면 그 옆 스피커 아이콘 앞에 볼륨이 표시된다. 나중에 볼륨표시 부분을 이용한 콘트롤이 추가되었다)

애플은 GUI 초기부터 계속 이 메타포 혹은 스큐어모피즘에 병적인 집착을 보이는데, 내부 디자이너들도 반발하는데 스티브 잡스가 고집한다는 소문도 있다.


3. 마지막으로 Southwest Airlines Website... 1995

http://www.skrenta.com/2007/04/
마지막으로 미국 항공사의 홈페이지 디자인이다.

늘 그렇듯이 무리한 메타포는 현실 경험의 장점도 못 살리고, 디지털의 장점도 못 살리는 식이 된다. 예를 들어 회사 뉴스를 항공사 카운터에서 보는 사람도 없으며, 자기 이력서를 항공사 카운터에 넣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예약하기 위해 직원들이 사용할 것 같은 전화기를 누른다는 것도 너무 억지지만, 가장 웃긴 건 사장 사진을 눌러 사장의 인사말을 본 다는 것.

이렇게 3종이...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메타포 실패 사례다. 누가 인증한 건 아니고, 필자 기억에 남는 기준임. 물론 기억에 남았다는 건, 굉장히 많은 사람들과 문건들이 실패 사례로 쓴다는 것 (인터넷 기사 뿐만 아니라 교과서 류에도 많이 실린 사례들이다)

메타포는 항상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과도하게 만들면 언제나 무리수가 생기고, 현실도 디지털도 아닌 것이 만들어지게 되니까. 잘만 사용하면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참고##메타포##]
[참고##UI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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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8 10:43

최초의 마우스, 최초의 네비게이션, 최초의 애플 컴퓨터

최초의 마우스
잘 알려진대로, 1968년 12월 9일, 스탠포드의 더글라스 엥겔바트가 "디스플레이 시스템을 위한 x-y 위치 표시기"를 만들어 공개했다. 작은 나무 상자에 휠이 달려 있는 형태였고, 손에 쥐는 장치는 '마우스', 스크린의 커서는 '버그'라고 불렀다.(출처:조선일보)

Douglas Engelbart, Computer Mouse Creator, Visionary, Dies at 88


엥겔바트의 마우스는 1970년대 제록스 파크(Xerox PARC)에서 더 개발되다가, 애플에서 최초로 대량생산하게 된다.
1980년 애플은 IDEO에게 Lisa 컴퓨터를 위한 마우스를 디자인해달라고 했다. IDEO는 제작 비용은 더 낮추면서도 신뢰성 있는 포토트랜지스터를 이용한 볼마우스를 디자인하였다. (출처:IDEO)


최초의 애플컴퓨터
1976년 4월 1일에 설립되어 최초의 Apple-I 컴퓨터를 1976년 7월에 $666.66 에 출시하였다. 첫 컴퓨터는 케이스나 키보드 같은 것은 없이, 마더보드만 팔았다. (이 당시는 이것이 personal computer라고 간주되었다.) 1977년 4월 16일 키보드와 주변 기기 등을 갖춘 Apple II가 소개되기 전까지 단 200개를 팔았다고 한다. 애플1은 당시 컴퓨터 유통업을 하던 폴 테렐의 주문으로 개발됐다. 당시 테렐은 한 대당 500달러에 50대의 컴퓨터를 주문했고, 잡스와 워즈니악은 한 달도 안 돼 이 컴퓨터를 만들어 납품했다. 이후 두 창업자는 150대의 컴퓨터를 더 만들어 50대는 친구들에게, 100대는 컴퓨터 판매업자에게 팔았다. 현재 50대가 남아있는데, 그 중 판매 당시의 상태가 완벽하게 남아있는 한 대가 2010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2억7천만원에 팔렸다. 이들 중 정상 작동하는 것은 6대가 있는데, 그 중 한 대가 2012년 소더비 경매에서 4억 3천만원에 팔렸다. (출처:위키피디아, 조선일보, 조선일보)

[사진:주변 구성 요소가 그대로 보존된 애플-1. 포장 상자에는 스티브 잡스 부모님 주소가 씌여있고, 그가 고객에게 쓴 편지도 포함되어 있다. 뉴턴이 사과나무 밑에 앉아있는 최초의 애플 로고도 보인다. 출처:Chrisite's]

최초의 네비게이션
1920년대에 영국에서 제작된 세계 최초의 네비게이션(내비게이션,Navigation)은 손목에 차고 운전하면서 지도가 말려있는 나무 롤러를 돌리면 방향을 알 수 있다. 수집가 모리스 콜린스(Maurice Collins)가 런던 도서관에서 연 전시회를 통하여 소개되었다. (출처:조선일보)


최초의 웨어러블?(손목 계산기)
IT매체 기즈모도의 보도에 따르면 청나라 시기(1800년경)에 만들어진 이 초소형 주판 반지는 1.2cm길이에 폭은 0.7 cm이다. 단순히 모양만 주판이 아니라 실제로 계산도 할 수 있다. 너무 작아서 손가락으로 계산을 할 수 없고, 부유층 여성들이 머리핀 등으로 계산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출처: 나우뉴스)



최초의 타자기
1700년대 말부터 1800년대 중반까지 구미 전역에서 많은 발명가들이 서로 개발하고 채용하여 누가 진정한 발명자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처음 상업적으로 성공한 것은 1868년 크리스토퍼 쇼울즈 등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이 시기에 'Type-Writer'라는 이름으로 레밍턴에게 특허가 양도되었고, 이 사람들이 처음 만든 프로토타입에 QWERTY 키보드가 장착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1885년 아메리칸 언더우드 타자기. 흥미로운 건, 이 때 이미 @ 심볼이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 증명되지 않은 부분. 이 당시에는 SHIFT 키가 없어서 숫자 외의 기호 입력이 불가능해 보이네요)



최초의 스프레드시트

의미있는 기술적 진보는 그 이전에 이루어졌으나, 상업적으로 첫번째 성공하였고, 개인용 컴퓨터를 처음으로 장난감이 아닌 "쓸모있는 물건"으로 보이게 한 스프레드시트는 VisiCalc였다.
1979년에 Apple-II에서 출시되었고, 1981년에 IBM-PC에서 출시되었다. 이른바 IT 역사상 최초의 '킬러 앱(앱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그 앱이 동작하는 기계를 사고 싶어질 정도의 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출처:위키피디아)

이 앱은 지금도 IBM 호환 컴퓨터에서 실행시켜 볼 수 있다. 실제로 한 번 실행시켜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출처:Dan Bricklin's)

최초의 리모컨
1955년 제니스 일렉트로닉스(Zenith)에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유진 폴리가 개발한 '플래쉬-매틱'은 음량, 채널을 조정할 수 있는 최초의 리모컨이다. 빛을 이용했기 때문에 햇빛이 강한 날에는 오작동하기도 했지만,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다고 한다. 이 때문에 Couch Potato와 Channel Surfer란 신조어가 생겼다. 대신 광고가 나올 때마다 시청자들이 소리를 줄이는 바람에 광고주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고. 폴리는 초음파(1956년), 적외선(1980)을 이용한 모델도 만들었다. (출처:조선일보)

[사진:플래시-매틱. 출처:데일리메일]

최초의 진공청소기

원래 손으로 돌리는 것이 있긴 하지만(좀 더 엄밀한 역사 참고), 모터로 된 근대 진공청소기를 처음 만든 사람은 1901년 영국의 발명가 세실 부스(Cecil Booth)이다. 그는 의자에 먼지를 뿌린 뒤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손수건을 고정시켜놓은 후 입으로 공기를 빨아들이는 실험을 하여 흡입식 진공청소기를 개발하였다. 그러나 세실 부스가 처음 발명한 흡입식 진공청소기는 지금처럼 조그마한 청소기가 아니고 마차에 펌프를 장치한 거대한 기계였다. 진공청소기의 크기를 현재 가정에서 사용하는 크기 정도로 줄인 사람은 미국인 제임스 스팽글러(James Spangler)이다.

늘 기침에 시달리던 그는 1907년 먼지를 빨아들이는 휴대용 진공청소기를 발명했으나 그것을 상용화시키지는 못했다. 제임스 스팽글러가 발명한 진공청소기를 상용화 시킨 것은 그에게 진공청소기의 특허권을 사들인 친척 윌리엄 후버(William Hoover)였다. 1908년부터 윌리엄 후버에 의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간 진공청소기는 발전을 거듭해 오늘날의 진공청소기가 되었다. (Upright형의 유래)

한편 191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생산된 산업용 청소기는 병원이나 산업 현장에서 사용하는 14Kg의 무거운 형태였는데, 1921년 스웨덴 가전그룹 일렉트로룩스에서 최초로 가정용 진공청소기 '모델5'를 개발해 보급했다. 무거운 진공청소기를 쉽게 끌고 다니도록 썰매 다리를 달았다고 한다(canister형의 유래).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보급되기 시작.

1984년 제임스 다이슨이 최초로 원심분리 방식의 청소기를 개발하여 먼지 봉투 제거.
1998년 독일 가전 밀레는 산업용 먼지제거 필터인 헤파 필터를 처음으로 가정용 청소기에 적용.
2003년 일렉트로룩스는 세계 최초 로봇 청소기 '트릴로바이트' 출시.(출처:디지털타임즈,위키피디아)



최초의 수도
기원전 312년 로마의 정치인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는 물을 편리하게 이용하기 위해 수도를 만들었다. 총 길이 16.6Km중에서 16.5Km가 지하 구간이었는데, 전쟁을 대비하고 평시에도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지하에 만든 것이었다. 이를 '아피아 수도(Acqua Appia)'라고 불렀다.

최초의 냉장고
BC 4세기부터 이란에서는 야크찰(Yakhchal)이라는 원뿔형 저장고가 있었는데 섭씨 40도가 넘는 사막에서도 얼음을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중국에선 춘추전국시대부터 한겨울 산과 강에서 얼음을 떼어다 보관하고 있었고,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3대 유리왕 때 이미 얼음 저장 창고가 있었다한다.(출처:중앙일보)

가정용 냉장고는 1913년 시카고에서 처음 생산했고, 1926년 제너럴 일렉트릭(GE)에서 압축기를 이용한 냉장고를, 그리고 1939년에 오늘날 사용하는 냉장실과 냉동실이 구분된 냉장고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 LG전자(금성사)가 처음 생산했다(출처:네이트 지식)

맥가이버 칼
기원 후 201년-300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칼은 야외 생활에 필요한 작은 도구들이 모여 있어 Swiss Army Knife를 연상시킨다. 높이 88 mm, 길이 155 mm이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피츠윌리엄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출처:조선일보)


수세식 화장실
기원전 26세기경 인더스 문명권의 하라파와 모헨조다로 도시, 또 기원전 18세기경 크레타 섬의 그노소스 궁전에서도 수세식 변기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현대적 의미의 수세식 변기를 발명한 사람은 존 해링턴(1561~1612)인데, 1596년에 두 개를 만들어 자신이 하나 쓰고, 리치먼드 왕궁에 하나를 설치했다. 널리 보급된 것은 2세기 후로 1778년 조지프 브라마가 밸브를 개선하여 상업적으로 성공하였다.(출처:조선일보)


최초의 금전등록기

미국 로체스터대학교 스티븐 랜즈버그 교수 연구에 따르면 술집 운영자였던 제임스 리티가 1879년 세계 최초로 금전등록기를 개발하면서부터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손님들이 내고 간 돈을 '슬쩍'하는 직원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던 리티는 거래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금전등록기를 개발하고 이를 '청렴한 출납원(incorruptible cashier)'이라 이름 붙였다. 가격을 1달러라고 하는 대신 99센트라고 하면 항상 1센트를 거슬러 주기 위해 금전등록기를 열어야만 했고, 거래 기록이 남기 때문에 종업원들이 훔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1887년 미국에서 5400대 정도 있었는데 1890년엔 미 전역에 1만6395대나 보급됐다.
단수가격(odd pricing) 정책이라 불리는 이 방식은 소비자들이 한 단계 낮은 첫 자리로 더 싸게 기억하는 효과도 있었다.(출처:조선일보)


최초의 전화기

아마 더 이전에도 이런 식의 전화기를 사용했을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박물관에 남아있는 전화기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1200년전의 전화기라니까 말이다.
약 23미터의 면 줄을 가진 이 전화기는 북부 페루의 치무(Chimu) 제국의 것으로 추정된다. 잉카와 마찬가지로 치무도 매우 권위적인 사회였으므로, 소수의 엘리트, 아마도 성직자들에 의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보안상의 이유로 직접 만날 수 없는 최고 권위자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을까 정도가 유일한 설명이다. (출처:스미스소니언잡지)

참고 : 너무나 익숙한 것들의 첫 등장 순간들 (애플컴퓨터, 지멘스 핸드폰,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즈, HP 랩탑 등)

[참고##UI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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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7 20:45

대한민국 HCI-UI-UX의 역사

대한민국의 UI 업계도 이제 그리 짧지만은 않다. 어디서부터를 역사로 삼아야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하이터치(감성공학)-HCI - UI - UX 등으로 이어지는 분야의 역사를 한 번쯤 정리해 보고 싶은 생각이 생겼다. 하지만 예전 역사는 필자도 잘 모르기 때문에, 일단 아는 것을 다 적어보고, 제보가 들어오면 계속 추가해가는, 그래서 정리의 시작으로 삼아보고자 한다.

여러 논란이 있기 때문에 시작은 우선 UT Lab 부터 하려고 한다. One-way Mirror로 대변되는 UT Lab.설치는 한 시대의 아이콘이자, 90년대-2000년대 초반까지, 'UI 한다'하는 것의 신호였기 때문이다. (아래 내용은 모두 검증되지 않은 자료이며, '최초'등의 수식어는 자료가 추가되면 언제든지 삭제될 수 있는 잠정적 수식어이다. 최종 수정: 2017.6.4)





1990년 한국 HCI 학회(의 모태) 설립

1990년 KAIST 인공지능연구센터 소속의 연구 모임으로서 출발하여, 원광연, 전길남 등을 중심으로
1991년 10월 26일, 한국 정보 과학회의 인간과 컴퓨터 상호작용(HCI) 연구회로 발전하였다(HCI연구회 역사, 초대위원장 광운대 이수연교수). 한국 정보과학회 HCI 연구회는 당시 GUI(Graphic User Interface)와 멀티미디어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컴퓨터, 인지심리학, 디자인, 언어학, 산업공학, 철학 등의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출발하였다. 1991년 2월 21일~24일 대전의 유성관광호텔에서 심포지움을 개최하여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한 이래, 컴퓨터 분야는 물론 디자인, 인간 공학, 건축, 예술, 사회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면서 공식 등록 회원의 숫자가 1100명이 넘어서는 등 학회의 규모가 커지게 되었다. 이에 2005년에 공식적으로 정보통신부에 법인 등록을 하여 한국 HCI학회(www.hcikorea.org)로서 출발하게 된 것이다. 초대회장은 KAIST 원광연교수, 2대 건국대 김지인교수, 3대 삼성전자 정지홍상무를 거쳐, 현재 4대회장은 연세대 김진우교수이며, 임기는 2012-2013년까지 2년간이다.

한편 2010년 11월, 정보과학회 HCI연구회(위원장 GIST 우운택교수)는 CG연구회(위원장 임순범 숙명여대교수)와 통합하여 CG&I Society로 확대 개편하였다(초대회장 한림대 송창근교수).


1990년 HCI 분야 최초 공식 워크샵

국내 HCI 분야 최초 공식 워크샵이라고 생각이 되는 1990년 HCI Workshop 자료집을 보게 되었습니다. 20년이 훌쩍 넘어 우리 HCI 연구도 많은 발전을 했네요. (출처: 김지인)





(아마 1990년대에 많은 대학교에 HCI Lab.이 생기고 사용성 평가 시설이 생겼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정확한 연도/사진 등의 자료를 갖고 계신 분들은 댓글로 제보 주세요.)


1991년 KAIST VR (Virtual Reality) Lab. 탄생

원광연교수가 귀국하여 만든 KAIST VR Lab.은 91년부터 가상현실 시스템 기술, 멀티모달 상호작용 기술, 사용자 평가 방법등을 연구해오고 있고, 2005년부터는 KAIST 문화기술 대학원 Experience Lab 으로 확장되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이 랩에서는 UT Room을 만들지는 않았다).


1991년 KAIST 산업디자인학과 랩 창설(당시 랩 이름은 "디자인계획연구실: Design Planning Lab")

(다음은 서울여대 박남춘 교수님이 작성하여 주신 내용입니다)
1991년 이건표 “사용자에게 친근한 디자인(user friendly design) 연구” 한국마케팅연구원, 마케팅 , pp91-95(학술지 논문은 아니지만, 아마도 최초의 UI디자인에 대한 언급이 있었던 학술적인 글이었을 겁니다.)
1992년 LG전자(금성사) 전자렌지 사용성평가 프로젝트 진행(현재 홍익대학교 조형대학 디지털미디어디자인전공 이현진교수님이 대학원생일때 진행하셨습니다. 기업과 학교와의 UI관련 산학프로젝트로는 최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1994년 사용성평가실험실 구축
1994년 KAIST 산업디자인학과 사용자인터페이스디자인 과목 개설(아마 국내 디자인학과 중에서는 최초일겁니다)
1994년 삼성전자 캠코더 사용자 인터페이스 사용성 평가 프로젝트(현재 한동대학교 이은종교수님과 동아대학교 서종환교수님이 대학원생일때 진행)
1994년 이현진 “조형적 요소가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미치는 영향”, KAIST석사학위 논문
1994년 이은종, 이건표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사용성 평가를 위한 비쥬얼 프로토콜” 한국산업디자인 협회 연구지
1996년 이건표 월간 '디자인'지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 가이드라인 관련 ‘해답은 사용자로부터 나온다“ 4월부터 9회 연재

그 이후에는 랩 출신들이 삼성전자, 엘지전자, SK텔레콤, 현대자동차 등 다양한 산업영역의 UX분야에서 활약하고 있고, 학계에 진출한 랩 출신들은 위에 언급한 한동대학교 이은종교수, 홍익대학교 이현진교수, 동아대학교 서종환교수 이외에도 서울대학교 윤주현교수, 백석대학교 박정순교수, 경성대학교 김현정교수, 서울과기대 정성원교수, 고려대학교 이태일교수와 유승헌교수, 조선대학교 김병욱교수, 인덕대학교 이상화교수, 서울여대 박남춘교수와 이지현교수, 울산과기대 김관명교수와 백준상교수 등이 있습니다.

1992년 UI 논문

서울대 석사학위 논문: 소프트웨어의 시각적 상호작용 디자인에 관한 연구, 이상선 현 국립한경대 교수
(이 논문보다 더 앞선 국내 UI 논문을 찾습니다.)

1992년 금성중앙연구소 감성팀 설치

(작성자:권오성 연세대학교 교수) UI/인간공학/감성공학 등으로 불리던 90년대는 LG쪽에서 좀 더 일찍 시작했던것 같습니다. 92년에 금성중앙연구소(현 LG전자기술원, 삼성의 종합기술원 격) 지능정보1실에 감성팀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94년초에 제가 입사했던 곳입니다). 이후 그 기능이 94년 커뮤니카토피아 연구소로 옮겨갔는데, 커뮤니카토피아가 감성공학연구소는 아닙니다. UI기능(감성공학+인간공학 포함)이 있었던 것이죠. 커뮤니카토피아연구소는 인간, 사회, 문화를 연구해서 미래의 회사가 나갈 방향을 제시하라는 미션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후 UI 기능은 디자인연구소로 옮겨갔습니다. 제 기억에 청담동에 있던 하이터치연구소는 UI류를 연구하던 곳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하이터치란 말이 유행했었습니다.

1994년 8월 금성사 커뮤니카토피아 연구소 설립

LG전자 "커뮤니카토피아연구소" 어떤 곳인가
LG전자 커뮤니카토피아연구소(소장 이경식)은 전자와는 무관한 인문.사회분야의 국내외 석.박사 15명이 21세기 정보사회에 대비한 각종 연구를 했다. 연구원은 미국(3명).프랑스(1명).일본(1명) 등에서 인문.사회학 전공한 사람들이었다. 이 연구소는 개인은 물론 가정과 사회를 지배하는 생활문화가 어떤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또 이에 대응한 기업의 제품 개발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연구했다. "기업이 정보화에 따른 사회구조와 인간생활의 변화를 예상하고 이에 대처 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고선명TV나 주문형비디오(VOD).인터네트.정보고속도로 등과 같이 앞으로 닥칠 개개의 산업적인 요소만으로는 미래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간파할 수 없습니다. 이보다는 앞으로 몇년 후에 인구는 어떻게 변하고, 교육은 어떻게 실시하며, 가정생활은 어떻 게 달라질지 등 전체적인 사회구조 변화속에서 기업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오늘의 시점에서 내일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파악해야 합니다." 이경식소장은 10년, 20년 전에 자동차를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보지 않고 사람의 욕구와 연관, 지금처럼 생활필수품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측했다면 현재보다 편리한 교통환경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비유로 미래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커뮤니카토피아연구소는 연구조직을 인성과 사회과학.생활문화 등으로 나누어 감성공학이나 21세기 정보사회에서의 가전제품 라이프 사이클, 사용자 인터페이스 등 어떻게 보면 뜬구름을 잡는 것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연구를 하는 곳이었다. "커뮤니카토피아연구소는 21세기 정보사회의 베일에 가려 있는 핵심적인 문제를 파악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오늘의 정보화 과정을 이해하고 여기서 의미를 갖는 현상들을 추출한 후 다음 사회의 모습을 그려 보는 겁니다." 이소장은 이러한 연구가 현재도 부분적으로 제품개발에 기여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직접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생산부서에서 포괄적으로 활용할 수있을 것으로 보았다. 커뮤니카토피아연구소는 이런 분야에 노하우를 지닌 미국 스탠퍼드대와 교류했다.

참고:
[Cross Talks] 이구형 박사와의 인터뷰
우리나라 기업의 기술 지상주의와 감성기술 개발 - 이구형 님의 블로그

1994년 연세대 HCI 랩 설립

카네기 멜론에서 HCI로 박사학위를 받은(1993) 김진우 교수가 연세대에 부임하여(1994년 9월) 설립한 랩(http://hci.yonsei.ac.kr/). 랩 출신으로 김진수 전 야후! 코리아 사장, 서진원 씽크유저 이사 등이 있다.

[사진:연세대 HCI랩에서 2000년 5월경 설치한 정밀실험실과 인터뷰실]


1996년 1월 팀인터페이스 설립

한국 최초의 UI 전문 에이전시로서 팀인터페이스(대표:이성혜)가 설립되었다. 최초로 UI 부문 벤처기업을 확인을 받았으며, 2000년 7월 에이전시 업계 최초 사용성 평가룸 구축(자세한 내용은 아래 별도 작성), 2002년 8월 전문도서 출판, 2004년 6월 UPA에서 한국기업 최초로 발표, 2005년 3월 에이전시 업계 최초 부설 교육 센터 설립(아래 참고) 등 우리 나라 UI 업계의 다양한 '최초'시도를 하고 있다.

1997년 6월 PC Computing 창간

한국 최초로 잡지 기사 작성용 SW 성능 평가를 위하여, UT Lab.을 구축하였다. 미국/일본 PC Computing에서 라이센스와 기술을 들여오고, 그 사례를 통하여 설계하였으며, 당시로서는 상당히 선진 기법을 채용하고 있었다. 창간호인 6월호에서는 스프레드시트(엑셀 vs 로터스1-2-3), 7월호에서는 워드프로세서(아래한글 vs MS워드), 8월호에서는 '이야기'등의 통신 프로그램 사용성 평가를 진행하였다.

[사진:창간호인 1997년 6월호. '국내 최초 유저빌러티 테스트 실시'라는 문구가 보인다]


1997년 겨울 삼성디자인연구원(ids) UT Lab 구축

당시 한국에서 PC Computing의 공사 현장도 방문하고, 미국 선진 회사(IBM, Apple, Microsoft 등)들의 UT Room을 직접 방문해서 조사한 다음, 현재 논현동 소재 보전빌딩에 마련한 삼성 그룹 최초의 UT Room.

[사진 좌상:실험하는 척 하고 있는 이재용 현 피엑스디 대표(좌), 김태균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

애플 담당자는, 1. VHS로 시설을 구축하면 테이프 보관이 어려울 것이다. 작은 8mm로 시설을 만들어라. 실제로 그렇게 했고, 곧 tapeless로 갔던 것 같다. 2. 녹화 열심해 해 봤자, 다시는 안 본다. 실험할 때 정신차리고 노트 잘 해라. 이 역시 중요한 교훈이었다. 또 당시(1997년) IBM담당자는, "UT Room에 One-way Mirror는 낡은 유행이다. 유리때문에 방음도 안 되고, 어차피 사람들 첩보/수사 영화에서 많이 봐서 거울이 아니라는 거 다 안다. 그러니 차라리 방을 완전히 막고 카메라로 대체해라." 이런 조언을 주었다. (97년 당시에는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One-way Mirror가 없는 UT룸은 UT룸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상징성이 강해서- 따르지 않았지만, 피엑스디 설립 후에는 이 조언을 따르고 있다.) 이 시설은 이후 압구정동, 수원 삼성전자, 다시 압구정동으로 2006년 정도까지 운영되었다. 1997년 최초의 프로젝트는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와 삼성전자 훈민정음의 사용성 비교 평가 테스트였다.

1997년 3월 삼성전자 최초의 UI팀 신설

소프트웨어센터 소장으로 부임한 유인경 상무의 의지로 UI팀이 발족되었다. PARC 연구소 근무 시절 자신이 보고 느낀 Interaction 분야에 대한 열정으로 이상적인 선행 UX 팀을 구축하여 기술자들이 보지 못하는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시나리오를 제안하며 비전을 제시하는 일을 원했다. 
- S/W센터 UI 팀(1997-2000) : 사업부 UI 지원
- S/W센터 Interaction팀 (2001-2005) : 사업부 UI 지원 + 자체 선행 연구
- 종합기술원 S/W 선행연구소 FX 파트 (2006-2009) : 5-10년 후 미래 선행 연구

1997년 5월, 최초의 UI 프로젝트는 당시 WebTV(1996년 9월 미국 출시)에 대응하는 인터넷 TV를 만드는 일이었다. 이후 1999년 인터넷 TV(브라우저, 이메일 등 구현), 인터랙티브 TV (DASE - ATSC 대응), 미래 TV Leonardo(1999), 다양한 웹폰의 사용성 평가, 스마트폰 상품화 지원 등의 프로젝트를 하였다. 

1998년 7월 한국 HCI 연구회 설립

학회와 달리, 실무자들 중심이 된 한국 HCI 연구회(www.hci.or.kr)는 최영완을 초대회장으로 설립되었다. 직장인이던 최영완, 권원상, 전수형과 대학원생이던 서진원(현 씽크유저 이사)씨가 HCI스터디그룹으로 처음 결성하여 한국HCI연구회로 발전했다. 당시 소프트웨어를 넘어 웹이 보편화되면서 UI가 실무적으로 더욱 중요하게 되었으나, 전공자가 부족하고 실무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없어, 실무자들이 모여 현실적인 고민을 나누고 스터디할 수 있게 하면서, 대학원생들이 배운 이론이 실무자의 고민에 같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모임을 만들었다.

매달 정기모임을 통해 스터디나 세미나를 개최하고, 교류를 했으며, 당시 컨설팅업체가 별로 없던 터라, 연구회에서 여러 회사에 컨설팅을 제공하여 얻은 수익금으로 공개 강좌를 2차례 개최하기도 했고, 프로그램세계 잡지에 UI관련 특집 기사를 연구회 회원들이 내기도 했다. 이 연구회는 현재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약" 10대 회장 박진녕의 임기는 2011년-2012년이다.

[사진: 초기 HCI연구회 웹사이트 모습]

1999년 미래가전 연구회

(작성자:권오성 연세대학교 교수) 1999년부터 2001년까지 한경대학교 박재희교수님이 정부에서 약간의 지원금을 받아 '미래가전제품의 UI연구회'라는 것을 시작했는데 당시 가전 3사인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의 UI하던 사람들이 많이 참여했습니다. 카이스트 이우훈교수, 상명대 박지수교수, 국민대 반영환교수, 기술교육대학교 정광태교수, 한양대 류호경교수, 유투의 최재현사장님, 저 등등이 참석했었습니다. 한달에 한번씩 꽤 많이들 모였었는데 기억이 ... 이 때는 회사는 달라도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같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보다 더 동질적으로 느껴졌던 때였습니다.

2000년 7월 팀인터페이스 사용성 평가룸 구축

에이전시 업계 최초로 팀인터페이스에서 구축한 사용성 평가룸은 관찰실과 참가실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 사진이 최초 구성 당시 사진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준혁님께서 보내주신 링크와 이미지는 깨져서 보관중인 것으로 대체합니다.

2000년대 초, 2세대 UI 에이전시 설립

디엔에이(2000년 10월 1일, http://www.thedna.co.kr/), 씽크유저(2001년 9월 1일, http://www.thinkuser.com),  U2 Systems(2002년 8월 16일, http://www.u2system.co.kr/), 피엑스디(2002년 11월 5일, http://www.pxd.co.kr) 등이 차례로 설립되었다.

2000년 LG전자 휴대폰 UI 담당자 신설

(작성자:권오성 연세대학교 교수) 2000년부터 LG전자 정보통신사업본부에 휴대폰 UI 기능이 생겼습니다 (삼성전자 휴대폰 쪽은 2001년부터 정식으로 UI기능이 생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UI를 상품기획과 SW 개발자들이 나눠서 했었습니다. UI기능이 생기고 상품기획은 일을 덜어서 좋아했지만 SW 개발자들은 자신들이 하던 일을 UI쪽에서 뺐어갔다고 생각하는 측면과 UI쪽에서 자신들을 더 고생시킨다고 생각하는 면 때문에 UI를 적대시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마케팅, 상품기획, 디자인, UI는 고객쪽에서 생각하지만 SW 및 다른 개발자들은 기간내에 (덜 밤새우고)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항상 갈등이 있죠.


2001년 1월 FID CX Lab 설립

(작성자:이지현 서울여대 교수) FID는 국내 최대 인원을 자랑하던 웹에이전시였으며 그 규모에 맞게 금융, 쇼핑, 포털, 모바일기기, 홈네트워크, 메신저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가진 기업이었다. 독립적인 UX 컨설팅 그룹으로 설립된 CX Lab은 10여명 내외의 산업디자인, 인지공학, MIS 등 유관 전공자로 구성되어 IA, Usability, UX Strategy 컨설팅을 중심으로 업무를 수행하였다.

[FID의 두 번째 UT Room 전경]

당시 FID에는 우수한 능력을 가진 경영컨설턴트, 마케터,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들이 모여서 일을 하고 있어서 같이 시너지를 내면서 불가능?해 보이는 프로젝트, 선행 사례가 없는 프로젝트, 감당할 수 없는 사이즈의 IA 설계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현재 FID 출신들이 만든 회사도 꽤 많으며 각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출처] FID CX Lab의 역사 |작성자 리키


2002년 9월 SIGCHI Local Chapter 결성

2002.3.1 HCI학회 역대 조직위원들이 ACM SIGCHI Local Chapter를 위해 서명발기하였으며, 초대 Chair Person으로 이화여대 김명희 교수 선출
2002.9.1 한국HCI학회가 ACM내 SIGCHI Korea Chapter로 공식 등록 및 활동 개시(http://www.sigchi.org/connect/local-sigs#asia)
2002년에 카이스트 윤완철 교수가 주축이 되어 대한인간공학회내에 UI연구회가 생겨 모임을 가졌다고 함  


2003년 10월 NHN UX Lab 설립

(작성자:이지현 서울여대 교수) 이지현 랩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FID CX Lab을 이끌다 NHN으로 옮겨오면서, 이해진 CSO 및 조수용 센터장(후에 CMD 본부장으로 승격)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고 네이버, 한게임의 서비스 UX를 총괄 관리하는 UX Lab을 설립하게 된다.
네이버의 전체 IA, 뉴스, 쇼핑, 검색, 키워드 광고 시스템(pxd와 함께 진행)과 한게임의 서비스 구조, 결제, 대기실, 바둑 등 주요 서비스를 리더쉽을 가지고 UX 혁신을 주도하였으며 개편된 서비스가 비즈니스 실적과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월등히 향상되었고 네이버가 1위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데 적지 않은 공헌을 하였다.
그후 신입사원 채용 프로그램인 UXDP 운영, 미국, 일본, 중국 등 해외 지사의 UX 조직 설립 및 현지화, 라인 등 스타트업 비즈니스의 UX 조직 등으로 현재까지 발전을 거듭해오고 있다.
참고:네이버, 한게임의 사용자 경험을 최적화한다 NHN UX Lab


2004년 3월 팀인터페이스 김세훈 UPA (UXPA) 발표

팀 인터페이스의 김세훈 과장은 UPA (지금은 UXPA로 개명)에서 주제발표를 하였다. 한국인 최초인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이 시기보다 먼저한 경우를 아시면 관련 자료와 함께 제보 부탁드린다).
이번 컨퍼런스에 발표자로 나서는 팀인터페이스의 김세훈 과장은 "`3G 모바일 인터넷 가이드라인'을 주제로, 일본 등 다른 국가들과 차별화된 문화적, 환경적 특성에서 오는 한국의 UI의 특징을 설명하고, 3G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 이용 시 발생하는 UI상의 이슈와 이를 통한 3G 모바일 인터페이스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관련자료: 팀인터페이스, UPA 콘퍼런스 주제발표(디지털타임스 2004.3.9 강동식 기자

2005년 3월 UI Academy 설립

팀 인터페이스에서 업계 최초로 UI 교육프로그램 (UI Academy) 운영 시작. 정식 학원(유아이아카데미학원 학원등록번호 제7198호)으로 등록하여 운영하였으며 Usability Test Facilitator, Information Architecture 등의 과정이 있었고, 2008년 3월부터는 온라인 과정도 개설하였다. Information Architecture 과정의 경우 4주 8회 32시간에 35만원으로 20명 정원이었고, UT Facilitator과정은 2주 4회 12시간 40만원, Project 과정은 4주 8회 24시간 80만원이었다. 온라인 과정User Interface Program)의 경우 5주간 진행되고 8만원이었다. 주소는 www.uiacademy.co.kr 이었으나, 2012년 5월까지 운영되었으며 현재는 운영하고 있지 않다.

2006년 장동훈 이화여대 교수, 삼성전자 상무로

장동훈 이화여대 교수는 2006년 삼성전자 상무로 입사하여 전무(2010년), 부사장(2013년)으로 재직 중이다. 2013년 미국 패스트컴퍼니가 선정한 가장 창조적인 인물 2위에 선정되었다.
2010년 8월 LG전자는 카이스트 이건표 교수를 디자인경영센터장(부사장)에 임명하였고, 2012년까지 재직하였다.
2010년 8월 삼성전자는 국민대 정지홍 교수를 상무급으로 영입하였고, 2014년까지 재직하였다.

2010년 1월-2월 Interactions誌 게재

ACM SIGCHI 정기간행물이며 UI-HCI 학계의 가장 권위있는 잡지인 Interactions에 user research기반한 UI 혁신 사례로 피엑스디의 프로젝트 소개(http://story.pxd.co.kr/610)

2010년 11월 대한사용성전문가협회 창립

UPA (Usability Professionals' Association)의 한국 지부인 대한사용성전문가협회(UPA Korea, http://www.upakorea.co.kr/)가 최재현 유투시스템 대표이사를 초대회장으로 창립되었다.


[참고##UI 역사##]

도움주신 분들: 연세대학교 김진우 교수님,한국기술교육대학교 김태균 교수님,건국대학교 김형석 교수님,바이널 박진녕 선임님,KAIST 우운택 교수님,장준혁님,삼성전자 정선화 수석님,네이버 최영완님,연세대학교 권오성 교수님,서울여대 박남춘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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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5 16:24

구글과 애플의 미니멀리즘 베끼기 경쟁

오늘 버전의 크로미움 빌드를 받아보았더니 맘에 들게 깔끔하게 바뀌어있었습니다. 이것이 구글 팀만의 성과이라기 보다는 미니멀리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베끼는 아름다운 과정에서 나온것 같아서 히스토리를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More Apple than Apple

ie 6

죽지마,부활할거야.


사파리 1

사파리 이전까지는 대세인 ie6를 따라서 브라우저 툴바에 여러 기능을 꾸겨 넣는게 유행이었는데요. 사파리는 기본 네비게이션에 필요한 버튼만 남기고 깔끔하게 정리하여 한 줄에 모아 넣어서 툴바 영역을 줄이고 컨텐트 페이지가 넓어지도록 하였습니다. 배타적으로 사용되는 리플레쉬와 중지를 하나의 버튼으로 통합하였습니다.
추가된 요소는 검색창입니다. 주소창에 주소를 입력하여 이동하는것보다 검색이 훨씬 많아졌거든요. 주소창에 파비콘을 보여준것도 사파리부터였던것 같습니다.


ie 7

ie7도 사파리에서 여러 아이디어들을 가져옵니다. 하지만 미니멀한 디자인 철학 같은건 따라할 수 없었나봅니다.


크롬 1

크롬은 사파리와 동일한 툴바 버튼 구성에서 시작합니다. 북마크추가 + 대신 구글의 별표를 사용한 정도.
주소창과 검색창을 통합한 옴니박스는 요소를 간결하게 하고 검색 사용성을 크게 높여주었습니다. 새로운건 아니고 ie 확장 유틸리티에 있던 기능이었습니다.
탭을 상단으로 올리면서 주소창과 탭을 통합하여 리던던트를 없앴습니다.
사파리 3가 윈도우용으로도 나왔지만 윈도우로 오면서 창제목바에 메뉴가 들어가면서 복잡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깔끔한 타이틀바를 유지하기 위해서 메뉴바를 없애고 메뉴버튼을 오른쪽에 배치합니다.
북마크추가 버튼을 주소창과 합쳐서 깔끔해졌습니다.
새탭추가 버튼이 탭의 오른쪽에 새끼 탭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 창의 맥 오른쪽에 + 표시만 있는 사파리에 비해 직관적입니다.(ie7와 사파리의 좋은것만 베꼈네요.)
탭에 제목이 왼쪽 정렬되거나 오른쪽에 닫기 버튼이 있는건 윈도우즈의 컨벤션인데 가운데 정렬에 비해서 더 보기 편합니다.


사파리 4

리플레쉬 버튼을 주소창 안으로 넣어 왼쪽 버튼 영역이 더욱 깔끔해졌습니다. 리플레쉬를 잘 안한다고 판단한것 같은데 깔끔하긴 하지만 저는 사실 좀 불편하더군요.
버튼을 주소창 안에 넣는것은 사파리1에서 RSS버튼에서부터 적용되었다고 볼 수 도 있습니다. 형식 자체를 새로 만들었다기 보다는 리플레쉬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한것 같습니다.

beta에서는 크롬의 영향으로 탭이 타이틀바 위로 올라옵니다. 크롬이 창을 움직일 수 있는 여유 공간을 주고 최대 탭크기가 정해져있는데 비해 애플은 창 영역을 꽉채우게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창 좀 움직여 보려고 하면 다른 탭이 선택되어서 짜증이 났습니다. 어설프게 따라했다가 욕 엄청 먹고나서 정식버전에서는 탭위치가 아래로 돌아옵니다.
북마크 + 버튼을 주소창에 붙이는것도 크롬을 따라합니다.


사파리5

보통 때는 닫기 버튼이 없고 마우스 오버하면 닫기버튼이 나오도록 바뀌었습니다. 사파리는 osx 컨벤션에 따라 탭 왼쪽에 닫기 버튼이 있어서 탭에 파비콘을 넣기가 애매합니다. 아마 다음 버전에 슬며시 파비콘을 넣을 수 있도록 닫기 버튼을 감춘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이패드

아이패드는 http:// 를 없앴습니다. 화면이 작기도 하고 대부분 프로토콜이 http://이니까 중요한 정보가 아니거든요. 브라우저계의 근 20년만의 정보 디자인 혁신입니다. 필요한 정보가 아니면 뺍니다.


크롬 6

(개발자버전)에서는 이제 사파리를 따라서 북마크 버튼을 주소창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아이패드나 아이폰의 툴바 스타일을 따라서 볼록한 버튼 영역을 없앴습니다.
아이폰 ios4를 따라 http:// 표시를 감춥니다.




크롬5 주소창(옴니박스)에는 아이콘이 없었는데요. 돋보기가 기본 아이콘으로 들어가서 검색을 할 수 있다는게 좀 더 명확해졌습니다. 기본적으로 주소를 입력하는게 아니라 검색하라는거죠. url형식이 입력되면 globe아이콘으로 바뀌게 됩니다.

뺄건 빼고 좋으면 베끼는 크롬은 이제 거의 완벽에 가까운 형태가 된것 같습니다. 음 더 뺄건 없을까요?

[참고##UI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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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4 18:19

“Apple처럼 oooo하게 해 주세요”

어플리케이션 GUI 디자인을 의뢰하는 클라이언트들로부터 한동안 들어야 했던 말은 “iTunes 처럼 oooo하게 해 주세요” 였습니다..  oooo은 다양한 표현들이었지만 어쨌든 ‘iTunes처럼’ 으로 시작하는 요구 사항들이었죠. 이후 모바일 프로젝트에서는 “iPhone처럼(보다) oooo하게 해 주세요” 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관용구처럼 쓰이게 된 데에는 애플의 뭔가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기 때문일 겁니다. 자타공인 최고라 할 수 있는 Apple사의 제품 디자인, GUI 디자인에 대해 짚어 보고 싶었습니다.

삼성, LG 같은 가전 제품 회사가 100가지 메뉴를 골고루 갖춘 식당이라면 Apple은 전문 메뉴를 가진 식당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이 점이 제품의 일관된 이미지를 관리하는 데에 유리했고, 이런 강점이 GUI디자인 컨셉과 스타일 결정에도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경이 똑같이 주어진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겁니다. 몇 년간 트랜드를 이끌어 갈만한 미래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끌어 내기 위해 피나는 시도와 도전, 고뇌의 과정이 있어야겠죠.

오랜동안 MAC OS GUI테마였던 Apple platinum은 GUI 역사에서도 한 획을 그은 그래픽이었지만 Apple의 제품 디자인과는 별개로 진화했던 것 같습니다.

iMAC과 Apple yosemite 기종부터 Apple은 보다 선도적인 제품 소재(Material, Color, Finishing)를 선택하여 제품에 적용해 왔고 소재 컨셉을 그대로 GUI 디자인에 표현하기 시작했죠.

Aqua style은 제품 디자인뿐만 아니라 그래픽 분야에서도 선풍적이었습니다.

다시, Apple 제품의 이미지를 만들 제품 소재(aluminium)를 신중하게 선택하고 GUI에 적용했습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OS)를 같이 만들어 제품 라인 전반에 반영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지를 보여 줍니다. Apple에게는 컴퓨터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나눈다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둘은 몸과 마음 같아서 제품을 만들 때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는 철학을 느끼게 합니다.

iPod / iPhone의 GUI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 보면, 전면의 강화 유리 재질감이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능에 따라 터치 외관 부분이 매번 실재 유리 재질의 콤포넌트들로 (물리적)재구성된다고 상상했을 때 도출될 수 있는 표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것을 상상해서 표현하느냐는 GUI 스타일과 컨셉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고민거리입니다. 그런데 많은 GUI 디자이너들이 이러한 고민 없이 애플 스타일의 완성도만을 따라 그리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쨌든 지금까지 언급한 것처럼 하드웨어 이미지와 소프트웨어 이미지가 자체의 퀄러티뿐 아니라 서로 조화를 잘 이루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던 것은 아닐까요.

음... 애플 모니터를 보다가 언뜻 스친 생각인데요... LCD/LED패널이 꺼졌을 때 Black이 아니라 aluminium 컬러와 질감으로 보여질수만 있다면 모니터를 이렇게 만들지는 않았을까요? ^^; (좀 오버인가? 어디까지나 제 상상입니다.)

이쯤되면 애플의 그 다음이 궁금해집니다.
알 수 없지만^^, 새로운 기술의 가치를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하는 애플이라면, 요즘 주목을 끌고 있는 투명 패널에 관심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예전에 다소 허접하게 투명 body를 선보인 적이 있긴 하죠.

삼성이 투명 amoled를 개발했습니다.
그런데 투명 패널과 가장 잘 어울리는 OS GUI 디자인과 기막히게 정리된 내장이 다 들여다 보이는 투명 컴퓨터 본체를 만들어낼 만한 곳은 애플 밖에 없어 보이네요...:)

투명이든 뭐든 애플이 또 어떤 상상력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것인 지, 동종 업계 사람들을 또 얼마나 난감하게 만들 지 궁금합니다.

[참고##UI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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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1 18:27

Adobe Photoshop & Illustrator Release History & Splashes

포토샵과 일러스트의 릴리즈 연도 및 스플래시(Splash, 인트로) 화면입니다.

제가 포토샵을 처음 접한건 6.0 이였던 것 같습니다.... 정말 많은 버전들이 나왔네요..... 흥미로운건 포토샵이 0.63 버전 이후에 1.0버전이 나오기까지 10년 이 걸렸다는 점인데요..... 오히려 일러스트 1.0 버전이 포토샵 1.0 보다 먼저 나왔네요....


Version History from http://en.wikipedia.org/wiki/Adobe_Photoshop_version_history



Adobe Illustrator Version history from http://en.wikipedia.org/wiki/Adobe_Illustrator#Release_history


스플래시(인트로 화면) 디자인이 포토샵은 눈동자이미지 그리고 일러스트는 비너스 그림을 아이덴티티로 사용하더니 cs버전으로 넘어오면서 기존의 이미지를 버리고 완전히 색다른 이미지로 변화했네요. 아마도 Adobe 다른 프로그램들과 패키지로 엮으면서 '같은 Adobe 프로그램들이다...' 라는 일관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기존의 이미지를 버린 듯 싶습니다. 근 10년 넘게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이어오던 이미지를 버렸다는게 대단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cs3로 넘어가면서 다른 제품들과 아이덴티티 컬러만 다르고 같은 이니셜 폰트를 이용해 확실하게 차별화를 두면서 묶어 버린 전략이 결국 상품을 패키지로 팔때 훨씬 효과적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간만에 옛날 버전 인트로 화면을 보니까 학교다닐 때 알지도 못하는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배워 나가던 추억(?)이 생각나고 그러네요.....ㅎㅎㅎ 다들 몇 버전 부터 쓰셨나요....??? ^_^

참, 스플래시 화면을 포함하여, 예전 GUI 찾고 싶을 때는, http://www.guidebookgallery.org/splashes 이 사이트를 참고 하시면 됩니다.

[참고##UI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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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9 19:42

Apple, Blackberry, Orange 이름의 유래

Apple Inc. (Apple Computer)
애플 컴퓨터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대체로 종합하면, 스티브잡스가 사과 농장에서 일했는데 그래서 사과를 좋아하게 되었거나, 아니면 비틀즈를 좋아했는데 그 음반 회사 이름인 애플 레코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회사 이름을 지어야만하는 정해진 시일까지 더 나은 이름을 생각하지 못 하면 그 이름으로 하기로 했고 결국 애플 컴퓨터라고 이름짓게 되었다. 처음 로고 아이디어는 뉴튼과 사과나무였는데 너무 복잡해서 그 다음은 그냥 사과로 했다가 오렌지랑 너무 비슷해 보여서 결국은 한 입 베어 물은 것으로 하기로 했다. (HubPages, MacRumors, Wikipedia)

또 다른 이야기로는, 창립자인 스티브잡스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사과였다. 회사 설립 후 3개월이 지나도 이름을 짓지 못 하자 마지막 날 오후 5시까지 더 나은 이름을 제시하지 못 하면 '사과'라고 부르겠다고 동료들을 위협했다고 한다. It was the favourite fruit of founder Steve Jobs. He was three months late in filing a name for the business, and he threatened to call his company Apple Computers if the other colleagues didn't suggest a better name by 5 O'clock. (WTN News:왜 회사 이름을 과일 이름으로 지으면 안 되는가)

이 뉴스 소스에 의하면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이 이름 때문에 비틀즈 음악을 내는 Apple Records와의 기나긴 상표 분쟁에 시달리게 되었고, 비틀즈는 스티브잡스에게 '바나나 컴퓨터'라고 이름을 바꾸라고 했다고 한다. It is also said that The Beatles have suggested that Apple Computers should call itself a “Banana” or anything other than apple. Now, now where are their British manners? Are consumers really ready to carry “Mr. iBanana”?

iTunes에 비틀즈의 음악이 들어오게 된 것은 매우 최근의 일인데, 그 이유도 Apple 브랜드를 둘러싼 양사의 오랜 소송과 그로 인한 감정적 앙금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Banana Republic
1978년에 설립되고 1983년에 Gap에 인수된 의류 회사로 전세계 500 개 가게를 가지고 있다. 원래 '바나나 리퍼블릭'은 중남미에 농업 중심이면서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나라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Blackberry
원래는 E-mail 관련한 이름을 지으려고 했는데, E-mail은 업무와 관련있고, 그러면 혈압을 높일 수 있다는 조언에 따라, 이를 포기하고, 마음에 평화를 주는 과일 이름으로 가기로 했는데 여러 가지를 검토 끝에, 검은색 키보드가 옹기종기 있는 모양을 따서, 블랙베리라고 지었다고 한다.
http://advice.cio.com/al_sacco/rim_blackberry_history_origin_of_the_name_blackberry 
http://www.cio.com/special/slideshows/famous_tech_names/slide02#slideshow 

Orange (mobile network operator)
프랑스에 본부를 둔 세계에서 5번째로 큰 이동통신회사. 브랜드는 내부 마케팅 디렉터가 만들었고 브랜드화 하는 작업은 외부 컨설팅회사인 Wolff Olins에서 맡았다.
The Orange brand was created by an internal team at Microtel headed by Chris Moss (Marketing Director) and supported by Martin Keogh, Rob Furness and Ian Pond. The brand consultancy Wolff Olins was charged with designing the brand values and logo and advertising agency WCRS created the Orange slogan "The Future's bright, the Future's Orange" along with the now famous advertising. The logo is square because it was felt that the word orange could be seen as a fruit and it needed to be strong in the business world rather like American Express and Hertz. It was also important to establish it as the colour Orange, which is seen as a strong Feng Shui colour. The Orange network was launched on 28 April 1994 (from wikipedia)

피엑스디도 처음 이름을 지을 때, 귤 미디어라고 짓고 싶었는데 다른 동료들의 반대가 심해서 실패했다. 여러 과일들 가운데서 귤이 가장 좋은 user interface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같은 이름의 디자인 회사가 있었기 때문에 더 주장하기 어려웠다.

[참고##UI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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