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는 디자이너 - 수영 편
디자이너,
수영을 시작하다.
수영을 한 계기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운동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운동을 해야 하긴 하는데 헬스는 너무 재미가 없었다. 그 와중에 어렸을 때 잠깐 했던 수영을 떠올렸다.
결국 용기를 내어 회사 근처의 수영장을 3개월 끊게 되었다. 사실 그전에도 수영을 몇 번 시도했었다. 그때마다 실력이 잘 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프로젝트가 바빠졌다는 이유로 수영을 지속해서 하지 못했던 차였다.
우선 초급반에서부터 수영을 시작했다. 초급반에서 숨 쉬는 법부터 시작해서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등 기초적인 동작을 배웠다. 이후 3개월이 지나고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수영을 계속하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중급반으로 옮기게 되었다. 중급반에서는 각 동작을 좀 더 많이 할 수 있는 연습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오리발을 끼고 수영했다. 기간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일 년 정도 지나 상급반으로 옮겼다. 상급반에서는 자세교정과 체력훈련을 했다. 그렇게 수영을 시작한 지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수영을 시작하고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 보통 새로운 영법을 배울 때 멘붕이 온다. 특히 자유형이나 배영은 비교적 익숙한 영법인데, 평영이나 접영은 너무 생소했다. 뭔가 열심히 팔과 발을 휘젓는데 전혀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뒤에서는 밀린 고속도로의 빵빵거리는 차들처럼 나를 쿡쿡 찔러댔다. 그때마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왜 안 되는 걸까 생각하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다. 강습 시간에 배운 걸 메모장에 기록하고 자유수영 시간에 반복해서 해봤다. 그러다 어느 날 저절로 안되던 동작이 될 때가 있었다. 그때 너무 뿌듯했다. 나 자신이 대견했다.
매주 월, 수, 금 저녁 9시에 수영을 간다. 특별히 내 신체에 이상이 있거나 미룰 수 없는 선약이 있지 않은 이상 이 약속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정말 힘들고 지친 와중에도 꾸역꾸역 간다. 어느 날은 회사 회식을 끝내고 수영을 간 적도 있다. 휴가 때도 가능하면 수영장에 나가려고 했다. 그렇게 미련하게 3년을 버텨왔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 수영을 가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이다.
디자이너는 그리고 직장인은
왜 운동을 해야 할까?
1. 몸이 건강해진다.
운동하면 살이 빠진다. 건강한 몸이 만들어진다.
디자이너는 평소에 몸을 움직일 일이 별로 없다. 제자리에서 온종일 모니터와 씨름해야 한다. 우리는 몸을 움직이게끔 설계되었다. 직장에서 부족한 활동량을 운동으로 채울 수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까? 직군마다 그리고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몸이 건강하면 더 오래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운동은 디자이너가 업계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무기이다.
2. 정신이 건강해진다.
나는 학창 시절 체육 교과서에 쓰여 있던 이 문구를 유독 좋아한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 유베날리스
운동을 하면 잡생각을 줄이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특히 수영의 경우는 소위 힘든 유산소 운동이다. 수영을 하면 힘들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 이 외에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3.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데 도움을 준다.
디자이너는 창의적이어야 한다. 운동을 통해 머리를 비울 수 있으며 비워진 머리에 창의적인 사고를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식 노동자인 기획자의 경우 뇌를 쉬어주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뇌를 쉬어줌으로써 그 외 시간에 머리 회전을 원활히 할 수 있게끔 도움을 준다.
4. 자신감과 도전정신이 생긴다.
나의 경우 수영을 통해 영법을 배우고, 터득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도전정신을 키울 수 있었다. 한 단계를 뛰어넘을 때 자신감도 생겼다.
자신감과 도전정신을 회사 생활을 하는 데에도 적용할 수 있었다. 일을 하는 데 있어 커뮤니케이션이 절반이라고 생각한다. 자신감은 커뮤니케이션에 도움이 되었다.
5. 일과시간에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운동은 물리적인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당연히 업무 외적인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나의 경우 수영 시간이 저녁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그전까지 업무를 마칠 수 있도록 시간을 안배한다. 제때 퇴근하려고 노력하고 이에 따라 업무 집중도가 향상된다. 결국 워라밸이 좋아진다.
디자이너에게 모든 운동은 유익하지만,
왜 굳이 수영을 추천하는가?
1. 수영은 효과적인 유산소 운동이다. 심폐기능, 지구력, 근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2. 수영은 전신 운동이다. 어느 한 부위만 집중해서 하는 운동이 아니다. 이에 균형 잡힌 몸매를 만들 수 있다.
3. 나이 들어서도 운동할 수 있다. 뼈 관절에 무리가 덜 가는 운동이라, 나이 드신 어르신들도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운동이다.
4. 혼자서도 가능한 운동이다. 보통 구기 운동들은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한다. 수영은 나와 물 밖에는 없다. 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운동이다.
(위 내용들은 전문 지식이 아닌 얕은 견해임을 밝힌다.)
이 외에도 수영을 통해 디자이너, 기획자, 직장인들에게 필요한 소양(커뮤니케이션 능력, 빠른 업무 처리 능력, 주인의식, 스포츠 정신 등)을 향상할 수 있다. (이쯤 되면 거의 만병통치약 급이다. ^^;)
반면에 수영에 거부감이 있는 분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1. 물에 공포가 있어요
개인적으로 물에 대한 공포는 극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일단 수영을 도전해 보고 정말 물이 싫은지 판단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유사 상황으로 물에 뜨지 않는다는 어려움을 토로하시는 분들이 있다. 물에 뜨지 않는 이유는 물 안에서 힘을 주기 때문이다. 힘을 빼고 가만히 있으면 부력 때문에 뜬다.
2. 수영 전후로 씻기 귀찮아요
씻기 귀찮은 건 어쩔 수 없다. 씻는 걸 습관화해야 한다.
3. 신체를 드러내는데 거부감이 있어요
수영은 수영복을 제외하고 옷을 벗고 하는 운동이다. 몸을 드러내는 운동이기 때문에 몸이 안 좋다고 생각하거나 신체를 드러내는 데 있어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 어떤 분들은 그 점을 고려했는지는 몰라도 래시가드를 입고 수영장에 오시는데 그러면 오히려 더 튀어 보여 이목을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다.
여하튼 이런 분들은 일단 수영을 해보시면 좋겠다. 사실 수영하면 힘들어서 남의 몸 볼 여력이 없다. 수영은 만만한 운동이 아니다. 정말 힘들다. 특히 처음에는 말이다. 그리고 좋은 몸을 만들어놓고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하면 자연스럽게 좋은 몸이 만들어진다는 점을 명심하자.
자 이제 수영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드시는가?
수영장을 고르실 때에는 집 근처, 회사 근처 등 생활 반경에서 가까운 곳을 선택하길 바란다. 동호회 활동 같은 것에서 출발하는 것도 좋다. 사설 수영장은 시설이나 접근성 면에서 좋지만 가격이 비싼 편이고, 올림픽 운동장, YMCA 등 시 혹은 특정 단체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은 가격이 저렴하지만 매달 수강 신청 전쟁을 해야 하니 잘 알아보고 판단하길 바란다. 나의 경우 접근성을 최우선 가치로 보고 사설 수영장을 다니고 있다.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장비로 수모, 수영복, 물안경이 있어야 한다. 인터넷 최저가로 해당 장비를 묶어서 판매하는 경우도 있으니 참고 바란다. 더 돈을 절약하고 싶다면 다이소에서도 수영 장비를 초 저렴한 가격으로 파니 초보 셋으로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수영은 다른 운동에 비해 돈이 덜 들어가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벗고 하는 거라 뭘 꾸밀 여지가 없다! 한국인들은 뭐든 엄청난 장비를 갖추고 나서 운동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러지 말고 일단 기본 셋을 갖추고 나서 운동이 내 Fit에 맞는다면 점차 나은 장비로 갈아타는 것이 내 지갑에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일단 돈을 써서 수영장에 등록하자. 그리고 한번 수영을 나갈 때마다 돈을 번다는 마음가짐을 가지자. 수영장에 나가지 않으면 돈을 땅바닥에 내다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동기 부여가 될 것이다.
행동 심리학에서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목표 자체를 낮게 잡으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를테면 오늘 저녁 수영하기가 목표가 아니라 집 밖으로 나오기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오늘 팔 굽혀 펴기를 100개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를 하는 것을 목표로 잡는 것이다. 팔 굽혀 펴기를 한 개를 하긴 쉽다. 한 개를 하고 나면 아쉬워서 자연스럽게 10개, 20개를 하게 된다.
꾸준히 운동하기는 어렵다. 기본적으로 운동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의지’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고, ‘행동’을 지속적인 ‘습관’으로 내재화해야 한다.
이 글을 읽고 디자이너가 아니라도 누군가가 수영장을 등록하고 수영을 시작해본다면 더없이 좋겠다. 심지어 수영이 아니라도 어떤 운동이든 시작해보자. 내/외적으로 몰라보게 달라진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운동하는 건강한 디자이너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ps. 그리고 작은 소망이지만 다음에는 다른 운동 종목으로 pxd 분들께서 써주시면 참 좋겠다. (헬스, 자전거, 요가, 크로스핏 등등. 다음 글은 사장님께서 써주실 거죠?)
*이 글은 브런치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uxdrag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