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xd talks 92] 책장 동기화하기
지난달 pxd에 새로운 서가가 생겼습니다. 페미니즘과 디자인을 주제로 한 책들로 빼곡히 차 있는 이 작은 서가는, ‘책장 동기화하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pxd에 오게 됐습니다.
‘책장 동기화하기’ 는 페미니즘과 디자인의 관점으로 모은 175여 권의 책이 꽂힌 이동식 서가를 매개로 한 생각의 동기화 활동입니다. 디자이너 김린님이 주도하고 있는 프로젝트로, 기업이나 기관의 신청을 받아 해당 기관에 3개월간 서가를 대여해 줍니다. 서가는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디자인되어 15분이면 원하는 장소에 설치할 수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생각의 동기화 활동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서가만 대여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가가 머무는 3개월의 기간 중 하루를 정해 김린님이 서가의 책을 추천해주는 워크숍을 진행합니다.
워크숍은 신청자에 한해 1:1로 진행되고, 이 시간을 통해 신청자와 김린님은 페미니즘과 디자인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동기화’합니다.
pxd에서도 7명의 신청자가 김린님과 함께 생각의 동기화 활동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각자 마음에 와닿는 보물 같은 책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신청자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추천받은 책을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P의 이야기
올해 첫 직장에 입사하면서 새로운 사회의 구성원이 된 후, 이전보다 폭넓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하고 있다. 확장된 인간관계에서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 혹은 내가 생각하는 윤리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사람들과의 불편한 상황을 예기치 못한 채 마주할 때가 있다.
특히 젠더의식 차이로 인한 불편한 상황과 관계에서는 어떤 방향으로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고민될 때가 많다. 다양한 분야의 종사자들과 함께 일하고 수많은 사용자를 마주해야 하는 UX 디자이너로서,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젠더의식 차이로 인한 불편한 상황에서 유연한 태도를 가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
나는 이제 참지 않고 말하기로 했다
니콜 슈타우딩거 지음 |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독일의 커뮤니케이션 전문 코치인 니콜 슈타우딩거는 수많은 여성들을 만나면서 여성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반격의 기술을 정비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여성들과 이 기술을 나누기 위해 워크숍을 열고 『나는 이제 참지 않고 말하기로 했다』를 썼다. 바로 3초 안에 맞받아치는 ‘순발력’이라는 무기를 여성들에게 전파하기 위해서다. 핵심은 말문이 막히는 순간 뒤로 물러서고 움츠리는 것이 아니라, 순발력을 발휘해 당당하고 재치 있게 맞받아쳐야 비로소 자존감을 회복하는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여유 있고 단호하게, 부드럽고 강하게 자기 의견을 전하는 순발력을 통해 독자들은 여성으로서, 한 사람으로서 나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권김현영 (엮음) , 루인, 엄기호, 정희진, 준우, 한채윤 지음 | 교양인
성 문화 연구 모임 ‘도란스’의 두 번째 책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에는 각기 다양한 지적 배경에서 당대 한국 남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공하는 여섯 편의 글이 실려 있다. 필자들은 한국 남성의 현재를 다각도로 분석하면서, 남성다운 몸?심리?문화는 현실이 아닌 규범이자 신화임을 밝힌다. 일제 강점기 이광수와 김유정과 이상 같은 남성 작가들의 삶과 작품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식민지 남성성’의 기원을 확인하고, 그동안 남성성의 목록에서 지워졌던 레즈비언과 트랜스남성(female-to-male)의 남성성을 분석함으로써 기존의 남자다움의 규범을 해체하고 동시에 남성성에 대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X의 이야기
우리 회사는 정말 다양한 일을 한다. 모바일앱 디자인에서부터 AI스피커 기획까지. 공장에서 쓰이는 아주 전문적인 시스템에서부터 아이들이 이용하는 서비스까지.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콘텐츠를 다루다 보면 돌덩이가 하나둘 쌓이듯 마음이 무거워지기만 할 때가 있다.
아이들이 이용하는 서비스에서 파란색 캐릭터와 머리에 리본을 단 분홍색 캐릭터를 볼 때(자동차가 왜 머리에 리본을 달아야 할까?). 상냥하고 친절하며 예쁘고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은,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을 가진 AI스피커 캐릭터 설정을 볼 때(AI 스피커인데 시각적인 설정은 왜 하는 걸까?)
자라나는 아이들이 성별이라는 틀에 갇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거기에 나도 일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낮은 온도로 조금씩 변하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일깨워 주는 책
학교에 페미니즘을
초등성평등연구회 지음 | 마티
페미니즘 교육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다른 한편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남자아이가 기를 못 펴게 되지는 않을까, 혹시라도 평가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분위기가 학교 안팎에 분명 있다. 하지만 교실에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서로 대립하는 상대가 아니며, 가해자와 피해자도 아니다. 이 책을 쓴 페미니스트 교사들은 페미니즘 교육이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구별해서 미리 판단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하는 성평등 교육이라고 말한다.
페미니즘을 퀴어링!
미미 마리누치 지음 | 권유경, 김은주 옮김 | 봄알람
사회 곳곳에 스며 있는 젠더 이분법과 여성혐오, 퀴어혐오.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도 이 혐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페미니즘을 퀴어링!』은 이분법적 고정관념에 갇힌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의 기본 개념을 페미니즘 이론 관점에서 다시 배우고, 연대하면서도 반목해온 페미니즘 이론/운동과 퀴어 이론/운동의 접점으로 나아간다. 일상에서 만나게 될 논쟁적인 페미니즘 실천 상황들에 도움을 주는 지식들을 제공하고, 각 장 말미의 '생각과 행동' 코너를 통해 그 활용과 실천을 돕도록 구성되었다.
D의 이야기
2016년 이후 거세진 페미니즘의 물결에 나 역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어릴 때부터 주입된 '정상’에 대한 환상들 - '안정적인 직장', '결혼', '출산'. 언젠가 해야 하는 것으로 막연히 느껴왔던 그것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 '언젠가 해야 할 것들’을 하지 않고 노선을 이탈하면 좋지 않은 미래를 맞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공포를 느끼고 있던 나는, 이제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의 밖에 있어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라는 한 사람이 이 사실을 알기까지 많은 여성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 그들을 기억하며 앞으로 자라날 여성들에게 '정상’적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계속 나답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노동과 혼인의 방식을 다시 고찰하고,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보도록 하는 책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
이민경 지음 | 봄알람
성별임금격차 OECD 회원국 중 ‘부동의 1위’. 한국 상위 100대 기업 평균 연봉은 남성은 7742만 원, 여성은 4805만 원. 같은 직급까지 진급하는 데 남성은 3~4년, 여성은 10년. 고위직 여성 비율 최고위 공무원 3.7%. 500대 기업 임원 2.7%. 우리는 이 지독한 현실에 대해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혼자 살아가기
송제숙 지음 | 황성원 옮김 | 도서출판 동녘
이 책은 여성의 교육 수준과 사회적 지위가 이전과 비할 수 없이 올라갔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의 삶이 대중매체 등을 통해 이토록 널리 확신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비혼을 선택하는 것, 비혼여성이 독립해 혼자 살아가는 것은 투쟁에 가깝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낸다. 저자는 한국의 비혼여성의 상황을 “이 같은 친족관계로부터의 주변화와 젠더화된 사회경제적 지위는 퀴어 집단이나 이혼여성 같은, 한국사회에서 규범적인 성인의 삶에 속하지 않는 다른 하위 인구 집단들이 직면한 상황에 비견될만하다”라고 정리한다.
페미니즘의 역사를 다시 짚어보고 나아갈 방향을 고민해볼 수 있는 책
페미니즘의 작은 역사
안체 슈룹 지음 | 김태옥 옮김 | 파투 그림 | 숨쉬는책공장
『페미니즘의 작은 역사』는 방대한 페미니즘의 역사를 80여 페이지밖에 안 되는 분량에 담아내고 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만화로 그 내용을 녹여내고 있기 때문이다. 만화는 자칫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페미니즘의 역사를 여러 실제 사례들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면서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김은주 지음 | 봄알람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는 여성 철학자 6인을 다룬다. 이 여섯 인물은 어떤 하나의 주제를 끌어내기 위해 선택된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각각의 사상을 깊이 있게 다루기에는 아주 얇은 책이다. 이 책은 멋진 인물들의 멋짐을 널리 소문내고 싶은 마음으로 기획되고 쓰였다.
'책장 동기화하기’는 공식 트위터 또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