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xd people | "눈에 보이는 게 디자인의 전부는 아니에요"
pxd에는 어떤 사람들이 일하고 있을까요? [pxd people]은 '사람'에서 출발한 인터뷰입니다. pxd는 어떤 회사인지, UX/UI란 무엇인지, 직무나 조직문화를 직접적으로 묻는 인터뷰도 좋지만, 각자의 이야기 속에 녹아든 '일과 삶'을 함께 나누고 싶었거든요. 꽤나 비장한 목표를 세우고 나니 자연스레 기억하고 있는 누군가의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동료들과 대화할 때면 종종 '닮고 싶은', '따뜻한', '멋진' 등 근사한 수식어와 함께 들었던 이름이었죠. 첫 번째 인터뷰 주인공이 정해진 순간이었습니다. 지금부터 프로덕트 디자인 2팀 팀장이자 디자이너, 천민희 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Q. pxd people 인터뷰로 뵙는 건 처음이에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이것저것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와서 디자인을 하고 있는 천민희라고 합니다.
Q. 정말 그렇게 소개해도 될까요?
네(웃음). 그게 좋을 것 같아요.
Q. 민희 님의 슬랙 프로필에 적힌, ‘알고 보면 별것 아닌 것'이라는 소개말이 떠오르네요. 특이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누군가 이걸 보고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졌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면서 썼어요. 슬랙은 일할 때 사용하니까, 그 문구는 저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보잖아요. 일하면서, 특히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분들이 어려움을 많이 겪는 이유 중 하나는 확인하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거든요. 저도 예전에는 그랬어요.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내가 성과를 얼마만큼 내야 하는지 스스로 잘 모르는 상황에 놓이면 경직되기 쉬운데, 알고 보면 별게 아닐 때가 많거든요. 저 역시 별것 아닌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서로 겁먹을 필요 없다고 말해주는 거죠.
Q. 일종의 ‘아이스 브레이킹’이네요. 동료들과의 소통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지난 3월에도 ‘pxd 판교 마켓'을 개최하셨죠. 판교 사무실 한편에 펼쳐진 장터에서 pxd 사람들이 서로 물건을 사고팔며 교류하는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우리 일에서는 협업이 중요한 만큼 ‘관계 맺음'이 소중해요. 어색함 없이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일 때 일을 더 잘할 수 있죠. 마켓은 재택근무가 끝나고 사무실로 출근하기 시작했으니, 사람들 사이에 매개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열게 됐어요. 또 ‘pxd는 이런 걸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알려주고 싶었죠. 특히 코로나 시국에 입사한 분들은 회사 자체가 멀게 느껴질 수 있거든요. 커다란 문은 아니어도 마음을 열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적어도 회사가 힘들게 일하러 가는 곳이 아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랐어요. 다들 생각보다 더 많이 좋아해 주셔서 다행이었죠.
Q. 많은 동료들이 민희 님을 두고 ‘닮고 싶은 사람’이라고 말하더라고요. 어떤 동료이자 리더인지 알고 싶어서 얼른 인터뷰를 부탁드렸죠. 현재 pxd에서는 어떤 일을 맡고 계신가요?
프로덕트 디자인팀 소속으로서 화면에 들어가는 시각 요소, 예를 들면 버튼 같은 컴포넌트, 타이포그래피나 이미지 요소, 화면 구조, 인터랙션 등 마우스나 손가락으로 제어하고 눈으로 보는 모든 것들을 다뤄요. 보통 ‘디자인’이라고 하면 가시적인 측면을 떠올리는데, 사실 디자인은 그 뒤에 있는 구조와 기획, 아이디어까지 담고 있는 개념이에요. 특히 UX/UI 디자인은 경험과 피드백, 이용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죠. pxd가 가진 방향성은 이 코어(core)를 잘 다지는 것에 있다고 생각해요. 이용자들이 서비스를 경험하고 싶게 만드는 멋진 겉모습은 기본이고요(웃음).
Q. 디자인의 코어를 단단히 다지기 위해서는 어떤 일들이 필요할까요?
리뉴얼 프로젝트를 예로 들어볼게요. 먼저, 기존 플랫폼이 어떤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지, 기획 방향이나 디자인 에셋은 뭐가 있는지 쭉 분석해요. 무엇을 왜 개선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죠. 그 과정에서 우리 리서치팀은 이 과제와 관련한 사용자 인터뷰나 정성 조사를 하는데, 그 내용도 열심히 봐요. 또 관련 서비스를 리서치하고 팀원들과 함께 리뷰하면서 아이디어를 모아요. 그다음엔 함께 데이터 정리도 하고 구조도 짜고 화면을 그려보는 거죠. 그리곤 그 내용을 다시 리뷰하고 의견을 수렴해서 테스트하고 업데이트하고, 또다시 리뷰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완성해요. 수많은 논의가 오가죠. 넣고 빼고 버리고 붙이고…. 하나하나 점을 찍어서 커다란 면을 만드는 느낌이랄까요. 이용자에게 보여지는 화면,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제 역할은 프로덕트 디자인팀과 브랜드팀, 개발팀이 소통할 수 있도록 하면서 팀이 전체적인 방향에 맞게 생각하고 의사 결정할 수 있도록 컨트롤하는 거예요. 디자인을 할 때는 맥락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거든요. 맥락이 명확하지 않을 때는 밝혀내야 하고요. “지금 중요한 건 이거야.” “이건 나쁘지 않지만 지금 맥락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아.”라고 짚어내죠. 우리의 미션, 필수 요소 등을 맞춰가면서요. 넓게는 디자인, 좁게는 디자인 디렉션이 적합한 표현인 것 같아요. 일방적인 디렉션보다는 팀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조율하는 쪽에 가까워요.
Q. 여러 악기의 소리를 모아 음악을 완성하는 지휘자에 가까운 느낌이네요. 민희 님이 팀장으로서 지향하는 리더십은 어떤 모습인가요?
매니징하는 입장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결과에 기여하게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건 내 의견이야. 내 목소리가 반영된 거야.’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게요. 일에 있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내고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그래야 일을 더 잘할 수 있고요.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게 팀이고, 그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리더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의무인 거죠.
Q. 모두의 의견에 귀 기울이면서도 방향성을 유지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저마다의 생각이 있으니 어려울 수밖에 없죠. 다른 사람에게 의견을 전달하는 방식이 좀 러프한 사람도 있을 거고, 의견을 듣는 사람이 자신의 프레임 때문에 타인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성격에 따라 수줍어하느냐 적극적으로 나서느냐도 다를 거고요.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누군가가 배제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죠.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결과에 따라 조금 혼이 날 수도 있겠지만(웃음), 혼나는 건 저니까 괜찮아요. 팀원들이 만족하면 안심이 되죠. 함께 일한 사람들만큼 결과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들이 만족한다면 성과가 있다고 봐요.
Q. 디자인을 더 잘하고 싶은 디자이너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나 자신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는, 글자를 다루는 걸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디자인을 모를 때에도 막연히 글자를 좋아했어요. 책이나 간판에서 글자를 찾아보곤 했죠. 디자이너가 된 다음에는 글자를 다룬다는 것이 뭔지 알게 됐고, 타이포그래피 책을 많이 찾아보면서 일에 적용했죠. 그런데 그렇게 만든 걸 내 상사나 클라이언트가 좋다고 했다, 그럼 또 엄청 뿌듯해요. 성취감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폭발하거든요. 그래서 디자인을 더 잘하기 위해서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아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더 마음이 가는 행위들이 있어요. 주니어 입장에서는 이것저것 다 잘해야 할 것 같고, 남들에 비해 못하는 게 많은 것 같아 조바심이 날 수 있어요.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고요.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Q. 만족의 기준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 고민하는 디자이너들이 많아요. 외부에서 좋다고 해도 내가 불만족스러울 수 있고, 나는 만족스러운데 수정을 요청받을 때도 있으니까요. 시니어로서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신가요?
저도 주니어였을 때에는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결과물을 한 번에 짜잔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세밀한 표현 하나하나에 집착하거나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 괴로워하기도 했고요. 그 시기를 버틸 수 있는 능력이 바로 디자이너의 DNA라고 생각해요. 너무나 힘들고 흔들리고 때론 울기도 하지만, 분명 즐거울 때도 있거든요. 그렇게 보낸 시간들을 훈련 삼아 디자이너로서 일할 수 있는 거죠. 지금 저는 ‘개선’에 더 많은 무게를 싣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더 좋아질까. 어제보다 오늘 더, 오늘보다 내일 더 나아가자. 어제 먹구름이 드리웠다면 오늘은 해를 띄워보자. 그런 마음가짐으로요.
Q. 결과보다는 과정, 완성보다는 성장에 초점을 맞추시는군요.
같이 사는 개, 여름이가 제게 영향을 많이 줬어요. 예의, 배려, 친절, 인내 같은 것들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하는 마음이지만 살면서 잊어버리기 쉽잖아요. 예전에는 일이 생각대로 안 되면 잠이 안 오고 답답하고 그랬어요. 일을 하다 보면 누구든 벼랑 끝에 몰리는 기분이 들 때가 오거든요. 제가 몰리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을 몰아넣는 역할을 하기도 했었죠. 개를 키우면서 그런 시간들이 많이 줄었어요. 여름이한테 많이 배운 거죠. 그렇게 해봤자 모두가 힘들 뿐이라는 걸, 얘기하고 연습하면서 기다리면 해낼 수 있다는 걸요.
Q. 일을 하면서 조금씩 고갈되는 나를 채워주는 무언가는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여름이와 비등하게 저의 영혼을 채워주는 건 바다예요. 스쿠버 다이빙. 딱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이 좋아요. 바다를 바라만 봐도 좋고 바닷속에 들어가면 더 좋고. 물속에 있으면 고립감 같은 게 느껴져요.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게 큰 위안이 되더라고요. 주변에 기댈 만한 것 하나 보이지 않은 깊은 바다에서는 복합적인 심경이 막 휘몰아쳐요. 공포라고 하기엔 부족하고, 환희에 가까운 기쁨도 있는데, 신비롭기도 하고. 그런 경험 자체가 리프레시라고 해야 할까요. 삶의 밸런스를 맞춰준다고 느껴요. 다이빙도, 여름이도.
Q.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에요. 민희 님이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여름이가 편안한 환경에서 저도 저의 생활을 영위하는 게 목표예요. 개인적으로 노석미 작가님을 좋아해요. 화가인데 자연 가까이 살면서 발견하고 느낀 것들을 그리죠. 그분에겐 그림이 일인데도, 작품을 보면 꼭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이 밝고 순수해요. 즐겁게 일하고 또 놀기도 하는, 균형이 잡혀 있는 사람이에요. 제가 만난 그 어떤 어른보다도 멋있는 분이고요. 작가님처럼 그렇게 균형을 잡아가면서 살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글. 임현경 - UX Writer
그림. 이원용 - Experience Desig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