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xd people | "부딪치고 배우면서 성장해 나가야죠"
'지름길'은 목적지까지 빠르게 갈 수 있는, 빙 둘러 가지 않고 질러가는 길이에요. 지름길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짐작해 보자면, 최초의 누군가가 평소 다니던 길 밖으로 나왔을 거고 용기를 내 담벼락을 뛰어넘거나 개구멍을 발견할 때까지 주변을 살폈을 테죠. 풀숲을 헤치거나 자갈들을 발로 밀어내며 길을 다졌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생긴 길은 다른 행인이 목적지에 더 일찍, 편안히 도착할 수 있도록 돕죠. 대뜸 왜 지름길이냐고요? 오늘 [pxd people] 주인공을 보며 딱 그런 생각이 떠올랐거든요. 과정은 절대 간편하지 않고 꽤나 수고롭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PD 2팀의 프로덕트 디자이너 진의준 님의 이야기를 소개할게요.
Q. 주니어(주임) 인터뷰이는 처음이에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pxd에서 프로덕트 디자인을 하고 있는 진의준입니다. 프로덕트 디자인은 통합된 관점에서 프로덕트에 관한 조사부터 제작까지 참여하는 일을 말해요. 과거에는 물리적인 제품을 만드는 일이었지만, 요즘에는 웹 서비스를 비롯한 소프트웨어도 하나의 프로덕트로 다루죠.
Q. 의준 님의 링크드인 프로필을 봤는데, “Product designer with obsession in user-centered interaction design & design system.”이라는 자기소개가 눈에 띄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었던 것 같아요. 여러 분야를 경험해 보면서 특히 ‘사람과 사물의 상호작용을 더 편하고 새롭게 만드는 것’이 제가 재미있어하고 관심을 두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대학생 때는 ‘근미래에 사람들이 자신의 추억을 관리하고 회상하는 방법’을 졸업전시 주제로 선택했어요.
또, 복잡한 것을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것에도 관심이 가서 요즘에는 디자인 토큰에 대해 깊게 공부하고 있어요. 회사에선 ‘반디컴기'라고, 동료분들과 ‘반응형/컴포넌트 기반 디자인 프로세스 역량 강화’를 위한 스터디를 하고 있는데요. 업무 역량도 키우고 다른 팀원분들과 교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서 즐겁게 참여하고 있어요.
Q. ‘obsession(집착)’이라는 단어를 쓴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집착이 조금 있어요.(웃음) 남들이 한 번 보고 “이건 안 되겠다.”하고 그냥 지나치는 것도 계속 붙잡고서 ‘조금만 더 해 보면 될 것 같은데!’ 생각하거든요. 직접 부딪쳐 보고 나서 답을 내려요. 그러지 않으면 제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예전에는 결과물을 빨리 내는 게 중요했는데, 그렇게 1~2년 일을 쳐내다가 뒤를 돌아보니 남는 게 별로 없더라고요. 그런 태도로 일을 반복하면 시간은 시간대로 쏟지만, 시간이 제 실력을 만들어주진 않는 것 같더라고요. 열심히 해서 좋은 걸 만들어야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해 보자.’라고 생각했죠.
Q. 그럼 요즘 가장 집착하고 있는 분야는 뭔가요?
첫 번째는 디자인 시스템. 유명한 디자인 시스템을 그저 따라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우리의 상황에 어떤 체계가 가장 적합하고 효율적인지 탐구해 보고 싶었어요. 정말 그래서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다양한 15개 기업의 디자인 시스템을 분석해 봤어요. 컬러를 예로 들면, 공식 문서만으로는 시스템을 알기 어렵고, 모든 구성원이 하나하나 살펴보기에는 너무 비효율적이거든요. 그래서 각기 다른 디자인 시스템에서 어떻게 컬러를 분류하고 운영하는지 코드를 뜯어보면서 분석하고, 쉽게 비교할 수 있도록 정리하고 있어요.
Q.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말이죠.(웃음)
네.(웃음) 제가 궁금해서요. 저에겐 중요하고 또 꼭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디자인 시스템의 여러 사례를 열심히 뜯어보고 비교하고 유형화하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데이터 같은 경우 유튜브나 강의를 보면서 분석하는 법을 공부해요. 배운 것들을 실제 데이터에 적용해 보기도 하고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예요.
Q. 일에 대한 오너십이 강하네요. pxd에 오기 전에는 직접 창업을 하고 제품까지 출시했죠?
창업이 목적이라기보단, 빨리 경험해 보고 싶었어요. 실패하더라도요. 직접 경험하고 판단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침 학생 때 신청할 수 있는 창업 지원 제도가 많이 있어서 시도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하고 책임져야 하니까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제 능력이 뾰족하지 못하고 넓게 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여러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제 본업인 디자인을 잘하고 싶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슬럼프였던 것 같아요. ‘내가 잘 못하면 진짜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지겠구나.’라는 부담감 때문에 되게 힘들었어요. 어느 날은 심장이 막 쿵쾅쿵쾅 뛰면서 머리가 어지럽더라고요. 나중에 지나고 나서야 그게 공황 증상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냥 견뎠죠. 제 자신의 상태에 둔감한 편이에요. 그땐 힘든 줄도 모르고 ‘그냥 해야지 뭐.’ 이러다가 나중에야 ‘아, 내가 힘들었구나.’ 생각하거든요. 지나고 나면 기억이 미화되기도 하고요.(웃음)
Q.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편인 것 같아요. 창업자가 아닌 직원으로서의 지금은 어때요?
pxd에는 저 혼자 다 짊어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게끔 안정감을 주는 분들이 많아요. 그게 참 좋은 것 같아요. 지금은 멋진 동료들이 각자 맡은 일을 잘해내는 환경에서 제 바운더리를 가지고 전문성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 달라요. 제 업무에 집중하고, 업무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어요.
Q. 어떤 점에서 전문성을 많이 길렀다고 생각해요?
프로젝트를 하면서 공부한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입사 전이랑 지금을 비교해 보면 지식 차이가 많이 나거든요. 요즘엔 웬만한 개발 관련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다 이해할 수 있어요. 이 이거이거 말씀하시는 거구나, 하고요. 뿌듯하죠. 또 일하는 방식도 많이 배웠어요.
Q. 예를 들면요?
기획부터 운영까지. 그 사이에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한 것들이요. 피그마 파일 관리, 커뮤니케이션 프로토콜 등. 예전에는 정말 잘 몰랐어요. 뭘 레퍼런스로 삼아야 할지도 몰랐고요. 다른 분들과 함께 일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죠.
Q. 배우려는 자세가 있어야만 가능한 성취네요.
결핍이 있으면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웃음) 예전에 그런 프로세스가 없어서 너무 힘들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되게 자세히 보는 거죠. 방법을 몰랐을 때 절감했던 결핍이 있기에 계속해서 배우고 싶은 것 같아요.
Q. 자신에게 엄격한 의준 님이 스스로 칭찬해 주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인가요?
제 기준에는 아직 못 미치는 것 같아서 계속 노력 중이에요. 뿌듯했던 순간은 있어요. 한 프로젝트에서 제가 PV를 살펴봤을 때, 모바일 유저 비율이 높았거든요. 그래서 모바일에서도 편하게 볼 수 있는 테이블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팀원분들을 설득했어요. 제안이 받아들여져 실제 프로덕트에 반영됐을 때 뿌듯했죠.
Q. 동료들에게 의준 님에 관해 물어봤을 땐, 여러 툴을 다룰 줄 아는 ‘다재다능한 인재’라고 하던데요.
그것도 결핍이 있었기 때문이죠.(웃음) 그리고 제가 워낙 새로운 시도를 좋아해요. 그냥 한 번 배워 보고, 부딪쳐 보고. 하다 보면 비슷비슷한 것들이 눈에 익어요. 그럼 또 배우는 속도가 빨라지고. 그러다 보니 다양한 툴을 다룰 수 있는 것 같아요.
Q. 두루두루 잘해서 제너럴리스트인 줄 알았는데, 막상 얘기해 보니 스페셜리스트를 지향하는군요.
그런 것 같아요. 결국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도 여러 가지 스킬을 갖춰야 하는 것 같아요. 디자이너가 꼭 데이터를 볼 필요는 없지만, 데이터를 볼 줄 안다면 디자인을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확실히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디자인을 잘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고, 그 퍼즐 조각들을 모으는 과정 중에 있는 거죠.
Q. 귀찮은 걸 싫어해서 효율을 중시한다고 했는데, 체계를 만들기 위한 과정은 귀찮게 느껴지지 않아요?
발전을 위한 과정은 귀찮지 않아요. 무의미하지 않으니까요. 다만 사고할 필요 없이 단순히 반복하는 일을 귀찮다고 느껴요. 조금 이상적인 생각이지만, 그런 일들은 기계가 하고(웃음) 사람들은 조금 더 재밌고 창의적인 일들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절대 그런 세상이 올 수 없잖아요. 그러니 지금은 그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죠.
Q. 노력이 실패로 이어지는 게 두렵진 않나요?
두려움도 있죠.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일상에서의 많은 일들은 크게 두려울 게 없다고 생각해요.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죠스가 언급한 ‘Two-way Door Decisions’처럼, 빠르게 되돌리거나 해결할 수 있는 일들도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실패는 두렵지만 도전하지 않을 정도로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이런 제 생각에 큰 영향을 미쳤던 글이 있어요. 군인일 때 읽었던 많은 책 중에 가장 마음에 울림을 줬던 구절이에요.
강한 사람이 어떻게 비틀거리는지, 행동하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지적하는 비판자는 중요하지 않다. 영광은 경기장 안에서 실제로 싸우는 사람의 몫이다. (…) 실수와 결점 없는 노력은 존재하지 않기에, 넘어지더라도 용감하게 투쟁하고 또 투쟁한다. (...) 그는 마침내 큰 성취를 얻게 될 것이다. 설령 실패한대도 담대하게 도전했기에, 승리도 패배도 모르는 차갑고 소심한 자들과는 다르다.
- 미국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연설 ‘The Man in the Arena’ 중
Q. 이것저것 열심히 배우고 있는데, 배움의 끝에는 어떤 목표가 있어요?
아주 가까운 목표는, 제가 공부한 내용을 글로 정리해서 공유하는 거예요. 다른 분들과 함께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장기적인 목표는 아직 아주 구체적이진 않아요. 많은 사람한테 영향을 미치는, 삶을 더 편안하게 만드는 뭔가를 만들고 싶다? 꿈을 상세하게 그리기보다는 지금의 확실한 일을 잘 해내고, 그를 기반으로 다음 기회를 조금 더 명확히 그려가려고 해요. 지금은 기틀을 다지고 있죠. (웃음)
글. 임현경 - UX Writer
그림. 이원용 - Experience Desig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