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이야기

[물 건너온 UX] AI는 UX 라이터를 대체할 수 있을까?

임현경 (Hyun Kyung Lim) 2024. 9. 24. 07:50

'언어장벽' 너머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요? 더 많이 배워서 사고의 폭을 넓히고 싶은 마음을 언어의 한계 때문에 포기할 순 없죠. 다양한 언어, 문화권의 콘텐츠를 번역하는 '물 건너온 UX'와 함께, 전 세계를 탐험하며 틀 없이 자유로운 생각을 펼쳐봐요. 

AI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유통, 금융,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 도입되고 있어요. 특히 생성형 AI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여겨지던 창작까지 해내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죠. 간단한 메일부터 장편소설까지, 뭐든지 AI가 대신 써주는 세상에서 UX 라이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UX 라이터라는 직업은 AI에 밀려 이대로 사라지는 걸까요?

 직업 정체성을 고민하는 모든 UX 라이터에게 팟캐스트 ‘Writers in Tech’의 한 에피소드를 소개할게요. BIMM 콘텐츠 디자인 리드 리나 라모나 비트카우스카스(Lina Ramona Vitkauskas)와 UX Writing Hub CEO 유발 케슈테처(Yuval Keshtcher)가 AI 시대에 필요한 콘텐츠를 돌아보죠.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으로 이끄는 UX 라이팅과 콘텐츠 디자인의 미래(Leading the Future of UX Writing and Content Design with Empathy)”를 함께 생각해 봐요. 

*이 글은 팟캐스트 에피소드 중 일부를 발췌해 번역한 것으로, 모든 내용은 여기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AI 시대의 UX 라이터

유발 케슈테처(이하 유발): UX 라이팅과 콘텐츠 디자인 분야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애플의 비전 프로와 같은 새로운 세계가 등장한 데다, 익숙한 세계 또한 ‘AI 대전’에 뛰어들게 됐어요. 지금 모든 것이 재편성되고 있는 상황이에요. 마치 25년 전 막 웹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처럼요. 어떤 종류의 혁신이든 우리에게 도전 과제를 안겨주죠. 그렇다면 디지털 경험을 전달하는 우리 산업은 지금 상황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시나요? 

리나 라모나 비트카우스카스(이하 리나): 모두가 AI를 말하는 지금 이 격변 속에서도 근본 또는 핵심은 콘텐츠와 그 맥락에 있어요. UX 라이팅의 쓸모죠. UX 라이터는 모든 경험을 만들어요. 원활하고 유익하며 때론 즐거운 경험들을요. 기술이 발전하면 UX 라이팅도 그에 맞춰 진화할 수밖에 없죠. 우리는 새로운 인터페이스와 사용자 행동에 적응해야 해요. 포용성, 더욱 대화적인 어조와 개인화된 상호작용에 중점을 둘 거예요. 하지만 불쾌함을 느낄 정도로 지나치게 개인화되지는 않게 주의해야 하죠. 또, UX 라이터는 고객 인게이지먼트1)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우리가 늘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죠. 

AI의 시대에서 UX 라이터의 역할은 문 앞에서 AI가 밖으로 나가기 전에 점검하는 거예요. 근본은 그대로 두되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업무를 전환해야 한다는 뜻이죠. UX 라이터는 여전히 맥락 안에서 좋은 콘텐츠를 작성하거나 창작하겠지만, 이제는 편집자가 돼야 해요. AI 활용 사례를 찾아 보고 AI 환각2)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거예요. 단어, 글, 언어는 직관적이고 윤리적일 수 있도록 하는 여과기가 필요하니까요. 매우 큰 책임이 따르는 일이죠. 그게 UX 라이터가 맥락을 만들어가는 방법이 될 거예요. 모든 문구, 자막, 사용자 흐름, 문서화, 비디오 스크립트 등 무엇이든지요. 

피그마(Figma)의 CEO는 지난 ‘Config 2023’에서 AI가 훌륭한 초안을 주면, 인간이 이를 세계적인 제품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말했어요.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또 하나의 AI 관련 문제는 ‘표현 장벽(articulation barriers)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예요. UX 라이터의 일은 UI에 반영될 구체적이고 명확하면서도 사실적이고 윤리적인 프롬프트를 만드는 거죠. 이게 바로 모든 UX 라이터가 갖춰야 할 자산이 될 거예요. 철저하고 탄탄한 프롬프트를 작성해서 사용자를 보호하고 그들이 뒤처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해요. 

매일 AI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나오는데, 얼마나 빠르게 진화하고 변화하는지 놀라울 따름이에요. 우리는 이에 발맞춰 빠르게 움직여야 해요. 우리의 사명은 정보를 전달받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공감하는 거예요. 또한 휘황찬란한 기능들 사이에서 길을 잃지 말아야죠. AI가 우리를 도울 수 없는 영역이니까요. 우리는 일종의 ‘지킴이(keepers)’로서 AI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지켜봐야 해요. 제멋대로 날뛰도록 내버려둘 순 없어요. 

 

1) 고객(사용자)과 상호작용하며 의미 있는 관계를 구축, 유지하기 위한 서비스 제공자의 모든 활동
2) AI가 주어진 데이터나 맥락에 근거하지 않은 오정보 또는 허위정보를 생성하는 현상

 

기계는 해낼 수 없는 일

유발: 완전히 동의해요. 정보의 양은 정말 엄청나죠. 지금 AI와 AI 도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모든 정보를 인간이 소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AI로 너무나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에겐 디자인 원칙이 있으니까요. 리나가 방금 말한 것처럼, 최종 사용자(end user)와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죠. 제가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 업계에서 꽤 오래 일하고 있는데요. 2017~2018년엔 다들 블록체인을 얘기했어요. 그보다 3년 전에는 모두가 모바일에 대해 말했죠. 

블록체인을 언급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아직 기준이랄 게 있진 않아요. 또한 많은 사람들이 수년 동안 VR을 입에 올렸죠. 디자이너로서, 항상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을 바라봤어요. ‘아, AI가 지금 이런 일을 할 수 있구나, VR은 지금 저런 일을 할 수 있구나’ 하면서요. 애플의 비전 프로, 메타의 퀘스트 같은 새로운 기술은 개발자의 영역이에요. 이를 기반으로 우리는 어떻게 최종 사용자에게 최고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거죠. 트렌드와 무관하게요. 

리나: 맞아요. 여러 신제품을 볼 수 있지만 중요한 건 그중에서 실제로 가장 유용한 제품이 무엇인지를 걸러내는 일이죠. 소셜 미디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그때의 몇몇 플랫폼은 지금 완전히 사라져 버렸죠. 왜 그랬을까요? 바로 UX 때문이에요. 저는 AI도 유사하다고 봐요. 수많은 종류의 AI와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가 생겨날 거예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단순히 기술의 진보만을 좇는 제품들 사이에서, 사용자에게 궁극적으로 유용할 뿐 아니라 윤리적인 제품이 무엇인지 판가름 나겠죠.

유발: 모든 회사가 블록체인이라는 말을 아무 데나 덧붙이는 것처럼요. 모 음료 회사가 단지 관심을 끌기 위해서 사명에 음료 이름 대신 ‘블록체인'을 넣었던 일화는 유명하죠. 지금은 모두가 AI를 원하고 있어요. 그저 오픈AI를 접목해 생성된 콘텐츠를 여기저기 끼워 넣으려 하죠. 이 때문에 사용자 경험은 성가시고 끔찍해지고 있어요. 

사실 무엇이든 생성할 수 있다고 해서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물론 AI가 백엔드에서 제공하는 경험은 놀라울 정도죠. 영상을 녹화하면 자동으로 번역 자막이 생성되는 것처럼요. 이런 환상적인 경험이야말로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하는 일이에요. 사람들이 “와 정말 놀라워. AI가 이런 것도 해주네!”라고 감탄하는 순간이죠. 아마 2년 뒤에는 이런 경험이 모두에게 당연한 일이 될 거예요

리나: 맞아요. 말씀하신 번역 같은 백엔드에서의 일은 AI의 놀라운 능력이죠. 하지만 번역할 때도 맥락을 위해서는 여전히 UX 라이터 또는 일종의 편집자가 필요해요. 다시 강조하지만, 언어나 문화, 뉘앙스의 차이로 인해 의미는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거나 잘못된 의미를 전달해선 안 되니까요. 인간이 AI로 생성한 결과물의 과정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죠.

유발: 그래서 당연하게도 편집, 프롬프트 디자인, 프롬프트 수정을 담당하는 사람이 필요해요. 프롬프트는 제품의 프론트엔드뿐 아니라 백엔드에서도 작동하니까요. 프롬프트로써 기계를 원하는 대로 작동시키는 방법을 반드시 배워야 할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AI 환각 현상이나 편향된 결과를 얻게 될 테니까요. 

리나: 맞아요. 다른 번역가 또는 현지화 전문가들이 말한 것처럼, 중요한 점은 이 일에는 언어학자와 진정한 맥락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앞단에서 무엇이든 입력할 수는 있겠지만, 제대로 설계된 프롬프트를 쓰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소용없게 되죠. 잠재적으로 위험하거나 모욕적인 결과를 얻을 수도 있어요. AI는 기계에 불과하니까요. 기계는 그저 여러 정보를 긁어모을 뿐, 사람을 위한 답이 무엇인가를 신경 쓰지 않아요. 감정을 가진 것도, 윤리성을 고려하는 것도 아니죠. 인간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예요.

 

잊지 말아야 할 UX의 본질

유발: 다양한 산업군을 위한 콘텐츠와 콘텐츠 전략에 관해서 묻고 싶어요. 산업별로 어떻게 전환하시나요? 산업군과 무관하게 두루 사용할 수 있는 패턴 같은 것이 있을까요? 

리나: 조금 뻔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공감'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산업이나 사업에서든 기본이 되는 일이죠. 사용자의 목소리와 비즈니스가 말하는 바를 모두 듣고, 이 두 가지가 어디서 교차하고 대립하는지, 또 겹쳐지는지를 파악해야 해요. UX 전문가이자 고객을 위한 작가로서는 당연한, 기본 상식 같은 거죠. 모든 사람들이 속한 책이나 드라마가 있다고 생각해 봐요. 여기엔 어떤 일을 하고 싶은 주인공, 사용자가 있고. 주인공과 맞서는 적대자가 있죠. 미안하지만 이 사람을 사업체라고 할게요. 가끔은 사업체가 주인공이 되기도 해요. 그리고 UX가 있죠.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어요. 

사용자가 원하는 것,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 등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도 있죠. 장소, 환경, 접근성 등 다양한 장애물이 있을 거예요. 콘텐츠 전략이란, 이 모든 요소를 이해했을 때만 적용할 수 있어요. 모든 등장인물, 그들의 동기, 장소 또는 시기, 그리고 맥락을요. 앞에서 계속 맥락이 핵심이라고 얘기했죠. 공감, 연구, 데이터가 바탕이 돼야 전략이 따라올 수 있어요. 장기적이든 단기적이든, 우리가 내세우는 모든 전략의 관건은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느냐죠. “이렇게 됐으면 좋겠어.”보다는 “사용자가 언제, 무엇을, 왜 보고 들어야 할까?”를 질문하는 게 중요해요.

사용자에게 아무런 의미 없는 텅 빈 콘텐츠와 디자인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아요. AI로 다시 돌아가 보자면, AI가 떠오르고 있는 현재에도 우리는 ‘사용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고 있어요. 어쩌면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이라는 말이 좀 구닥다리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우리는 이제 ‘사용자'가 아니라, ‘인간'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도 몰라요. UX 대신 HX(Human eXperience)를 말해야 하는 때인 거죠. 이것이 어떤 산업 또는 사업에도 적용할 수 있는 콘텐츠 전략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공감과 연민을 토대로,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이해하는 거죠. 

유발: 우리가 더 나은 UX 라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리나: 가장 중요한 건 데이터와 사람들로부터 얻은 피드백에 지속적으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거예요. 양적 데이터와 질적 데이터를 살피며 사람들이 어떤 얘기를 하는지를 이해하고 피드백을 반영해야 하죠. 끊임없이 반복되는 과정이에요. ‘다 됐다'는 건 없죠. 완벽한 상태에 도달할 수 없을지라도 언제나 쓰고, 이해하고, 통합하며 완벽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저는 이게 UX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결코 완성이란 없는, 항상 더 나은 경험을 추구하는 것 말이죠. 다시 우리가 직면한 도전 과제 중 하나인 AI로 얘기로 돌아가자면, AI를 좋은 방향으로 이용하되 너무 의존해서 과용하지 않아야 해요.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을 항상 최우선으로 생각해야죠. 

 


 

같이 생각해 봐요

하나. UX 라이터는 글로써 AI가 인지할 수 없는 맥락적 요소를 보완하고 사용자에게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로 수정해요. 맥락을 이해하고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역량이 필요할까요?

둘. 언어 장벽보다 훨씬 세밀한 영역인 ‘표현 장벽'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원하는 바를 글로써 표현하는 능력과 방식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자연어 프롬프트로 AI를 작동시킬 때 겪을 수 있는 불편함을 최대한 줄이는 게 관건이에요. 

셋. ‘사용자'라는 객체를 구체화하기 이전에 먼저 우리의 고객이 기계가 아닌 ‘사람'이라는 점을 상기하며, AI 경험에 윤리성과 인간성을 더할 방법을 고민해 봐야겠어요.

넷. AI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정보를 학습하고 있는데요. AI가 맥락이나 세밀한 뉘앙스마저 학습한다면, UX 라이터의 역할은 또 어떻게 변화할지도 지켜볼 일이에요.

 

. 임현경 - UX 라이터
그래픽. 정예지, 지승연 - BX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