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ckchain UX 이야기

[인터뷰] ‘춤을 추었어’ NFT, 그림책과 만나 마음을 갖다

임현경 (Hyun Kyung Lim) 2024. 9. 19. 07:50

NFT(Non-Fungible Token)는 이름 그대로 다른 무엇이 ‘대체할 수 없는' 제각기 고유한 것이에요. 똑같은 곰 인형이 수만 개씩 있다 해도 다른 곰 인형이 내가 품은 곰 인형을 대신할 수 없듯, NFT는 ‘내 것'으로서 유일성을 가져요. 물성이 없는 디지털이지만, 소유할 수 있는 아날로그의 감성을 담고 있죠.

이수지 작가는 NFT ‘춤을 추었어'로써 이런 NFT의 감성과 가장 아날로그적인 책을 연결 지었어요. 그의 이야기는 모리스 라벨의 무곡 ‘볼레로’를 만나 열여덟 점의 그림이 되고, 각 그림은 선율에 맞춰 춤추는 애니메이션 NFT가 돼요. NFT는 ‘춤을 추었어'의 일부이자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이야기죠. 

책과 그림, 그림책과 음악, 애니메이션과 NFT, 그리고 다시 NFT와 책을 잇댄 ‘춤을 추었어'는 기존의 것으로 정의할 수 없는 새로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마침내 무엇이 될지는 소유한 사람 마음이에요. ‘춤을 추었어'를 갖게 될 여러분께, 제작 과정을 담은 이수지 작가와의 인터뷰를 들려드릴게요. 


 

‘춤을 추었어'의 시작

Q. “어느 날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전쟁과 도심에서 열린 불꽃놀이 축제 사진이 인터넷 뉴스 창에 나란히 뜬 것을 보고"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들었어요.

이 사진을 보게 된 거죠. (뉴스 화면 캡처를 보여주며) 여의도 불꽃놀이 축제 현장인데 바로 밑에 쓰여 있는 제목은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에 대한 것이었어요. 눈을 의심했죠. 밤하늘에 궤적을 그리는 폭죽이 꼭 로켓포같이 보이기도 하잖아요. 실제로 전쟁에서 쓰이는 미사일도 저렇게 선을 그리며 날아가다가 불꽃이 펑펑 터져요.

어린이의 시점에서 전쟁은 아무런 맥락이 없는 상황이죠. 뭔지 모르겠지만 눈앞에는 아름다운 불꽃놀이 같은 게 펼쳐지는. 마침,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로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였어요. 어떤 춤으로 시작해서 점점 고조되다가 거대한 모순으로 끝나면 좋을 것 같았죠.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동시다발적으로 머릿속에 흘러들었어요. 


Q. 불현듯 떠오른 영감에서 시작해 이야기를 그려 나가는 작업 과정은 어땠나요?

처음 구상할 때는 ‘볼레로'를 들으며 작업실 근처 강변을 걸었어요. 도시의 소음과 딱 분리되는 순간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잖아요. 작은 풀벌레, 물 밖으로 튀어 오르는 물고기…. 머릿속에서 전체적인 상을 잡은 뒤 무작정 그리기 시작했죠.

하나의 책이지만, 동시에 여러 조각으로 쪼개져서 독자들이 따로 또 같이 감상할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볼레로'의 주제 선율이 18번 반복되니 이야기를 열여덟 마디로 나눴죠. NFT를 각각 독립된 이야기이자 모여서 거대한 이야기가 되는 ‘확장된 책'으로 만들었어요.


그림책, 음악을 만나다

Q. ‘춤을 추었어'는 ‘볼레로'를, 작가님의 전작 ‘여름이 온다'는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을 모티프로 삼았죠. 줄곧 그림책과 음악을 연결 짓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말 없는 예술'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악보에 읽어낼 수 있는 글은 없지만, 음악을 들으면 가슴속에서 어떤 감정과 이야기가 일어나는데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고, 하지만 분명히 뭔가가 있고, 그 모든 과정이 쌓여 예술적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게 제가 책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고 싶은 방식과 비슷하거든요.

그림책도 글자 없이 그림을 보면서 읽는 사람이 이야기를 구성해 나가요. 작가는 전체적인 방향은 제시하지만, 그 안을 채우는 건 독자의 몫이에요. 음악과 함께 또는 음악 없이 읽는 사람에게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라고 하는 거죠. “네 마음대로 생각해도 돼. 정답은 없어.” “네가 좋았다면 그건 네 거야.”


Q. 그림책과 함께할 ‘볼레로'를 편곡한 장영규 음악감독님과의 협업은 어땠나요? 

두 명의 아티스트가 평행선으로 달려왔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장영규 감독님이 제 그림에서 어떻게 느꼈고 또 음악으로 표현할지를 기대하는 입장이었어요. 부탁드렸던 건 불꽃놀이의 효과음이 들어갔으면 좋겠다 정도였죠. 제가 ‘볼레로'를 들었을 때 느꼈던 모순적인 코믹함이 장영규 감독님이 작업한 음악에서도 느껴져서 재밌었어요. 


‘춤을 추었어'가 보여주는 솔직함 

Q. ‘춤을 추었어'의 이야기는 마냥 밝고 행복하지 않죠. 춤을 추었다(영제는 Danced Away)는 과거형을 제목으로 둔 것도 그렇고요. 삶의 모순이나 이면에 가려진 비극성에 주목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어린이를 위한 책에서 그런 것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인생의 슬픔을 모르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린이들이 밝고 즐거운 것만 좋아할 거라고, 혹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하지만 그건 어른이 보고 싶은 거죠.

막상 우리가 아이였을 때를 돌아보면 쉽지 않았었지요.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세상의 질서는 이미 다 잡혀있고. 그조차 궁금하고 기쁘기도 했지만, 매 순간 즐거웠을까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았죠. 세상을 파악하려고 애쓰는 과정을 매 순간 겪고 있어요. 그런 부분을 보여주는 솔직한 책이길 바랐어요.

 

Q. 모순에 부딪히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작품을 만들며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약하고 아름다운 존재’를 생각했다는 작가님의 작업노트가 생각나네요. 

맞아요. ‘춤을 추었어'에서 아이는 맨 먼저 벌레들을 만나잖아요. 뱀, 까마귀, 박쥐도 그렇고. 아이가 만나는 생명체는 세상에서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아이는 편견 없이 함께 어울려 놀아요. 


NFT라는 낯선 매체에서 발견한 접점

Q. 편견이 없었기에 ‘춤을 추었어'가 NFT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 거예요. NFT는 작가님에게 낯선 매체였을 텐데, 어떤 계기로 NFT 프로젝트를 결심하셨는지 궁금해요.

세상이 변화하고 있으니 책도 미래에는 변화할 텐데, ‘책의 미래’는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늘 있죠. 그러다 ‘여름이 온다'에서 책에 QR코드를 함께 인쇄해 스마트폰으로 코드를 스캔하면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을 수 있게 했어요. 그런데 출판된 책을 보니 좋기도 하면서, ‘이렇게밖에 못 하나?’ 한계가 느껴졌어요.

다른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던 중에 pxd와 함께 NFT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 거죠. 책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끌렸어요. 책은 멈춰있는데 디지털 매체는 움직일 수 있고, 보는 것과 듣는 것을 함께할 수 있으니까요.


Q. 여러 디지털 매체 중에서도 NFT를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현재 전자책의 경우, 구매하더라도 플랫폼이 사라지면 볼 수 없죠. 소유권이 명확하지 않아요. NFT는 대체 불가능한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실제 책을 갖는 것과 비슷해 보여요.

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책을 구매했을 때 “내 책”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매대에 놓인 수많은 그림책 중에서 독자가 결국 지갑을 열어서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 목표죠. NFT도 결국 마음을 움직여야 구매로 이어지겠죠. 지금 디지털 매체에 필요한 건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철학적 질문인 것 같아요.

그리고 창작자 입장에서, 책은 한 번 판매되면 창작자와는 안녕이죠. 그런데 NFT로 블록체인에 기록되면 작품이 어디로 갔는지도 알 수 있고, 2차 거래가 발생할 때 창작자로서 대가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 끌렸어요. 이런 방식은 지속적으로 창작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번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


Q. NFT를 비롯한 토큰을 담는 매체를 ‘지갑'이라고 부르는데, 소유라는 개념과 연결 지으니 더 흥미롭네요. 아날로그 또는 책의 물성을 좋아하는 기존 독자에게 NFT가 어떤 인상을 남길지 궁금해요.

‘춤을 추었어' 프로젝트에 실물 그림책을 포함한 이유 중 하나예요. NFT를 너무 생소하게 느끼지는 않았으면 해서, NFT라는 디지털적인 결과물을 물성이 있는 책과 연결하고 싶었죠. NFT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독자들에게 다가갈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어요. 

그림책 독자들은 하나의 커뮤니티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그림책 동네'라는 표현을 자주 쓰죠. 애정이 많고 진심이 가득해요. 제가 뭔가를 한다고 하면 그냥 믿고 찾아오시는 분들도 많아요. 내가 만드는 그림책이 누구에게 갈지를 아는 느낌이랄까요. 그렇기 때문에 좋은 작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죠.


Q. 작가로서의 사명감이 느껴지네요. 

이야기의 일부를 소유한 분들에게 이야기가 완성됐을 때의 모습, 즉 전체 서사를 만질 수 있는 형태의 물건으로도 보여주고 싶었죠. NFT로 갖고 싶은 장면이 몇 개가 될지 알 수 없잖아요. 여러 장면의 NFT 중 하나만 구매해도 모든 이야기가 담긴 특별판 그림책을 받을 수 있어요.


Q. 특별판은 ‘춤을 추었어' NFT를 구매하면 받을 수 있는, NFT 수만큼만 존재하는 그림책이죠. 딱 540권뿐이에요. 

‘춤을 추었어' NFT가 이야기의 중간 토막이라면, 특별판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포함된 완성본이에요. 중철해서 따로 넣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에 한 장 한 장 접힌 장면을 펼칠 수 있게 만들었어요. 종이를 펼쳐 다음 장면과 잇기도 하고 다시 접어 분리하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가지고 놀 수 있죠. 의도하지 않았던 연결성을 찾아낼 수도 있어요.

선율이 반복, 고조되면서 마지막에 카타르시스를 주는 ‘볼레로’의 느낌을 책, 종이의 물성으로도 표현했어요. 독자가 직접 페이지를 넘기면서 경험할 수 있을 거예요. 오래 머무르고 싶은 곳에서는 잠시 멈췄다가, 다시 뒤로 돌아기도 하고. 시간의 흐름을 내 마음대로 조절하면서요.


‘연결'의 미학

Q. 앞서 “그림과 책을 연결하고 싶었다"라고 한 인터뷰가 떠오르네요. 음악과 책, 디지털과 아날로그, 작가와 독자…. 작가님에게 ‘연결'은 중요한 키워드인 것 같아요. 

‘파도야 놀자'를 예로 들면, 책을 펼쳤을 때 보이는 그림은 하나지만, 가운데를 기준으로 왼쪽은 현실의 공간이자 아이의 공간이고 오른쪽은 파도의 공간이에요. 제본하면서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경계를 이용해 공간을 나눈 거죠. 용기든 호기심이든 아이는 ‘경계’를 넘어야만 몸에 물을 적시며 파도와 놀 수 있어요. 저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더라고요.

경계라는 것이 우리가 임의로 붙인 이름일 뿐이잖아요. 사실 모든 것은 늘 섞여 있는데 구분하려 들죠. 이 경계에서 항상 재밌는 일이 발생하는 것 같거든요. 서로 다른 것들이 같이 있을 때 하나로 연결되면서 다르지 않게 된다든가, 우연히 의도하지 않았던 효과가 나오기도 하고요.

‘춤을 추었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가장 아날로그적인 형태의 물건인 책이 디지털을 만날 때, 그림이라는 언어가 책을 만날 때, 음악을 만날 때, 그 사이에서 이야기가 흘러나오잖아요. 그런 이야기들을 앞으로도 나누고 싶어요.


Q. 오는 10월 현대어린이책미술관에서 열릴 ‘춤을 추었어 Danced Away’ 전시가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겠네요.   

맞아요. 원화를 감상하는 재미, 최종 결과물과 다른 점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을 거예요. 또, 제가 도슨트로서 작품의 뒷이야기를 설명해 드리려고 해요. 저도 다들 어떻게 보셨는지 들을 수 있겠죠. 어린이들도 많이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기대가 돼요.

 

*‘춤을 추었어' NFT는 여기에서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어요. 

 

. 임현경 - UX 라이터
그래픽. 지승연 - BX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