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 가벼운 이야기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 배운 디자인 씽킹 - 사용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Seungyoon Lee 2023. 7. 24. 09:30

오은영 박사에게 배우는 UX 컨설팅이라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얼마 전 ‘유퀴즈 온 더 블럭’을 보다가 UX와 연관되는 내용이 있어 또 한 번 느낀 점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유퀴즈 온 더 블럭: 사건을 막는 발명가 경찰 편 

유퀴즈 온 더 블럭은 제가 열심히 보는 프로그램입니다. 보통은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나오지 않으면 청소를 하며 본다던지 왔다 갔다 할 일을 하며 보는 편인데요😅, 이번 편은 앉은 자리에서 집중해서 끝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사건을 막는 발명가 경찰' 편의 주인공, 유창훈 경정님께서 생각하고 실행하는 모든 것이 UXer들이 익숙한 디자인 씽킹 프로세스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pxd 블로그를 찾는 분들은 디자인 씽킹 프로세스에 매우 익숙하시리라 생각하고 구체적인 프로세스를 소개하는 것은 생략하겠습니다. 혹시 궁금한 분은 10년이 훌쩍 넘은 포스팅이지만 디자인 씽킹을 잘 설명한 글, 디자인 사고(Design Thinking) 스터디 가이드를 참고해 보세요. 보통 [Emphasize - Define - Ideate - Prototype - Test] 단계로 설명되는 디자인 씽킹 프로세스를 유경정 님께서 어떻게 풀어내셨을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Problem: 무단횡단하는 어르신

무단횡단은 불법이며 큰 사고를 유발합니다. ‘2017년 전국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한해 동한 보행사고 사망자 수는 1675명이며 이중 노인 사망자는 906명(54%)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무단횡단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잘 알려져 있고, 또 이를 제재하는 도로교통법이 이미 존재하므로 무단횡단하는 사람을 보면 법을 지키지 않는 그 사람을 탓하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그런데 유경정 님은 당연한 상황에서 “왜"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왜 ‘어르신'들은 자꾸 무단횡단을 할까?” 

 

유퀴즈 온 더 블럭 제201화 사건을 막는 발명가 경찰

우리는 문제를 발견하는 것 조차 어려워할 때도 많습니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이 문제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울 경우가 많이 있지요. 그런데 왜 문제를 발견하기 어려울까요? 

‘어르신의 무단횡단'으로 문제의 초점이 맞춰진 것은 ‘무단횡단으로 인한 사고를 줄이겠다'는 비즈니스 관점의 목표와 ‘어르신이 위험하다'는 사용자에 대한 관심이 잘 버무려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깊은 관심을 가질수록 문제를 발견하기는 더 쉬워집니다. 내 얼굴에 난 뾰루지는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만 다른 사람의 뾰루지는 관심도 없게 되는 원리와 같다고 할까요. 

 

Emphasize & Define: 허리 통증 때문에 서 있을 수가 없어   

문제를 발견했다면 왜 이 문제가 발생했는지 알아야겠지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 위해서 대상을 깊이 들여다보자는 것이 디자인 씽킹에서 이야기하는 '공감'입니다. 유경정 님은 바로 몇몇 노인정으로 가서 물어보셨다고 합니다. 

“도대체 왜 무단 횡단을 하시는 겁니까?” 

유퀴즈 온 더 블럭 제201화 사건을 막는 발명가 경찰

아마 노인정에서 어르신을을 모아두고 무단 횡단을 했을 때 왜 위험한지, 왜 하지 말아야 되는지, 범칙금은 얼마인지를 교육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사용자들이 기능을 어려워하니 ‘가이드를 잘 제공하자'라고 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문제에 처한 사용자를 사랑하는 마음은 공감을 위해 더 깊은 대화를 하게 합니다. 우리는 보통 이 대화를 심층 인터뷰(in-depth interview)라고 부르지요. ‘왜 어르신들은 유독 횡단보도에서 멈추지 않는가’라는 Research Question의 답을 얻을 때까지 인터뷰를 계속한 결과 ‘다리와 허리가 아파서 서서 기다릴 수 없어 그냥 길을 건넌다'라고 하는 솔직한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유퀴즈 온 더 블럭 제201화 사건을 막는 발명가 경찰

 

Ideate: 어떻게 하면 허리 아픈 어르신들을 빨간 불이 켜진 횡단보도에서 기다리게 할 수 있을까? 

‘무릎과 허리가 아파 횡단보도에서 서있을 수가 없다’는 Finding이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내가 의사도 아니고… 허리를 고쳐줄 수도 없는데…’하며 솔루션 찾기를 포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용자에 대한 진정한 공감은 끝내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게 이끌었습니다. 

허리 통증 때문에 서서 기다릴 수 없다면, 서 있는 것이 문제인가? 앉아서 기다리면 더 나을까? 그렇다면 횡단보도에서는 어떻게 앉는게 제일 좋을까?라는 고민에 이르렀던 것이죠.  

유퀴즈 온 더 블럭 제201화 사건을 막는 발명가 경찰

유경정님이 해결한 방법은 횡단보도 앞 신호등에 접이식 좌석을 설치하자는 것이었는데요, 바로 화장실에 있는 유아용 접이식 의자에서 착안했다고 합니다. TV만 보면 유아용 접이식 의자가 머릿속에 딱 하고 떠오른 것 같지만 다른 기사를 좀 더 찾아보니 여러 형태를 찾아보고 고민하고 테스트해 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놀이터 운동기구 의자, 전봇대 작업대, 대중화장실 유아용 의자 등을 관찰하고 적용을 시도했고, 테스트 끝에 일반 통행인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의자를 설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디자인 씽킹에서는 다학제적인 접근 방법을 강조하는데요, ‘앉다'라는 키워드에 속해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충분히 검토하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Prototype & Test: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횡단보도에서 돌아가실 수 있다. 

디자인 씽킹 프로세스에서도 애자일, 린 프로세스와 같이 빠른 프로토타입과 테스트를 바탕으로 한 반복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접이식 의자의 형태를 빠르게 테스트하기 위한 노력은 또 하나의 감동 포인트입니다. 빠르게 테스트를 하기 위해 특허권도 양도했다고 들었는데요, 이렇게 빠른 프로토타이핑이 필요했던 이유는 역시 사용자를 위한 마음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횡단보도에서 돌아가실 수 있다”

 

사용자를 향한 조급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최적의 안을 빠르게 만들어 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제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사용자는 어려움을 겪고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프로토타이핑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반성이 절로 되더군요. 사용자에게 진짜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그 마음이 빠르게 제대로 된 제품을 시장에 내보내야겠다는 동력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유퀴즈 온 더 블럭 제201화 사건을 막는 발명가 경찰

 

Evaluate: 이후 노인 횡단보도 사망사고는 없었다.

결국 이 시도는 ‘장수의자'라는 이름으로 도입이 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성과 또한 정량적인 수치로 소개가 되었는데요, 장수의자 도입 후 어르신의 횡단보도 사망사고는 0건이 되었고, 별내 신도시에서 시작했지만 70여 개 자치단체, 2,500개 의자가 설치되는 등의 결과로 매우 의미 있는 성과가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BBC에서도 기사로*** 다뤄지는 등 성과가 국제적으로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퀴즈 온 더 블럭 제201화 사건을 막는 발명가 경찰

과정이 아름다워도 결과가 아름답지 않으면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되는데요, 노인의 무단횡단 사망건수가 “없다”는 결과가 과정을 더 빛나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용자를 사랑하는 마음  

유퀴즈를 보고 나서 유경정 님이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세스가 디자인 씽킹 프로세스와 너무 흡사하다는 점을 소개하고 싶었는데요, 글을 정리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건 유경정 님이 사용자를 진정으로 공감하고 위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사용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과연 노인정을 돌아다니며 질문을 할 수 있었을까, 예산 문제가 있었지만 위험에 놓인 어르신을 구하기 위해 1분 1초라도 빨리 프로토타이핑을 시도할 수 있었을까... 하는 깨달음이 며칠 동안 머리를 울립니다. 

우리는 디자인 씽킹을 비롯한 여러 방법론과 프로세스를 어떻게 하면 제대로 배우고 적용할까 고민하고 노력하지만, 문제를 겪고 있는 사용자를 진심으로 공감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벼이 여긴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외쳐봅니다. 

“사용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유경정님이 다른 매체의 인터뷰에서 나눈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마치겠습니다. 

“공직자를 행정 서비스 공급자라 하고 일반 시민을 수요자라고 가정했을 때 공급자 중심 사고로 일하면 절대 수요자에게 만족을 줄 수 없다. 배부른 사람에게 밥을 더 줘봤자 서비스가 아니라 괴롭히는 것에 불과하다. 수요자인 시민이 진짜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 항상 후배들에게도 수요자 입장에서 가려운 곳을 찾는 게 핵심임을 가르친다.”****

 


*남양주 별내의 '장수의자', 다른 동네에도 없는 '별난 의자', 이동준, 2019. 4. 29, 세계일보 (https://v.daum.net/v/20190429100202728)

**장수의자, 횡단보도 LED 바닥 보셨나요? 만든 주인공 알고보니 현직 경찰, 2022. 10. 19,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https://www.ytn.co.kr/_ln/0103_202210191335401777)

***Korean elderly back road safety seats, Tae-jun Kang and Martin Morgan, 2019. 4.29, BBC (https://www.bbc.com/news/blogs-news-from-elsewhere-48092055)

****LED 바닥신호등·장수의자 만든 33년차 경찰 “시민 불편 경청이 발명 아이디어 비결”, 이종현, 2022. 8. 23, 조선일보 (https://biz.chosun.com/topics/topics_social/2022/08/23/2PQ5DZGGHJEMPIO25THM5553L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