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19. 07:50ㆍUX 가벼운 이야기
들어가며: 논리를 찾아라
클라이언트의 서비스나 프로덕트의 사용자 경험에 관련된 문제를 파악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과정을 ‘사용자 경험을 컨설팅한다(이하 UX 컨설팅)라고 합니다. UX 컨설팅 프로젝트의 핵심은 클라이언트의 여러 상황을 조감하며 예상했던 혹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하고 최적의 조언을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논리로 전달하는 데 있습니다. 또 몇 달 동안의 프로젝트가 종료된 후 클라이언트와의 하이파이브에서 느껴지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죠.
어떻게 하면 논리적으로 가설을 세우고 효율적으로 조사하고 의미 있는 인사이트를 도출하고 이 모든 과정을 설득력 있게 설명할 것인가를 위해 책도 많이 읽고, 레퍼런스도 많이 찾아봅니다. 그러다 책이 아닌 TV에서 논리의 흐름이 너무나도 명확한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는데요...
금쪽같은 내새끼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금쪽이(아이들)의 행동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인데요, 오은영 박사가 패널들과 함께 금쪽이의 행동을 관찰하고 부모와의 인터뷰를 통해 문제를 정의하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금쪽같은 내 새끼 유튜브 채널 → www.youtube.com/watch?v=6XTXogKslgM)
제가 이 프로그램을 보고 인상 깊었던 이유는 오은영 박사가 pxd의 UX 컨설팅 프로세스와 같은 방식으로 문제와 해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고, 또 제가 고민하고 있었던 ‘어떻게 하면 좀 더 설득력 있게 문제와 해결을 전달할 수 있을까' 를 보란 듯이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블 다이아몬드
오은영 박사의 문제 해결 접근 방법과 pxd의 접근 방법이 오버랩되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의 구성이 더블 다이어몬드 프로세스와 매우 흡사했기 때문인데요, 다양한 방식으로 현상을 파악하여 문제를 [정의]하는 첫번째 다이아몬드와,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제시하는 [해결]하는 과정으로 육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는 것은 모든 컨설팅의 기본입니다. 모두가 기본이라는 건 알지만 문제의 과녁을 제대로 맞히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 중 하나입니다. 오은영 박사의 코치를 보며 왜 잘못된 문제를 짚게 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1. 문제와 현상을 구분하라.
TV에 나온 금쪽이는 떼를 쓰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말이 너무 없거나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는 떼를 쓰고 소리를 지르는 게 금쪽이의 ‘문제’라고 이야기합니다. 시청자들도 아이의 문제라고 끄덕이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죠.
그런데 오은영 박사는 이를 문제라고 정의하지 않습니다. 그저 관찰 영상을 통해 금쪽이와 부모를 유심히 관찰하고, 금쪽이가 하는 말과 부모가 하는 말을 유심히 듣고 있을 뿐이죠. 대신, 금쪽이의 행동을 ‘현상’이라 정의합니다. 이런 현상이 나오게 된 배경, 즉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려고 유심히 영상을 관찰할 뿐입니다.
기업에서 ‘UI디자인의 일관성이 떨어져요’라고 했을 때, 이는 문제가 아닌 현상이라고 지칭해야 합니다. 일관성이 떨어지게 된 배경을 파악하여 진짜 문제를 수면 위에 올려야 합니다. UI의 일관성 부재라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는 조직의 사일로라는 하이 레벨의 문제에서부터, 디자이너 한 명의 반복되는 실수라는 리소스 문제, 디자인 시스템의 부재라는 자원 관리 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조직의 사일로인데 디자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제대로 된 해결이 아닐 겁니다. 마치 아이가 자주 떼쓰기 때문에 아이가 지나는 동선에 사탕을 배치하라는 해결과 유사합니다.
현상만 보고 해결한다고 하는 것은 문제를 임시로 덮어 두는 것과 같기 때문에, 진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2. 현상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를 살펴보라.
금쪽이의 문제가 되는 현상들은 대부분 부모의 행동에서 기인합니다. 부모가 아이의 마음을 돌보지 못하고 행동에 과도하게 제한을 두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부모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오은영 박사는 관찰할 이해관계자를 확대해 나갑니다. 아이에서 → 주 양육자(주로 엄마 혹은 부모)로 → 부 양육자(주로 조부모) → 친구 → 학교… 로 문제가 선명해 질 때까지 범위를 확대합니다. 그리고 문제가 있는 이해관계자와 문제가 없는 이해관계자를 명료하게 구분하죠.
3. 적절한 방법론을 적용해라.
모든 UX 컨설팅에서 사용자 조사를 진행하고 퍼소나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방법론은 목표에 잘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고 꼭 필요한 방법을 적용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니까요.
오은영 박사는 아이와 부모의 일상을 ‘관찰’하는 것에서 문제의 파악을 시작합니다. 방송에 참석한 부모와의 질의, 응답을 통해 부모의 성향도 파악합니다. 때로는 직접, 때로는 금쪽이를 통해 아이와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을 통해 더 깊은 아이의 속내를 파악하고자 하지요. 아이에게 태스크를 주고 반응을 면밀히 관찰하기도 하고, 또 집 안 또는 유치원 등 환경의 변화가 아이에게 어떤 행동 변화를 일으키는지도 비교해 봅니다. 이 모든 방법은 아이의 행동 변화의 원인을 찾기 위한 것으로, 어떤 현상을 보이느냐에 따라 최적의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1:1 인터뷰를, 때로는 다이어리 스터디를, 때로는 관찰을, 때로는 맥락기반인터뷰를 진행하는 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노련한 모더레이터
사용자 조사에서 모더레이터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준비된 질문지만 읽는게 아니라 사용자의 행동과 생각을 읽고 숨은 니즈를 최대한 끌어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 프로그램의 모더레이터는 금쪽이라고 하는 AI 스피커입니다. 금쪽이는 아이의 나이와 언어로 대화를 시도하고 아이 마음 깊은 곳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 문제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사용자의 깊은 속내를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모더레이터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죠.
4. 이제 문제를 정의할 수 있다.
여러 각도에서 현상을 파악했다면, 이 현상의 원인인 문제를 정의해야겠죠. 부모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언어 습관이나,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의 신호를 무시하고 넘어가는 행위 등 아이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을 수면 밑에서 조목조목 찾아냅니다. 마치 사용자 조사 후 찾아낸 보석 같은 인사이트를 설명할 때와 꼭 같은 모습입니다.
도입부에서 아이의 행동이 문제라고 생각했던 시청자들은 이제 아이의 행동은 문제가 아닌 현상이며, 문제는 부모의 잘못된 행동에 있었다는 것을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이게 됩니다.
해결과 방법은 구체적일수록 명확하다.
문제가 명확하다면, 이후에 어떻게 해야 아이의 문제가 개선될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겠죠. 발견된 문제는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 수도,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의 해결책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 필요한데요, 이 액션플랜에는 시간 계획, 인적 리소스, 노력의 수준이 명확하게 정의되어야 합니다.
1. 목표와 액션을 명확히 정의하라.
가장 큰 상위 목표는 언제나 아이와 부모의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내용을 아무리 부모에게 전달해도 이렇게 얘기할 것입니다. “그건 우리도 알아요. 그런데 잘 안되는걸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세요.” 우리가 제시해야 할 것은 부모가 실제로 시도해 볼 수 있는 명확한 실행 방안입니다.
부모는 왜 아이를 이렇게 훈육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표와(goal), 우리 아이의 특성을 고려한 훈육 전략(strategy), 그리고 이 전략을 실행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tactics)알게 됩니다. 이 3가지 레이어 중 하나라도 설명이 되지 않으면 부모는 방법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지고 지속 가능하지 않은 방법이 되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아래 표와 같이 현상에서 해결 방법까지의 논리가 선형적으로 이어지는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2. 해결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제시하라.
직장 상사가 또는 클라이언트가 하는 흔한 말, 언제까지 돼요? 라는 말이 있지요. A라는 일은 언제까지, B라는 일은 얼마 동안 할 수 있는지 가늠하는 것은 어렵지만 꼭 필요한 일입니다. 아무리 좋은 해결 방안이라도 실행하는데 3년이 걸린다면 경우에 따라서 좋은 방법이 아닐 수도 있겠죠. 해결이라는 것은 실행 가능한 타임 플랜을 짜는 것입니다.
오은영 박사의 처방 중 어떤 처방은 “2주만 매일 매일 해보세요”라고 것도 있고, 어떤 처방은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5분씩만 투자한다고 생각하고 1년만 해보세요.”라고 하기도 합니다. 장단기 플랜을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죠.
UX 컨설팅에서도 해결 방안에 대한 액션플랜을 제시할 때 언제, 얼마 동안의 기간이 필요한 해결책인지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3. 정기적인 점검 방안에 대해 논의하라.
문제에 대한 해결을 제시했다면, Ops 개념의 후속 관리가 필요합니다. 정기적으로 평가를 진행한다던지, 문제가 다시 발견되었을 경우의 액션플랜도 제공되면 좋겠지요.
방송에서는 해결 방안을 제시한 후 2주 후, 한달 후 등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다시 아이를 찾아 상태를 점검합니다. 어떤 부분이 좋아졌고, 어떤 부분은 여전한지를 짚어 해결 방안에 대한 평가를 하고 후속 조치를 취하기도 하죠.
저희 블로그 수록글 “디자인 시스템 3편 - 디자인 가이드라인/디자인 시스템의 운영”에서는 운영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합니다. UX 컨설팅은 다시 안 볼 상대에 대한 1회성 조언이 아니라, 그 결과를 함께 하고 같이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제공했던 조언이 클라이언트에게 제대로 사용되지 않았다면, 거기서 다시 배우고 함께 좋은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진짜 목표이겠죠.
마치며
글을 쓰다보니 컨설팅이라는 영역의 많은 직업들이 떠올랐습니다. 의료진은 물론, 교육 컨설턴트, 보험 컨설턴트 등등 많은 영역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더블 다이아몬드 프로세스가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핵심은 명확했습니다. 내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통해 방향을 제시하는 과정에 대한 이해만 명확하다면 UX 컨설팅에 어려움이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논리적 문제해결을 위한 참고자료]
1) 일 잘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가 다카다 다카히사 지음
2) 로지컬 씽킹 맥킨지식 논리적 사고와 구성의 기술 데루야 하나코, 오카다 게이코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