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19. 07:58ㆍUI 가벼운 이야기
철학의 근본 문제는 존재와 사유의 관계에 대한 문제다.
(The great basic question of all philosophy, especially of more recent philosophy, is that concerning the relation of thinking and being. Frederick Engels, Ludwig Feuerbach and the End of Classical German Philosophy, Part II Materialism)
진화 이론에 따르면 모든 동물의 '생각'이란 자연 세계에서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하여 바깥세상을 미리 시뮬레이션하는 기능, 즉 거울(모방) 기능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둘은 서로 유사할 수 밖에 없고, 무엇이 더 우선하느냐에 대하여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인지하는 주체가 의식이며, 우리가 물질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의식을 통해서이기 때문에, 물질과 의식의 관계에서 의식에 더 강조점을 두는 것이 오랫동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물론 결론에 관하여는 개인에 따라 의견 차이가 있다.)
어쨌든 사용자 인터페이스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만들려는 대상이 있고, 이를 인간이 인식하고 조종하는 관계를 만든다면 이 두 가지의 관점에서 간단히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UI)의 근본 문제는 무엇일까?
UI의 근본 문제는, 우리가 사용하려는 자원(Resource)의 배분 문제이다. 배분이 문제가 되는 건 자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인데, 크게 두 가지 자원의 제약이 있다.
1. 전달하려는 인터페이스의 대역폭(Bandwidth)의 제한
화면 인터페이스라면 화면의 크기가 제한되어 있다. 소리라면 소리의 형태로 담을 수 있는 정보가 제한되고, 촉각이라면 구분하여 보낼 수 있는 촉각의 종류가 제한되어 있다. 공간에 펼쳐지면 공간이, 시간에 펼쳐진다면 시간에 제한이 있을 수 있다.
많은 경우 우리가 'UI 디자인'을 한다는 건, 제한된 자원에서, 우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배치하는 행위를 말한다. 혹은 때로는 그것을 공간에 압축하거나, 공간상에 펼치거나, 시간순으로 펼치거나, 반대로 시간 축에 접는 디자인을 말한다.
2. 받아들이는 인간의 주의력 제한
인간의 주의력도 매우 제한된 자원이다.
설령 무한대의 인터페이스 자원이 펼쳐진다 하더라도, 인간이 주의를 기울여 파악할 수 있는 것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제한이 생기게 된다. 인간이 한 번에 볼 수 있는 것과 들을 수 있는 것이 한계가 분명하고, 설령 다 본다고 하더라도 그 중에서 정말 관심을 가지고 볼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인터페이스 디자이너는 사용자가 어디에 관심을 끌게 하도록 설계할지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사실 손바닥만 한 모바일 화면조차 태평양의 크기에 가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렇게 인터페이스의 대역폭과 인간의 주의력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화면을 설계할 때 특정한 사람의 특정한 문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하여 목표 고객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퍼소나(Persona)는 인터페이스 디자인에서 근본적인 방법이 될 수 밖에 없다.
1세대 HCI/UI의 목표가 사용성의 증가, 즉 좀 더 효율적으로 학습하고, 사용하고, 오류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면, 2세대 UX의 목표는 사용자의 근본적인 목적(Goal Directed Design)과 환경(Contextual Design)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하여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은 서비스를 통하여 사용자의 태도(Attitude), 행동(Behavior), 환경(Context)을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단순한 오류 개선으로 한계를 느꼈던 많은 사람들이 총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경험'이라는 개념을 통해 혁신을 이루었듯이, 이제 단순히 사용자의 목적을 잘 이해하는 UX만으로는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기 어려운 시대가 된 상황에서 무언가 더 근본적인 것이 없으면 혁신을 이루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최근에 정리한 UX의 핵심 4단계는,
1단계. 욕망, 궁금, 불안, 결여, 찝찝함 (불편 X)
2단계. 반복의 재미
3단계. 통제감 (욕망/궁금증/불안/결여의 완벽한 해소)
4단계. 하지만 다시 오는 욕망, 궁금증, 불안, 결여.
사실 '디자인과 욕망'으로 검색해 보면 이미 많은 자료가 나오기 때문에 특별히 더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UX 디자이너들로서 스스로 깨달은 것이라면, '무엇이 불편하니까 고치려고 한다'거나 '사람들은 어떤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데 그것을 이루도록 한다'거나 하는 수많은 서비스와 앱들이 그 자체가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 한 것은 앞으로 서비스를 설계하는 UX 디자이너들은 반드시 '욕망'이나 '결여' 혹은 '불안'을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어 택시 앱을 설계한다면, 택시를 잡기 어렵다거나(불편), 야간에 택시를 타고 쉽게 집에 갈 수 있다(목적)는 건 기본적으로 해야 하지만 이것으로는 결코 앱이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버가 불려 일으켰던 '욕망' 혹은 '궁금'은 무엇이었을까? 카카오택시를 반복하여 탄다는 건 어떤 느낌의 재미일까? 이제 카카오택시를 이용하면 어떤 '통제감'이 들 것인가? 이런 식의 설계를 해 나가야 할 것 같다.
이는 인터페이스의 제한 보다는 인간의 주의력 제한이 날이 갈수록 더욱 희소한 자원이 되어 가기 때문에 (무언가 멋진 일을 해주려는 멋진 앱이나 서비스나 너무 많으므로) 생기는 일인 듯하다.
내가 설계하는 UX에서 늘 다시 생각하고 다시 생각하지만, 여전히 아주 잘 해결되지는 않는 문제라 늘 괴롭다.
[참고##시간 위의 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