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4. 07:50ㆍRe-design!
어린이집을 다니는 둘째 아이가 한글에 흥미를 보이길래, 한글 자소와 구성 원리를 놀이처럼 배우는 앱을 만들었습니다. 아이가 사용하는 걸 관찰하고 새롭게 발견한 점을 디자인에 반영하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아이가 한글을 배우는 동안 저는 더 많이 배웠습니다. 1년 동안 아이와 함께 한글 공부용 키보드를 만들며 배운 것을 공유합니다.
우리 아이는 언제 한글을 배워야 할까?
저는 너무 일찍부터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려고 하는 게 마뜩잖아 보입니다. 예전에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교육 과정이 달라서 유치원에서는 좀 더 일찍 한글을 가르쳤다고 하는데요. 이제는 누리과정으로 일원화되면서 아이 나이에 따른 학습 발달 단계에 맞춰서, 교과 위주의 인지 학습보다는 놀이 위주로 호기심과 표현 능력, 사회성 등을 키워주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이런 교육 방침에 공감하기에 될 수 있으면 아이가 흥미를 갖기 전에 남들이 다 한다고 조급하게 미리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내버려두고 있습니다. :)
굳이 한글을 가르치지 않아도 어린이집에서 공동생활을 하다 보면 자기 이름 정도는 읽게(분별해 내게) 되더라고요. 신발장이나 서랍장, 메모장에 이름을 붙여 놓아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자기 이름을 확인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니 자연스레 익히게 되나 봅니다. 자기 이름을 쓰고(따라 그리고) 몇몇 친한 친구 이름도 읽을 수 있게 되어서 뿌듯해 합니다.
상상나라 미래명함
아이와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놀이 체험 전시 공간인 상상나라에 자주 놀러 갔었는데요. 그중 미래명함 만들기를 좋아해 갈 때마다 몇 번씩 줄을 서서 새로운 명함을 뽑았습니다. 스크린을 터치해 장래 희망 직업을 고르고 이름을 입력하면 종이에 명함을 출력해주는데요. 상상나라 안에서 몇 안 되는 디지털 설치물이라 저도 관심 있게 살펴봤습니다. 어린 아이도 요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많이 접해서인지 사용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어보였습니다. 다만 이름을 입력할 때는 부모님이 도와주는데요. 엄마 아빠가 대신 입력해주려고 하면 자기가 직접 하겠다고 어떤 자판을 누를지만 가리켜 달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 자 한 자 자판을 눌러서 화면에 자기 이름이 만들어지는 걸 흥미로워합니다. 저에게는 아이들이 터치 자판으로 이름 입력하는 걸 놀이처럼 즐기는 모습이 흥미로웠습니다. 어른들은 사용자 등록이나 인증한다고 이름 입력하라면 막 귀찮아하잖아요.
출처 : 상상나라 홈페이지
한글 도깨비불 현상
그런데 우리 애가 자꾸만 잘못 썼다고 지우고 다시 쓰길 반복하더라고요. 가만 보니 두벌식 자판이라 도깨비불 현상이 생기는 게 문제였습니다. 아이 이름이 '한가인'이라고 하면 '한가' 다음에 'ㅇ'을 눌렀는데 '한강'이라고 화면에 나오니 잘 못 한 줄 알고 지우는 거였습니다.
두벌식 도깨비불 현상.
어른들이야 이런 현상이 익숙하니 잘못이 아닌 것도 알고 타자가 빠르니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갑니다. 하지만 아이는 또박또박 자판 한번 누르고 글자 확인하기를 반복하다 예상치 않은 글자가 나오니 자기가 실수 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엄마는 원래 그런 거니 그냥 계속 쓰라고 알려줬지만, 제게는 UI에 문제가 있어 보였습니다. 시스템의 문제를 사용자가 잘못했다고 자신을 탓하게 하는 건 나쁜 UI거든요.
누구나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도 매일 반복되다 보면 무뎌지고 익숙해지면서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경험 많은 어른은 원래 그런 거니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익숙해지면 괜찮다고, 괜히 힘들이지 말고 네가 거기에 맞추라고 가르칩니다.
세상의 다른 많은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한글 타자의 도깨비불 정도는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세벌식을 쓰고 있거든요. 세벌식에서는 도깨비불이 어쩔 수 없는 문제가 아닙니다.
한글의 도깨비불 현상은 초성과 종성을 자음 한 벌만 사용하여 입력 오토마타가 사용자의 의도를 구분할 수 없어 기계적으로 다음 자음을 종성으로 우선 처리하여 생기는 문제입니다. 초성과 종성 자판이 따로 있는 세벌식에서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세벌식 프로토타입
아이가 한글 키보드로 한글이 만들어지는 걸 흥미로워하고 한글에도 관심을 보이니 한글 공부를 위한 키보드를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도깨비불 현상이 처음 한글을 배우는 데에는 심각한 방해가 되니 이런 문제가 없는 키보드를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세벌식으로 된 키보드를 스케치했습니다.
세벌식 터치 키보드 스케치. 자음, 모음 배열
도깨비불 현상이 없는 세벌식 터치 키보드 초기 프로토타입
대신 아이가 초성 대신 종성을 먼저 누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종성을 먼저 누르면 입력이 안 되도록 막는 규칙을 추가했습니다. 자판을 모아쓰기처럼 초성 중성 종성 위치에 모아 두고 위의 초성 자판부터 순서대로 눌러야 한다고 가르쳐주었습니다.
빈도는 줄었지만 그래도 아이가 종성 키를 먼저 누르거나 종성 키 대신 초성 키를 잘못 누르는 게 없어지진 않았습니다. 아니라고 다시 규칙을 설명해주다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아이가 잘 못 하는 게 아니라 디자인이 잘 못되었다는 걸요. 사용자에게 열심히 사용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는 건 디자인이 나쁘다는 방증입니다. 직접 써 붙인 사용 설명서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무인 정산기를 보면 알 수 있지요.
진짜 문제가 무엇인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글의 원리를 가르치는 한글 키보드를 만들려 하는데, 현재 두벌식 자판은 도깨비불 현상이 생겨 아이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대안으로 세벌식으로 초성과 종성을 나누면 도깨비불은 해결되지만 똑같은 자음이 두 벌이라 아이를 오히려 헷갈리게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해결은 이미 있습니다. 제가 두벌식과 세벌식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던 게 문제였습니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한글 자석 글자 놀이에는 도깨비불이 없거든요. 키보드가 아니라 글자 블록이라고 개념을 바꿨습니다. 글자를 끌어놓아 자음이 받침 자리에 올지 다음 글자 첫머리에 올지 구분하도록 했습니다. 끌어 놓기로 방식을 바꾸니 조각 퍼즐 맞추기 게임으로 익숙한 형태라 아이가 더 재밌어합니다.
문제 해결!
한글 끌어놓기를 통한 자음의 종성, 초성 구분 오토마타
나쁜 디자인은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턱대고 해결부터 하려 한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도깨비불을 보고 두벌식이 문제라고 생각한 것 처럼요. 좋은 디자인(문제 해결)은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하면 대부분의 해결은 다른 도메인의 해결에서 가져올 수 있습니다. 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al.
기역 니은 보다 한글 구성 원리 먼저 배우기
키보드가 동작하게 하고 나서 바로 단어를 먼저 보여주고 따라 쓰는 기능을 만들었습니다. 뭘 쓸지 알려주기 귀찮아서요. :) 조각 퍼즐 맞추듯 맞게 따라 쓰면 박수 쳐주며 잘 맞췄다는 피드백을 줘서 성취 동기를 부여해줬습니다.
아이가 흥미를 느끼게 하는 데는 성공이었습니다. 공부보다는 조각 퍼즐 놀이로 생각해서인지 시키지 않아도 첫째와 둘째가 서로 다퉈가며 했거든요. 오히려 너무 많이 하려고 해 금지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아이가 이걸 공부가 아니라 게임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자소를 외우기보다 스스로 찾도록 한데 있는 것 같습니다. Recognition rather than Recall이라는 사용성 원리처럼 키보드 자판을 보고 자소를 찾는 게 외워서 회상하기보다 쉽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스스로 발견해내는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아용 한글 공부 교재는 대부분 ㄱㄴㄷ을 먼저 가르칩니다. 자음을 배우고 나면 ㅏㅑㅓㅕ 모음을 배우고요. 바로 써먹지 못하는 자음 모음 24자를 배우고 시작하려면 재미도 없고 쉬 지치게 됩니다. 무엇보다 공부가 재미없다는 걸 먼저 배우고 거부감을 가지게 됩니다.
저도 처음 한글 키보드를 만들 때는 자판을 보고 한글 자소를 가르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요. 그보다는 한글 구성 원리를 체득하는 게 보다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완성된 글자(음절)를 보고 스스로 자소를 분리하고 그것들이 조합되어 하나의 글자가 만들어진다는 규칙을 이해하는 게 한글을 배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기역 니은을 몰라도 대충 이런 형태의 조각(자소)들을 순서대로 모아쓰면 하나의 글자(음절)가 만들어진다는 원리만 이해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퍼즐의 규칙(한글 모아쓰기)을 익히며 놀다 보면 빈번한 퍼즐 조각(자소)들은 자연스레 익히게 됩니다. 공부한다고 하면 으레 외우는 것을 생각하지만 바로 외우지 않더라도 눈에 익은 조각이다 보니 나중에 한글 교재를 볼 때 거부감이 확연히 줄었습니다. 억지로 가르치기 보다 스스로 흥미를 느끼고 많이 접해서 익숙해지는 것이 아이들이 배우는 데 보다 효과적입니다.
모아쓰기 순서
아이가 처음 자기 이름을 쓰는 걸 보면 글자를 쓴다기보다 그림을 따라 그리는 수준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가까운 것부터 그립니다. '한'을 쓸 때 'ㅎ'을 쓰고 아래쪽 받침 'ㄴ'을 그린 다음 'ㅏ' 모음을 옆에 그리는 것을 자주 봤습니다.
각각의 자소가 모여 글자가 만들어지고 또 그것에 순서가 있다는 규칙을 이해하도록 하도록 자판에 자음과 모음을 다른 색으로 나누어 모아 두었습니다. 자음과 모음이라는 소리 성질이 다른 글자들이 있고 처음에 자음을 먼저 맞추고 그다음은 모음 쪽 조각을 번갈아가며 맞춰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또 모음 전에 종성을 끌어놓으면 글자가 되돌아가게 해서 순서라는 규칙을 피드백으로 알려주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퍼즐 형식이 한글 구성과 모아쓰기 순서를 학습하는 데 효과적이었습니다. 며칠 가지고 놀더니 올바른 조각(자소)을 찾는 시행착오와 순서를 틀리는 실수가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 이전에 한글 획을 순서대로 따라 쓰기 연습하는 유아용 한글 공부 앱도 사용해봤는데 별 효과가 없었거든요. 자소를 구분하기보다 따라 그리는 연습만 되어서 처음 한글을 배우는 데 적합한 방법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처음 한글을 배우는 유아를 위한 한글 글꼴
아이가 '한글'을 쓸 때 '한'까지는 잘했는데 '글'을 입력 차례에서 자판을 한참 바라보더니 'ㄷ'을 골랐습니다. 아니, 우리 애가 정말 기역도 모르는구나 충격 받았습니다. 이후에도 전혀 다르게 생긴 틀린 글자를 고를 때가 있었는데요. 한글을 배우려면 역시 남들처럼 기역니은 부터 가르쳐야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관찰하다 보니 패턴이 보였습니다. ㄱㄴㄷ 자소의 전체 세트를 알지 못하니 시각적으로 이어진 덩어리의 획들이 하나의 자소라고 인지했던거였어요. 사용한 폰트에서는 '그' 가 한 덩어리로 붙어 보였던 거죠. 한글을 읽을 줄 알면 'ㄱ'과 'ㅡ'가 합쳐진 거로 나누어 보는 게 당연하지만, 아이에게는 하나의 자소로 보였나 봅니다.
그래도 획 방향이 전혀 다르잖아! 생각해보니 '그'를 'ㄷ' 으로 본 이유는 아이가 한글 자석 교구를 가지고 놀았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글자를 종이에 써서 배운 게 아니라 자소를 자유롭게 돌려가며 붙일 수 있었으니까 둘은 같은 모양인 거죠. 기호 구분을 못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공간 지각 능력이 뛰어난 거였습니다. RtA라면이 외국에서 인기 인 것처럼요. 'ㅎ'의 획이 세로로 반듯한 글꼴을 사용했을 땐 'ㅗㅇ'으로 자소를 분리할 때도 있었습니다.
아이의 눈으로 보이는 자소 분리
외국에서 인기 있는 RtA라면
자소가 붙어 있는 건 잘 만든 글꼴이기 때문입니다. 영어에 ligature 폰트가 따로 있듯이 자소 사이에 어설프게 작은 여백이 있으면 글자가 복잡해 보이니 여백이 없도록 한 글자씩 다듬어 준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 한글을 배울 때 자소를 좀 더 쉽게 구분해 인지하도록 자소가 붙어있지 않고 또 너무 반듯하지 않은 손글씨 모양이면서 자소가 큼직한 형태의 폰트를 찾아서 바꿔줬습니다. 글꼴을 바꾸어 테스트하니 이런 실수가 실제로 줄어들었습니다.
요즘 인터넷에서는 이렇게 한글 자소 형태 유사성을 가지고 장난하는 게 유행인가 봅니다. 영어의 경우에는 leet 이라고 w1n5t0n M1k3y 같은 표기가 예전부터 유행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야민정음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글자들 중에 OCR이 잘 못 읽은 글자들도 있는데요. 기계가 오류 없이 읽기 위해 OCR 전용 서체를 만들었던 것 처럼 아이가 처음 한글을 쉽게 배우는데 효과적인 한글 서체도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자소 이름과 음절, 단어 읽어주기
글자 퍼즐 맞추기를 하면서 자소 형태뿐 아니라 이름을 배울 수 있도록 자소를 선택하면 기역, 니은 하고 이름을 읽어 주도록 하였습니다. 자소를 끌어놓아 음절이 만들어지면 그 글자도 읽어주고 단어가 완성되면 단어도 읽어주었습니다.
바로 학습 효과를 보이지는 않지만, 글자와 이름을 반복적으로 보고 들은 것이 나중에 책에서 글자를 배울 때 효과가 있었습니다.
글자를 읽는 데는 webkit 엔진에 포함된 한글 TTS를 사용했습니다. 한글 공부를 위해 충분히 괜찮은 발음을 들려주었으나 특정한 단음절 발음에 버그가 있습니다. ㄱ ㄷ ㅂ ㅈ이 단모음과 연결되어 한음절이 되면 ㅋ ㅌ ㅍ ㅊ에 가까운 파열음으로 발음됩니다. 받침이 붙거나 2음절 이상이 되면 정상적으로 발음됩니다. 애플에 버그 리포트를 넣었는데 몇 년 동안 고쳐지지 않고 있습니다. 안드로이드에서는 별도의 TTS 엔진을 사용하는 것 같은데도 비슷한 오류가 있습니다. 잘 아시는 분이 있으면 설명 부탁합니다.
낱말 이미지를 이용한 글자와 뜻 연상
단어가 완성되면 이미지를 보여주도록 했습니다. 유아용 낱말 카드에 글자와 이미지가 있는 것처럼 글자를 읽지 못하고 따라 쓰더라도 그림이 나와서 둘을 연관시키도록 했습니다.
제시된 단어만 아니라 글자를 완성하는 도중이라도 학습 단어가 나오면 그림이 나오게 했습니다. "강아지"를 입력하는 도중 "강" 라고만 써도 강 그림이 나오게요. 뜻밖의 재미가(serendipity) 학습 기회를 더 만들도록 했습니다.
이미지를 일일이 지정해주기 귀찮아서 구글 이미지 검색을 이용했는데요. 구글의 이미지 검색엔 safesearch 옵션을 켜도 선정적인 이미지가 나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영어는 그나마 검열이 되는 것 같은데 한글은 제대로 동작하지 않습니다. 데이타가 적어서인지 구글코리아가 신경을 안쓰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네이버 이미지 검색을 쓰기엔 원하는 이미지가 잘 찾아지지 않아서 대체하기도 어려워 아쉬웠습니다. 아무 글자나 노출되는걸 막으려고 네이버 사전에 등록된 단어만 이미지를 보여주고 또 문제가 되는 단어는 거부목록을 만들어 관리 했습니다.
유사 글자 비교가 쉬운 자판 배열
세벌식 자판이 한글을 배우는데 실패라는 걸 배우고 자음 모음을 어떻게 배열할지 고민했습니다. 타자 연습을 하려는 게 아니니 두벌식자판을 그대로 따라 하는 건 의미가 없으니까요. 두벌식 자판은 자소 빈도에 따라 효율적으로 배열된 것도 아니고 학습이 쉽도록 한 것도 아니거든요.
아이가 한글 자소를 알고 찾는 게 아니라 자판에서 비슷해 보이는 기호를 찾으면서 배우는 것이라 비슷한 형태 자소를 모아두어 차이를 비교하면서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글 창제 원리와 비슷하게 배열이 되었습니다. 한글이 기본 자형에 획을 추가하는 형태로 만들어졌으니까요.
모음의 경우 두벌식은 기본 모음 10개에 이중모음 중 ㅐㅔㅒㅖ 를 추가한 형태입니다. ㅐㅔ 의 빈도가 높으니 입력 편의를 위해 제공하지만 입력 효율이 아닌 학습이 목적이니 이들을 빼고 자판을 가급적 간단히 했습니다. 복잡하면 거부감을 느낄테니까요. 또 ㅐㅔ 의 발음 구분이 안되어 맞춤법을 틀리기 쉬우니 일부러 ㅏㅣ , ㅓㅣ 로 나눠 입력하면서 한 번 더 생각하고 쓰기를 바랐습니다. 양성, 음성 모음을 같은 위치에 일관성 있게 배열하여 ㅘ ㅙㅝ ㅞㅢ 같은 이중 모음을 입력할 때 같은 자리에서 글자를 쉽게 찾도록 했습니다.
아이가 관심을 가지고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글자가 효과적이다
유아 한글 교재는 주로 동물, 사물, 과일 등의 낱말 카드가 많습니다. 글자를 몰라도 인지할 수 있도록 그림으로 표현하기 수월한 명사로 받침이 적은 쉬운 낱말 위주로 고른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런 교재들을 참고하여 기본 단어장을 만들어 보여줬는데요. 아이가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글자가 쉬운 것부터 보다는 아이가 좋아하고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단어를 보여주는 게 더 효과 있었습니다. 아이가 즐겨보던 만화인 바다탐험대의 주인공 바나클, 콰지, 페이소, 옥토넛 이나 라푼젤 공주같은 글자 맞추기에 더 흥미를 느꼈습니다.
우리말에는 잘 쓰이지 않는 ㅋㅌㅍ가 많이 사용되는 외래어라는 게 좀 걸렸는데 아이가 관심을 가지는 좋은 낱말을 찾았습니다. 바로 친구들 이름이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 이름부터 선생님 이름으로 공부를 했는데요. 이름을 입력하면 친구 얼굴이 나오도록 해주니 아주 좋아했습니다. 친구 이름엔 공통된 글자들이 많아서 아는 글자가 반복해 나오니 수월하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흥미를 느끼고 스스로 배우게 해주세요.
이걸 만든 게 3년 전이었는데요. 첫째는 만 다섯, 둘째가 만 세 살 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첫째 남자아이는 한글 안 배우고 놀다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엄마한테 혼나면서 힘들게 한글을 배웠고 둘째 아이는 이 앱 덕분인지 오빠 공부하던 한글책 같이 보면서 수월하게 한글을 빨리 배웠습니다. 샘플이 적어서 앱의 효과인지 사용자 성향의 차이인지 검증이 어렵습니다. :)
그래도 도움이 되었던 점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한글을 억지로 가르치려고 하기보다 글자에 관심을 가지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합니다.
2. 쉬운 글자보다 어렵더라도 아이가 흥미를 느끼고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글자 위주로 배우도록 하는 게 실용적입니다.
3. 한글 자소를 외우게 하는 것보다 한글 구성 원리를 우선 배우는 게 효율적입니다.
4. 자소나 한글 규칙을 스스로 발견하는 재미를 주어 글자에 흥미를 느끼도록 합니다.
5. 아이를 가르치기보다 아이를 관찰하면서 내가 배울 것을 찾아보세요.
한글을 배우게 하는 것보다 한글을 배우면 즐겁다는 걸 알게 해주는 게 더 중요합니다. 외국 여행 갈때면 그 나라 말을 배우지는 못해도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정도의 현지어는 꼭 외워서 가려고 하는데요. 그러면 여행이 더 즐거워지거든요. 그 정도 느낌으로 시켜서가 아니라 아이가 한글을 알게 되었을 때의 재미를 느끼며 배우면 좋겠습니다.
[참고##리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