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입일 때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2019. 10. 21. 07:50pxd 다이어리 & 소소한 이야기
박재현 (Jaehyun Park)

어느덧 2019년 하반기가 지나가고 있다. pxd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만 2년이 다가온다. 입사 후부터 반년 정도 적응하는 데 힘들어했던 기억이 났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좋은 시간도, 힘든 시간도 있다. 그때와 지금 다른 점은 어디서 도움을 요청할지 알게 되었고, 스트레스를 조절할 나만의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힘들어했던 그때의 나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말들이 생각나서 적어보려 한다.


1. 일을 시키는 것도 능력이다.

런던에서 인턴을 시작했을 때 일이다. 첫날 내 상사는 나에게 A4용지에 내가 맡을 프로젝트, 그 안에서 내가 맡을 역할, 프로젝트 목표, 타임라인을 프린트해 주었다. 내가 2달 동안 어떤 목적을 달성해야 할지 전달해 주었고, 그때는 아무 생각도 없고 종이에 정리해 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게 아니었다. 기술, 마케팅 부서 회의로 스케줄이 꽉 차 있던 디자인 리드가 인턴 하나하나에게 일을 분배해서 설명과 목표를 프린트해주고 팔로우업해 주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었고 시니어 디자이너에게 알아서 하라고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pxd에서 일을 하면서 내가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에게 일을 잘 시키는 것도 중요한 능력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남에게 시키는 것이 더 어렵게만 느껴진다. 이 일이 얼마나 걸릴지, 어떤 범위까지 조사해야 하는지, 어떤 포맷으로 정리해야 하는지 내가 해보지 않은 상태로 남에게 어림잡아 가이드를 줘야 한다. 본인이 일하는 능력과 남에게 일 시키는 능력이 꼭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두 가지는 다른 스킬 셋인데 신입 때는 그걸 구분할 줄 몰랐다. 일을 잘 시킨다는 것에는 여러 요소가 포함된다. 상대방의 스킬과 관심사를 잘 파악해서 그 사람이 잘할 만한 일을 주는 것, 어떤 결과물을 만들지에 대한 가이드를 명확하게 주면서 최상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도록 충분한 자유도를 주는 것, 큰 그림 안에서 언제, 어느 디테일까지 작업해야 하는지 짚어주는 것 등이다.

신입으로 일을 한다면 내 상사가 나에게 또 남에게 '일을 어떻게 시키고 있는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내가 앞으로 익혀야 할 중요한 스킬이기 때문이다. 일을 잘 시키는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가이드를 주는지, 나에게 작업의 목적을 분명히 전달하는지, 언제까지 완료해야 할지에 대해 커뮤니케이션을 하는지 지켜보면 좋겠다. 직접 일을 해본 적은 많지만 일을 시키는 것을 처음 해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일을 시키는 것도 스킬이기 때문에 나에게 일 시키는 사람도 배워가는 과정일 수 있다.


2. 회사 문제를 집까지 끌고 오지 않는 것도 능력이다.

그때 가장 힘들었던 것, 지금도 내가 잘 못하고 있는 것은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집으로 끌고 오는 것이다. 이건 일을 잘하는데 하등 도움도 되지 않을뿐더러 다음날 회사에서 의욕도, 일할 힘도 떨어지게 만든다. 입사 초반에 회사에서 내가 실수한 것, 내가 들었던 이야기를 곱씹으며 잠을 설친 적도 많다. 다음에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고 기록해놓고 잠들면 되는데 자꾸 그 상황을 머릿속으로 되감기 하며 내가 나 자신을 괴롭혔던 것이다. 사실 아무도 나를 괴롭히고 있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런 현상을 줄이기 위해 내가 찾은 해결책 중 가장 큰 것은 운동이다. 자꾸만 마음이 불안할 때 뛰거나 걷거나 하는 신체 활동을 하면 머릿속 잡생각이 정리되면서 불안감이 해소된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운동, 수면, 식습관은 꾸준하게 관리해주면 좋다. 외부에서 충격을 받더라도, 꾸준히 유지하는 신체 루틴이 있다면 정신적 충격도 빠르게 회복된다. 다른 사람에게 어려운 점을 이야기하는 것도 도움이 되는데, 나는 신입일 때 내 어려운 점을 누구에게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서 힘들었다. 경제학과 출신이었기 때문에 주변 친구들은 금융권, 공직에 있었고 내 일에 공감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내 성격 자체가 남에게 힘든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것도 있었다. 팀장님과 면담 시간에 이야기할 수 있어 마음이 후련해졌지만, 지금 생각하면 회사 일이 다 비슷하기 때문에 누구에게 이야기해도 다 공감하고 도와줄 만한 고민이었다. 아무튼 회사에서의 고민을 편안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정신적 지주 한 명은 만들어 놓는 것이 필요하다.
 
동료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다. 일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문제들이 있다. 아무리 개인이 열심히 하고 잘하더라도, 내려놓아야 하는 부분이 있고 사람 힘으로 컨트롤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는 결정도 있고, 당연히 될 것 같은데 되지 않는 것도 있다. 내 컨트롤 바깥의 것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고, 집으로까지 문제를 데리고 오는 일이 줄어들었다.


3. 구성원을 키우는 회사인지가 중요하다.

모든 회사가 그렇겠지만 특히 컨설팅은 서비스업이고 가치 창출 핵심은 구성 인력이다. 현시점의 절댓값도 중요하지만 인력의 기울기, 즉 어떤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지 눈여겨봐야 한다. 회사 구성원을 소모품이라 생각하는 사고방식과 회사 구성원을 성장시켜서 더 큰 가치를 창출하고자 하는 사고방식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특히 구성원을 프로젝트를 위한 소모품으로 생각한다면 근속률이 높을 수가 없다. 그런 환경에서 일하는 건 불안정하기도 하고 내 시장 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pxd는 좋은 회사라 생각한다. 구성원의 성장에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선생님이 떠먹여 주는 것을 배우는 환경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성원이 배우고 학습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원할 열의가 있는, 구성원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원할 의지가 있는, 회사 구성원들이 자체적으로 배움을 전파하고 도큐먼트 화하려고 하는 회사가 구성원이 성장하는 회사라 생각한다.
 
같이 일하면서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 피드백을 주는 일이다. 좋은 피드백을 주기는 너무나 쉽다. 이런 것은 잘했고, 이런 능력이 좋다고 이야기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반면 작업에서 고칠 점이나 그 사람이 더 나아질 부분을 말해주는 것은 어렵다. 내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 첫 번째고, 상대방 감정이 상하지 않게 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나에게 이런 점을 수정하면 좋겠다고 피드백을 주는 사람은 나를 성장시킬 마음이 있는 사람이다. 서로가 더 나아질 수 있는 부분에 대해 피드백을 '잘' 주고받을 수 있는 문화인지도 살펴보면 좋겠다.



아직 2년밖에 안 지났지만 전직을 하지 않는 이상 신입 기간을 포함한 매 순간이 인생에 한 번뿐이라고 생각하면 소중하게 느껴진다. 각 시기에 내가 느끼고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달라질 것이고 그런 것을 주제넘지만 스스로 기록하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있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이 글은 박재현 모니카의 브런치에 동시 발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