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6. 07:50ㆍUX 가벼운 이야기
※ 2019 UX London 후기 1편 - [해외교육] 2019 UX LONDON 후기 (1/2) |
회사에서 제공하는 해외 교육 기회를 통해 동료와 함께 UX LONDON 컨퍼런스에 다녀왔습니다. 작년에 10주년을 맞은 UX LONDON은 유럽에선 꽤 큰 규모에 드는 UX 이벤트입니다. 3일 동안 오전에는 강연을, 오후에는 워크숍을 선택하여 들을 수 있는데요. 저희는 1, 2일 차의 강연을 듣고 왔습니다. 그중 흥미로웠던 내용을 공유합니다.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 - Katie Koch
스포티파이의 시니어 디자인 매니저 KATIE KOCH는 그가 이끄는 스포티파이 프리미엄 팀의 사례 두 가지를 들며, 서비스 디자인이 어떻게 각 팀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돕고, 타 직무의 파트너들을 디자인 프로세스에 참여할 수 있게 했는지에 대한 경험을 공유해주었습니다.
첫 번째 사례인 '프리미엄 듀오'는 두 사람의 계정을 연결하여 플레이리스트를 함께 쓰고 요금도 함께 낼 수 있게 하는 멤버십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브리프를 받은 후, 그의 팀은 이 프로젝트를 리드하는 팀으로써 이 프로젝트가 어떤 사용자 경험을 가져야 하는지 다른 팀들이 참고할 수 있는 수준으로 빠르게 가시화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프리미엄 듀오가 어떤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스토리보드를 그리는 일에 가장 먼저 착수했습니다. 스포티파이의 기존 퍼소나에 새 서비스에 대한 맥락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기존 퍼소나는 회사의 모든 구성원에게 친숙하기 때문에 퍼소나에 대해 별도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고 합니다.
퍼소나 Shelley가 그의 여자 친구와 프리미엄 듀오를 함께 사용하는 이야기를 카툰 형식으로 그려낸 스토리보드는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그의 팀은 프로젝트 시작부터 프리미엄 듀오가 어떤 사용자 경험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을 뚜렷이 제시함으로써 제품에 대한 다른 팀과의 중요한 논의를 프로젝트 초기에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덤으로 초기에 중요한 피드백을 받은 덕에 빠르게 제품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사례인 인도네시아의 프리미엄 현금 결제 프로젝트는 서로 직무가 다른 팀원들이 협업하는데 서비스 디자인이 어떤 도움을 주는지를 잘 보여 주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는 프리미엄 서비스에 가입하고 싶어도 신용카드가 없거나 통장이 없어 정기결제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이런 사람들을 위해 일단 편의점에서 현금으로 바우처를 구매하는 형태의 MVP(Minimum Valuable Product)를 런칭했다고 합니다.
런칭 후 사용 패턴을 보니 사용자 대부분이 한 번에 한 달 치를 결제하고, 매달 바우처를 구매하러 다시 편의점에 가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KATIE의 팀은 이런 복잡하고 심리스 하지 못한 경험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고, 좀 더 빠르고 단순한 경험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현금 결제 문제는 비단 인도네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 시장 전반적인 문제였던 만큼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Stakeholder가 많았고 KATIE는 이들을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전략기획 리드, 마케팅 리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프로덕트 디자이너 등 여러 직무로 구성된 드림팀이 꾸려졌고, 이 팀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MVP의 모든 사용 플로우를 맵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활동은 이전까지 바로 옆에서 함께 일해본 적 없었던 팀원들을 함께 일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주고 모든 팀원이 문제 상황에 깊이 몰입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 팀원 모두 인도네시아로 향했고, 팀에서 생각했던 복잡한 결제 프로세스가 막상 이에 익숙한 현지인들에게는 별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카드와 온라인 뱅킹에 익숙한 팀원들의 눈에는 복잡해 보여도 현지인들에게는 일반적이고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제 프로세스였던 거죠.
프로젝트의 방향은 뒤집어졌습니다. 이런 경우, 보통 Stakeholder들에게 바뀐 방향성을 설명하기 위해 시간을 들여야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Stakeholder들이 리서치에 참여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함께 사용 플로우를 파악해보고 문제에 깊이 공감한 덕에 직무가 달라도 별다른 충돌 없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거죠. 서비스 디자인이 디자이너가 아닌 Stakeholder들을 자연스럽게 디자인 프로세스에 참여하도록 도운 좋은 사례였습니다.
스포티파이처럼 빠르게 성장한 회사의 디자인팀은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상세한 사례를 들어볼 수 있어 정말 재밌게 들은 세션이었습니다. 스포티파이 디자인팀 블로그에서 세션 내용 전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Mapping Systems, Processes and Concepts with Pen and Paper - Eva-Lotta Lamm
디자이너이자 비주얼 싱킹 전문가인 Eva-Lotta의 '맵핑 시스템'은 시각화를 통해 논의를 발전시키고 의견을 수렴하는 방법론입니다. 4단계로 이루어진 맵핑 프레임 워크를 따라가면 팀원들 간의 논의가 잘 정리된 한 장의 도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혼자 생각을 정리할 때에도 쓰기 좋은 방법입니다.
맵핑 프레임 워크는 우리에게 익숙한 더블 다이아몬드처럼 생각을 확산하는 부분과 정리하는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제가 있던 팀은 '아이에게 토스트 만드는 법을 어떻게 알려줘야 할까?'라는 주제로 액티비티를 진행해 보았는데요.
먼저 주제에 대해 어떤 아이템이 필요한지 논의하면서 준비된 카드에 이를 바로바로 그립니다. 주제에 대한 재료를 만드는 단계입니다. 중요한 것은 한 장의 카드에 하나의 아이템만 그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음 단계에서 이 아이템들을 분류하고 묶을 수 있습니다. 저희 팀원들은 무엇이 필요할지 이야기를 나누며 카드에 토스트, 잼, 토스트기, 나이프 등을 그렸습니다.
다음에는 카드를 펼쳐놓고 관련 있는 것끼리 분류하여 그룹으로 묶은 후, 포스트잇으로 그룹에 라벨을 붙이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며 어떤 기준으로 묶는 게 가장 좋을지 이야기했습니다. 한 번에 좋은 안이 나오기는 어렵기에 프로세스 초반부터 여러 번 다시 생각해보는 과정이 있는 것이 합리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후 그룹으로 묶은 아이템들의 관계를 화살표나 점선, 원 등으로 이어 관계를 표시하며 확산 과정을 정리했습니다.
수렴 과정은 확산 과정에서 이리저리 배치한 카드를 한 장의 도식으로 정리해내는 과정인데요. 먼저 확산 과정에서 연결 지었던 아이템 간의 관계를 작은 섬네일로 다시 그려봅니다. 어떤 구조로 그리는 게 적합할지 작은 도형들로 다시 표현해보는 과정입니다.
구조를 결정한 후 도식을 어느 정도의 디테일로 그려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 Zoom in/Zoom out 해 봅니다. 도식의 각 섹션에 어떤 요소들이 있는지, 추가적으로 보여줘야 할 정보는 없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Zoom in입니다. 전체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는 무엇인지 살펴보고, 구조를 다시 단순한 도형으로 표현해 보는 것이 Zoom out입니다. Zoom in/Zoom out을 위해 드로잉을 여러 장 그려 보면서 디테일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이 도식을 보는 사람이 도식의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떤 순서로 봐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퀀스 작업을 거쳐 최종 도식을 완성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이렇게 해서 완성한 도식입니다. '아이에게 토스트 만드는 법 알려주기'를 그림만으로 잘 설명하고 있는 것 같나요? 다시 보니 강조되어야 할 부분이 강조되지 않았고, 정리도 좀 더 필요해 보이네요.
맵핑 시스템은 단순한 드로잉으로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으면서도 말랑말랑한 분위기에서 진행할 수 있는 재밌고 효과적인 협업 방식이었습니다. 저도 언젠가 실무에서 시도해 보려 합니다.
저작권 때문에 많은 내용(특히 후반부의 내용은 Eva-Lotta의 드로잉 레퍼런스를 참고해야 하는 것이 많습니다.)을 생략했지만, Eva-Lotta의 웹사이트에 가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마치며
재작년에 참가했던 한 컨퍼런스에서 우버 ATG의 디자이너 누리 킴 님이 하신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새로운 것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팀원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말이었는데요. 이제는 어떤 방법론으로 디자인했는가를 넘어서, 어떤 사람들, 즉 어떤 디자인 조직이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따라 프로덕트의 질이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DesignOps와 같은 협업 방법론, 디자인 시스템 등 디자인 조직에 대한 여러 이슈들이 꾸준히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이 반영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UX LONDON에서도 디자인 시스템이나 디자인 조직의 성장, 디자이너 개인의 성장에 대한 내용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요. 트렌디한 주제와 쟁쟁한 스피커 라인업으로 유럽권에서 입지를 굳혀 나가고 있는 컨퍼런스다웠습니다.
유럽에서 UX 컨퍼런스에 참가할 기회가 있다면, UX LONDON에 가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UX LONDON은 매년 5월 런던 Trinity Laban에서 열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