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18. 07:50ㆍUI 가벼운 이야기
디자인 프로세스에서 문제를 정의하는 단계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드러내고 해법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소위 말하는 '통찰(insight)의 순간'이 작용하는 단계이기도 합니다. 통찰을 기반으로 핵심적인 해법을 상상하고 클라이언트를 설득할 멋들어진 키워드를 뽑아내기도 합니다만, 통찰을 얻는다는 것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디자인 프로세스에서의 통찰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제 경험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통찰(洞察, insight)이란?
통찰의 사전적 정의는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는 것'입니다. '예리한 관찰력'까지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사물을 꿰뚫어 본다'는 것은 어딘가 초능력 같은 느낌이 들고 어려워 보입니다 = )
위키백과의 풀어쓴 정의를 살펴보면 몇 가지 눈에 띄는 표현이 있습니다.
"통찰은 특정 맥락 내에서 특정 원인과 효과를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아하 순간(Aha-Erlebnis-독일어)', 유레카 순간(eureka moment)이라고도 한다... 심리학에서 통찰은 문제 해결이 빠르게 경고 없이 나타났을 때 발생한다. 시도와 착오를 기반으로 한 틀린 시도 끝에 오는 올바른 해결책을 갑자기 발견하는 것이다...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갑자기 발견하는 것, 문제를 다른 연관된 문제나 해결책으로 연상하는 것, 해결책을 차단하고 있는 과거 경험을 놓아버리는 것, 문제를 보다 크고 종합적인 맥락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상황을 '종합적인 맥락'에서 바라보다 보면 '특정 맥락'에서 '과거의 경험과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갑자기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발견'이라는 부분만 본다면 '우연, 운'과 같은 영역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결과일 뿐이고, '특정한 맥락, 시행착오, 새로운 방식, 다른 연관된 문제나 해결책으로 연상'과 같은 표현을 보면, 우리가 의도를 가지고 실천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관점(觀點, Point of View), 나는 어디에 서서 바라보고 있는가?
관점이란 사물을 관찰할 때의 그 사람이 보는 각도나 입장(立場) 또는 견지(見地)입니다. 철학에서 사고를 특정하게 진술하는 방식이며, 어떤 개인적 견해로부터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생각하는 태도이며, 의미상 동일한 단어는 견해(perspective)가 있습니다(위키백과).
다시 말해서 관점이란 '바라보기 위해 서 있는 위치'이며 여기서 보이는 것을 토대로 자기의 생각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어디에 서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지고 이것이 곧 그 사람의 생각과 말이 되는 것입니다. 동의어로 쓰인 입장(立場), 견지(見地), 견해(perspective) 모두 '서 있는 위치'나 '보는 위치'와 관련이 있습니다. '견해'의 영문 표현인 'perspective'의 뜻이 '투시도법'으로도 쓰인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지고 그것이 곧 자신의 견해가 된다면, '나는 과연 어디에 서 있는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어디 서 있는지도 모르면서 보이는 것을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절대적인 곳이 아니라 언제든지 선택 가능한 것이며 필요에 따라 보다 정확히 볼 수 있는 위치로 바꿀 수도 있어야 합니다.
관점을 바꾸는 방법 연습하기
위에서 관점을 '보기 위해 서 있는 위치'로 정의했습니다. 서 있는 위치를 바꾸려면 현재의 위치와 함께 바꿀 수 있는 위치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옮길 수 있는 위치를 여러 개 알고 있다면 자유자재로 위치를 바꿔가면서 다양한 각도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공감하기, 상대방의 신발을 신고 그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은 관점을 바꾸기 위한 가장 기본이 되는 방법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보면 내가 보지 못했던 측면을 발견하게 되고,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상대방에게 공감할 수 있게 되고, 이는 디자인씽킹 프로세스의 첫 단계(empathise)이기도 합니다. 디자인 문제를 발견하고 이해하기 위하여 나의 위치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관련한 사람들, 사용자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다양한 관점을 탐색하는 것입니다. 프로젝트 초반에 이해관계자들을 만나 그들의 입장에서 이 프로젝트에 대해 기대하는 것, 걱정하는 것, 어떤 결과를 원하는지 파악하는 것도 다양한 관점에서 프로젝트를 이해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자주 놓치는 것 중 하나는, '진짜 상대방의 위치에 서서 바라보고 있는가?'입니다. 나의 관점은 고정한 채로 상대방이 처한 상황에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하고 머리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처음에 가졌던 나의 생각,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나의 신발을 벗은 후 상대방의 신발을 신고' 바라보아야 비로소 그 사람이 어떤 기대와 걱정,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사용자의 문제를 쪼개고 뒤틀면서 새로운 관점의 기회 찾기
사용자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관점을 얻고 통찰을 얻을 수 있지만 때로는 여전히 부족한 경우도 있습니다. 관점을 바꿔보았지만 중첩된 문제의 구조가 있고 크고 작은 가능성들이 뒤섞여 있어서 명쾌하게 꿰뚫는 통찰까지 연결이 안 되는 것이죠. 이런 경우에는 사용자의 문제를 쪼개고 뒤틀면서 새로운 관점의 기회를 찾아보는 시도를 해볼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문제를 구조적으로 기술해보면 새로운 관점을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어진 환경과 제약조건 안에서(context)
사용자가 겪고 있는 어떤 문제에 대해(user model, problem, pain-point)
어떤 방향으로, 혹은 어떤 결과가 되도록(needs, goal)
... 할 수 있을까?
여기에 사용되는 항목들(context, user model, problem, pain-point, needs, goal...)은 리서치 과정에서 확보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만일 부족하다면 추가 조사를 진행하거나 간접 데이터라도 챙겨야 합니다. 이제 확보한 자료들을 이리저리 뒤틀고 조합하면서 인위적으로 관점을 바꾸어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메뉴도 많고 번잡한 음식점,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무인 주문 키오스크에서,
기기 사용이 서투른 60대의 김미순 님이 뒷사람의 짜증 어린 시선과 부담감을 극복하면서도,
당황하지 않고 적당히 내가 원했던 음식을 주문/결제하는 데 성공할 수
... 있을까?"
이 예제에서 관점의 전환을 위하여 주어진 조건에서의 기회를 찾아본다면
- (새로운 가능성 찾아내기) 어떻게 하면 키오스크에 익숙한 주변 사람들이 김미순 님을 도와서 신속하게 주문을 할 수 있게 할까?
- (니즈나 컨텍스로부터 유추하기) 어떻게 하면 불안하지 않고 편안한 분위기의 음식점이 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기기 사용이 서툴러도 난처하거나 바보 같아 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 (주어진 조건 바꿔보기) 어떻게 하면 메뉴가 많아도 당황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메뉴를 선택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이 많아도 번잡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안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까?
- (제약을 줄이거나 없애기) 어떻게 하면 줄 서 있는 시간 동안 빠르고 간단하게 사용법을 학습할 수 있게 할까? 어떻게 하면 뒷사람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지 않는 줄 서기 방법을 만들 수 있을까?
- (당연한 것에 도전하기) 어떻게 하면 번잡한 환경, 줄 서있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 되게 할까? 어떻게 하면 기기 사용이 서투른 것이 민폐로 느껴지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줄 안 서고 주문이 가능하게 할까? 결제 과정을 아예 없앨 수 있을까?...
처음에 예상했던 해법은 단순히 키오스크의 화면 디자인이었을 수 있지만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관점을 옮겨보면 수많은 해결 방향의 기회가 펼쳐집니다!
연관성 도표(Affinity Diagram)를 활용하여 관점 찾기
연관성 도표(Affinity Diagram)를 단순하게 디자인 프로세스에서 으레 거쳐가는 '정리단계'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던 기준에 따라 조사 데이터를 분류하는 정도로 활용범위가 제한됩니다. 그러나 연관성 도표는 사용자 조사 데이터로부터 새로운 관점을 찾아낼 수 있는 매우 강력한 도구입니다. 저는 연관성 도표 작업을 통하여 새로운 관점을 얻어낼 수 없다면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이 작업을 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말릴 것 같습니다 = )
연관성 도표 작업을 통하여 새로운 관점을 찾아내는 방법은 간단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단순히 방식을 흉내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새로운 관점을 얻고 있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1. 먼저 사용자로부터 얻은 발견점들을 포스트잇에 하나씩 적어 보드에 붙입니다. 이때 나의 판단이나 해석, 디자인 해법은 적지 않습니다. 사용자의 목소리나, 니즈, 관찰된 행동 등 '사실'을 적습니다(참고: 사용자 데이터, 포스트잇으로 정리하기)
2. 포스트잇에 표현된 '객관적 사실'의 이면에 있을법한 근본적인 원인, 목표(goal)를 떠올려봅니다. 그리고 서로 비슷하거나 연관된 포스트잇을 서로 그룹으로 묶어 봅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관점에 따라 새로운 그룹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 합니다. 기존의 시각으로 보면 서로 연관 없어 보이는 사실(행동)들이 새로운 관점을 얻으면서 같은 목표를 공유하는 그룹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새로운 관점을 얻는다는 것은 겉보기에 연관 없어 보이는 '개별 사실들'의 이면에 놓인 공통의 원인과 목표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주의할 점은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분류 기준에 따라 정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해서는 기존의 관점을 가지고 재분류하는 작업일 뿐 결코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연관성 도표 작업이 이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재정리하는 선에서 그칠 것이었다면 이러한 번잡하고 힘든 일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3.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포스트잇의 그룹 수만큼 다양한 관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 연관된 그룹을 묶어서 더 상위의 관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얻어진 다양한 관점만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해법으로 연결되는 기회도 다양해집니다.
연관성 도표는 사용자 조사 데이터로부터 새로운 관점을 찾아낼 수 있는 매우 강력한 도구입니다. 여러분들이 연관성 도표를 이미 알고 있고 사용하고 있다면 이 도구를 이용하여 새로운 관점을 얻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 )
다양한 발상기법을 통해 새로운 관점의 기회 찾기
구글 검색창에서 '디자인 발상기법'이라고 검색을 해보면 정말 많은 발상기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디자인 발상 기법들은 저마다의 차이와 특성이 있지만 공통적으로는 기존의 관점을 뒤흔들고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기 위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발상기법인 브레인스토밍을 살펴보면 '비판하지 않기, 질보다 양을 추구하기, 옆의 아이디어에 편승해서 발전시키기, 전혀 연관 없는 아이디어끼리 조합해보기...' 등을 강조합니다. 이는 그동안 자료를 모으고 문제를 정의하면서 '올바른 해법'을 얻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을 팀 구성원들의 경직된 마음을 풀고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있게 판을 흔들어 휘젓기 위한 것입니다. 브레인스토밍이 진행되는 워크숍의 분위기는 활기차고 유쾌하며 때로는 장난스럽기도 합니다. 이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기존에 생각지도 못했을 관점을 가지고 새로운 시선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기회를 가져보기 위함입니다. 만일 브레인스토밍 워크숍에서 기대했던 만큼 좋은 아이디어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면,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도 기존의 관점을 고수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브레인스토밍 워크숍의 활기차고 때로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과정을 매개로 나와 팀의 기존의 관점을 흔들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클라이언트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즐거운 이벤트일 뿐입니다.(물론 클라이언트와 함께 문제를 탐색해 나가는 이벤트로서도 매우 유용합니다!)
수평적 사고 기법(에드워드 드 보노)에서 논리적 인과관계를 깨뜨리고 무작위의 단어나 이미지를 통해 사고를 확장하는 방법도 현재의 관점을 고수하려는 생각의 보수성을 흔들고 다른 관점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풀어내려고 하는 문제와 전혀 상관없는 단어와 이미지를 매칭 해보는 것만으로도 관점을 바꿔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입니다.
많은 발상 기법들이 이와 유사한 방식을 취합니다. 기존의 논리적인 인과관계로 흐르던 사고를 중단하고 흔들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대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 때로는 게임과 같이 일정한 룰을 따르게 하면서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자극에 노출되는 기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통찰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기회를 늘리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양한 관점 속에서 하나를 선택하기
지금까지 문제를 바라보는 위치를 바꾸면서 문제 해결을 위하여 다양한 관점을 탐색하고 시야를 확장했다면 이제는 디자인 해법을 견인할 하나의 관점을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
종합적인 맥락에서 크게 봐야 할 시간
디자인 해법은 종합적인 문제 해결의 결과여야 합니다. 사용자의 관점에서 문제를 이해했더라도 성공적인 디자인 해결책이 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와 기술적인 요구조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예산에 맞는 적절한 방식과 기술로 구현 가능해야 하고 비즈니스 관점에서의 지속성도 확보해야 합니다. 사용자 관점에서 좋은 디자인이어도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거나 충분한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여 실패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즉 디자인 해법을 견인하는 통찰은 비즈니스적 관점, 기술적 구현의 관점, 사용자의 관점 사이에서의 균형점의 위치에 놓인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디자인 해법을 위한 무게중심 찾기'라고 표현합니다. 즉, 모든 디자인 과제는 비즈니스적 관점, 기술적 관점, 사용자의 관점이 존재하고, 프로젝트가 처한 상황과 참여 주체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균형을 이루는 지점이 달라집니다. 때로는 비즈니스적으로 큰 이익이 없더라도 멀리 보면서 사용자의 문제 해결에 치중해야 할 때도 있고 예산의 제약, 시장 상황의 급박함에 따라 새로운 기술개발 없이 최소의 구현 난이도를 선택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각각의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무게 중심점은 달라질 수 있으며 디자인 해법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각 주체 간의 협의에 의한 전략적인 선택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나만의 '아하! 순간'이 가능하도록 환경 만들기
지금까지 통찰의 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관점을 바꾸고 조합하는 방법과 전략적 균형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그럼에도 통찰의 순간은 예기치 못한 시점에 찾아오는 특성이 있습니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에서 보이지 않던 것이 어느 순간 보이는 것처럼 말이죠. 일단 깨닫고 나면 너무 자명하여 이걸 왜 못 봤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통찰을 얻었던 순간들을 떠올려보실 수 있나요? 어떤 문제로 오랫동안 끙끙 앓다가 어느 순간 해결책이 떠올랐던 경험이 있었다면 당시 어떤 조건과 환경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지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저의 경험을 몇 가지 이야기해보면, 잘 안 풀리던 문제로 고민하다가 잠자리에 들었다가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머릿속에서 몇 가지 생각이 맴돌다가 중요한 실마리가 풀렸던 경험이 여러 번 있습니다. 또 샤워를 하다가 복잡했던 머릿속이 하나둘 정리되면서 해답이 떠오르기도 하고, 익숙한 길을 운전할 때 몸은 반사적으로 외부 상황에 대응하여 차를 조작하는 중에 나도 모르게 고민하던 문제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깨닫기도 합니다. 혹은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통찰의 순간을 만나기도 합니다. 상대방은 내가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 나만큼 알지 못하지만 그에게 설명하면서 나의 목소리를 내 귀로 듣는 과정에서 스스로 깨닫기도 하고, 상대방이 무심결에 던진 평범한 질문에서 중요한 것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일상의 반복적인 생활 패턴 속에서 통찰이 이루어졌던 나만의 순간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오늘도 맞이하게 될 비슷한 일상에서 내 의식 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관찰해 보면 어떨까요? 통찰이 필요할 때 이와 같은 환경을 의식적으로 만들면서 나를 관찰해본다면 통찰의 순간을 만날 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기본을 잊지 않기
통찰은 타고난 감각을 가진 사람이 날 때부터 잘 해내는 영역이 아닙니다. 내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우연히 얻어지는 행운은 더더욱 아닙니다. 훈련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이고 기술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방법을 참고로 하여 여러분들만의 방법을 발전시켜 보시기 바랍니다. 한 가지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기본이 있습니다. 바로 통찰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한 충분한 '재료'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구성하고 있는 객관적 사실과 맥락을 제대로 모르면서 관점을 바꾸어 보려는 노력을 한다고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 '좋은 재료'를 확보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관점을 바꾸고 뒤틀어보면서 기회를 발견하세요. 그리고 벽에 부딪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때는 나에게 익숙한 일상생활 속에서 잠시 머리를 식히세요. 그리고 무의식 중에 어지러운 마음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내면의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최고의 통찰은 아닐지라도 전보다 나은 무언가를 반드시 얻게 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이 글은 전성진의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