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xd people | “지금 저는 UX를 여행하고 있어요”

2023. 7. 6. 07:50pxd 다이어리 & 소소한 이야기
임현경 (Hyun Kyung Lim)

[pxd people]의 인터뷰이는 pxd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해 정합니다. 협업 중인 동료, 존경하는 선배, 친밀한 후배 등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을 지목하기 쉬울 것이라는 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죠. '누굴 인터뷰하면 좋겠어요?'라는 질문을 받은 이들은 길게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낯이 익은, 회사 밖에서는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궁금한, 그냥 친해지고 싶은 사람을 떠올렸습니다. 누군가에게 ‘더 알고 싶은 사람'이라는 건, 그만의 세계에 한 발 더 다가가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뜻일 겁니다. 두 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처럼 말이죠. 오늘은 UX 플래닝팀의 프로덕트 매니저 구재영 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여행 중인 재영 님. @tigerlet_o.o

Q. 먼저 축하해요! 올해 주임(주니어) 타이틀을 떼고 선임(시니어)이 됐죠.
승진을 앞두고 주변에서 부담을 많이 줬거든요(웃음). 굉장히 많은 책임이 따를 거고 기대치도 높아질 거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이전에는 다른 사람을 보고 배우는 시간이 많았다면, 지금은 직접 찾아보고 고민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훨씬 더 많아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들이기 시작했어요. 나와 함께 일하는 팀원, 내가 설득해야 하는 PM, 내가 보고해야 하는 결정권자가 원하는 바, 기대치, 고민 같은 것들을 생각하고 그에 맞춰서 협업하려고 해요. 그들의 상황과 생각을 이해하면 일이 더 수월해지고 커뮤니케이션도 쉬워지는 것 같아요.

Q. 많은 성장이 있었네요. 반면 직급이 바뀌어도 변치 않으려고 하는 게 있다면요? 
매사 열심히 하려고 해요. 제가 가진 에너지가 총 100%라면 그중에 80%를 일에 쏟아요. 예전에 100%를 다 써서 일해봤는데, 그땐 거의 사람이 아니라 좀비처럼 지냈거든요. 이러다 죽겠다 싶었어요. 저에게도 안 좋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부담을 주는 행동이었죠. 20%는 남겨둬야 밥도 먹고 잠도 잘 자면서 건강하게 지낼 수 있고, 건강해야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대신 정해둔 80%는 꼭 채우려고 노력해요.

Q. 만약 80%를 다 채우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요?
그렇다면 분명 어떤 문제가 있었을 거니까, 솔직하게 제 얘기를 해요. 이런 상황이다, 저런 것 때문에 걱정이 된다, 확신을 못 하겠다, 이렇게요. 그럼 업무 일정에 여유를 둔다든가 어느 정도 수준을 만족하면 된다고 조언을 해준다든가 하는 식으로 피드백이 오죠.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수도 있고, 그냥 제가 만족을 하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 최대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투명하게 얘기하고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Q. 커뮤니케이션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군요. ‘나의 상태'를 포함해서요.
맞아요. 주니어 때는 남들에게 도움을 청하려 하지 않고 혼자 머리를 쥐어짜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어떻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 고민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낸 답이나 결과물이 틀렸다고 판단되면 많이 낙담하고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하지만 제가 내린 답이 늘 정답일 순 없잖아요. 지금은 열어두고 여러 의견을 들어보면서 함께 생각하고 답을 찾으려고 해요. 그러면 더 좋은 답이 나오는 것 같아요.

Q. 여러 의견을 모으다 보면 서로 다른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의견 충돌도 있었죠.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일 아니었어요. 좋게 말할 수 있었고요. 이젠 ‘충돌'이 아니라 ‘해결'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저만의 일이 아니라 모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이니까, 모두의 의견을 듣고 최대한 존중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하나의 답을 찾아가는 거죠. 

Q.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을 졸업했어요. 여러 예술 분야 중 UX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대학교 다닐 때 전공을 두 번이나 바꿨거든요. 가구 디자인에서 인테리어 건축으로, 다시 산업디자인으로 과를 옮겼는데, 산업디자인은 유독 과정을 중요하게 평가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미대에 왔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예쁘고 멋진 결과물에는 관심이 없었고, ‘생각하는 과정'을 좋아했거든요. 뭘 그려야 할까, 난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의미를 담고 싶을까,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같은 고민들이 재밌었던 거예요.

그래서 딴짓을 많이 했어요(웃음). 다른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거나 외부 프로젝트, 캠프, 해커톤에 참여했죠. 개발, 디자인, 경영 등 다양한 전공자들과 작업하면서 또 다른 시야를 접할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우리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무엇인지, 사용자가 누구인지, 시장을 이해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사실 그때까지도 UX가 뭔지는 몰랐어요. 나중에 취업 준비를 하면서 주변 친구들을 통해 UX라는 직업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채용 공고를 찾아보다가 UX를 발견했어요. ‘직무’ 설명을 보니까 제가 이제껏 해왔고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이 적혀있는 거예요. ‘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UX구나.’ 깨달았죠. UX를 더 잘 알기 위해 많은 자료를 찾아봤고 그러다가 pxd 블로그도 알게 됐어요. 

Q. 바로 이 인터뷰가 실릴 그 블로그죠(웃음). pxd에 입사한 계기가 된 건가요?
제가 취업 준비할 때 막 코로나19가 퍼졌어요. 채용이 중단되고 취업이 확정된 경우라도 기약 없이 대기해야 했죠. 가만히 기다릴 수만은 없었기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던 거 같아요. 저는 초등학교 때 한국에서 살았지만, 외국인학교에 다녔고, 이후에는 쭉 해외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이렇게 교류하고 협업한 경험이 거의 없었어요. 위기를 기회 삼아 한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굳이?” 라며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남들의 시선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다른 곳에서 또 다른 기회가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저는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졸업 후 첫 직장이자 한국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에서 2년 넘게 쭉 일하고 있네요.
pxd에 UX 디자이너로 입사하긴 했지만, 디자인, 리서치, 기획, 설계 등 다양한 업무를 해봤거든요. 그러면서 제가 뭘 잘하고 못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알게 됐어요. 만약 제가 다른 회사에 다녔다면 3년도 안 되는 시간에 이렇게 생각하고 변화하는 경험을 얻지 못했을 것 같아요. 일도 일이지만, 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팀원들과 놀이공원에서 휴식을 즐기는 재영 님


Q.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있다면요?
이전부터 정말 자신 있는 일을 할 때 더 잘하고 싶고, 제 최대치 이상으로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아요. 지금 자신 있는 일이라면, 첫 번째는 여기저기 흩어진 정보들 사이에서 인사이트를 뽑아내는 것, 두 번째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장점을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협업하는 것이에요. 각자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힘들지 않게, 즐겁게 일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결과적으로도 업무의 퀄리티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인 것 같고요.

최근에 느끼는 원동력은 ‘사람'이에요. 사람 대 사람으로서 존중이 있어야 해요. 사실 예전엔 항상 사람보다는 일이 먼저였거든요. 그런데 재택근무가 끝나고 사무실에 출퇴근하면서 사람들과 맛있는 것도 먹고, 개인적인 얘기도 나누고, 업무에 대한 고민도 함께하면서 그 사람들을 더욱 이해하게 됐어요. 잡담하다 업무 시간을 빼앗기기도 하지만(웃음) 자연스럽게 일이 즐겁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큰 원동력인 것 같아요.

Q. ‘사람'이라는 원동력을 실감했던 프로젝트가 있었다면요? 
제가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 터닝포인트가 된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사실 결과가 베스트는 아니었지만, 과정에서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됐어요.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게 됐는데 함께 구성된 팀원들이 다 처음 호흡을 맞춰보는 분들이었어요.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분들이 많았고요. 저도 그들을 끌고 갈 만큼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경험이 더 있는 사람으로서 엄청난 책임감이 들었던 거죠. 일에 대한 욕심과 부담감이 컸기에 혼자서 먼저 앞서 나가거나 서툴렀을 때도 있었죠. 일을 하는 과정에서는 후회가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나와 함께 일하는 팀원들을 조금 더 이해하고 즐겁게 프로젝트에 임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후회가 많이 들어요.

Q. 재영 님에게는 과정이 정말 중요하네요.
저한테 UX는 ‘과정'이에요. UX 자체도 일종의 과정이고, 저도 과정을 겪고 있는 사람이고요. 최근에는 블록체인 서비스 관련 일을 하고 있는데, 트렌드가 바뀌는 게 워낙 빠르니까 그걸 쫓아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제가 그런 걸 좋아해요. 이것도 해봤다가 저것도 해봤다가. 여러 가지를 연결하고, 해체하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틀에 갇히기보단 틀을 깨는 게 더 재밌게 느껴져요.

Q. 반대로 회사 밖에서는 일정한 틀 안에 있는 걸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초등학교 때는 경찰이나 군인이 되고 싶었어요. 저는 책임감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움직이거든요(웃음). 제 일상은 일 아니면 달리(반려견)와 산책하기예요. 일 외로 달리는 제게 책임감을 갖게 해준 친구예요. 달리 덕에 제가 몸도 마음도 훨씬 건강해지고 여러 사람도 만날 수 있는 것 같아요. 욕심을 낸다면 다른 운동이나 취미 활동을 하겠지만, 그러려면 일이나 달리에게 쓰고 있는 에너지를 3~4%라도 덜어내야 하거든요.

재영 님과 반려견 달리의 산책 시간



Q. 뭔가에 몰입하거나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데에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편인가 봐요.
알게 모르게 에너지를 엄청 많이 쓰나 봐요. 일할 때도, 사람들과 얘기하고 밥 먹을 때도 뭘 하나 하면 끝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절이 잘 안 돼요. 그래서인지 퇴근하고 나면 기가 빨리 빠져요. 다른 분들은 새벽 1~2시에 잔다는데, 저는 퇴근하고 일찍 자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편이에요. 저의 에너지를 완충하기 위해 달리와 어두운 새벽에 나가서 산책하기도 해요.

Q. 일하는 나와 그렇지 않을 때의 나는 확실히 다른 점도 있고 비슷한 점도 있죠. 지금의 재영 님은 뭐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지금 저는 UX 플래닝팀에 있지만, 그게 완전히 제 것이라기보다는 목표를 향해가는 여정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많이 배우고 경험하면서 계속 저한테 맞는 게 뭔지 찾아가는 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목표가 있다면, 일할 때 ‘모든 퍼즐이 딱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요. 그러려면 아직 멀었죠. 지금은 100개 중에 한 10개 맞췄다는 느낌?(웃음) 저는 아직도 여행 중인 것 같아요. 그게 저한테 정말 딱 맞는 말이에요.

글. 임현경 - UX Writer
그림. 이원용 - Experience Desig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