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7. 11:09ㆍBlockchain UX 이야기
현실의 그림은 디지털로 넘어가 NFT 속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태어나고, NFT 속 작품은 다시 현실로 무대를 옮겨 모두를 만나기도 합니다. 참으로 경계가 희미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죠. 아날로그는 아날로그에만 그치지 않고, 디지털은 디지털에만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책은 멈춰있는데 디지털 매체는 움직일 수 있고, 보는 것과 듣는 것을 함께할 수 있으니까요. - 이수지 작가의 인터뷰 중
현대어린이책미술관의 ‘춤을 추었어 Danced Away’ 전시에 다녀왔습니다. 이수지 작가와의 지난 인터뷰에서 작가는 그림책을 NFT와 연결한 이유에 대해 위와 같이 말했는데요. 전시의 경험이 작가의 말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멈춰있는 그림이 우리를 다음 장면으로 이끌고, 공간을 가득 메운 Danced Away NFT 속 볼레로의 선율과 춤추는 애니메이션은 그 율동에 발맞추기를 모두에게 권했죠. 아날로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책과 디지털이 한 데 어우러졌던 전시 공간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려드리겠습니다.
특별한 경험을 위한 열쇠, NFT
NFT 구매자에게는 이수지 작가가 진행하는 프라이빗 도슨트에 참여하고 소통할 기회도 주어졌는데요. 그 경험을 위해 NFT를 구매하고 먼 길을 찾은 관람객도 있었을 정도이니, 누군가의 잊지 못할 추억을 위해 NFT가 황금 티켓을 쥐여준 셈입니다.
어떤 종이에 그림을 그릴지 고민하는 순간부터가 작품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 이수지 작가
원화 전시의 매력은 작가의 의도를 온전히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라는 이수지 작가의 설명과 함께 도슨트가 시작됐습니다. 종이의 크기와 종류, 재단 방법까지 작가의 고민을 모두 전할 수 있어 이런 전시가 반갑다는 설명이 이어졌죠. 그 말을 듣고 나니 관람객이 일제히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 모두가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는 순간이었죠.
‘춤을 추었어’의 장면 속에는 튕기며 전진하는 공이 있습니다. 그림책을 읽은 어떤 독자는 이 공을 보고 아이의 심장 박동을 떠올렸다고도 합니다. 장면과 장면을 넘어 춤추며 나아가는 아이의 생명력이 하나의 점으로 응축된 것만 같죠. 동시에 작가의 설명에 따라 몰랐던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아~’소리를 내고 고개를 끄덕이며 작품을 넘나드는 관람객의 모습이 그림 속 공을 연상시켰습니다.
작품은 곧 하나의 공간이 되어
‘춤을 추었어’의 여섯 번째 장면을 따라 관람객의 시선은 바닥을 향합니다. 아이가 만나는 다양한 생물과 함께 처음 땅 밑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놓여 있어 그 움직임이 자연스럽죠. 이어서 빔 프로젝터로 흰 벽에 영사되는 NFT 속 애니메이션이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공간을 가득 채운 볼레로와 어우러지니 현장의 모두는 아이와 함께 춤추는 듯한 경험을 즐겼습니다.
이어서 라벤더색으로 물든 벽면이 현장의 모두를 맞이했는데요. 열네 번째 장면 속 탱크의 색을 벽으로 확장한 것이라는 이수지 작가의 설명이 뒤따랐습니다. 작가는 모니터 화면 너머로 바다 건너의 전쟁을 접하는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현실감을 표현하고자 라벤더색을 택했다고 합니다. 때마침, 장면에 맞게 재생되는 애니메이션 영상과 음악은 현장의 분위기를 고조시켰습니다. 뒤이어 흘러나오는 싱그러운 장면과 음악은 눈앞의 광경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해 신비로움을 자아냈죠. 현실이 NFT와 어우러져 일렁이는 때였습니다.
현실에 녹아든 디지털 이 우리에게 주는 경험
현실 공간과 디지털 기술이 만나 새로운 경험이 나타나는 일을 ‘피지털(Physital)’이라고 칭합니다. 물리적인 공간을 뜻하는 피지컬(Physical)과 디지털(Digital)의 합성어죠. NFT가 전시 공간에 녹아들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가 되어주는 이번 전시는 피지털이라는 단어를 쓰기에 위화감이 없습니다. 디지털이 낯설 법도 한데, 현장의 모두는 익숙한 피지컬 세상에 힘입어 새로운 기술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전시 관람을 마친 후, NFT 구매자에게만 전달된 ‘춤을 추었어’ 특별판 그림책을 함께 보며 각자의 소감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특별판 그림책은 보통의 책처럼 묶이지 않고, 낱장으로 이뤄져 있는데요. 그 사실을 모른 채 책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페이지가 사방으로 흐트러지는 순간 해방감을 느꼈다는 한 관람객의 소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새로운 작품이 NFT라서 당황하셨죠?”라는 작가의 물음에 “작가님의 작품이라 일단 구매하고 봤어요. 저질러놓고 본 거죠.”라고 답한 관람객은 도슨트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포항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그림책에 이수지 작가의 사인을 받으며 기뻐하는 모습이 현장의 모두를 웃게 했죠. 누군가를, 누군가가 만든 무언가를 온 마음으로 좋아하는 그 모습에서 작품 속 아이를 닮은 순수함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NFT. 잘 모르지만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과 곤충과 음악과 선들, 잘 감상하고 갑니다. - 어느 관람객이 남긴 방명록 중
전시 공간 한편에 놓인 방명록에서 손 글씨로 남겨진 관람객의 후기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그림이 정말 예쁘고 재미있었다.” 글씨는 삐뚤빼뚤 서툴렀지만 마음만큼은 대나무보다 곧은 아이들의 진심은 현장의 모두를 저절로 미소 짓게 했습니다. NFT를 아직 잘 모르지만 에너지 넘치는 작품을 즐기고 간다는 메모도 있었는데요. 현실과 연결되는 NFT의 모습을 알려주는 하나의 실마리였습니다. ‘춤을 추었어 Danced Away’ 전시는 2025년 1월 12일까지 이어집니다. 글로는 모두 전하지 못했을 현장의 분위기를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글. 정우재 - UX 라이터
그래픽. 김은정 - BX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