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19. 08:32ㆍAI 이야기
우리는 '차별화(Differentiation)'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a16z와 같은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벤처캐피탈은 최근 제품이나 서비스의 경쟁력에서 차별화보다 '해자(Moat)'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차별화와 해자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두 개념을 살펴보겠습니다.
차별화 (Differentiation, 差別化)
일반적인 언어로서의 차별화는 둘 이상의 사물 사이의 차이를 인식하거나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차별화란 기업이나 개인, 제품이 다른 대상과 구별되는 고유한 특성이나 가치를 창출해 소비자에게 인식시키는 행위나 전략을 뜻합니다.
AX 시대에는 새로운 AI 기능이나 에이전트 경험을 먼저 제공하는 것이 대표적인 차별화 전략이 됩니다. 다만 AI 기술의 확산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이러한 차별화는 과거보다 훨씬 짧은 시간 안에 경쟁사에 의해 모방될 수 있습니다.
해자 (Moat/Defensibility, 垓字)
비즈니스 관점에서의 해자, 즉 방어력은 경쟁 기업이 쉽게 모방하거나 빼앗을 수 없는 기업만의 고유한 강점을 뜻합니다. 회사가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경쟁사들로부터 수익 마진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X 관점에서의 해자는 단순히 AI 기술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고유의 데이터와 업무 맥락, 그리고 AI가 축적한 경험이 경쟁사가 쉽게 복제할 수 없는 자산으로 작동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수년 전 등장했던 서비스, 클럽하우스(Clubhouse)를 기억하시나요? 클럽하우스는 음성 기반 소셜 네트워크라는 강력한 차별화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지만, 해자를 충분히 구축하기 전에 경쟁사들이 동일한 기능을 빠르게 도입했습니다. 팬데믹 이후 오프라인 활동이 재개되고 핵심 크리에이터들이 이탈하면서 차별화 요소는 더욱 빠르게 희석되었습니다. 물론 실패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이 사례가 보여주는 핵심 교훈은 분명합니다. 차별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경쟁사가 따라오기 전에 사용자가 떠나기 어려운 구조, 즉 해자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구분 | 차별화 (Differentiation) | 해자 (Moat) |
| 개념 | 지금은 달라 보이는데, 남도 곧 할 수 있는 것 | 구조적으로 남이 못 따라오게 막는 것 |
| 특징 | 고객의 눈길을 끄는 '기능' | 경쟁자가 공격하지 못하는 '성벽' |
| 사례 | 최신 기술, 트렌디한 스타일 등 | 독보적인 커뮤니티, 독점 원료, 압도적 물류망 |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출시하는 것은 차별화의 요소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AI는 이러한 차별화가 유효하게 유지되는 주기를 급격히 앞당기고 있습니다. 시장에 진입하자마자 곧바로 기술 평준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제는 초기부터 단단한 해자를 함께 설계하는 것이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제품을 지속할 수 있는 단단한 해자가 있는지 깊이 있게 살펴봐야 합니다.
해자는 컨텍스트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AI 에이전트를 활용한 제품을 발 빠르게 출시하기만 하면 업무 효율이 극적으로 올라가고 독점적인 경쟁 우위가 생길 것이라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요즘의 기술 평준화의 속도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빨라졌습니다.
“AI 에이전트로 보고서를 딸깍!”이라고 하면 강력한 차별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쟁사 역시 곧 똑같은 오픈소스나 API를 구독하고, 유사한 프롬프트를 활용하면 우리의 기능을 즉시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해자를 정교하게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며, 사용자의 결과물(Output), 행동 방식(Behavior), 사고 방식(Thinking)에 해당합니다. 이 세 가지가 축적될 때 비로소 경쟁사가 복제하기 어려운 컨텍스트가 형성됩니다.
- 사용자의 데이터를 얼마나 축적하고 활용할 수 있는가?
- 사용자의 업무 방식이 얼마나 내재화되어 있는가?
- 사용자의 의사결정 기준을 얼마나 학습하고 있는가?

사용자의 데이터를 얼마나 축적하고 활용할 수 있는가?
제품은 데이터 자산을 쌓고 사용자가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레거시를 대체하는 제품이라면 지난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만약 사용자의 의사결정 맥락을 AI 에이전트가 완벽하게 학습했다면 그것은 타사가 넘볼 수 없는 해자가 될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이 제품을 바꾸면 우리 회사의 뇌를 다시 키워야 하는 그런 한 방이 필요합니다.
사용자의 업무 방식이 얼마나 내재화되어 있는가?
제품이 사용자의 업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다면 강력한 락인(Lock-in)효과가 생기게 됩니다. 업무 파이프라인 전체를 에이전트로 대체할 수도 있지만, 어느 한 부분을 AI 프로덕트로 대체하더라도 파이프라인의 각 업무 영역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용자가 업무의 영역과 결과를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이 AI 프로덕트가 사라지면 우리의 업무가 무너지는가?", "다른 AI 솔루션으로 변경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드는가?"를 자문해야 합니다.


사용자의 의사결정 기준을 얼마나 학습하고 있는가?
AI는 단순히 데이터를 저장하는 것을 넘어 사용자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지 학습해야 합니다. 같은 데이터를 보더라도 어떤 사용자는 비용을 우선시하고, 어떤 사용자는 품질이나 리스크를 우선시합니다. AI가 이러한 의사결정 패턴을 이해하게 되면 단순한 자동화 도구를 넘어 사용자의 사고방식을 보조하는 파트너가 됩니다.
결국 "기술은 사 올 수 있지만, 사용자의 맥락(Context)은 사 올 수 없다"는 점이 핵심 해자가 될 것입니다. 이전 글, ‘AX, 사람과 일을 이해하는 여정’에서도 사람을 이해하는 UX가 여전히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마무리하며
아래 표는 위에서 설명한 차별화와 해자를 기준으로 AI 프로덕트의 위치를 이해하기 위해 구성한 간단한 프레임워크입니다. 지금 우리 제품이 어떤 상황인지 간단히 점검해 보세요.
| 차별화 ↓ | 차별화 ↑ | |
| 해자 ↑ | Infrastructure 눈에 띄는 특별함은 없지만,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가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됨 |
Castle 사용자가 우리 제품을 특별하다고 느끼고,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해도 비용이 너무 큼 |
| 해자 ↓ | Danger Zone 별다른 차별점이 없어 사용자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상태 |
Fad 사용자가 지금 "신기하다/좋다"고 느끼는 점을 경쟁사가 곧 따라잡을 수 있음 |
UX 시대의 핵심 질문은 "사용자가 쉽게 사용할 수 있는가?"였습니다. 반면 AX 시대의 핵심 질문은 "AI가 사용자의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에 가깝습니다.
즉, AI 시대의 해자는 기능이 아니라 축적된 컨텍스트에 있습니다. 주요 AI 기업에서 Context Engineering, Context Graph와 같은 개념을 강조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그래서 AX는 사용자의 맥락(Context)을 이해하고 설계하는 데 가깝습니다.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의 시대에 역설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결국 강력한 해자는 사용자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그 맥락을 얼마나 오랫동안 축적할 수 있는가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AI 시대에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다시 중요해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해자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즉 사용자의 데이터, 업무 방식, 의사결정 기준은 모두 사람을 깊이 관찰하고 이해해야만 설계할 수 있는 요소들입니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사용자의 맥락을 먼저 발굴하고 정의하는 일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UX 리서처와 UX 디자이너가 여전히 바쁘고 할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