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9. 14. 16:05ㆍAI 이야기
최근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바로 일본 시장을 대상으로 스마트홈과 모빌리티 영역의 새로운 서비스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이를 프로토타입으로 구체화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아이디어를 더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빠르게 구체화하기 위해 AI를 두 가지 방식으로 활용해 봤습니다.
1. 아이데이션 단계에서 AI Persona를 활용해 보기
2. AI 기반 프로토타이핑 툴을 활용해 아이디어를 빠르게 화면으로 구체화하기
이번 편에서는 그중 첫 번째인 AI Persona를 아이디어 발굴과 고도화 과정에서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Figma Make를 활용해 프로토타입을 제작했던 경험은 2편에서 이어서 다뤄보겠습니다.
사용자 조사 없이 아이디어를 만들다가 부딪힌 장벽
보통 신규 서비스 아이디어를 만드는 프로젝트에서는 사용자 조사를 통해 사용자의 삶의 방식과 페인포인트, 니즈를 파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아이데이션을 진행합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데스크 리서치를 통해 기존 서비스에 대한 사용자들의 불편한 점, 만족하는 점, 기대하는 점 등을 파악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사용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다양한 삶의 맥락이나 감정, 행동의 동기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깊게 발전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수십 개의 시드 아이디어를 만든 뒤 다시 살펴보니 표현과 기능은 달라도 비슷한 페인포인트를 해결하는 아이디어가 반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두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실제 일본 사용자들도 이 아이디어를 보고 가치를 정말 느낄까? 그들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팀원들끼리 계속 비슷한 자료를 보면서 아이디어를 만들다 보니 생각도 점점 비슷한 방향으로 모였습니다. 그렇다고 중간에 일본 사용자 조사를 새로 진행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사용자 조사를 대체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우리의 사고를 조금 더 확장하고 다른 관점에서 아이디어를 바라보기 위한 도구로 AI Persona를 활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다른 삶의 시선을 담은 AI 퍼소나 만들기
AI Persona를 활용함으로써 팀이 얻고 싶었던 것은 “일본 사용자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라는 답이 아니라,“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관점이었습니다.
그래서 Persona를 정의할 때도 단순히 나이, 성별, 직업 같은 인구통계 정보만 넣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 맞벌이를 하며 혼자 귀가하는 어린 자녀의 안전을 걱정하는 사람
- 혼자 거주하는 고령의 부모를 떨어진 곳에서 원격으로 돌보는 사람
- 공동주택에 거주하며 EV로 장거리 통근하고 충전 문제를 자주 경험하는 사람
서로 다른 삶의 조건을 가진 퍼소나를 설정했습니다.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 실제로 겪은 불편이나 걱정을 물어보거나, 뉴스 기사와 기존 사례에서 접한 생활 장면을 참고해 스마트홈과 모빌리티 관점에서 그 사람의 판단에 영향을 줄 만한 하나의 구체적인 스토리를 각 Persona에 추가했습니다.
실제 스토리를 바탕으로 현재 어떤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지, 신규 구독료에 얼마나 민감한지, 집 안 센서나 카메라에 어떤 거부감이 있는지, 앱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을 얼마나 귀찮아하는지, 평소 어떤 문제를 가장 큰 스트레스로 느끼는지 등 실제 의사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조건들까지 구체적으로 정의했습니다.
답변 방식 역시 구체적으로 설계했습니다. 단순히 “이 기능은 좋습니다.” “프라이버시가 걱정됩니다.”라고 결론만 말하지 않도록 프롬프트를 작성했습니다. 대신 모든 판단에 구체적인 생활 장면이나 과거 경험을 근거로 포함하도록 프롬프트를 설계했습니다.
예를 들어 프라이버시가 걱정된다고 답한다면, 예전에 홈카메라 설치를 고민했다가 가족의 거부감 때문에 포기했던 경험처럼 왜 그런 판단을 하게 됐는지 그 사람의 생활 맥락까지 함께 설명하도록 했습니다.
즉, 팀이 퍼소나 의견을 읽으면서 “아, 이 사람은 이런 삶을 살아서 이렇게 생각하는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결국 Persona를 그럴듯하게 만드는 것보다,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왜 그런 판단을 하는지를 함께 볼 수 있는 툴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AI Persona의 시선을 빌려 아이디어 고도화의 힌트 찾기
이렇게 만든 Persona에게 실제 아이디어를 넣고 의견을 받아본 뒤, 결과를 아이디어 고도화를 위한 참고자료로 활용했습니다.
특히 도움이 됐던 부분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1. 실제 이용자 관점에서 서비스 수용성 점검
예를 들어 아이의 안전한 귀가를 지원하기 위해 학원 버스에서 내린 아이를 순찰 로봇이 집까지 에스코트하는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처음 저희가 생각했던 핵심 가치는 명확했습니다. 아이 혼자 이동하는 구간에서 유괴나 납치 등의 위험을 줄이고, 보호자에게는 아이가 안전하게 귀가하고 있다는 안심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맞벌이 부모 Persona에게 이 아이디어를 보여주자 이런 반응이 나왔습니다.
“'학원 버스 하차장에서 세대 엘리베이터까지 순찰 로봇이 에스코트'라는 문구에서 바로 멈췄다. 딸이 로봇 옆에서 걷는 걸 부끄러워하거나 친구들이 놀리면 안 쓰려고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 2학년은 부모가 좋다고 해도 본인이 싫으면 가방에 태그를 안 달고 나간다.”
팀에서는 당시 서비스의 가치를 아이의 안전을 높이는 것에 집중해서 보고 있었습니다. 로봇이 함께 걸어주면 부모는 안심할 수 있고, 위험 상황도 줄일 수 있으니 당연히 사용할 것이라는 다소 단순한 가정도 있었죠.
하지만 실제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은 부모가 아니라 아이였습니다. 부모에게는 안심되는 기능이어도, 아이가 친구들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함께 걷는 경험 자체를 부담스럽게 느낀다면 서비스는 결국 사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즉, 보호자에게 전달되는 가치만 보고 실제 이용자의 수용성을 놓치고 있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로봇이 항상 아이와 함께 이동하는 것을 기본 경험으로 두기보다, 평소에는 이동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할 때만 로봇 에스코트를 요청할 수 있는 방향으로 아이디어를 조정했습니다.
2. 신규 기능이 유발할 수 있는 새로운 불안 요인 발견
또 같은 Persona는 과거 아이의 GPS 위치가 건물 안에서 튀면서 실제로는 학교에 있는데 학교 밖으로 이동한 것처럼 보여 괜히 담임에게 연락할 뻔했던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서도 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안전 서비스라고 해서 정보를 많이 보여주고 알림을 많이 줄수록 과연 좋은 것일까? 란 질문을 던지게 됐죠.
위치나 경로 변화가 있을 때마다 알림을 보내면 오히려 부모가 하루 종일 아이의 위치를 확인하며 불안해질 수도 있었습니다. 안전을 위해 만든 서비스가 오히려 부모의 불안을 계속 자극하는 서비스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시간 위치를 계속 보여주기보다 정상 이동, 지연, 경로 이탈, 도착 완료와 같이 상태 중심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평소와 다른 상황에서만 확인이 필요한 구조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AI Persona의 말을 그대로 기능으로 반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런 의견을 통해 “우리가 만든 방식이 오히려 새로운 불편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이 기능이 실제 생활에서 사용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를 다시 생각하며 아이디어의 방향이나 컨셉을 고도화하고 다듬어나갔습니다.
3. 지불 의사를 통해 적절한 ‘서비스의 형태’를 고민
Persona에게 지불 의사에 대해서도 물어봤습니다. “월 몇 엔까지 낼 수 있다”는 숫자 자체를 활용하려는 목적은 아니었고, 오히려 왜 별도 비용을 낼 수 있는지, 왜 별도 구독이라면 부담스럽다고 느끼는지를 참고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Persona는 한 아이디어에 대해 별도 앱 기반의 구독 서비스라면 과하지만, 공동주택 전체에 제공되는 공용 인프라라면 수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의견을 보면서 “애초에 이 아이디어를 사용자가 직접 가입하는 별도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이 맞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사용자가 매달 직접 비용을 내고 이용하는 서비스가 적합한지, 아니면 공동주택의 안전이나 이동처럼 거주 환경에 기본적으로 포함되는 인프라 형태가 더 자연스러운지 다시 검토하게 됐습니다. 즉, Persona의 지불 의사는 가격을 정하기 위한 자료라기보다 서비스를 어떤 형태로 제공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기 위한 단서로 활용했습니다.
AI Persona를 ‘답’보다 ‘질문’에 활용하기
사실, AI Persona를 활용하면서 처음엔 “이게 사용자 조사를 대체할 수 있을까?”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하는 의문이 가득했습니다. Persona가 이야기한 생활 경험이나 과거 에피소드는 실제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우리가 설정한 조건을 바탕으로 AI가 만들어낸 가정인데 이걸 어떻게 믿고 활용할 수 있을까가 계속 걱정이었죠.
그런데 막상 활용해 보니, AI Persona의 가치는 ‘정답을 알려주는 것’보다 막혀 있던 사고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새로운 관점과 질문을 만들어주는 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AI Persona를 활용하면서 배우고 느낀 점을 세 가지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Lessons Learned 1. 가정 기반 퍼소나는 시드 아이디어 단계에서 사고를 확장하는데 도움이 된다.
AI Persona에도 여러 유형과 활용 방식이 있지만, 이번처럼 가정을 기반으로 만든 Persona는 시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고도화하는 초기 단계에서 관점과 사고를 넓히는 데 유용했습니다.
실제 사용자를 만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를 빠르게 가정해 보며, 놓친 사용 장면이나 우려 요인을 발견하고 아이디어를 가볍게 점검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들은 실제 사용자가 아니기 때문에, Persona의 의견이나 지불 의사·선호도를 실제 사용자 데이터처럼 받아들이거나 이를 근거로 아이디어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됩니다.
결국 가정 기반 Persona는 답을 얻기보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향까지 사고의 범위를 넓히는 용도로 활용할 때 가장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Lessons Learned 2. 아이디어에 대한 단순 ‘좋다/싫다’ 평가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볼 수 있게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Persona에게 단순히 “이 아이디어에 점수 몇 점 주실래요?”, “얼마까지 지불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데 활용하기 어려운 답이 나왔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유용했던 것은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그 사람의 생활 맥락까지 함께 드러나도록 프롬프트를 설계한 것이었습니다. 판단의 배경을 알아야 그 안에서 어떤 기능을 바꿀지, 무엇을 줄일지, 어떤 방식으로 제공할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구체적인 답변을 얻기 위한 설계가 중요한 이유는 더 그럴듯한 가상 사용자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판단이 나온 맥락을 이해하고 아이디어를 다시 바라보기 위한 재료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Lessons Learned 3. 결국 고민하고 판단하는 것은 사람이 해야 한다.
AI Persona를 활용한다고 해서 아이디어 고도화까지 AI에게 맡길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Persona가 새로운 우려를 이야기했다고 해서 기능을 바로 추가하지도, 어떤 기능을 싫어한다고 해서 곧바로 삭제하지도 않았습니다.
결과는 어디까지나 아이디어를 다시 바라보기 위한 하나의 참고자료로만 활용했습니다. 그 의견이 실제로 중요한 문제인지, 아이디어의 핵심 가치와 충돌하지는 않는지,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이 적절한지는 결국 팀이 다시 판단하고 고민해야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AI Persona가 가장 크게 도와준 부분은 “이 아이디어는 이렇게 고치세요”라고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점은 생각해 봤나요?”라고 새로운 질문을 던져준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마치며
개인적으로는 이번 경험 전까지 AI Persona 활용에 꽤 회의적인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활용해 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AI Persona가 무엇을 대신 해주는 도구인지보다, 어떤 목적으로 써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 특히 효과적인지를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AI Persona를 활용해 아이디어 초기 단계에서 익숙한 관점에 갇히지 않았는지 점검하고, 놓친 질문을 찾아보는 데 다시 활용할 것 같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두 번째 제약이었던 ‘디자이너 없이 리서처들이 프로토타입까지 만들어야 했던 상황’에서 Figma Make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그리고 실제로 사용해 보며 얻은 경험과 인사이트를 이어서 나눠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