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의 기적, 카붐!

2014. 10. 2. 01:00리뷰
이 재용

단 하루의 기적, 카붐!
KaBoom, How one man built a movement to save play
대럴 해먼드 저. 2013

이 책은 대럴 해먼드가 아이들 놀이터를 만들어 주는 단체인 카붐을 만들게 된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의 독후감은 검색하면 많이 나올 것 같고, 이 글에서는 서비스 디자인 혹은 경험 디자인의 측면에서 남기고 싶은 메모를 적으려고 한다.

이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라면,

놀이터를 짓는 것은 카붐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이죠. p231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 카붐은 놀이터를 짓지 않는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물론 지금도 여전히 이렇게 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자선 단체들은 기부금을 모아, 전문가를 활용해 멋진 놀이터를 지어주고 떠난다. 그렇게 만들어진 놀이터는 언론의 조명을 받고 사람들의 관심을 얻지만, 곧 빠르게 머리에서 잊혀진다. 멋진 선물을 좋아하긴 하지만 누구의 것도 아니므로, 누군가 애정과 권한을 가지고 관리를 할 수가 없다. 낙서를 해도 지우는 사람이 (혹은 내가 지울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놀이터를 지을 때는, 마을 사람들에게 건축 전문가들이 와서 그들을 위해 놀이터를 지어줄 거라고 설명했죠. 물론 마을 사람들은 그 공사에 참여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놀이터를 짓는 것과 관련해 결정권을 갖고 있지 않았어요. 놀이터를 디자인하는 데에도, 계획을 세우는 데에도, 실제로 짓는 데에도 참여하지 못했죠. 요즘 그 놀이터는 쓰레기 더미예요.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지은 놀이터, 그러니까 카붐의 놀이터는 잘 유지되고 있어요. p238


카붐은 놀이터를 짓는 대신, 두 가지를 디자인한다. 마을 공동체의 경험과 자원 봉사자들의 경험.

우선 마을 공동체는 이렇게 경험하도록 디자인한다.


1. 경쟁하게 한다.
마을 공동체가 적극적으로 원하지 않는데, 외부인의 시각에서 놀이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지어 준다면, 사람들은 '멋진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책에는 이렇게 실패한 사례를 여러가지 제시한다 p162 벨파스트와 르완다,p171 스토더트 테라스) 따라서 놀이터를 계획하고 짓는 과정에서 마을 공동체가 마을의 문제를 공유하고, 서로 협력하고, 계획하고, 함께 만들어야 한다. 다른 마을에 비해 더 적극적으로 놀이터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므로서, 공짜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힘들여 얻은 것이라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

2. 과정에서 마을의 문제를 논의하고, 협의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범죄율을 낮추고 아이들이 더 안전한 놀이를 하는 공간이 왜 필요한지 알게 한다. 때로는 누구나 절실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마을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저소득 마을 같은 경우). 때로는 누구도 왜 그게 필요하냐?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태풍 카트리나 피해지역에 다른 시설보다 놀이터를 먼저 짓자고 하는 경우에, 많은 사람들이 다른 급한 건물도 많은데 왜 놀이터를 먼저 지어야 하는지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놀이터를 계획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희망을 배우고, 완성된 놀이터 (주변에서 부서지지않고 온전하게 있는 유일한 공간)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놀고 산책하면서 정신적인 치료를 받았다.
놀이터를 지으려면 몇 달에 걸쳐 계획을 세워야 한다. 계획을 세우는 주체는 그곳에 사는 주민이다. ...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 활용할 자원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 우리는 그들이 자신의 공동체가 가진 자원을 발견할수 있게 돕는다. ... 다시 말해 놀이터를 짓는 기술과 방법을 가르친다. p10

3. 놀이터 디자인은 마을 공동체, 특히 거기서 놀 아이들이 중심이 되어 디자인한다. 이를 '디자인 데이'라고 부른다. 자기들이 디자인하고 참여한 놀이터에 대한 주인 의식이 생기도록 한다.
놀이터가 완성된 후, 아이들은 '저건 내가 그렸어요. 이건 내 놀이터예요!'라고 말한다. p11
지역 공동체 전체가 놀이터 건설에 후원하도록 한다. 주변 아이스크림/도우넛 가게라든지, 슈퍼마켓 아저씨도 후원하게 한다. 이들은 놀이터에 대한 주인 의식이 생기고, 놀이터를 주변에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된다.
볼트가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둘러 교체했다. 누군가 놀이터에 낙서를 하면 누군가 그것을 지웠다. p239



또 자원 봉사자들은 이렇게 경험하도록 디자인한다.


1. 단 하루만에 놀이터가 만들어진다!
물론 협의하고 준비하고, 자원 봉사자와 자금을 모으고, 계획을 세우고 하는 일은 최소 12주 이상 걸리는 일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날짜는 두 번인데, 하나는 디자인 데이(Design Day). 앞서 말한 것처럼 마을 공동체, 특히 놀이터를 사용할 아이들이 중심이 되어 디자인을 하는 날이다. 

그리고 또 하나 빌드 데이(Build Day). 이 날은 200명 이상의 자원 봉사자와 마을 주민들이 모여, 리더의 지시에 따라 역할을 나누어 새벽부터 저녁까지 단 하루만에 놀이터를 완성해 낸다.

원래 차근차근 지으면 대략 5일 정도가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카붐은 오랜 기간의 연구와 연습을 거쳐, 이를 하루만에 이루어지도록 변경했다고 한다. 왜냐?

자원 봉사자들은 대개 하루 정도 시간을 내는데 5일짜리 공사의 첫 날에 온 사람들은 그다지 큰 성취감을 '시각적으로' 확인하지는 못 한다. 또 5일째 오는 사람들은 무언가 마무리만 하는 느낌이 되는데, 프로세스를 혁신해 (미리 많은 준비를 해 두어) 하루 만에 2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만들면, 끝날 때 모든 사람들이 대단한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그 전부터 준비 과정에 참여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만든 다음 저녁에 완성된 놀이터를 보면(특히 자신이 디자인한 놀이터를 보면) 이 단체의 이름처럼 번쩍(카붐!)하면서 기적이 이루어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우리는 공사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에 함께하는 것이 자원봉사자의 인생관에 큰 영향을 미치는 더없이 놀라운 마법과 같은 경험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침에 보았던 빈 공터가 그날 밤에는 멋진 놀이터로 바뀌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다. 건축회사는 하루 만에 공사를 끝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우리는 공사 과정을 뒤집어서 계획하기로 했다. 만약 어떤 일이 있어도 하루만에 공사를 꼭 마쳐야 한다면 우리는 일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p102
2. 과정이 중요하다.
"왜 콘크리트 믹서기를 사용하지 않나요?" 이 질문에 카붐은 이렇게 대답한다. '놀이터를 짓는 경험 자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p230)' 몸이 더러워지며 함께 만들지 않으면 그곳에 놀이터는 생길지 모르지만 뜨거운 공동체 의식은 형성되지 않는다. 카붐이 놀이터를 세움으로써 얻고자 하는 것은 기계의 도움 없이 함께 일할 때 생기는 팀워크의 특별함을 체험하는 것이다.



카붐의 사명과 철학


결국 카붐은 놀이터를 설계하고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가 자신들이 원하는 놀이터를 설계하고 얻어 내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면서, 마을 공동체, 자원 봉사자, 후원 기업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역할을 함으로서, 더 오래가는 놀이터가 되도록 한다.
카붐이란 조직의 사명은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놀이터를 만드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지역 공동체의 변혁을 일으키는 것이다. 공동체의 진정한 변화는 하루 동안의 행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전체 과정을 통해서, 그리고 그 이후 같은 방식을 다른 곳에 적용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p232

카붐의 기본적인 철학은 다음 세 가지 핵심으로 요약할 수 있다. p233
첫째, 공동의 목표를 내세워서 사람들을 모이게 한다.
둘째, 성공 체험을 쌓아 올린다. 놀이터를 짓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수십번의 작은 승리를 경험한다. 
셋째, 각 단계별로 용기를 얻는다.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새로운 놀이터라는 구체적이고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이후 다음 변화로 확산된다)

사실 모든 서비스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공간을 디자인하거나,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 그 공간을 이용할 사람들, 그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재래 시장을 살리기 위한 여러 가지 재정적 지원이나 전문가의 지원을 하고 있지만 더 중요한 건 그 재래 시장의 상인들과 그 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는 변화를 시도하고, 거기에서 성취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멋진 간판을 만들어 주는 일은 서비스 디자인이 아니다.

[참고1] 
책의 후반부도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나, 생략했다.
p241 놀이터로 시작하여 어떻게 다른 혁신으로 연결되었나 - 피칸 파크 초교의 완다 칸 교장 선생님
p251 어떻게 하면 조직 확대 없이 사업 규모를 확대할 수 있었나 - 놀이터 짓는 법을 가르친다, 온라인으로.
p284 비영리 단체도 혁신이 필요하다 - 데이비드 록웰이 설계한 상상력 놀이터(Imagination Playground) 
p314 비영리 단체는 돈을 벌어 좋은 사무실에 있으면 안 되나?
p342 놀이를 싫어하는 사람들
도 흥미로운 주제들이다.

[참고2]
카붐과는 상관 없지만, "아이들 놀이터인데 왜 어른 시각으로 만드는지 모르겠다" 독일 놀이터 디자이너 벨치크·놀이운동가 편해문씨 대담 - 2014.5 경향신문

역시 카붐과는 상관없지만, "독일 놀이터 디자이너 권터 벨찌히가 말하는 놀이의 가능성 - 2014. 5 서울시 센터
[참고##사회공공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