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디자이노베이션 Design-Driven Innovation
2014. 10. 28. 01:00ㆍ리뷰
창조적 혁신 전략 디자이노베이션
Design-driven innovation : changing the rules of competition
로베르토 베르간티 Roberto Verganti
이 책은 어떻게 하면 디자인을 중심으로 회사를 혁신할까에 대한 경영 서적이다. 이러한 급진적 혁신 전략은 '디자인 중심 혁신(Design-Driven Innovation)'이라고 부르며, 사용자 중심 혁신과 비교된다. 기술 중심 혁신이 기술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처럼 디자인 중심 혁신은 디자인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일을 가장 우선시하는 혁신 가치의 프로세스를 의미한다. (p009)
저자인 로베르토 베르간티는 이탈리아 밀라노 폴리테크니코의 혁신경영 전공 교수로서 글로벌 기업의 자문 역할을 수행하면서 기업들이 하게되는 혁신 프로세스와 도전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특히 이탈리아 기업 사례(알레시 등)를 중심으로 이 책을 작성하였다.
디자인 중심 혁신이란?
사람들은 '물건'을 구매하기 보다는 '의미(Meaning:존재적 가치)'를 구매하며 실용성, 목적성과 함께 감정적, 심리적, 그리고 사회문화적인 이유로 물건을 구매하기 때문에 디자인 중심 혁신 전략이 중요하다. p026
저자는 변화에 있어서 기술이 발전하는 축과 그것이 갖고 있는 의미를 발전시키는 축, 이렇게 두 가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아래 그림 참고 p028) 기술 발전 축에서 급진적 변화는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며, 의미를 통해 급진적 변화를 이루는 것은 '디자인 중심'이라고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사용자를 관찰하여 얻는 변화는 시장 중심(혹은 사용자 중심)이라면서 점진적 변화를 이끌어 낼 뿐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애플이나 알레시 같은 디자인 혁신 기업은 사용자 조사를 하지 않고, 최고 경영자와 디자이너의 직관에 의해 사용자들의 기대를 뛰어 넘는 급진적 혁신을 이룬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의미'란 닌텐도 Wii에서 콘솔 게임의 의미를 '활동적인 신체 오락'이라는 개념으로 바꾼 것, 아이팟이 아이튠즈를 통해서 음악을 사고, 발견하는 체계를 바꾼 것, 홀푸드 마켓이 '건강한 자연식품의 의미'를 자연스러운 즐거움으로 제안한 것 등이다. (p029-030)
그렇다면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디자인을 무엇이라 정의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디자인 이론가인 에치오 만치니에게 디자인의 정의에 대해 물었더니,
그는 필자에게 디자인 역사책을 읽으라고 권유했다.p059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쳤는데, 우리가 갖고 있는 많은 개념들이 그렇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UX란 무엇인가? 얼마전 글에서도 주장했듯이, 아무리 벤다이어그램 비슷한 걸 그려놓고 이게 UX냐 아니냐 고민해 봐야 답이 안나온데, UX가 무엇인가를 알고 싶으면 역사를 알아야 한다. 왜 UX가 나왔는지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디자인도 그렇다. 그는 계속 이렇게 말한다.
경영학 역사를 공부하는 비즈니스 스쿨이 드물기에 경영학도였던 내게 이러한 권유는 낯설게 느껴졌지만 나중에 필자는 이것이 매우 현명한 충고였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손쉽고 단순한 답변만을 얻으려는 유혹을 떨치고 디자인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디자인이 가지는 다양한 본성을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p059그래서 그는 디자인의 역사에 대해 언급하면서 형태적인 아름다움의 추구에서 점차 '의미'를 찾는 디자인, 그리고 더 넓게 혁신 프로세스로서 디자인을 언급한다.
자주 인용되는 현대의 디자인에 대한 개념은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의 한마디가 이를 잘 대변해 준다.
디자이너란 현재 상태를 기업이 원하는 또는 대중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고자 행동의 원칙을 고안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은 문제 해결의 도구 입니다.p063여기에서 그는 디자인 사고(design thinking, 디자인 씽킹)에 관한 논쟁으로 연결시키면서, 결국 디자인은 사물에 의미를 불어 넣는 것이라고 말한다.p065
사용자 중심 혁신을 잊어라
그는 이렇게 말한다. '급진적이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사용자 중심 혁신을 잊어라'
따라서 이런 의미를 제시하는 것은 기업의 몫이다. 사용자 조사나 포커스 그룹에 의존하기 보다는 사용자들로부터 의미를 찾고 부여하는 것이 중요한데, 따라서 알레시는 사용자를 예술 작품의 '관객'으로 표현한다. p106 뱅앤올룹슨 역시 사용자를 오케스트라의 관객이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급진적인 혁신을 이루려면 기술과 디자인이 합쳐져 기술의 재발견이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p123 그림)
디자인 중심 혁신의 방법
이러한 디자인 혁신에서는 사용자를 둘러싼 다양한 관점을 가진 관계자들(인터프리터, p214)의 네트웍을 구성해 이들이 디자인 담론(Design Discourse)을 만들어 내는 리서치 프로세스를 활용하라고 한다. (p216) 인터프리터들은 사회 의미를 탐구하고 생산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예술가, 문화단체,사회학자나 인류학자, 마케터, 매체 등이며 문화와 의미의 탐구가 그들의 핵심 역할이다. p217
이러한 인터프리터들을 활용하여 (1)수집하기 (2) 해석하기 (3) 공유하기 등의 행동을 통하여(p238) 디자인 담론을 형성해 나간다고 한다. 특히 디자인 담론 프로세스는 기존의 사용자 중심 접근 프로세스와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데,
첫 번째, 신속한 브레인스토밍 보다는 깊이 있는 연구를 추구한다. 일회적 창의성보다는 일상의 의미를 심도있게 개발한다.
두 번째, 관찰보다 참여가 중심이다.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고 지배적인 문화 패러다임을 수정한다.
세 번째, 사용자 중심 방법의 경우 특정 수단이나 단계적 프로세스가 중요한 반면, 디자인 담론 프로세스는 관계 형성과 유지 능력에 기반을 두는 특징이 다르다.
수집하기
저자는 인터프리터 그룹의 사례로 1980년대 건축가 에톨 소트사스(Ettore Sottsass)가 구성했던 멤피스 그룹을 언급한다. 1960년대 올레베티(Olivetti)의 유명한 발렌타인 타자기를 디자인했던 소트사스의 멤피스 그룹은 새로운 사회적 상황에 대응한 다양하고 실험적인 공예품들을 선보였다. 저자는 이들의 연구 결과로 탄생한 포스트 모더니즘이 아르테미데와 알레시 같은 기업들이 혁신적인 소비 시장을 이끌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p264
이러한 그룹을 기업이 지원/육성하고 그 성과를 활용하는 사례는, 1990년대부터 우리 나라 전자 회사들이 지속적으로 인문/사회/예술 분야의 혁신 연구소를 만들었다 실패하고, 만들었다 실패하는 반복적인 실패 사례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 나라 대기업들의 사례는, 이런 인문/사회학자들이 안정적으로 깊이있게 연구하고 반복적으로 실험을 통해 (내부적인 실험이 아니라 대중적이고 공개적인 실험) 지배적인 패러다임에 "도전"하면서 강한 개인적 비전을 갖는 과정을 통해 혁신을 만든 이탈리아 사례와 매우 강하게 비교된다. 우리 나라 대기업들은 항상 내부에 폐쇄적인 연구소를 만들고 그들 입맛에 맞는 결과를 뽑아 내는 것을 목표로 하였기 때문에 실패한 것 아닐까? (p266 표 참고) 그렇게 기업 내부에 두면 처음엔 '여유있게'하지만 1-2년만 지나도 성과를 내야한다는 초조감에 사로잡히는 반면, 기업 외부의 네트웍을 후원하면 훨씬 더 여유있게, 그리고 깊이있게 패러다임 형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래 표를 비교해 보면 더 쉽게 이해가 된다. 오른쪽의 창의적 그룹이 대개 기업의 단기적 콜레보레이션이나 에이전시 외주, 혹은 기업내 인문 사회 연구소에 해당된다)
혁신 연구집단 | 창의적 그룹 | |
결과 | 제안과 비전/프레임워크 | 답변/아이디어 |
프로세스 | 깊이/연구와 실험 | 속도감/브레인스토밍 |
팀 혹은 모임의 원동력 | 통합 | 발산 |
자산 | 지식/전문가/관계 | 방법론/초보자/프로세스 |
품질 측정 | 비전의 확고함/사회 비전의 영향력 | 아이디어의 다양성/문제 해결책 |
사회 비전 | 강한 개인적 비전 | 문화적인 중립성 |
사회문화적 패러다임에 대한 태도 | 지배적인 패러다임에 대한 도전 | 현존하는 패러다임과 어울림 |
연출하기
알레시가 1985년에 출시하여 지금까지도 인기있는 케틀 9093 주전자는 197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고, 1979년 공식적으로 공표되었던 알레시의 차와 커피 광장 프로젝트의 연구 결과물 중 하나이다.(p304) 물이 끓을 때 나는 날카로운 신호음과는 달리 새의 휘파람 소리가 기분 좋은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 디자이너 그레이브스는 소비재를 디자인해 본 경험이 없는, 형이상학적 표현양식이 반영된 포스트모던 빌딩을 디자인하던 미국 건축가였다.
알레시는 이 즈음 멤피스 그룹을 후원했고, 11명의 건축가들에게 포스트모던 건축 표현 양식을 부여한 차와 커피 서비스에 관한 제품들을 디자인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11명의 건축가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3년간 각자의 작업 시간을 가졌다. 이후 다음 단계로 99개의 디자인 콘셉을 한정판으로 만들어 각각 2만5천달라에 판매하면서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과 각국의 최고급 백화점에서 프로젝트 전시를 가졌다.
공개하기
이러한 문화적 원형(Cultural Prototype)들을 다시 소통 시킨다. 책을 발간하고, 기사를 작성하고, 대중들에게 퍼트리면서 새로운 문화적 사조를 대중들에게 알린다. 필립스는 '디자인에 의한 새로운 가치(New Value by Design)'라는 웹매거진을 분기마다 발간하여 그들의 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결론
책의 마지막 부분은 어떻게 기업이 디자인 중심 연구소를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최고 경영자는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최고 경영자가 디자인 담론의 방향을 정하고 프로젝트를 촉발시키는 역할을 해야하며, 이러한 인터프리터들과 관계를 형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하며, 최종적으로 이러한 해결책을 선택하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기술하는데... 이렇게 할 수 있는 최고 경영자라면 뭘 어떻게 해도 디자인 중심으로 성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다.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 중심'이니 '디자인 중심'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혹은 디자인 사고(Design Thinking), 공감, 그리고 융합에 의한 혁신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기업이 어떻게 하면 되는지, 혹은 지금까지 비슷한 시도를 많이 했는데 왜 계속 실패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 책이 (주장하는 것에 대해 동의할 수 있는 부분도, 없는 부분도 많지만, 그래도) 적어도 무언가 해결의 한 줄기 빛을 준 것은 틀림없다. 아니 적어도 지금까지 우리가 왜 실패했는지는 분명해진다.
[참고##방법론##] [참고##디자인 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