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13. 01:00ㆍGUI 가벼운 이야기
언제나 변화는 가득하지만 특히 2014년에는 미국 쪽 디자인 업계로부터 우려의 뉴스가 많이 들어오던 한 해였다.
2014년 10월에, Adaptive Path는 은행에 인수되고, Smart Design은 샌프란시스코 사무실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전했다. IBM은 세계 최대의 디자인 팀을 만든다고 하고, 존 마에다는 벤처캐피탈로 옮겼다. 그래서 몇 가지 인수 합병을 모아 글을 썼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에 대해 분석한 두 가지 글이 눈에 띄어 소개하려고 한다. 먼저 이에 대하여 peterme에서는
샌프란시스코 디자인 에이전시 위축
San Francisco's Design Agencies Feeling The Squeez
라는 글을 통해서 왜 이런 현상이 일어 났는지 분석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된다.
1. 문제의 시작은 디자인의 중요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많은 회사들이 외부(out-sourcing)보다는 내부(in-house)에서 인력을 충원하고 디자인 경쟁력을 갖추려고 한다. 디자인이 제품/서비스 경쟁력의 마지막 장식이 아니라, 핵심 경쟁력이 되는데 누가 그것을 지속적으로 외부에 맡기려고 하겠는가?
2. 그런데 급여 차이가 너무 난다.
이들 기업이 내부 디자이너를 채용하려고 하자, 돈이 많은 구글 같은 기술 기업 뿐만 아니라 펀딩이 잘 된 스타트업들까지 높은 연봉에 실력있는 디자이너들을 싹쓸이 해 가고 있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낮은 임금과 긴 근무 시간으로 근무 조건이 안 좋은 에이전시에 좋은 사람들이 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디자인 중요성이 더 높아졌고, 임금도 올랐다면) 에이전시들은 왜 더 비싼 비용을 청구하지 않는걸까? 핵심 경쟁력을 외부에 두고 싶지 않은 기업들은 예전에 80% 정도의 예산을 아웃소싱에 쓰다가 요즘은 20% 정도만 외주를 준다고 한다. 따라서 샌프란시스코 에이전시들은 오히려 가격을 더 내렸다는 소문이다.
3. 혁신은 에이전시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사실 그래도 위 1,2번은 과거에도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가지가 달라졌다.
우선 대기업이나 기술 기업에는 디자이너를 중시하는 문화가 없었다. 따라서 정말 '디자인'을 좋아하는 디자이너들은 월급이 낮고 고생스러워도 디자이너들끼리 모여서 만드는 문화를 좋아했고, 그래서 대개 디자이너 출신 사장이 이끄는 에이전시를 좋아했다. 하지만 요즘 웬만한 대기업들도 다 디자인 문화를 이해하고 만들어 준다.
아울러 최근의 프로젝트 진행 방식이, 과거 에이전시에 맡겨 워터폴 방식으로 짜잔!하고 보여주던 (BDUF, Big Design Up Front) 방식으로는 혁신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Lean Start-up 방식이나 Agile 방식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것이 에이전시의 생리에는 잘 맞지 않는다. 따라서 최근의 혁신적인 디자인은 에이전시에서 잘 나오지 않으니 새로운 것을 만드는 보람도 줄어들고 있다.
이제 에이전시에 있는 유일한 장점은 '다양한 작업'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 뿐인데, 이것 하나로 낮은 연봉을 달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글에서는 위와 같은 이유로 샌프란시스코 (어쩌면 모든 미국, 아니 전세계) 디자인 에이전시들이 심각한 위축을 경험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한국의 실정에는 어디까지 적용될 수 있을까?
한편 2014년의 마지막 날, Wired에는
급격히 사라지는 디자인 산업
The Rapidly Disappearing Business of Design
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이 글에서 Robert Fabricant는 앞서의 소식들과 IBM의 대규모 디자인팀 채용 소식 등을 전하면서, 마지막 소식으로 가장 유명한 브랜드 에이전시 Wolff Olins의 Todd Simmons가 IBM으로 간다는 뉴스를 추가하고 있다. 그는 디지털 디자인 에이전시의 역사를 3단계로 구분했는데,
1. 첫 번째 물결 - 디지털 에이전시의 등장
1990년대 중반 처음으로 디지털 에이전시가 등장했을 때, 이름을 알린 곳은 RGA, Avalanche, Razor Fish, io360 등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들 회사들은 모두 광고 회사에 인수되었다. (흠...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지 몰라도, 광고 회사와 디자인 회사는 다르다!)
2. 두 번째 물결 - 혁신 컨설팅
1990년대 후반부터 IDEO는 디자인 사고(Design Thinking)를 내세워 혁신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Frog도 이름을 알렸고, 사용자 경험(UX)을 앞세운 Adaptive Path도 유명해졌다. CMU 동창들로 2001년에 세워진 AP는 혁신적인 결과물 뿐만 아니라 컨퍼런스와 교육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더 유명해질 수 있었다. AP는 은행에 인수되었다. (역시... 은행과 디자인 스튜디오는 다르다!)
3. 세 번째 물결 - 벤처 디자인
최근에는 FuseProject(중국계에 매각됨)를 들 수 있다. CES에서 주목받은 Jawbone Up이라든지, 애플 컨퍼런스에서 주목받은 August 도어락 같은 것을 디자인한 회사다. Ammunition도 소개하고 있다. 이런 성공적인 적용은 VC(Venture Capital)에서 디자인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이런 경향으로, Google Ventures 뿐만 아니라 IDEO, Frog 등도 스타트업 지원을 하고 있으며, John Maeda 등도 VC에서 스타트업을 돕고 있다! (이 새로운 경향에 대해 정리하는 글을 따로 쓰고 있다)
4. 대량 멸종 - 회사가 다 차지
대기업들은 UX가 그들의 핵심 경쟁력이며, 외부에 맡겨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디자이너들은 좀 더 제품에 깊숙히 관여해야만 혁신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미국 기업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계 기업들이 다 그런데, 특히 IBM은 엄청난 수의 디자이너를 뽑고 있다. (소문에 따르면, 한 주에 50명을 채용한적도 있고, CMU Interaction Design 전공 대학원생 전원에게 잡 오퍼를 주었다는 소문도 있다)
기사의 마지막은 독립적인 디자인 산업이 남은 건 사회 영역 밖에 없다는 반갑달지 우울하달지 한 결론으로 마무리한다.
글 제목이 다소 자극적이긴 한데, 물론 반대하는 입장도 있다. 위 두 가지 글들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 가운데, 시애틀의 디자인 컨설턴시인 아티팩트 그룹 블로그에서
디자인 컨설팅 사례
The Case for Design Consulting
에서는
1. 디자인은 여전히 어렵다. 기존 산업에서 디자인을 도입하는 것도 어렵고, 인하우스 팀도 좋은 사람을 채용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2. 디자인 컨설턴시는 여러 요소의 조합이지 단순히 사람이나 다른 한 두 가지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3. 디자인 컨설턴시는 계속해서 자신의 역할을 확장해 나갈 것이고,
4. 새로운 문제들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에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다.
따라서 위 두 글은 특정 지역(샌프란시스코), 특정 기술에 국한하여 발생한 문제를 너무 확대 해석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은 아주 극소수의 기업을 제외하면 아직도 진정으로 디자이너를 중시하거나 자신만의 디자인 문화를 갖는 한국 기업은 거의 없다. 대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 할 것 없이 어디나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말로만' 외치고 있지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은 없다는 이야기다.
Agile 이나 Lean 프로세스를 도입하여 업무를 진행하는 스타트업이나 전자상거래 회사들은 늘고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적용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온라인(웹이나 모바일)에서 주요한 사업을 하는 회사 조차도! 도입하지 않는 회사들이 여전히 많다.
그러나 에이전시가 갖는 혁신성이 줄어들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2002년에 피엑스디를 설립했을 때만해도, 대기업 담당자를 만나면 UX가 무엇인지, 퍼소나가 무엇인지 항상 세미나부터 해 주어야만 했으니까. 지금은 대기업 담당자들이 에이전시 직원들보다 더 고급 정보와 고급 교육을 받는다.
물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다. 아직 끓지 않을 뿐이다.
따뜻함을 더 즐겨야 할지, 아니면 어디로 뛰어야 할지.
[참고##디자인 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