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게임 ‘사도세자의 비밀’ 기획 리뷰

2015. 4. 21. 07:50pxd 다이어리 & 소소한 이야기
알 수 없는 사용자

올 2월 초의 겨울날, 피엑스디의 3그룹(교육팀 + 인턴들)은 1박 2일 워크샵을 다녀왔습니다. 1일차 프로그램으로 3명의 기획단이 직접 준비한 ‘사도세자의 비밀(이하 ‘사도세자 게임’)’을 수원에서 진행했는데요. 전반적인 진행 과정과 게임 방식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미지 출처 = SBS 대기획 ‘비밀의 문>

발단


워크샵 기획을 맡게 된 저는 바로 전까지 놀공발전소와 독일문화원이 합작한 ‘Being Faust Enter Mephisto(이하 ‘파우스트 게임’)’이라는 빅게임의 평가프로젝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빅게임(Big Game)은 아직 정의가 명확하지는 않은 게임 장르인데, 뉴욕 게임센터의 디렉터 Frank Lantz의 정의에 따르면 1)많은 사람들의 물리적 상호작용이 있고, 2) 도시나 공공 장소에서 개최되며, 3) 디지털 기기가 활용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게임입니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회식을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코치로 참여했던 송영일 팀장님이 “두 달간 빅게임 리서치를 했으니 아류작(?)이라도 하나 만들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얘기를 했고, 저는 3그룹 워크샵에 적용해 보겠노라며 콜!했습니다.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이은영 주임님과 평소 놀이에 조예가 깊은 조준희 책임님의 도움을 받아 게임을 기획할 수 있었습니다.

전개


처음에는 빅게임과 디자인씽킹을 결합하여 만들려고 시도했으나, 곧 시간과 능력 등 모든 게 부족하다는 걸 깨닫고 철저하게 파우스트 게임을 모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수원으로 장소를 정하고, 조선 정조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며 설계한 ‘효의 도시’라는 점에 착안해, ‘사도세자’를 테마로 게임을 기획해 보았습니다. 파우스트 게임은 괴테의 ‘파우스트’ 작품 속 문장을 직접 읽어보며 문학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끊임없는 선택의 순간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경험을 줍니다. 사도세자 게임은 영조(사도세자의 아버지) 시대의 ‘조선왕조실록’ 문장을 직접 읽어보며 1)역사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사도세자를 살릴지 여부를 선택하고 고민하는 순간을 통해 2) 참가자 스스로를 돌아보는 경험을 주려 했습니다.

WARMING-UP



게임의 무대가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었기 때문에(화성행궁에서 장안문까지 직선거리로 약 800m정도 됩니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1시간 정도 화성행궁, 행궁동(수원의 구시가지 대부분을 관할하는 행정동), 생태교통마을, 벽화골목, 장안문을 투어했습니다. 그냥 둘러보기만 하면 재미 없을까 싶어 제가 한복을 입고 혜경궁 홍씨에 빙의(?)해 가이드를 했는데요, 참가자들을 주목시키고 인솔하는데 생각보다 효과를 보았습니다.


SHOWTIME!


‘사도세자 게임(정식 명칭 ‘사도세자의 비밀’)’의 기본 스토리라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게임이 참가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사도세자’를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입니다. 얼핏 생각해 보면 ‘사람인데 당연히 살려야 하는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사도세자가 저지른 많은 기행들을 알게되면 고민하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는, 끝까지 사도세자의 편을 들어 부인의 의리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영조의 눈밖에 나지 않게 가만히 있으면서 자신의 아들인 정조를 지킬 것인가-하는 딜레마에 처하게 됩니다. 게임 참가자들은 마을 속에 숨겨져있는 조선왕조실록 속 단서를 찾으면서 자신의 입장을 정한 뒤, 각자의 주장을 펼치는 상소문을 작성해 혜경궁 홍씨를 설득한다-는 기본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진행하였습니다.

사도세자 게임 참가자에게는 기본적으로 가치카드 5개, 붓펜 한자루, 호패, 가이드북, 주머니 목걸이가 주어집니다.


STEP 1. 가치카드 선택 & 호패 만들기


참가자는 ‘인의예지신’의 다섯가지 가치 중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를 1위부터 5위까지 선택해 가치카드 뒷면에 스티커를 붙입니다. 자신의 호패 앞면에는 이름을 적고, 뒷면에는 자신이 고른 1순위 가치를 적은 뒤 그 밑에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의 의미를 붓펜으로 적으면 기본적인 게임 준비는 완료됩니다.

<인의예지신 가이드>



STEP 2. 문장찾아 가치 맞추기


게임 시작 전 참가자들이 마을 탐방을 하는 동안, 스태프 두 명은 조심스레 뒤따라오며 마을 곳곳에 조선왕조실록에서 발췌한 30개의 문장들을 붙여 놓았습니다. 참가자는 곳곳에 붙어있는 문장을 찾아 자신의 호패(이름이 적힌 면)와 함께 찍은 후(참가자 1명이 문장을 찍은 후 사진을 공유하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 이 문장이 의미하는 가치를 담당 진행자에게 카톡으로 보내 가치를 맞추면 점수를 획득합니다.

점수 시스템은 기본 점수 10점, 자신의 1순위 가치에 맞는 문장이면 20점, 처음으로 문장을 찾으면 점수의 2배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1순위 가치를 처음으로 찾으면 한 문장으로 40점까지 획득할 수 있지요) 억지로 가치를 부르는 걸 막기 위해 가치를 맞추는 기회는 2번으로 제한했고, 이 점수 시스템의 운영을 위해 세 명의 스태프가 인간 서버가 되어 일일히 카톡으로 정답 체크를 해주고 실시간으로 점수를 기록했습니다.

+) 상소 찬스


덧붙여 ‘상소 찬스’라는 것도 있었는데요.각 문장과 가치의 연결이 주관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참가자가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가 답이 아닐 경우 그에 해당하는 이유를 상소로 제출해 통과하면 특별 보너스 점수를 획득하게 됩니다. 혹시나 너무 많은 사람이 상소를 올릴까봐‘무효한 상소’를 3건 이상 걸게 되면 벌칙을 수행하는 것까지 정해놨는데,날씨도 춥고 상소를 쓰느라 긴 시간을 소모하기 보다는 다른 문장을 맞추는 게 더 나았는지, 게임 시간을 통틀어 상소는 3건 밖에 접수되지 않았습니다.


STEP 3. 다같이함께 타임


20분 정도 ‘문장찾기’시간 후 ‘다같이함께’ 타임을 가졌습니다. '다같이 함께' 타임은 진행자가 단체 대화방을 통해 특정 장소에 참가자들이 모여서 해야하는 미션을 주는 시간인데요. 잠깐이라도 다른 참가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을 통해 개인전이 가지는 단점을 보완하고, 계속해서 문장을 찾고 맞추는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한 목적으로 준비했습니다. 미션에 성공한 참가자는 50점의 특별 점수를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 특별 문장 배포

(기획단이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지어낸 문장입니다)

일단 게임이 시작되면 플레이어들은 원래 게임의 목적(사도세자를 살릴 것인지 죽게 내 버려 둘 것인지 선택하는 것)을 잊고 게임 점수를 획득하는 데만 몰입하게 됩니다. 목적을 환기시킬겸, 조선왕조실록의 문장만으로는 전달되지 않는 배경도 전달할 겸, 위와 같은 ‘특별문장’을 ‘다같이 미션’ 타임이 끝난 이후에 단체대화방에 올렸습니다.


STEP 4. 문장 수거 타임

[문장찾기 타임(약 15~20분)-다같이 함께 타임(약 15~20분)]을 세트로 2회 진행한 후 마지막으로 진행되는 문장찾기 시간에는, 문장을 수거해오는 사람에게 추가 15점씩 주는 조항을 추가해 스태프의 힘을 들이지 않고 문장을 수거할 수 있었습니다.


STEP 5. 상소문 작성


마지막 문장 찾기 타임이 끝난 후 참가자들은 본부로 돌아와 영조에게 올리는 상소문을 작성합니다.이 때 상소문에 들어가야 할 내용은,
1)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지
2) 많은 문장을 보면서 어떤 걸 느꼈는지
3) 결론적으로 사도세자의 죽음을 옹호하는지 반대하는지
를 적는 것이었습니다.이후 상소문을 각자 발표하고, 최종 투표 시간을 가진 후 게임은 종료됩니다.

상소문은 기획하면서 가장 걱정하던 부분이었는데, 의외로 다들 명문의 상소를 써내 놀라웠습니다.
상소문에서는 참가자 7명 중 사도세자 옹호파(살리자)가 4명, 반대파(죽이자)가 3명으로 꽤 팽팽한 접전이었는데, 옹호파의 상소가 반대파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3명의 스태프까지 포함해 실시한 최종 투표에서는 옹호파 7명, 반대파 3명으로 사도세자를 살리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이후에는 참가자들이 선택한 최고의 가치를 발표하고(‘의’가 4명, ‘신’이 3명 나왔습니다) 득점왕(가장 점수를 많이 받은 사람)과 상소문왕(투표를 통해 가장 설득력있는 상소문을 썼다고 선정된 자)에게 ‘조선왕조실록’ 책을 선물로 수여하는 시간을 가지며 약 3시간 동안의 사도세자 게임을 마무리했습니다.

회고.


피엑스디에서는 프로젝트가 끝나면 ‘레트로스펙티브’라는 회고 과정을 거치는데요, 사도세자 게임 기획단도 간단히 점심을 먹으며, 이번 게임의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논의해 보았습니다.

Player Feedback :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연관이 있는 장소에서 게임을 진행했다보니 몰입도가 엄청났던것 같아요"

- 수원에서 진행하기로 먼저 결정하고 게임 주제를 생각하다가 역사적으로 관련있는 ‘사도세자’를 선택한 거였다. 하지만 기획하면서 실제 연관도가 크지는 않아서 걱정했는데, 참가자들이 몰입해줘서 다행이다.
- 어느 정도 역사적 부분과 연관은 되지만 실제 문장이 붙어있는 장소는 별로 연관성은 없었다. 장소와 게임 메커니즘의 연결이 긴밀하지 못했던 건 아쉽다. “이 게임을 다른 장소에서 하더라도 똑같이 재밌지 않았을까” 라는 플레이어의 피드백도 있었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한계는 있다고 본다.
- 수원 화성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현대 도시의 공간이 주요 필드였다. 일상적 공간도 게임 속에서는 특별한 필드로 만들 수 있었다는 걸 확인한게 즐거웠다

Player Feedback : “필드가 너무 넓어 이동하는데 힘들었다"

- 다소 미안했던 부분이다. 심지어 버스타고 이동했다는 사람도 있더라.
- 필드가 넓긴 했지만, 문장을 찾느라 몸을 움직인다는 것이 일종의 게임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의 역할을 했다고 본다. 또, 뛰어논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 이번 게임의 장점 중 하나가 육체적 유희와 지적 유희를 조화시켰다는 거라고 본다. ‘문장찾기’가 육체적 놀이라면, 문장에 담긴 가치를 맞추고 나중에 자신의 의견을 상소문으로 써내는 건 지적 놀이다.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있는 게임이라는 점이 좋다.

Player Feedback : “문장의 답이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어요"

- 기획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었다. 가치를 매칭시키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가치를 유추할 수 있는 키워드도 주고, 문장을 쉽게 해석한 버전의 글도 추가했지만 여전히 걱정되었다. 어렵다고 느끼긴 했지만, 사람들이 꽤 잘 맞추었던 게 신기했다.
- 답에 해당하는 가치를 선정하는 과정은 기획자의 주관이 많이 작용하는 부분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사실(fact)을 기록한 문헌이기 때문에, 가치와 연결하는 데에 분명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다. 참가자 입장에서 당연히 느낄 수 있는 불만이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상소 찬스’를 추가했던 것이었다.
- ‘상소 찬스’는 참 매력적인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게임은 참가자가 룰에 도전하지 못하는데, 이 방식을 통해 참가자는 능동적으로 게임의 룰을 받아들일 수 있다. 날씨가 추워서 그랬는지, 내용이 어려워서 그랬는지 많은 상소가 오지 않았던 게 오히려 아쉬웠다.

기타 의견

- 플레이어가 보내는 문장을 보면 현재 플레이어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이를 참고하면서 ;중간중간 문장을 붙인 장소를 사진으로 보내줘 힌트를 주었는데, 이를 통해 사람들의 동선을 컨트롤 할 수 있는게 신기했다.
- 게임이 단순히 문장을 찾고 맞추기로 끝났다면 보물찾기와 퀴즈를 결합한 단순한 게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상소문 쓰는 시간을 통해 게임 전반에 거쳐 참가자가 얻게 된 역사적 단서들을 자신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더 나아가 게임을 회고하는 기회를 주었던 게 좋았다고 생각한다.

다음에 다시 한다면.

- 인간 서버 시스템도 그 나름의 장점(재치있는 응답)은 있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QR코드나 NFC를 이용해서 문장을 읽고 답을 맞출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서 진행한다면 좀 더 많은 사람이 할 수 있을 것 같고, 점수 제공도 좀 더 세분화해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
- 다양한 성향(연령층, 직업 등)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면 어떨까 궁금하다. 이번 게임 참가자는 거의 20대 초반이어서 즐겼던 것 같은데, 나이가 많은 분들은 어떻게 반응할지, 반대로 어린 학생들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학생을 대상으로 했을 때 이 게임이 진짜 역사 학습의 가질 수 있을지 한 번 실행해보고 싶다.
- 사람이 많아지면 상소문 쓰기 시간이 다른 방식으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예를 들어 단체로 과거 시험을 보는 방식처럼 바꾸면 더 재밌을 것 같다.
- 게임 도구(호패, 가치카드, 문장 종이 등) 디자인은 아쉬움이 좀 있다. 다음번에 한다면 도구 퀄리티를 좀 높이고 싶다.


마치며.


따뜻한 봄날, 근교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이라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화성과 아름다운 벽화골목이 있는 수원 행궁동을 추천합니다 :) 단기간에 재미있는 워크샵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준 놀공발전소의 '파우스트 게임'과 게임의 본부 역할을 했던 공간을 대여해주신 대안공간눈의 이윤숙 대표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