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7. 07:50ㆍ리뷰
"에디터 :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것을 골라내는 사람"
디자이너라면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매거진 B를 출간한 <Reference by B>에서 직업관을 다룬 책을 냈다. 첫 직군은 바로 '에디터'이다. 어떻게 보면 에디터는 디자이너와 접점이 많은 직군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다양한 일을 경험한 다섯 명의 에디터를 인터뷰의 형식으로 조명한다.
편집 측면에서 보자면, 책 편집이 정갈하고 감각적으로 구성되어있다. 책 판형이 크지 않은 편이라 책 내용을 구성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책의 내용도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책은 에디터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조수용 매거진 B 발행인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조수용 발행인도 결국 에디터이다. 조수용 발행인의 인터뷰를 읽으며 왜 이 책을 기획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직업 소명 의식과 직업관을 살짝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인상 깊은 구절 몇 문장을 적었다.
돌이켜 보면 제가 만났던 사람들 중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노력을 굉장히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자기 일을 더 좋아하기 위해서 (p.21)
세상 속에서 내 역할은 이거다라고 존재의 의미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건강한 삶이 가능하고 회사 안에서든 밖에서든 그렇게 소명 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잘돼요. (p.22)
내가 누구이고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만 명확하게 전달하면 모든 것이 풀리는 거죠. 모든 일의 원점인 '나는 어떤 사람이냐'라는 것. 그것이 성패를 가르는 것 같아요. (p.30)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난 인상 깊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편의상 사람별이 아닌 내용별로 묶었음을 밝힌다.
1. 에디터는 어떤 직업인가? 에디터의 역할은?
에디터는 어떤 직업일까. 일반적으로는 전통적인 책이나 잡지 그리고 신문을 출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에디터라고 생각한다. 잡지의 경우만 보자면 보통 월간이 기본이기 때문에 월별로 굉장히 타이트하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요즘에는 손으로 만져질 수 있는 성질의 것에서 벗어난 디지털 매체까지로 에디터의 역할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반면 웹, 앱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등 소셜 채널까지도 그 역할이 세분화되고 있다.
에디터란 다양한 것을 모으고 또 모아서, 그 안에서 좋은 정보를 골라 정리하고, 알기 쉽게 정리하는 직업입니다. (p.254)
소비자의 행동 분석을 통한 제안은 물론 훌륭한 방법입니다만, 그들이 좋아하는 세계에만 매몰되어선 안 됩니다. 흥미롭고 새로운 이야기, 독자가 미처 몰랐던 세계를 발견해서 소개하는 일 역시 에디터의 역할이자 이 직업의 고유 매력 중 하나입니다. (p.57)
요즘은 누구나 에디터가 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누구든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으로 글과 이미지를 편집해서 많은 사람에게 전파할 수 있죠. (p.28)
콘텐츠 소비 측면에서도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라오는 콘텐츠보다 인스타그램 스토리 메뉴가 훨씬 강력하고 이를 접하는 사용자의 수도 많습니다. (p.50)
브루터스 웹사이트 이야기를 하며 - 별생각 없이 읽어 내려가던 중에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브루터스>를 편집할 수 있는 형식이죠. 즐겨찾기 페이지에 좋아하는 기사를 저장할 수 있는데, 그걸 한데 묶으면 나만의 브루터스가 완성됩니다. (p.252)
2. 에디터의 자질은?
에디터는 디테일에 강해야 한다. 그리고 주변에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에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즐겁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직업 특성상 특정 기간에 야근이 많은 직업이므로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어느 직군보다 중요한 직업이다.
콘텐츠를 제작할 때 정보를 알리고(Inform), 마음을 움직이고(inspire), 보는 사람을 즐겁게(Entertain) 해야 합니다. (p.46)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거의 모든 것에 '노'라고 대답하지 않는 것입니다. (p.66)
'당신 팔의 타투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저 사람은 어떤 잡지를 읽을까' 디테일을 생각하고 궁금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p.67)
물론 세상의 모든 가게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제가 좋아할 만한 가게가 세상에 더 많았으면 좋겠고, 지속 가능하면 좋겠어요. 여기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책을 만들고 있어요. (p.126)
거의 매일 빵이 다 팔릴 정도로 인기 있는 곳이었는데, 알고 보니 수익이 1백만 원 내외라고 하더라고요. 자기 빵 원가를 모른답니다. 알고 나면 넣고 싶은 재료를 못 넣을까 봐 일부러 값을 알아보지 않는데요. (p.128)
그래서 이번 책의 부제가 '하고 싶은 일 해서 행복하냐 묻는다면?'이었죠. 줄여서 '사표 쓰면 행복한가?' (p.141)
3. 에디터와 팀워크에 대해서
에디터도 사람이기 때문에 협업함에 있어 어떤 사람과 일을 하냐가 중요하다. 촌각을 다투는 일이 많기 때문에 팀워크가 더더욱 중요하다. 협업과 팀워크에 대한 에디터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새로운 팀원을 채용할 때 당연하겠지만 그가 일을 잘할지가 우선이고요. 다른 동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을지, 우리가 그 사람을 좋아할지 등을 고려합니다. 일을 환상적으로 잘한다고 해도 다른 팀원들과 함께 일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적합한 인물은 아닙니다. (p.51)
제가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을 모아 그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최고더군요. 그게 말은 쉬운데 팀원들에게 믿고 맡기는 게 어려웠어요. (p.146)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다룬 인터뷰 대상은 다음과 같다. 대상별로 짧은 문장으로 소개를 하고 있지만, 각자가 각자의 영역에서 진심을 다해 일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01 제러미 랭미드 | 제러미 랭미드는 신문과 잡지 등 전통 미디어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커머스와 테크 영역으로 진출한 영국의 스타 저널리스트이다. 그는 자신이 경력을 쌓는 동안 전반적으로 운이 좋았다고 회상하며 늘 새로운 시도에 긍정적인 태도로 임했다고 말한다. 현재 남성 전문 이커머스 미스터포터의 브랜딩과 콘텐츠 디렉팅을 총괄하고 있다.
02 사사키 노리히코 | 사사키 노리히코는 역사 깊은 출판사인 동양경제신보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현재 비즈니스 뉴스 플랫폼 뉴스픽스의 최고 콘텐츠 책임자를 맡고 있는 일본의 젊은 편집자이자 경영자이다. 그는 사람과 일, 서비스나 재화를 연결하는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편집의 과정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말한다.
03 조퇴계, 이지현 | 조퇴계는 컨설팅, 금융사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기업에서 로컬 숍으로 시야를 돌려, 퇴사 후 2016년 로컬 숍 연구 잡지인 <브로드컬리>를 창간했다. 이지현은 현재 금종각의 대표 디자이너로 활동을 병행하며 <브로드컬리>의 디자인을 담당한다. 부부이기도 한 이 둘은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의 책이 없어서 이를 직접 만들었다고 하며, 자기가 궁금해하는 것을 직접 취재하는 식의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04 김뉘연 | 김뉘연은 잡지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해외 문학으로 유명한 출판사 열린책들을 거쳐 현재 워크룸 프레스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기존에 미술/디자인 출판에 주력하던 워크룸 프레스가 본격적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데는 김뉘연의 취향이 반영된 기획인 문학 총서 '제안들'의 역할이 컸다. 그는 '제안들'이 백지상태에서 총서의 새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회상하며, 요즘은 더 나은 선택을 위해 총서의 선서 기준을 더 유연하게 가지려 한다고 말했다.
05 니시다 젠타 | <브루터스>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까사 브루터스>의 창간에 참여한 니시다 젠타는 카피라이터 출신이다. 그는 카피라이터로 일하는 동안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사람들에게 묻고 공부한 후에 기획의 디테일을 정하는 방법이 지금의 <브루터스>, <까사 브루터스>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며, 에디터들에게 호기심을 남에게 전가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이 글은 위승용 uxdragon의 브런치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