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기술이 가져다줄 '덕질'의 미래

2023. 2. 14. 13:15Blockchain UX 이야기
Yoonyoung Jung

들어가며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해 그와 관련된 것들을 파고드는 행위를 일컫는 말

검색을 통해 찾을 수 있는 ‘덕질'의 정의입니다. ‘덕심(덕후의 마음)’ ‘어덕행덕('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하게 덕질하자'의 줄임말)’ ‘덕밍아웃(자신의 덕후 성향을 주위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것)’ 등 여러 파생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덕질은 이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습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다양한 것에 애정을 갖고 몰입해온 ‘덕후(팬)’입니다. 좋아하는 가수의 무대를 보기 위해 음악 방송이 시작되기를 설레며 기다린 기억이 있습니다. 첫 스마트폰이 생긴 후에는 하굣길 버스 안에서 팬카페나 관련 기사를 찾아보기도 했고요.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플랫폼에 쉴 새 없이 올라오는 관련 콘텐츠를 즐깁니다. 라이브 방송이나 댓글 등을 통해 그들과 실시간으로,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요. 그들이 제공하는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팬으로서 직접 콘텐츠를 가공 및 공유하거나 함께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등 요즘의 덕질은 매우 풍부졌습니다. 

이처럼 팬과 덕질 대상(창작자) 사이의 친밀도가 높아지는 것이 체감될 정도로 덕질이 발전하게 된 중심에는 당연하게도 기술의 발전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블록체인 기술과 함께 변화할 덕질의 미래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블록체인 기술이 덕질 문화를 만나면?

창작자가 제공하는 창작물을 중심으로 팬들이 즐거움과 가치를 느끼고, 그들을 응원 및 지원하는 커뮤니티를 구축해 두터운 신뢰를 쌓는 것이 덕질의 기본적인 구조라 생각됩니다. 다시 말해 창작자가 지속 가능한 창작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팬들과의 깊은 관계를 맺고 집단의 결속력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Fan Token(팬토큰)은 덕질의 이러한 특징과 밀접하게 연결된 블록체인 개념으로 스포츠 팀, 뮤지션, 게임, 창작자 등의 팬덤에게 창작물 및 커뮤니티 접근권과 팬 활동에 대한 보상을 제공하기 위해 디자인된 토큰의 한 종류를 의미합니다. 즉, 덕질 대상은 토큰 발행 주체가 되고 팬들은 토큰 보유를 통해 팬 활동에 대해 보상을 받게 되는 형태입니다.
* 구글 검색 시 이와 유사한 개념을 지칭하며 다양한 용어들(ex. Social Token, Personal Token, Creator Token 등)이 확인되는데,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해당 글에서는 ‘팬토큰'으로 용어를 통일했습니다.

먼저 발행 주체가 돼 팬토큰 도입을 시도한 분야를 사례와 함께 보겠습니다.

스포츠

코로나19로 인해 경기장 내 관중 입장이 불가능해지면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자 유럽의 메이저 축구 구단들은 또 다른 수익화 및 팬들의 경험 유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떠오른 것 중 하나가 팬토큰입니다.

출처: marca.com

스포츠 팬토큰은 일반적으로 체인이 스포츠 팀과 파트너십을 체결해 토큰을 발행하고, 토큰 유틸리티 제공을 위한 서비스까지 플랫폼으로서 지원하는 구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팬(홀더)들에게 혜택이 되는 토큰 유틸리티 또한 플랫폼의 특성을 따르게 됩니다. 팬토큰마다 팀과 관련된 독점 콘텐츠, 상품, 오프라인 경험 등에 대한 접근권과 팀 운영 관련 의결권이 주요한 혜택으로 제공되는 것은 비슷하지만, 각 플랫폼이 제공하는 서비스에서 팬 경험의 차이가 생깁니다. 대표적인 두 팬토큰 플랫폼인 Socios.com와 Binance Fan Token을 통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출처: socios.com

Socios.com는 Chiliz에서 만든 스포츠, e스포츠, 엔터테인먼트 팬들을 위한 블록체인 기반 팬 참여 플랫폼입니다. 초반에는 축구 구단을 위주로 파트너십을 맺어 토큰을 발행했으나 아이스하키, 농구, 미식축구, eSports 등 종목으로 확장하며 다양한 팬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팬토큰 플랫폼의 선두 주자이지요.

앱 중심으로 제공되는 Socios.com의 서비스는 팬이 보유한 토큰의 팀과 관련된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제공합니다. 팀에 관한 상식 퀴즈나 경기 시작 전 결과에 대한 예측 게임, 무료 토큰 헌팅 AR 게임 등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상호 작용마다 별도의 로열티(충성도) 토큰, 팬 프로필을 '레벨업' 할 수 있는 경험치 포인트(XP)나 배지를 지급하며, 이는 오프라인 이벤트, 독점 굿즈, VIP 경험과 같은 혜택에 접근율 높여주는 보상이 돼 팬들의 리텐션을 강화합니다.

출처: binance.com/en/fan-token

Binance Fan Token은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가 운영하는 팬토큰 전용 플랫폼입니다. 플랫폼과 계약을 맺은 스포츠 팀은 네 곳(축구 클럽 3, 레이싱팀 1)에 불과하지만, 바이낸스 거래소 규모에 힘입어 네 팀 모두 팬토큰 시가 총액의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팬 경험 측면에서는 NFT 활용이 두드러집니다. 토큰 보유자들만 거래할 수 있는 팀의 NFT 컬렉션을 따로 발행하거나, 팬토큰 유틸리티를 통해 참여한 이벤트(ex. 구단 경기장 방문, VIP 경험 등)에 대한 참여 증명 NFT를 지급해 블록체인 공간에서 팬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게 해줍니다. 또한 보유 NFT를 충전해 추가 팬토큰 및 경험치 포인트 보상을 획득할 수 있는 NFT Powerstation*(*일정 기간 동안 보유 NFT를 거래하지 못하도록 묶어두는 기간 한정 이벤트성 기능)처럼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에 게임화 요소를 접목시킨 기능 제공을 통해 팬들이 재밌고 쉽게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 대해 충성도를 표현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처럼 스포츠 팬토큰은 경기장 밖에 있는 팬들의 팀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기에 효과적이고 새로운 수단처럼 보입니다. 다만 오프라인에서 느낄 수 있는 현장감이 여전히 가장 중요한 스포츠의 특성상 경기장으로 팬들이 돌아가기 시작한 시점을 고려했을 때 팬들이 더욱 실질적인 혜택으로 체감할 수 있는 방향이 고민돼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컨대 현재 수준으로는 ‘구단 버스 디자인 정하기’ ‘주장 완장 문구 정하기' 등 사소한 투표 항목으로 제한된 거버넌스를 확장하는 방식처럼 말입니다.

개인 창작자

스포츠 분야에서는 축구 클럽을 위주로 특정 팀에 대한 팬토큰이 활성화된 한편, 개인이 토큰을 발행하고 이를 매개로 커뮤니티가 결집하는 실험적인 사례도 있습니다. 흔히 알고 있는 인플루언서, 아티스트와 같은 1인 창작자나, 전문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개인이(주로 토큰 발행 및 운영 지원 플랫폼과의 협업을 통해) 발행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다음 두 사례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rac.fm

André Anjos는 RAC이라는 가명으로 활동 중인 그래미 수상 프로듀서이자 토큰을 활용해 팬덤을 강화하고 있는 대표적인 창작자입니다. 그는 아티스트와 커뮤니티가 직접 크리에이티브 오너십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Zora와 협업해 $RAC을 발행합니다. $RAC은 구매할 수 없으며 Bandcamp, Patreon, Twitch 등 플랫폼에서 André를 후원한 팬에게만 주어집니다. 결국 팬활동에 기반한 적립만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홀더 한정 디스코드 채널에 대한 접근권, NFT 특전 및 선구매권, 굿즈 할인 등 혜택으로 연결해 충성도 높은 팬들에게 확실한 보상을 제공합니다.

출처: alexmasmej.com

Alex Masmej는 크립토 씬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업가입니다. 블록체인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벌인 Alex는 자신의 다음 프로젝트를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하려 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수입이 없어지는 상황에 부닥칩니다. 이에 Alex는 이주 및 창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발행한 $ALEX를 판매하는 실험적인 시도를 합니다. 토큰 구매자에게 향후 3년 동안 10만 달러 한도 내에서 자신이 벌어들이는 수익의 15%를 토큰 보유량에 따라 차등을 둬 나눌 것을 약속하면서 말이죠. 실험은 불과 100여 시간 만에 2만 달러 상당의 토큰을 판매하며 성공을 거둡니다. 이후 Alex는 월간 뉴스레터를 발행하거나 프라이빗 텔레그램 그룹에 대한 참여 권한을 주는 등 토큰 구매자들을 대상으로 한 혜택을 추가합니다. 더불어 한 달 동안 ‘매일 5km 조깅하기' ‘고기 섭취 금지' ‘6시 기상' 등과 같이 자신의 일상과 관련된 항목에 홀더들이 의사 결정을 대신하도록 투표를 진행하며 토큰 유틸리티 확장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이밖에도 개인이 발행 주체가 되는 여러 시도가 보였으나 실상 높은 시가 총액을 유지하거나, 커뮤니티가 눈에 띄게 활성화된 경우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이에 대해 창작자 또는 브랜드 토큰 발행 지원 플랫폼인 P00LS의 설립자(Hugo Renaudin)는 “창작자가 이미 진행하고 있는 모든 활동에 토큰을 통합시키는 것이 가장 어려우며, 새로운 콘텐츠나 제품이 나올 때마다 토큰 홀더에게 돌아갈 이익이 무엇인지 확실히 하는게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과도기적 난점 외에도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가치로 값이 결정되는 자산인 만큼 창작자의 가치를 홀더들로 하여금 신뢰할 수 있는 형태로 전달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입니다.

 

A ‘Tokenized Community’

이런 사례들을 종합해보면 팬토큰은 창작자가 제공하는 창작물, 배타적인 소통 공간과 더불어 일부 의사 결정에 대한 권한 및 그들을 지원하는 활동에 따른 금전적 보상까지 더해진다는 점에서 기존 덕질을 극대화하고 상호 간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구조처럼 보입니다. 팬이 됐을 뿐인데 보상을 얻는다니, 아무래도 잇따른 지출만 발생하고 단순 소비자로 머무른다는 덕질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른 생소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덕질에 대한 관점을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작물의 기획 및 유통 과정에 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창작자의 성장에 핵심적인 역할로 진화 중이라는 사실은 기존 덕질에서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음악 산업에서는 가수의 생일, 신규 앨범 발매,  콘서트 등 이벤트에 맞춰 팬들이 주도해 실행하는 소셜 미디어 해시태그 트렌딩 캠페인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창작자가 등장하는 영상의 재밌는 부분을 직접 밈(meme)으로 편집하고 활용해 놀라운 전파력을 보이며 새로운 팬 유입에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팬덤의 영향력은 제작사와 유통사 측에서 먼저 알아보기도 하며, 이의 일환으로 일부 미디어 플랫폼은 종종 콘텐츠 제작에 앞서 팬들의 의견을 수집해 기획 방향성이나 섭외할 스타를 결정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봤을 때 단순 애정 표현을 넘어 다양한 경제적, 관계적 부가가치까지 창출하며 창작자를 지원하는 이해관계자로 자리 잡은 팬들에게 더 많은 보상을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덧붙여 기존의 ‘팬덤 경제'와 ‘창작자 경제'를 확장하면 지금까지 살펴본 팬토큰의 발전 양상과 많이 맞닿아 있습니다. 팬활동과 창작활동을 통해 서로의 관계를 강화하고, 이에 따른 수익을 공유하며 커뮤니티로서 자생적인 경제 구조를 만들어가는 모습으로 말이죠. 

다시 말해 블록체인 기반의 덕질은 발행 주체인 창작자를 중심으로 결집한 커뮤니티가 토큰화되고, 토큰 보유를 통해 곧 해당 커뮤니티의 일부를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팬들은 커뮤니티의 이익과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커뮤니티를 둘러싼 경제 구조의 한 축으로 적극적인 참여까지 하는 것이고요.

 

마치며

지금까지 살펴본 팬토큰의 실사용 행태는 토큰화된 커뮤니티의 구성원에게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독점 혜택이나 참여에 대한 권리를 제공하는 수단에 가깝습니다. 이와 같은 혜택이나 권리는 곧 토큰의 가치와 연동돼 커뮤니티에 환원되고, 결국엔 모두가 함께 누리는 수익이자 성장이 되는 것이고요. 그 때문에 팬토큰을 수단으로 한 미래의 덕질 경험은 아래 항목에 대해 서로의 로열티를 높이는 방향으로 구체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 창작자와 팬 간의 관계 형성 및 소통
2) 팬(홀더)들에게만 제공되는 차별적인 콘텐츠 참여 기회
3) 팬들의 창작자 지원을 위한 활동과 충성도 표현 방법
4) 상호 간의 활동이 모두의 성과로 돌아가는 정교한 토크노믹스

그리고 그 과정은 '함께하는 성장이란 무엇인지'에서부터 시작해서 관계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노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