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8. 07:00ㆍUX 가벼운 이야기
들어가는 글: Flat Design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모바일 UX 디자인의 세계는 지금 조용하지만 거대한 지각 변동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가까이 우리 눈을 지배해 온 깔끔하고 단순한 플랫 디자인(Flat Design)의 시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그 빈자리는 마치 현실 세계의 유리나 액체처럼 생생한 '물리적 질감(Materiality)'과 깊이감 있는 '공간(Space)'이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UX 리서처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변화는 단순한 레트로 트렌드가 아닙니다. 이것은 다가올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 시대를 위한 전략적 패러다임 전환입니다. 하지만 모든 변화에는 진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과연 이 새로운 물결은 사용자에게 어떤 '마법'을 선사할까요? 그리고 그 화려함 뒤에 숨겨진 다양한 사용성의 문제는 없을까요?
1. 효율성에서 다시 직관성으로
UX 디자인, 그중에서도 특히 UI의 시각적 변화는 마치 진자(Pendulum) 운동을 하는 것 같아요. 시대에 따라 효율성과 재현성(현실을 닮은 정도) 사이를 오가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1) 스큐어모피즘의 유산: "이게 무슨 버튼인지 알려줄게"
초기 스마트폰 시절의 스큐어모피즘(Skeuomorphism)은 가죽 다이어리나 볼록한 계산기 버튼처럼 현실의 물건을 그대로 모방했습니다. 이는 촌스러운 것이 아니라, 터치 인터페이스가 낯선 사용자들에게 기존의 멘탈 모델(Mental Model)을 빌려주어 학습 비용을 줄여주는 핵심적인 기능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 플랫 디자인의 한계와 회귀
이후 등장한 플랫 디자인은 불필요한 장식을 걷어내고 정보의 효율성을 극대화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어디가 누를 수 있는 버튼이고, 어디가 텍스트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어포던스(Affordance, 행동 유도성)의 모호함을 낳았습니다.
이제 디자인은 XR(확장 현실) 환경의 등장과 고성능 디스플레이 기술을 등에 업고 다시 재현성을 복원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용자의 인지적 마찰(Cognitive Friction)을 줄이고, 미래 XR 환경과의 경험적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입니다.
2. 새로운 UX의 두 기둥: 공간(Space)과 유동성(Fluidity)
이번 변화의 핵심은 '공간 개념의 도입'과 '유기적 질감의 복원'입니다. 흥미롭게도 양대 산맥인 Apple과 Google은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A. 공간의 확장: Z축을 활용한 위계
2D 화면에 3차원 공간의 깊이(Depth)와 Z축(Elevation) 개념이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습니다.




- 플로팅 UI (Floating UI): 내비게이션 바가 공중에 뜬 것처럼 표현되어, 콘텐츠와 조작부를 명확히 분리합니다.
- Apple의 접근: 요소가 창밖으로 돌출(Pop-out)되며 굴절 효과를 주어 위계를 만들고 VisionOS와의 통일성을 강조합니다. VisionOS에서 환경 주변으로 UI요소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던 것처럼 iOS에서는 빛과 그림자의 방향이 기기를 기울이는 방향에 맞춰 빛이 이동함으로써 실제 외부 세계의 공간과 모바일이 연결된 감각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 Google (M3)의 접근: UI 요소의 입체감은 오히려 줄어들고, 평면적이지만 그림자와 톤 변화를 통해 0~+5까지의 물리 법칙에 기반한 위계를 설정합니다.
B. 질감의 부활: Liquid Glass vs Expressive
AppleiOS 26 “Liquid Glass”
Google Android “Material You” Expressive
| 비교 요소 | Apple (Liquid Glass) | Google (M3 Expressive) |
| 핵심 콘셉트 | 광학적 현실감 | 형태적 유연성 |
| 시각적 특징 | 투명도, 블러(Blur), 빛의 굴절 | 과감한 곡선, 다이내믹 컬러, 형태 변형 |
| 모션 | 끈적하고 탄성 있는 스프링 물리 효과 | 터치에 따라 주변이 함께 반응하는 유기적 움직임 |
| 목표 | XR 환경과의 연속성 확보 | 사용자의 감성 자극 및 인지 속도 향상 |
참고: Google의 연구에 따르면, M3 Expressive 디자인은 사용자가 주요 UI 요소를 식별하는 속도를 최대 4배 빠르게 만든다고 합니다.
3. 화려함과 사용성 사이의 충돌
하지만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특히 닐슨 노먼 그룹(NN/g)과 같은 전문 기관들은 화려함이 기본기를 해치고 있다고 강하게 경고합니다.
1) "깨진 유리(Cracked Glass)": 화려함이 사용성을 덮다
NN/g는 최근 "Liquid Glass는 깨졌다(Liquid Glass Is Cracked)"라는 칼럼을 통해, Apple의 새로운 디자인 언어가 '스펙터클'을 위해 '사용성'을 희생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김 서린 창문' 효과: 화려한 블러(Blur)와 반짝임 효과는 사용자의 시선을 강탈하여 정작 중요한 콘텐츠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NN/g는 이를 두고 "멀리서 보면 예쁘지만, 막상 보려 하면 답답한 '김 서린 창문(Fogged-up window)'과 같다"라고 묘사했습니다.
- 가독성 붕괴: 복잡한 배경 위에 반투명한 패널이 겹치면서 텍스트 대비(Contrast)가 WCAG(웹 접근성 가이드라인) 기준 미달로 떨어지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이로 인해 사용자는 텍스트를 읽기 위해 '투명도 줄이기' 같은 접근성 설정을 켜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입니다.
- 관습의 파괴: 시각적 새로움을 위해 익숙한 내비게이션 바를 숨기거나 과도한 제스처를 요구함으로써, 사용자가 이미 학습한 인터페이스 사용법을 다시 배우게 만드는 불필요한 인지적 부하를 발생시킨다고 지적했습니다.
2) 공간 효율성의 저하 (Google)
M3 Expressive는 "만화처럼 과하게 커 보인다(Cartoonishly oversized)"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버튼과 헤더가 커지면서 한 화면에 볼 수 있는 정보량(Density)이 줄어들었습니다. Google은 "빠른 인식"을 주장하지만, 사용자는 "스크롤의 피로"를 호소합니다.

"그렇다면 왜 Apple과 Google은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변화를 밀어붙이는 걸까요?" 여기에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선 3가지 필연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4. 첫 번째 이유: XR 시대를 위한 물리적 닻
우리는 왜 하필 지금, XR(확장 현실) 시대의 도래와 함께 모바일 화면에서 다시 '시각적 촉감'을 찾게 되었을까요? 여기에 중요한 관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모바일 기기가 가진 '물리적 실체(Tangibility)'입니다.
허공을 가르는 손짓 vs 손끝에 닿는 유리
Vision Pro와 같은 XR 기기는 무한한 공간감과 몰입감을 제공하지만, 사용자는 허공에 손짓(Air Gesture)을 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만지는 느낌'이 빠져 있습니다. 반면, 스마트폰은 우리가 손에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차가운 유리를 직접 누르는 물리적 기기입니다.
시각적 촉감, 물리적 경험을 완성하다
최근의 UI가 유리의 질감이나 젤리 같은 유동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모바일이 XR 기기와 차별화되는 지점인 '실제 만질 수 있음'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하기 위함입니다. 화면 속 버튼이 진짜 유리나 물방울처럼 보일 때, 사용자가 손끝으로 느끼는 스마트폰 액정의 감각에 시각적 경험이 더해지게 됩니다. 이는 모바일이 둥둥 떠다니는 가상 공간(XR)과 현실 세계(User)를 이어주는 단단한 닻(Anchor) 역할을 수행하게 함으로써, 기기의 존재감을 증명하려는 시도입니다.
5. 두 번째 이유: 심미적 사용성 효과
전문가들의 많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들이 이 변화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는 이유는 심리학적 원리인 심미적 사용성 효과(Aesthetic-Usability Effect) 때문입니다.
"예쁜 것이 더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용자는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디자인을 볼 때, 사소한 사용성 문제를 더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1995년 구로스(Kurosu)와 카시무라(Kashimura)의 연구에서 입증되었듯, "보기에 좋은 디자인은 실제로도 사용하기 편하다"라고 느끼게 만드는 인지적 편향이 작용합니다.
- 감성적 연결: 돈 노먼(Don Norman)은 《이모셔널 디자인》에서 "매력적인 것은 더 잘 작동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기능적으로 상향 평준화된 시장에서, 긍정적인 감정은 사용자의 문제 해결 능력을 높이고 제품에 대한 애착을 형성합니다.
- 주의력 경제(Attention Economy): 수많은 정보 속에서 반짝이는 '유리'와 깊이 있는 '공간'은 사용자의 시선을 0.1초라도 더 머물게 만드는 강력한 시각적 훅(Visual Hook) 역할을 합니다.
6. 세 번째 이유: 플랫폼의 지배 전략
마지막으로, 이 변화는 플랫폼(OS)이 생태계를 통제하는 가장 효율적인 전략적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코드 한 줄의 마법(Just One Line of Code)"
Apple은 개발자가 .glassEffect() 코드 한 줄만 추가하면 시스템 수준의 '유리' 질감을 입힐 수 있게 했고, Google은 배경 화면 색상을 추출해 앱 전체를 물들이는 'Dynamic Color'를 제공합니다. 이는 개발자가 복잡한 그래픽 작업을 하지 않고도 최신 트렌드에 탑승하게 만드는 강력한 유인책입니다.
생태계로의 동화 (Case Study)
이러한 편의성과 압력은 실제 서비스들의 디자인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양대 플랫폼의 전략에 따라 서드파티 앱들이 어떻게 동화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Apple (iOS) 진영: 슬랙 뿐만 아니라 Flighty, United Airlines 등 이미 많은 서드파티 앱에서 빠르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 Slack: iOS 네이티브 업데이트를 통해 반투명 글래스 효과를 적극 도입, "Apple 생태계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feel right into)" 사용자 경험을 구현했습니다.
- Meta: AR 글래스 인터페이스를 위해 Liquid Glass 전문 디자이너를 채용하는 등, Apple이 주도하는 '유리 질감'을 차세대 표준으로 주시하고 있습니다.

- Google (Android) 진영:
- YouTube Music: Material Design 3를 통해 앨범 아트의 색상이 UI 전체로 은은하게 번지는 효과를 적용, Google 특유의 감성적이고 개인화된 몰입감을 완성했습니다.
시각적 낙후와 락인(Lock-in)
이 흐름에 따르지 않은 앱은 기능이 훌륭해도 순식간에 '관리되지 않는 구형 앱'처럼 보이게 됩니다(Visual Obsolescence). 또한, 같은 앱이라도 iOS에서는 '유리' 같고 Android에서는 '파스텔' 같은 서로 다른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사용자가 특정 생태계를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심리적 장벽을 구축합니다.
7. 혹시 우리는 'UX적 편안함'에 빠져 있는가?
물론 새로운 트렌드가 야기하는 사용성 이슈들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논란 중 일부는, 어쩌면 우리가 지난 10년간 플랫 디자인이 제공해 온 '예측할 수 있는 편안함'에 너무 깊이 익숙해진 나머지,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요구하는 적응 과정을 과도하게 불편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지 조심스럽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함정"
우리는 현재의 디자인 변화가 '인지적 측면'을 보강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플랫 디자인 시대에 잃어버렸던 '누를 수 있는 느낌'과 '공간적 위계'가 돌아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 즉 가독성 저하나 공간 낭비에 대한 불만이 어쩌면 지난 10년간 플랫 디자인의 극단적인 효율성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탓은 아닐까요?
"역사는 반복되고, 사용자는 적응한다"
과거 스큐어모피즘에서 플랫 디자인으로 넘어갈 때도 "너무 밋밋하다", "직관적이지 않다"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사용자는 학습했고, 보완을 거쳐 주류가 되었습니다.
지금 새로운 디자인 변화 또한 초기 단계의 시행착오를 겪고 있습니다. 기술은 최적화될 것이고(성능 문제 해결), 디자인은 다듬어질 것입니다(가독성 개선). 중요한 것은 이 변화가 다가올 공간 컴퓨팅 시대를 위한 언어 학습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지금 단순히 "예쁜 디자인"을 보는 것이 아니라, 2D 화면이 3D 공간으로 확장되는 과도기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번 변화가 사용자에게 어떤 선택을 받게 될지, 그리고 우리가 'UX적 익숙함'을 깨고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 이것이 지금 UXer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