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 분야에서 단 한 권의 책을 추천한다면? The Media Equation

2013. 9. 25. 00:14리뷰
이 재용

컴퓨터는 이제 너무 흔한 물건이어서 더 이상 우리의 철학적 관심을 받고 있지 않는 듯 보이지만, 지금 한 번만 이 스크린을 보고 잠시 생각해 보자.


우리에게 과연 컴퓨터(스마트폰, 스마트TV 등)는 무엇인가?


1990년대는 이러한 철학적 질문으로 가득찬 시대였다. 아쉽게도 그 생각들은 끊어져 더 이상 요즘의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지만, 나는 이러한 철학적 질문이야 말로, UX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내게 UX에서 추천하고 싶은 책을 물을 때, 솔직히 나는 머뭇거린다. 수많은 2000년대의 책들이 좀 더 선명하고 소화하기 좋은 형태의 지식으로 가득 채워 출간되는 반면, 나에게는 여전히 90년대의 책이 내 생각의 근간을 이루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이러한 내 생각이, 그 시대의 책들이 정말 중요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단지 내 생각의 형성기에 본 각인 효과로, 새로운 생각을 해야할 사람들에게 곰팡이 냄새 나는 옛 책을 내미는 경험자인척 하는 악취미여서 그런 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에게 정신적 충격을 주었던 책들은 Computer as Theatre (1991), City of Bits (1996), The Society of Mind (1998), Contextual Design (1998), The Inmates are Running the Asylum (1998)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한 권을 꼽는다면, The Media Equation (1996)을 꼽을 것이다.

미국에 있을 때 이 책을 접한 뒤로, 관련된 후속 논문들을 계속 찾아 읽으면서 그 철학적 의미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이었는데, 얼마전 피엑스디에서 진행하는 심리학 산책 토론회에서 이 '미디어 방정식'을 다루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말해서 

CASA : Computers Are Social Actors.

컴퓨터는 우리에게 무엇일까에 대한 오랜 연구의 결과는, 우리는 컴퓨터를 인간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인간도 아니라 우리와 사회적으로 교감하는 인간. 우리는 컴퓨터에게, 인간에게 하듯이 예의를 갖추며, 컴퓨터가 아부하면 엉터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좋아하고, 컴퓨터와 팀을 이루면 그 컴퓨터를 더 좋아하는 등, 다른 인간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 것과 똑같이 컴퓨터와 상호작용을 한다는 점이다.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uman Computer Interaction)의 본질은 '사회적' 상호 작용이었다. 컴퓨터가 아주 아주 원시적일 때부터 인간은 컴퓨터를 사회적 참여자(Social Actors)로 생각하고 있었다. 컴퓨터가 인간을 어떻게 대하든, 컴퓨터가 얼마나 단순하든 복잡하든, 아주 단순한 계산기든, 아주 복잡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든, 상관없이 인간은 컴퓨터를 친구로, 팀메이트로, 그리고 적으로 대한다. 그리고 그 후 20년간, 인간은 컴퓨터를 어떻게 하면 좀 더 상대방(사용자)을 알아보고,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추고, 사용자를 배려하게 만들까, 인간이 생각하는 사회적 참여자로서 더 인간답게 만들까를 고민해 왔다. 컴퓨터가 사회적 상호 작용을 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UX의 철학적 본질이다.

흥미로운 건 17년만에 이 책을 다시 살펴봐도, 여전히 이 질문은 유효하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컴퓨터는 무엇인가? 우리는 컴퓨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많은 부분에 대해 우리는 여전히 응답하고 있지 못하다. 수 십년이 흘러 그 당시보다 엄청나게 발달한 컴퓨터 앞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내 컴퓨터는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 매일 매일 아침마다 나에게 천진난만한 얼굴로, '너는 누구냐?'면서 암호를 요구한다. 같은 은행, 같은 ATM 기계 앞에서 나는 늘 같은 액수의 돈을 찾는데, 오늘도 나에게 암호를 물어보고, 또 돈을 얼마나 찾을 거냐고 물어본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도 가족간의 서열을 파악하는데, '스마트'TV는 가족 중에 누가 채널권을 갖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 한다.

물론 부분적으로 컴퓨터는 더 예의가 밝아졌다. 자신의 에러를 함부로 사용자 탓으로 돌리는 에러 메시지도 많이 없어졌고, 내가 반복하여 취하는 동작을 근거로 내 취향을 알아내거나, 내게 어울리는 것을 추천해 주는 센스도 늘어났다. 이제는 내가 카메라를 수평으로 찍었는지, 수직으로 찍었는지도 기억하고 있고, 알아서 내 자료를 클라우드에 저장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도 그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인간은 컴퓨터를 인간으로 인식하는데, 컴퓨터는 나를 인간으로 인식하지 못 한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UX를 공부할 때 읽어야할 가장 중요한 책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아직 이렇게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ㅎㅎ) 나는 The Media Equation 이라고 대답하겠다. 구식이든 말든.

* 사실 단 한 권의 책을...에 이 책(Media Equation)과 쿠퍼의 책(The Inmates...)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했다. 제목을 '두 권의 책...'이라고 하기에는 좀 어색하고, 그렇다고 한 권이라고 하면서 쿠퍼의 책을 안 하기도 이상하고... 그래도 좀 더 근본적인 질문에 가까운 책을 고르기로 했다. 다음 번엔 같은 제목으로 쿠퍼의 책에 대해서 쓰더라도 뭐라하지 마시길...

[자세한 책 내용 보기]
[심리학 산책 7] 미디어 방정식 (책 소개, 꼭 보시길)
[심리학 산책 7] 미디어 방정식 : 독서 토론회 스케치 (토론회 매우 재미있게 진행되었고, 매우 잘 정리되었습니다)
[독후감] 관계의 본심

* 이 책의 우리말 번역은 상태가 매우 안 좋다고 전해들었습니다. 저는 영문으로 읽었습니다.
[참고##심리학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