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26. 07:50ㆍGUI 가벼운 이야기
앞 글에서 디자인 에이전시의 위기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모델 중 하나로 '기술+디자인'이 강력하게/대등하게 결합된 형태의 모바일 인터페이스/ 앱/ 제품/ IoT 에이전시들을 살펴보았고, 디자인 에이전시의 교육 사업과 창업 지원에 대해서 살펴 보았다. 그리고, 스타트업 투자 환경에서 디자인 지원 방법에 대해 보았고, 마지막으로 창업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을 살펴 보려고 한다.
Google Ventures의 블로그 중에서, 왜 스타트업에 디자이너가 참여해야하는가(Does your startup need a designer co-founder?)라는 글이 흥미롭다. 이 글에서, 좋은 디자이너는 1. 사용자와 인간을 철저히 이해하는 성향이 있고, 2. 세상을 바꾸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으며, 3. 만들고 부시는 디자인 사고 (design thinking)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창업팀에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말 공감되는 말이다. 앞으로 모든 투자자들이 (과거 팀에 좋은 CTO가 있는지 보았던 것처럼) 좋은 CCO (Chief Creative Officer)가 있는지 살펴 보는 것을 투자의 기본으로 삼는 날이 꼭 올 것이다.
그 글에서는 그 뒤에 특히 어떤 분야에서 더 디자인이 중요한지 밝히는데, 사실상 요즘에는 모든 창업 회사에서 디자인은 매우매우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이 글에서는 어떻게 디자이너 창업자를 구하는지에 대한 요령이 나와 있다.
Does Your Startup Need a Designer Cofounder?
또, KPCB(미국 최대 창투사)에 합류한 John Maeda에 따르면, 1. 기술 발전으로는 더 이상 사용자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없고, 2. 디자인과 함께 시작해야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고, 3. 기술이 일부가 아니라 대다수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 디자인이 필요하고, 4. 초반에 합류한 디자이너가 회사 문화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실리콘 밸리는 디자인이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4 Reasons Why Design Is Taking Over Silicon Valley
이 글에서는 직접 창업을 하는 경우 외에도, 디자이너를 창업자로 만들려는 노력과, 마지막으로 에이전시에서 직접 스핀오프 시키는 사례를 정리해 보았다.
1. 디자이너의 창업
아마도 가장 유명한 사례는 핀터레스트의 Evan Sharp일 것이다. 핀터레스트는 사실, 보고 있자면 정말 디자이너가 만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부터 맥킨토시에서 아이콘 그리며 놀던 그는 건축을 전공하고 페이스북에서 제품 디자인을 맡다가 핀터레스트 창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특유의 핀터레스트 UI 를 만들었다.
이 외에도 디자이너가 창업을 한 경우는 많은데, 이런 사례들을 보여주는 e-book (http://www.designerfounders.com/)도 있지만 재미있는 infographic이 있다.
http://designerfund.com/infographic (사진 출처)
여기에 열거된 회사들을 보면, YouTube, Android, flickr, slideshare, tumblr, Instagram, vimeo, Kickstarter, Path, Behance 등 매우 유명한 회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우아한 형제들의 김봉진 대표, Line에 인수된 위트 스튜디오 채은석 공동대표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2. 디자이너를 창업자로
디자이너펀드
디자이너 창업자를 위한 (Co-founded by Designer) 전용 펀드가 등장했다. 바로 '디자이너펀드'이다.
스타트업에서 디자인이 중요하다. 그리고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스타트업은 성공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디자이너가 반드시 창업팀에 합류해야하만 한다. 디자이너가 창업팀에 합류하면 디자인의 영향력이 커지고, 성공확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그들은 성공적으로 돈을 벌어 다시 디자이너 창업팀에 돈을 투자한다. 이런 식의 선순환이 이루어지면, 디자인의 그리고 디자이너 창업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다. 이런 믿음으로, 이미 성공한 디자이너들이 만든 펀드이다. (만약 내가 성공한다면 한국에도 꼭 이런 펀드를 만들고 싶다.) 이 펀드가 하는 일은 투자, 교육, 커뮤니티 이렇게 세 가지이다.
투자(Invest)
"디자이너"가 창업에 참여한 기업에 한정하여, 보통 10만불-100만불(1억-10억) 정도를 투자한다고 한다. 다양한 디자이너들이 창업 혹은 공동창업한 목록을 보고 있자면 상당히 부럽다. 아직 얼마되지 않아서인지, 포트폴리오에 한국까지 알려진 스타트업은 없지만, 어떤 기업에 투자했는지 살펴 보려면 아래 기사를 참고.
The Designer Fund puts seed money into startups with designer-founders
교육(Bridge)
브릿지 프로그램도 나중에 꼭 해 보고 싶은 방식 중 하나이다.
우선 브릿지 프로그램에 적합한 스타트업과 디자이너 양쪽을 모은다. 여기서 스타트업은 사실 굉장히 유명한 회사들이 많다(꼭 디자이너가 공동창업한 회사에 한정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디자이너들도 우수한 사람들이 많다. 이 디자이너들을 스타트업에 취업 시킨다. 이 때 급여/처우 협상, 특히 지분 협상 등에서 도움을 준다. (채용은 짧은 인턴 방식과 장기 계약 방식이 있다)
채용 이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저녁에 브릿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디자이너들끼리 모여서 서로 교류도 하고, 강의도 듣고, 저녁도 먹는다. 프로그램 전체가 종료된 이후에는 다니던 회사에 계속 다닐 수도 있고, 그만 둘 수도 있다.
참여 디자이너는 전혀 비용을 내지 않는다.
http://designerfund.com/bridge/
커뮤니티(Community)
자기들이 투자한 회사 사람들, 브릿지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스타트업과 관련된 디자이너들의 모임을 만들어 교류한다. 우리나라 스타트업 디자이너들이 얼마나 고립되어 (대개 자기보다 나이도 많고 말도 안 통하는 개발자 출신 사장과 싸우며) 외롭게 디자인하고 있는지 안다면 누군가 이런 모임 좀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3. 에이전시의 창업
GravityTank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에이전시는 그 수익의 한계를 느끼고 스스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것이 "의미"를 찾기는 쉽지 않다. 수익에서 의미가 있든지, 아니면 기존 사업과 연결되는 무엇이 있든지. 피엑스디도 항상 이런 새로운 사업들을 시도하고 있지만, 늘 실패하여 왔다. 결국은 포기하고 다른 스타트업을 도와주는 일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직접 해 보고 싶은 사업 분야가 아직 있다면, 바로 피엑스디의 본업인 조사와 연구를 도와주는 도구를 만들고 그것을 독자적인 사업화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모바일 사용자 조사를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도구는 어떨까? 시카고의 혁신 컨설팅 회사인 Gravitytank는 이러한 도구를 만들어 독립 영역으로 사업화하다가, 2011년 스핀오프 시켰다.
피엑스디가 위트스튜디오에 투자했던 것도, 또 Lean UX를 위한 프로토타이핑이나 소비자 조사 툴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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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디자이너의 월급이 낮은 이유'나 '디자인 에이전시의 몰락' 같은 우울한 글만 썼던 것에 대한 반발로, 디자인 에이전시와 디자인 창업의 밝은 점들을 살펴 보았다. 물론 아직까지 이런 것들이 디자인 산업 전체를 대변한다기 보다는 그저 작은 '밝은 점'에 불과할 것 같다. 그러나 언제까지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굴레는 스스로 깨야 한다.
디자이너 펀드에서 보았듯이, 조금이라도 성공한 디자이너들이 이끌어 주어야 할 것 같다. 더 많은 에이전시들이 기술과 적극적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모델을 찾고, 더 많은 디자이너들이 창업하고, 더 많은 디자인 인력이 스타트업의 성공을 도운다면, 디자이너는 영향력이 커지고(혹은 큰 돈을 벌고), 이렇게 커진 영향력으로 다시 후배 디자이너들을 양성하다보면 언젠가는 디자인이 가장 중요한 직군으로 인정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시리즈를 마친다.
[참고##디자인 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