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16. 07:55ㆍUI 가벼운 이야기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인 피터 틸의 책 '제로투원'의 1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정말 중요한 진실인데,
남들이 당신한테 동의해주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p13)
그는 채용 면접에서 항상 이것을 묻는데, 쉬운 질문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주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고 한다.
"망가진 우리 교육 시스템을 고치는 일이 시급합니다."
"미국은 예외적인 나라예요"
"신은 없습니다."
대부분 진실일 수도 있지만 이미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거나 아주 흔한 논쟁의 한쪽 주장일 뿐이다. 반면에 좋은 대답은
"대부분의 사람은 X라고 믿지만, 진실은 정반대예요."
이것은 통념과 반대되는 생각을 묻는 질문이다.
그렇다.
우리가 사용자 조사를 하는 이유는 아직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 그것을 발판으로 혁신적인 서비스/제품을 만들기 위함이다.
대학생은 참신하다
사용자 관찰의 기본은 물론, 당연한 것을 찾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패턴을 찾고 그 패턴을 지원하기 위한 기능들을 생각해 내야 한다. 그러나 대개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어쩌면 뻔한 것들일 가능성이 크다. 학생이었을 때 인터뷰를 한다면 이런 뻔한 것들 (하지만 나에겐 새로운 것들)을 찾아야 하리라.
학생일 때는 '왜 사회는 당연히 이런 것을 안 하지?' '왜 이 포털서비스는 이런 걸 이렇게 만들지 않지?' '왜 기성 세대는 늘 이렇게 생각하지?'하는 참신함을 갖게 마련이지만, 이것은 진정한 참신함이라기 보다는 '무지'에 가깝다. 현실의 다양한 제약을 모르기 때문에 아무런 깊은 고민없이 내뱉을 수 있는 말에 불과하다. 어린아이들이 순진한 건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장에 들어와서 '직업적으로' 즉, 돈을 받고 디자인을 하게 되면 이러한 다양한 '참신한' 생각은 점차 사라지게 되고 세상이 왜 이 모양이 되었는가에 대한 다양한 이유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된다. 자기 나름대로의 사고의 숏컷이 생기는데 우리는 이런 걸 때로는 '숙련된 경험'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고정 관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기본적인 세상의 제약이나 사용자들의 모습을 이해했다면, 이제 진짜 '참신함'을 찾아 나서야 할 때이다.
많은 기업에서 '사용자 조사 해 봤더니 별거 없더라' 그냥 빨리 디자인이나 해라.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들이 한 번도 제대로 된 사용자 조사를 해 보지 못 했기 때문이다. '초급 사용자 조사'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사용자 조사도 안 하는 것 보다는 낫지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나쁜 인식을 퍼트리는 역할도 동시에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용자를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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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보는 사람처럼 봐라
톰 캘리의 '이노베이터의 10가지 얼굴'에서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Anthropologists seek out epiphanies through a sense of Vuja De.
The Ten Faces of Innovation, p17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어 나 이거 알아'라는 식으로 관찰한다.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이 한국 가요 듣는 걸 보면 거기서 모르는 것이 뭐가 있겠나? 대부분의 관찰자가 마치 어디선가 보았던 것처럼 Deja Vu 생각하는 반면, IDEO의 관찰자들은 언제나 이것을 (늘 봐 왔던 것도) 처음보는 것처럼 관찰한다. 그래서 Vuja De라고 부른다. 이는 또 다른 말로, 진정으로 열린 마음으로 'beginner's mind, 초심자의 마음'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오늘 우선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함께 타고 가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라. 늘 똑같은 노선, 똑같은 출근길에 어쩌면 작년 어느 시점에선과 봤던 그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서 '새로운 것'은 무엇인가? 찾아 봐라. 반드시 있다. 오늘 사용자 인터뷰를 하고 왔다면 인터뷰를 정리하는 시간 맨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한 번 해 보자. "그래서 이 사용자에게 특이한 것 세 가지는 무엇인가?"
이 질문 하나로, 혹은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으로 초급 관찰자에서 중급 관찰자로 성장할 수 있다.
참고: 평범한 것을 관찰하는 훈련 ([독후감] 사물의 이력)
문화적 무의식의 발견
또 다른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방법3: 네슬레의 일본 진입을 돕기 위해, 여러 그룹을 모았다. 각 그룹마다 세 시간으로 구성했는데, 첫 시간은 나는 다른 행성에서 지구를 방문한 사람 역을 맡았다. 이 방문객은 커피를 한번도 본 적이 없고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커피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도움을 청했다.(p23) 두 번째 시간에는 바닥에 앉아 커피에 대한 단어들을 잡지에서 뜯어 붙이게 했다. 세 번째 시간에는 바닥에 누워 긴장을 풀어주고 10대로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하여 커피에 관해 생각해 보게 했다. ([독후감] 컬처코드)
만약 이걸 외국인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외계인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이것을 무엇이라고 해야하나?라는 것은 역시 위에서 말한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보되, 그 근간에 깔려 있는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이다. 이 사람이 이렇게 행동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둘러싼 환경일까? 개인의 성향일까? 아니면 어린 시절의 기억일까?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 근본적인 이유를 쫓아서 계속 '왜'라는 질문을 마음속으로 반복하여 문화적 배경이나 어린 시절의 무의식까지 발견하는 것으로 초급 디자이너에서 중급 디자이너로 성장할 수 있다.
창발적 행위
특이한 것을 찾는 방법으로 창발적 행위(emergent behaviors)를 주의깊게 보면 좋다.
사람들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완성된 솔루션을 사용할 수 없을 때, 무언가를 생각하여 만들어 낸다. 우회하는 도구를 만들어 내는 경우도 많고, 특정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를 전혀 다른 엉뚱한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휴대 전화 요금을 내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연락을 요청하기 위하여, 전화벨만 울리고 끊는 행동 같은 것은 점점 문화적으로 전파되기도 한다. 이런 것이 창발적 행위다 ([독후감] 관찰의 힘)
대부분의 초보 관찰자들은 이러한 것을 예외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아 그 사람 좀 특이하게 사용하더라구요." "아 그 사람 너무 예외적인 사람이어서 우리 관찰 범위에서 뺄까 말까 고민이예요" 사용자 조사를 하고 온 연구원이나 대학원생들로부터 이런 말을 많이 듣는데, 그럴 때마다 그들의 말에는 '실패한 사용자 조사예요'라는 실망감이 함께 묻어 있었다.
아니다. 어쩌면 그 사람이 미래에서 온 사람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원래 제공되는 방식으로 그렇고 그렇게 사용하는데, 자기 나름대로의 예민함 때문에, 혹은 게으름 때문에, 혹은 기발함 때문에, 남들과 다르게 사용하는 사람, 혹은 남들과 다르게 사용하는 변태적인 행위에서 우리의 인사이트의 발판을 찾을 수 있다.
극단적 사용자
아예 이러한 방법을 정식 조사 방법으로 확장하여, 이렇게 이상한 사용자들만 한 번 만나보자. (다시 강조하지만, 이러한 조사는 '정상적'인 사용자들에 대해 우리가 충분히 알고 있다는 가정을 하고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절대 어린이들은 이 방법을 따라하지 말기 바란다. 어린이들은 우선 보통의 사용자를 관찰하는 방법부터 숙련해야한다. 이 글의 제목은 '중급 디자이너 되기'이다.)
때로는 극단적 사용자(Extreme Users)라고 부르기도 하고 선도 사용자(Lead Users)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방법은 IDEO에서 강조하는 방법인데, 일상적인 제품/서비스 사용자가 아니라 그 제품이나 서비스를 극단적으로 많이 혹은 적게 사용하는 사용자를 관찰함으로써 특별한 인사이트를 발견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신발을 연구한다면, 늘 평범하게 신발을 신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인터뷰하는 대신, 극단적으로 신발을 사용하는 발레리나, 건설 노동자, 운동 선수들을 만나볼 수 있다. 또 20대 여성을 위한 요리 도구를 개발하기 위해서 어린 아이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요리 기구에 충분히 힘을 줄 수 없는 어린 아이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요리 기구를 만든다면, 20대 여성이 너무나도 가볍게 사용할 수 있는 요리 기구를 만들 수도 있다.
프로젝트에서 적절한 시점에 적절히 극단적 사용자를 활용할 수 있다면 중급 디자이너라고 말할 수 있다.
크로스 폴리네이터
크로스 폴리네이터(Cross pollinator)는 교차 수분자, 즉 이 꽃의 꽃가루를 다른 꽃으로 옮기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한 산업의 혁신적인 결과를 다른 산업으로 옮기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가 살다보면 같은 문제를 다른 산업에서 해결해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적용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를 둔 젊은 부부에게 저녁 시간에 어디를 나가는 문제는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는데, 극장에서 아이를 맡아주는 서비스나, 식당의 구석에 아이들 놀이방을 만드는 서비스나 동일한 문제, 동일한 해결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오래전 한 전자회사로부터 휴대폰 매뉴얼을 혁신해 달라는 프로젝트를 맡았던 적이 있다. 핸드폰 매뉴얼은 제품과 함께 딸려 나가는 것이라 발전이 더딜 수 밖에 없지만, 동일한 문제 (정보 기기에 대한 지식을 나이드신 분들께 설명해야한다는 문제)에 있어서 시중에 나와 있는 컴퓨터 관련 서적이나 영어 교재들은 이 '설명' 자체가 경쟁력이기 때문에 굉장히 혁신을 많이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책에서 조금만 방법을 가져오면 핸드폰 매뉴얼을 매우 쉽게 혁신할 수 있다.
초급 디자이너는 자신이 맡은 역할에 따라 충실하면 되지만, 중급 디자이너는 프로젝트를 이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산업의 혁신 사례를 평소에 충실히 익혀 두는 것이 필요하다. 완전히 다른 산업에서 혁신의 결과들을 보았을 때, '아 신기하네' 이렇게 생각하고 페이스북에 공유하는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말자.
그 사례에서 핵심은 무엇인가? 어떤 문제를 해결한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다른 산업에서 적용될 수 있는가? 반대로 실패한 사례라면 왜 본질적으로 무엇이 문제였고, 다음에 내가 다른 디자인을 한다면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를 평소에 고민해 두지 않으면, 프로젝트에 닥쳐서는 해결할 수가 없다. 평소에 스마트 와치를 주의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면, 다음 번에 웨어러블 프로젝트는 맡지 말기 바란다. 중급 디자이너라면 말이다.
낯선 것을 찾아서
인터뷰에서, 아무런 생각없이 대상자를 선정하고, 그 사람을 만나고, 아 이 사람은 이런 것을 이렇게 사용하는구나라고 정리하여 오고 나면, 사실 아무 것도 새로 만들 것이 없다. 물론 여러 가지 개선할 것이 보이긴 하겠지만, 그런 당연한 사항들은 굳이 많은 돈 들여서 사용자 조사를 하지 않아도 다 아는 것 아닐까? 이렇게 해서는 자기만의 인사이트가 생길리가 없다.
업계 주변의 뉴스를 보면서도, 화장품 뉴스나 자동차 뉴스처럼 읽고 나면, 아니 화장품이나 자동차 뉴스나 모두 그냥 맛집이나 술집 정보처럼 읽고 나면, 무슨 말이냐하면 무슨 뉴스를 보더라도 그냥 개인적인 관심이나 소비자처럼 읽어 버리고 만다면,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성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업계의 뉴스든, 새로 유행하는 맛집이든 현재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려고 하고, 내가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지금 하고 있는 이들은 어떤 결과를 얻게 될 것인지 예측해 보는 것을 통해 그 안에 숨겨진 근본적인 원리를 파악하려고 하고, 그렇게 파악한 원리를 다음 프로젝트에 적용해 보지 않는다면, 질적 성장은 어렵다.
사용자 조사를 하든, 프로젝트를 하든, 뉴스를 읽든, 항상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원리를 분석해 보려고하고, 거기에서 다른 사람은 알지 못 하는 새로운 생각을 찾아내지 못 한다면, 그래서 누군가 당신에게 '정말 중요한 진실인데 남들이 당신한테 동의해주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대답할 수 있는 최소한 한 두 가지의 사례나 경험이라도 없다면,
줄기는 자라지 않은 채, 떡잎만 계속 커진, 기형적인 혹은 나이만 많은 초급 디자이너로 성장하게 된다.
떡잎일 때는 좋았겠지. 파릇파릇하고.
하지만 이제 잎의 색깔도 진해지고, 주름도 생겼다. 당신의 줄기는 어디있나?
[참고##프로젝트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