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사물의 이력
2014. 11. 25. 01:00ㆍ리뷰
사물의 이력
평범한 생활용품의 조금 특별한 이야기
김상규
이 책은 우리가 생활속에서 접하는 여러 가지 사물들이 왜 그렇게 디자인되었을까를 생각해보는 책이다. 단순히 문학 작품이나 에세이처럼 읽어도 좋고, 디자인에 대한 영감이 필요할 때 어떤 부분을 찾아 보아도 좋다. 이런 종류의 약한 수집벽은 어느 디자이너에게나 있게 마련이니까, 아마 많은 디자이너들이 공감할 것이다. 블로그에도 이와 유사한 글을 작성한 적이 있다.
2012/06/18 - 최초의 마우스, 최초의 네비게이션, 최초의 애플 컴퓨터
하지만 UX 디자이너에게는 이러한 종류의 책을 읽고 생각해 보는 것이 특별한 의미가 있다.
1. 평범한 것을 관찰하는 훈련
이 책의 저자는 매우 일상적인 사물들을 깊이 바라보고 있다. 하나의 아주 작고 평범한, 그래서 너무 일상적인 사물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사유함으로서 남들이 바라보지 못 하는 의미를 찾아내는 식이다. 이것은 흔히 UX 디자이너들에게 '초심자의 눈으로 보기' 혹은 '외계인에게 설명하기' 등 여러 가지 용어로 말하는 관찰 방법의 전형이다. (이노베이터의 10가지 얼굴 참고)
2013/11/06 - [독후감] 관찰의 힘
2014/05/13 - [독후감] 컬처코드
예를 들어, 신호등이 정말 필요할까? 지하철의 시계가 명품 브랜드라면? 수저통을 다시 디자인하지말고, 수저통을 없애려면? 같은 질문들은 UX를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 '외계인의 눈으로' 보기 좋은 소재들이다.
참고:p135 네덜란드 교통 전문가인 한스 몬더만 Hans Monderman은 교통 신호가 더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고, 드라흐텐의 데카텐 교차로를 신호등,차선,표지판 없이 개조하여 사고율을 획기적으로 낮추었다.. 런던도 잡동사니 없는(clutter-free) 거리를 조성했다.
2. 사물의 근본 원리 파악
이 책의 저자는 제품 디자이너(의자 디자이너)이며 디자인과 교수이다. 현대 산업의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원리를 알고 있고, 산업 디자이너가 왜 이렇게 디자인할 수 밖에 없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 산업 디자이너의 눈으로 과거와 현대의 제품을 꼼꼼히 돌려보며 파악하고 있다.
왜 리모콘에는 아주 작은 발(보스)이 달려 있을까, 왜 제품의 옆면에는 작은 선(파팅 라인)이 주욱 있는 경우가 많을까? 플라스틱 의자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책상의 크기는 왜 그렇게 정해졌을까? 등등 현대 산업 디자이너라면 알고 있거나, 직접 경험했을 법한 재료의 문제, 제조 방법의 문제, 공학적 구조의 문제나 사용 방법의 문제 등이 아주 꼼꼼하게 설명되어있다.
정말 좋은 제품 디자인은 이런 작은 디테일을 얼마나 잘 해결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학생들은 디자인하면서, 왜 이렇게 이렇게 만들지 않지?라고 쉽게 비판하지만, 프로들은 그렇게 쉽게 비판하지 않는 이유가,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 보면 결국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수많은 현실의 벽이 눈에 생생히 보이기 때문이고, 그걸 극복한 디자인을 보면 일반인은 눈치채지 못 할 아주 미세한 차이라도 경탄을 하면서 보게 된다.
인터랙션 디자인에서도 마찬가지다.
피엑스디 블로그에서도 이러한 주제로 많은 글이 올라왔는데,
http://story.pxd.co.kr/tag/UI 디테일
당연한 듯 보이는 것이 안 만들어져 있을 때, 막연히 비판만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지 않은 이유를 짐작하여 설명할 수 있다면 그는 전문가이다. 또 그렇게 강력한 현실의 벽을 극복하고 만들어 낸 아주 작은 디테일의 차이를 볼 수 있다면 그는 전문가이다. 제품 디자인에서와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다만, 인터랙션 디자인에도 이런 부분들을 느릿느릿 책으로 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너무 빨리 달라지는 세상이라 엄두가 나지 않는다.
3. 디지털 디자인의 스토리 갖기
디자인 비평이나 디자인史를 교수님들께 듣다보면, 매우 유명한 작품에 대하여 왜 여기에는 이런 문양을 사용했고, 여기에 들어간 파란색은 어떤 의미이며... 이렇게 설명하다가, 다소 난데없는 디자인들을 나무랄 때면 '근본'없는 디자인이라는 비난을 들을 때가 있다.
정말 디자이너들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디자인했을까?하는 의문은 뒤로 미루어 두더라도,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재미있고, 사후에 누군가 지어 붙인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 디자인을 더 의미있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디자인은 하나의 문화이고, 문화는 많은 의미들을 쌓아 만드는 것이므로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일텐데, 제품 디자인에서 이런 부분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재미이다. 아울러 동시대를 살아가는 저자이다보니, 책에서 자연스럽게 이러한 오프라인 '사물'들이 자연스레 디지털-온라인의 세계까지 연결이 된다.
이러한 메타포 혹은 스큐어모피즘에 대하여 피엑스디 블로그에서도 여러 차례 다룬 바 있다.
http://story.pxd.co.kr/tag/메타포
이 책에서는 버튼과 터치, 필카와 디카, 디스켓 저장 아이콘 등 우리가 갖고 있는 경험들을 자세히 살펴 보고 있다. UX 디자이너라면 역시 주위의 사물에 대해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자신의 작업에 적합한 스토리를 가진 사물을 발견했을 때 영리하게 가져다가 쓸 수 있어야 아마도 재미난 디자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스큐어모피즘의 시대가 갔다고 하지만, 여전히 재치있는 메타포의 활용은 재미와 이야기 거리를 줄 뿐만 아니라, 저자도 지적하듯이 한편으로 멀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물의 움직임은 안드로이드의 물질 디자인(Material Design, p004)으로 돌아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어떤 디자인학자가, 내가 만든 디자인이 70년대 슬레이트 지붕이나 파란 대문의 사자머리 문고리에서 왔다가 주장한다면 재미있지 않을까?
마치며
2014년부터 백열전구의 생산과 수입이 금지되었다. 아련한 추억의 물건들이 사라지는 것이 어디 한 두 개랴, 일일히 세월을 탓하기도 너무 덧없다. 하지만 '아이디어'의 아이콘으로서 백열전구는 아마도 꽤 오랜동안 디지털에 남아 있을 것이다. UX 디자이너가 사물을 추억하는 또 다른 방법이 남아있어 다행이다.
차례
1. 사라지는 것에 대한 예의 - 백열전구와 LED, 버튼(타자기)과 터치, 필카와 디카, 디스켓과 카세트, 리어카와 지게
2. 도시의 일상에 뿌리내린 생산 라인 - 컨베이어 벨트, 삐삐(무선호출기), 신호등, 교통 카드, CCTV
3. 동물을 닮은 것에 대한 고찰 - 말발굽(문 고정발, 쐐기), 마우스, 까치발, 개다리소반, 사자 머리 문손잡이
4. 소재가 가진 함정 - 고무 신발, 알루미늄 캔과 양은 냄비, 플라스틱 의자, 함석 물뿌리개, 흙벽돌과 시멘트
5. 숨겨진 디테일의 미학 - 리모콘 보스, 파팅 라인, 스마트폰 에지, 책상의 크기,책의 장정
6. 관계와 상호 작용의 의미 - 간판, 수저통, 개집, 지하철 시계,이젤
[참고##방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