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18. 07:50ㆍUI 가벼운 이야기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아니, 몰라요!
안녕하세요. pxd UX 인턴 이유진입니다.
저는 pxd에서 근무하며 매일 빼먹지 않고 갖는 시간이 있습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보내는 ‘회고 시간’입니다. 회고시간 동안 업무 중 작성한 ‘체크리스트'를 살펴보고 ‘느낀 점과 개선사항’을 노트에 옮겨 적습니다. 특히 인턴으로서 나는 현재 어느 위치에서, 어떤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체크합니다.
위의 사소한 습관은 심리학과 재학 중 수강한 ‘인지심리학’ 강의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인지심리에 관한 기초 다지기를 위해 교수님은 매주 쪽지시험으로 학생들을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이는 곧 메타인지를 활용한 교수님만의 특별한 수업방식이었습니다. 시험 결과를 통해 교수님은 학생들의 수업 이해도를 점검하며 진도를 조절했고, 학생들은 스스로 수업에 대한 흥미를 확인했습니다.
이러한 메타인지는 프로젝트가 끝날 쯤, 그간 기록한 노트에서 우연히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메타인지가 개인 차원의 업무숙지 뿐만 아니라, 팀 단위에서 ‘교육자-학습자’의 형태로 이뤄졌다는 점입니다. 이를 토대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어떤 방식으로 메타인지를 활용했는지 개인 차원과 팀 차원으로 구분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해당 사고법을 평소 독자분들은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메타인지란?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만을 알 뿐이다.” -소크라테스-
메타인지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설명하기에 앞서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예시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1 - 얼마 전 ‘도쿄 일인 생활, 부엌과 나’라는 책을 선물 받은 A 씨. 그는 저자 ‘오토나쿨'의 레시피 중 마음에 쏙 들어온 하나를 노트에 옮겨 적습니다. A 씨는 요리 재료 및 순서를 꼼꼼하게 적고, 머릿속으로 요리 과정을 시뮬레이션하며 장을 보러 나갑니다.
2 - 장보기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한 A 씨는 숙지한 레시피대로 순조롭게 재료를 썰고 다듬습니다. 하지만 이후 조리 단계부터, ’완벽하게 숙지했다’라고 생각한 레시피를 깜빡 잊어버린 A 씨는 결국 노트를 옆에 펼쳐 두고 요리를 진행합니다.
3 - “분명 다 외운 줄 알았는데”라고 혼잣말을 하던 A 씨는 어느새 뚝딱 완성된 음식을 한 입 크게 뜨며 식사를 시작합니다. 오물오물 밥을 먹던 A 씨는 문득 자신의 요리가 어딘가 모르게 심심하고 허전한 맛임을 깨닫고, 다시금 레시피를 읽어봅니다.
4 - 알고 보니 중요한 향신료 하나가 빠졌고, 심지어 사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A 씨는 머리를 긁적이며 노트에 적힌 ‘향신료’라는 단어 위에 빨간 밑줄을 긋습니다.
A 씨와 같은 상황, 많이 겪어보지 않았나요? 분명 ‘안다.’라고 확신한 것을 직접 말이나 행동으로 옮길 때면 생각나지 않아 당황스러운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이와 같은 ‘안다.’라는 개념에 관해 소크라테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만을 알뿐이다.” 이는 메타인지의 ‘사고에 대한 사고(thinking about thinking)’ , ‘인지에 대한 인지(cognition about cognition)’라는 개념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메타인지’란 자기 생각에 대해 판단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즉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에 대한 판단과 더불어 이를 보완하기 위한 계획 및 실행 전반을 의미합니다. 또한, 계획한 실행과정이 목표에 어느 정도 접근하고 있는지 점검하며, 더욱 효율적인 목표 수립을 위해 이를 조절합니다.
성균관대 교육학과 도승이 교수는 “여러 학자의 연구를 종합하면 메타인지의 구성요소는 크게 기획과 점검, 조절 등 3가지”라고 말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A 씨의 상황을 메타인지와 연관 지어 생각해보겠습니다. 만약 A 씨가 위 상황에서 메타인지를 적절하게 활용한다면 어떤 인지적 과정이 나타날까요?
기획 -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해당 요리에 관해 알고 있는 사전 지식을 파악합니다. 현재 가지고 있는 재료와 조리기구를 바탕으로 어떻게 레시피를 활용할지 미리 계획합니다.
점검 - 요리를 진행하며, 처음 계획한 과정을 어느 정도 수행하고 있는지 적어둔 레시피와 비교합니다. 또한, 직접 요리를 맛보며 기대한 방향에 부합한 지 확인합니다. (간단히 말해 레시피 과정을 잘 따라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가장 중요한 맛을 보는 시간입니다!)
조절 - 위의 점검 과정을 통해 본인의 요리가 어느 정도 완성되어 가는지를 검토합니다. 이후 요리 과정이 잘못됐다는 결론이 나면 다시금 방향을 조절합니다.
프로젝트 과정에서 만난 메타인지
개인 차원 그리고 팀 차원에서 바라본 메타인지
메타인지는 아이들의 발달 연구를 통해 나온 개념으로, 교육학에 주로 등장하는 용어입니다. 1970년대 발달심리 학자인 존 플라벨(J.H. Flavell)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이를 보면 메타인지가 함의한 ‘학습 과정’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인턴(주니어)으로서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도 학습 태도와 과정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특히 프로젝트 관련 지식을 해당 분야의 전문가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단기간 내에 섭렵할 수 있는 학습력이 필요합니다. 저 역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내내 학습 과정이 필요했고, 습관처럼 배어든 메타인지적 사고를 통해 효율적으로 문제 해결 과정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위와 같이 프로젝트 과정에서 만난 메타인지를 개인적으로 활용했던 경우와 팀 자체에서 활용했던 경우를 나누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개인 차원 : 한 잔의 커피 속에 녹아든 메타인지
개인 차원에서 마주한 메타인지는 한 잔의 원두 커피를 내려마시는 것과 유사합니다.
우선 첫 번째로 커피를 마시는 행위에는 ‘맛있는 커피를 마셔야지’라는 기본 동기가 기저에 깔려있습니다. 비슷하게 저는 ‘오늘 하나는 꼭 배워서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지!’라는 목표를 가지고 회사로 출근합니다. (물론 가끔은 쉬어가고 싶은 날도 있습니다..^^) 이같이 스스로 설정한 목표가 반영된 기본 동기는 업무 수행 전반에 때론 당근으로 때론 채찍으로 작용하곤 합니다.
두 번째로 커피향이 원두의 종류와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이듯, 메타인지를 활용해 프로젝트와 관련된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지식을 파악합니다. 예를 들어, 처음 프로젝트를 접할 당시, 핵심 요소였던 3D와 관련해 평소 얼마나 많은 경험이 있었는지 가장 먼저 확인했습니다. 당시 저는 3D 툴인 ‘Rhino 3D’에 관한 얕은 공부 경험과 3D 게임 경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해당 분야에서 주로 다루는 용어나 개념은 낯선 상태였습니다. 이를 기준으로 벤치마킹 초기에는 3D 환경에서 사용하는 조작키와 같은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면서 범위를 확장하여 프로젝트 전반을 이해해 나갔습니다. 다시 말해 마시고 싶은 커피에 알맞은 원두를 고르듯, 프로젝트 목표에 필요한 자신의 능력과 지식을 파악해 발전시키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마지막으로 같은 원두라도 드립 포트로 물을 붓는 방식에 따라 맛의 차이가 나듯, 주어진 시간 내에 어떤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인턴으로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나만의 업무수행 방식을 터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저는 매번 업무 ‘수행 전 / 중 / 후’ 세 시점으로 분류해 각각 시점마다 중요한 항목을 파악했습니다. 바로 메타인지의 구성요소 - 기획 / 점검 / 조절 - 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회의록 작성 업무를 예로 들면, 수행 전엔 회의의 주요 목적 및 주의 깊게 들어야 하는 부분을 파악합니다. 이후 해당 체크리스트를 바탕으로 회의 진행 흐름을 반영해 회의록을 작성하고 정리합니다. 회의록 작성 후에는 팀원들과 공유하며 업무 수행 시 부족했던 부분을 꼼꼼하게 메모해 다음 업무에 반영합니다. (사실 여전히 회의록은 어렵지만요!)
팀 차원 : 메타인지에도 교육자가 필요할까?
메타인지는 개인 차원뿐만 아니라 팀 차원에서도 활발하게 이뤄졌습니다. 특히 시니어(senior)와 주니어(junior) 사이의 업무에 관한 소통에서 도드라졌습니다. 시니어는 교육자의 입장에서 학습자인 주니어가 업무 전반에 관해 능동적이며 지속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학습자 입장에서 메타인지를 지속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안정되고 긍정적이며 격려하는 학습 분 위기입니다. 학습자는 허용적이고 안정된 분위기에서 성취감과 자신감을 느끼며, 자발적인 메타인지적 사고를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아이디에이션(ideation) 진행 당시, 시니어분들은 제가 낸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함께 논의하며 추가 아이디어를 발산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프로젝트에 대한 흥미뿐만 아니라 인턴으로서 성취감과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긍정적 피드백은 인턴으로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자신을 거듭 돌아보는 메타인지의 결정적인 동기로 작용했습니다.
메타인지를 돕는 또 다른 하나는 학습자가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프로젝트 진행 당시, 시니어인 PM과 책임은 빠듯한 기간 내에서도 스스로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습니다. 더 불어 피드백 과정에선 업무 결과물의 토대가 된 의도와 생각을 먼저 질문했고, 이는 곧 업무 수행 중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이처럼 충분한 시간 속에서 학습자로서의 인턴(주니어)은 주어진 업무를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자신만의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충분한 시간은 곧 신뢰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마무리하며
고민이 특권인 디자이너가 되기위해
메타인지는 타고나는 유전만큼이나 외부 환경의 요소도 중요합니다. 많은 학자는 메타인지를 발달시킬 기회를 얼마나 갖느냐에 따라 능력이 발달하기도, 퇴보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만약 학부생 당시 인지심리학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그리고 허용적이고 안정적인 분위기의 프로젝트가 아니었다면 메타인지를 활용할 기회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인턴으로서 ‘사고에 대한 사고’ 즉 메타인지 과정은 나를 등대로 삼아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이자 ‘나’의 생각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나’의 생각을 설명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생각에 대한 본질적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며, 이러한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는 설명은 불가능합니다. 특히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메타인지적 지식과 사고’ 의 과정으로, 업무 소통의 기반이 되는 ‘나의 언어’ 형성에 긍정적 영향을 가져왔습니다.
끝으로 저는 아직 모든 것이 낯설기도 신기하기도 하며, 때론 정신없이 프로젝트에 적응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메타인지는 깊고 풍부한 사고의 향연이자 지속적인 self-motivation의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더 나아가 고민을 특권처럼 생각하며 사고를 게을리하지 않는 UX 디자이너를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충분한 고민의 시간을 선물해준, 그리고 글로 풀어낼 수 있게끔 믿고 끌어주신 팀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우와”는 항상 진심 가득 담긴 말이었습니다. 즐거운 프로젝트 또 기다립니다~! )
[참고##프로젝트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