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 18. 07:50ㆍUX 가벼운 이야기
코로나19 이후 재택과 원격 근무가 잦아지면서 매일 마주하던 동료의 얼굴을 보는 횟수가 줄었습니다. 개인 작업이라면 집중력을 더욱 발휘하여 퍼포먼스를 유지하겠지만, 업무 특성상 여러 사람과 팀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나 혼자 집중한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무엇인가 더 필요했습니다.
이 글은 현재의 상황을 인정하고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PM으로써 내부 커뮤니케이션과 리딩을 위해 고민하고 시도한 저의 방법을 공유하는 글입니다.
1. 온라인 프로스펙티브와 레트로스펙티브 진행
*프로스펙티브와 *레트로스펙티브는 프로젝트와 관련된 사람끼리 진행할 수 있는 특수한 활동입니다.
프로스펙티브는 프로젝트 시작 전에 서로가 알아야 할 점과 기대사항, 우려점 등을 밝혀 보는 활동이고, 레트로스펙티브는 프로젝트를 마친 후의 감정이나 배운 점, 보완점 등을 회고해 보기 위한 활동입니다.
하지만 이 활동들은 오늘날 재택근무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상상하지 못했던 시절에 고안됐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실행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도구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원격회의나 실시간으로 다중 편집을 지원하는 서비스는 이미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자유도 높은 환경을 제공하고 별도의 프로그램 설치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피그마(Pigma)와 노션(Notion)을 이용했습니다.
온라인 프로스펙티브는 질문이 적힌 폼을 미리 만들어 놓고 공유한 다음, 정해진 시간 동안 각자 답변을 채우고 Google Meet나 Zoom 같은 것으로 함께 대화하면서 진행합니다.
[개인 성향 관련 질문]
- 오늘의 기분 상태
- 저는 이런 것을 좋아하고 잘해요
- 저는 이런것을 싫어하고 잘 못해요
- 저는 업무에 있어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어요
- 나를 표현하는 단어
[업무 관련 질문]
- 프로젝트에서 예상되는 기회/장점
- 프로젝트에서 예상되는 리스크/단점
- 이번 프로젝트에서 개인 목표
- 팀원에게 공유하고 싶은 것
가용한 시간 내에 필요한 만큼만 진행하면 되지만 업무 외적으로 팀원 개개인에 대해서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고 공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렇게 개인에 대한 이해와 예상되는 리스크를 공유하면서 새로운 일에 대한 막연함과 긴장감을 꽤 누그려 트릴 수 있습니다.
다년간 축적된 경험으로 프로스펙티브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사내에 거의 탬플릿화 되어있기 때문에 신입사원이나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도 큰 어려움 없이 이 과정을 준비하고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질문이 추가되기도 했는데, 팀의 막내가 고안한 “나를 표현하는 단어”는 제시된 32개의 키워드 중에서 본인의 특성과 기질에 가까운 것을 고름으로써 보다 쉽게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프로스펙티브를 통해 팀원의 장단점이나 능력, 개인적 목표, 성향과 상태 등을 파악해 두면 뒤에서 설명할 프로젝트 타임라인을 작성할 때 큰 빛을 발휘합니다.
레트로스펙티브는 함께 일한 동료가 당시에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하고 오해를 풀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걸어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보며 잘한 점이나 부족한 점을 정리하고 앞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메타인지를 발달 시킬 수 있습니다. 도움을 받아 고마웠던 점이나 성과에 대해 칭찬하면서 자기 효용 감을 키워볼 수 있습니다. PM에게 레트로스펙티브의 결과는 새로 찍은 족적과 같기 때문에 추후 다른 프로젝트에서 팀원을 다시 만났을 때 어떤 호흡으로 어떻게 걸어야 할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온라인 레트로스펙티브도 미리 폼을 만들어 놓은 뒤 함께 대화하면서 진행합니다.
[레트로스펙티브 주요 질문]
- 중요 이벤트 당시의 감정과 고민
- 가장 보람찼던 순간과 가장 힘들었던 순간
-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것과 잃은 것
-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내가 조금 더 하면 좋았을 것
- 나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이것 만큼은 잘했어요
- 고마워요, 칭찬해요
프로스펙티브와 레트로스펙티브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익한 가치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재택근무에서도 계속하여 효과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면에서 느낄 수 있는 표정의 변화, 비언어적 표현과 감정 교류를 온라인에서도 이모티콘이나 스티커, 댓글 등의 부수적인 요소로 어느 정도 보충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편안하면서도 유쾌한 분위기로 진행한다면 집중도 역시 떨어지지 않으며, 프로젝트나 팀원과 관련된 디지털 자료를 즉각 활용하면서 오프라인보다 더욱 풍부한 이야기를 나눠 볼 수도 있었습니다.
2. 프로젝트 타임라인과 전체 로그 작성
지난 연말에 한 해를 돌아보니 예년과 비슷하게 적지 않은 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었습니다. 각각의 프로젝트는 시작 시기나 규모에 따라 선형적으로 진행되기도 하고 때로는 얽히고설켜 동시에 진행되기도 했는데, 제한된 시간에 다양한 업무를 제때 처리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계획하고 놓치지 않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를 도와주는 것이 타임라인과 전체 로그 작성입니다.
타임라인은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셋업 단계에서부터 작성합니다. 프로젝트 골에 도달하기 위해 해야 할 업무의 종류와 세부 아이템을 시간 순서대로 리스팅하고 이것을 각각 시작과 종료일을 설정하여 타임라인에 배치합니다. 여기서 리스트 또는 타임라인에는 각 세부 아이템을 담당하고 실행하는 사람의 이름과 진행 상태가 꼭 표시되어야 합니다. 앞서 소개한 프로스펙티브를 수행했다면 이를 통해 얻은 팀원의 특성은 타임라인을 완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소재로 삼을 수 있습니다.
타임라인은 견적을 위한 전체 일정이나 WBS와는 다릅니다. 리서치 몇 주, 아이데이션 몇 주, 화면 설계 몇 주와 같은 덩어리를 더 잘게 세부 목표와 기간으로 쪼개고 팀원과 매치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내외부적 요인으로 여러 상황이 발생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면서 계획에 변화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세부 목표를 미리 펼쳐 놓은 타임라인은 프로젝트 중 발생하는 다양한 변수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처음부터 모든 세부 아이템을 완벽하게 작성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완벽한 계획은 애초에 없습니다. 라이딩을 하러 나왔는데 길이 망가져있다면 경로를 바꿔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으니까요. 타임라인 역시 계획을 작성하고 어딘가에 처박아두는 일회용 문서가 아닌,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내용을 업데이트하며 현황을 추적하는 도구로 삼아야 합니다.
타임라인을 보면 업무의 흐름과 진행 상태를 수시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액션 아이템뿐만 아니라 휴가, 수령한 파일, 외부 일정과 같은 내용을 리스트에 함께 적어 두면 업무에 영향을 미치는 간접 요인들도 다각도로 고려할 수 있습니다. 각 담당자가 맡은 업무와 기간을 살피면서 어느 시점에 더 많은 리소스가 필요한지 미리 확인하고 대비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보다 세심한 업무 분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심혈을 기울여서 멋지고 빈틈없이 만든 타임라인을 PM 혼자서 비밀스럽게 본다면 독재자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타임라인은 팀 내의 모든 구성원이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도록 공유해야 합니다. 그러면 팀원은 타임라인을 보면서 오늘, 이번 주, 이번 달 자신이 맡은 업무와 데드라인을 확인할 수 있고 처리 상태를 업데이트하며 모든 팀원에게 알릴 수 있습니다. 앞, 뒤로 배치된 다른 업무와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맡은 일에 대해 스스로 세부 계획을 세우는 자유도와 책임감을 북돋아 줄 수 있습니다.
전체 로그는 동시에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다수일 때 각각의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일정을 한 번에 확인하기 위해 만든 일정표입니다. 타임라인이 하나의 프로젝트에 대한 세부 내용을 다룬다면, 전체 로그는 진행 중인 모든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메인 이벤트만을 다룹니다. 월간 다이어리에 기념일이나 약속을 기록하듯이 프로젝트 이름으로 태그를 추가해서 이벤트를 작성합니다. 이것은 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소축척 지도 같은 도구이기 때문에 PM 혼자 보거나 제한된 사람과 공유하여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이 많은 것들을 하고 있는지 모든 팀원에게 알리려고 하지 마세요. 팀원은 무엇보다 자신이 맡은 일을 제때 해내는 게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정보는 팀원을 더욱 혼란스럽고 괴롭게 만들 뿐입니다.
3. 최소 단위의 투두리스트 작성
앞서 소개한 타임라인에서 작성한 세부 목표를 더욱 세분화하여 산출물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의 할 일과 결과물을 체크리스트로 만들어 봅니다. 일을 진행하다 보면 내용의 병합, 추가, 삭제되는 영역이 생깁니다. 그러면 이 투두리스트도 함께 업데이트해주세요. 이렇게 관리하는 투두리스트는 현재 시점에서 남은 목표와 분량을 파악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제가 속한 조직은 UI 기획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화면 설계와 상세 기능을 정의하는 업무가 많습니다. 기획서에 담긴 요구사항을 충족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어떤 화면과 플로우가 나와야 하는지를 최소 단위의 리스트로 작성해 볼 수 있습니다. TOC와 형태는 비슷하나 구성 요소와 사용 방식에는 차이가 있으며, 이것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더욱 강력했습니다.
[예시. 최소 단위의 투두리스트 구성 요소]
- 대분류(섹션)
- 타이틀
- 종류(속성)
- 대응 방법
- 반영 시기
- 처리 상태
- 참고 및 메모
구글 시트나 노션을 사용하면 조건부 서식이나 리스트 옵션을 쉽게 설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개발 f/u이나 유지보수를 하면서 적지 않은 양의 문서와 화면을 다루게 되는데, 이때도 재택근무 환경에서 팀원이 분담하고 있는 작업 범위와 상태를 즉각 확인하고 반영하는데 유용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팀 내의 모든 구성원이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도록 공유합니다.
4. 정해진 시간에 간략한 회의
Zoom이나 Google Meet을 이용하여 규칙적인 데일리 미팅을 진행합니다.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는지, 외부에서 코로나 감염될까 봐 걱정되어 집에서 일하는 게 맞는지 꼭 확인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카메라를 켜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특별한 아젠다가 없으면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지 물어보고 경청해 보세요.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소식이나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이슈를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팀원이 모두 참석한 회의는 30분 내외로 마칠 수 있으면 좋습니다. 시간이 더 필요하면 중간에 10분 정도 쉬는 시간을 포함해 주세요. 비대면 회의는 생각보다 더 높은 집중력을 요구하며 쉽게 피로해지기 때문입니다. 많은 내용을 공유해야 된다면 핵심만 압축하여 전달하고 별도의 문서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보다 효과적입니다.
회의 시간뿐만 아니라 회의 참석자도 간략화시킬 수 있습니다. 다 같이 참여해야 좋은 상황인지, 관련자 또는 1:1로 진행해도 충분한 것인지 판단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회의에 붙들려 있지 않고 한편에선 일을 계속 진행하는 게 필요합니다. 참석자를 간략화하면 원치 않는 오디오 겹침이나 네트워크 장애로 인한 시간 낭비도 방지할 수 있습니다.
5. 비업무적인 그리고 솔직한 대화
비록 재택으로 떨어져 있지만 서로가 함께 의지하며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정서적 안정감이 필요합니다. PM과 팀원 모두에게요. 잦은 소통은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현상을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도와주지만 매번 일 얘기만 해서는 절대 가까워지지 않고 진짜 속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공식적인 회의와는 다른 스몰 토크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사무실에서 나누었던 소소한 대화를 말입니다.
PM으로써 겪고 있는 어려운 점, 우려하는 점을 숨기지 말고 왜 이렇게 하고 있는지 팀원에게 솔직히 설명해 보세요. 물리적 거리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 고립될 수 있는데, 현재 일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과 방식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의견을 구한다면 정말 의외의 대답과 예상하지 못했던 해결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프로스펙티브에서 나눴던 대화도 다시 떠올려 보세요. 잘 알고 있다고 제단 하지 말고 그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주의 깊게 살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팀원은 목표로 삼았던 것을 이루고 있는지, 맡고 있는 부분에서 다른 어려움은 없는지, 도전해 보고 싶은 영역이 있는지, 개인적 고충이나 요구사항이 있는지를 자주 물어봐 주세요. 생각보다 많은 대답을 듣게 될 것이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더욱 견고해질 것입니다.
결국 동료와 팀워크를 위한 디자인
재택근무에서 재택을 빼면 결국 근무입니다. 재택을 한계로 삼지 않고, 근무 자체에 더욱 집중하기 위한 것. 기존과 다른 방식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는 것. 변화된 환경에 더 효과적인 방법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것. 재택근무를 하는 PM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목적의식과 이에 기반한 실행 그 자체입니다.
지금까지 소개드린 다섯 가지 내용은 결국 재택근무 환경에서 더 나은 협업을 위한 것입니다. 계획과 상태를 가시적으로 공유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 팀원의 에너지를 집중시키고, 목표 달성을 위한 역량을 높이는 것이 목적입니다. 어떤 툴을 사용했고 무엇을 만들었는지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부수적 재료일 뿐입니다. 더 나은 방법이 분명 있을 테고 저도 역시 계속 탐색하고 다듬는 중입니다.
UX 디자이너는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을 합니다. 그런데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은 밤낮으로 고민하면서, 정작 그 디자인을 하고 있는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인은 충분했었는지 돌이켜보았습니다. 팀원이 불행하게 일한다면 PM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반대로 PM이 불행하면 팀원의 행복도 보장되지 않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제대로 하는 것과 서로를 믿고 책임을 다하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독단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아야 합니다. 팀원을 계몽하려기 보단 자주 의견을 물으면서 계속 유지할지, 변화를 줄지, 폐기할지 판단해야 합니다.
*이 글은 문한별의 브런치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참고##프로젝트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