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아웃런 - 경험과 상식을 뒤집어라

2013. 11. 12. 00:39리뷰
이 재용

아웃런
경험과 상식을 뒤집어라
에린 조

지은이 에린 조 Erin Cho는 뉴욕 파슨스 대학교 Parsons The New School for Design의 전략 디자인 경영학과 종신 교수이다. 전통적 MBA 스타일의 기업 전략에서 벗어난 '디자인적 경영 전략'을 활용한, 보다 창의적이고 지속력 있는 혁신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에린 조 교수는 서울대 의류학과 출신이다.

안식년을 맞아 현재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방문 교수로 한국에 와 있는 에린 조 교수님을 만나 디자인 사고 / 디자인 프로세스를 이용한 기업 경영 전략 혁신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이 블로그가 발행되는 시점에는 책이 시중에 나와 있을 것이다. Daum 책)


디자인적 경영 전략이란
이 책에서 강조하는 '디자인적 경영 전략'이란 경영자가 경영 전략을 짜고 의사 결정을 하는데 디자인 프로세스(디자인 결과를 낼 때의 태도와 접근 방법)를 적용해서 보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브랜드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 일이다. 구성원의 사고를 Design Thinking (디자인 사고) 에 따르는 것 뿐 아니라,

기업 과제와 문제 해결을 찾는 관점과 접근법, 이를 위한 기업 문화와 조직 구성까지 표괄하는 더 넓은 범위의 개념이다. 특히 이런 프로세스를 혁신에 접목하는 것이 디자인적 경영 전략을 통한 브랜드 혁신이다. p016
소비자는 기능이나 속성을 사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산다(p026). 새로운 혁신이라면 이런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낸 것이어야 한다. 그는 책에서 혁신에 대해 언급하면서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한 사례로 나이키 플러스, 길트닷컴& 팹닷컴, 키넥트, 드비어스 등을 제시하고 있다.


코닥_ 나를 망하게 한 것은 나
특히 전통적인 가정과 조사에 따른 혁신만을 고집할 경우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에 따른 인지부조화를 우려한다. 이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로, 코닥을 제시하는데, 1888년 창립해 사진의 혁명을 일끌었던 코닥은 1976년 필름 시장 점유율 90%, 사진기 시장 점유율 85%의 큰 성공을 거두었다. 코닥의 리더들은 사진기에서 디지털 시장이 성장할 것을 예측하고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하는데, 이것은 소니보다 6년이나 빠른 혁신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시장이 성장할 경우 자기가 돈을 벌고 있는 필름 시장이 잠식될까 걱정한 나머지 사람들은 여전히 전통방식을 찍고 현상하리라는 잘못된 '가정'을 확신처럼 믿었다. 너무 늦게 디지털 시장에 참여한 코닥은 결국 2012년 1월 19일 파산 신청을 하게 된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나도 조 교수님께 들려 주었는데, 피엑스디는 한국의 이동통신사와 함께 문자 메시지와 일반 메신저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두 가지의 장점을 결합한 mMessenger를 만들었다. 지금의 카카오톡과 완전히 동일한 이 모델은 문자 대화를 iPhone보다 2년 먼저 대화형으로 보여주는 등 획기적인 특징을 많이 갖고 있었다. IDEA 수상, 글로벌 메시징 어워드 수상, Interaction 잡지 게재 등 세계적인 인정도 받았다. 이처럼 수년 앞서 혁신을 이루었지만 '무료'라는 특징을 내세운 카카오톡을 이기기는 힘들었다. 2012년 다시 한 번 이동통신회사들이 뭉쳐 비슷한 '조인'을 만들었지만, 그마저도 완전 무료가 아니라 '6개월 한정 무료'로 나오게 되었다.
무료 메신저 '조인'... 카톡과 뭐가 달라? - 머니투데이 뉴스 2012.12.26.


뉴 코크_정량적 시장 조사가 실패로 돌아간 이유
1975년 '펩시 챌린지 Pepsi Challenge' 캠페인은, 소비자의 눈을 가리고 콜라 맛을 보게 한 후, 무엇이 더 맛있는지 알아보는 블라인드 테스트였는데, 이중 약 57%의 사용자가 펩시가 더 좋다고 대답했고, 펩시는 이를 광고에 활용했다. 위기에 몰린 코카콜라는 '뉴 코크'를 만들고거의 20만 명을 상대로 한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약 62%의 응답자가 뉴 코크를 선호한다는 정량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시장에 출시하였으나 참담한 실패였다.

한 모금 마셨을 때는 단맛이 좋은데, 한 캔을 다 마실 경우에는 단맛 때문에 싫증이 난다는 문제가 생긴다. 와인도 그렇다. 실은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사용자 조사(User Test)가 이러한 문제를 갖는다. IT 제품에서도 적어도 1주일을 사용해 보아야 그 제품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가능한 경우가 많은데, 그냥 잠깐 써 본 User Test결과와, 나중에 시장에서의 반응은 다른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선호했던 것은 약간 씁쓸한 뒷맛이었는데 이를 놓친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뉴 코크 소비자 조사를 할 때, "코카콜라니까 마셨다"라는 대답이 많았다는 점이다. 자기공명영상MRI 기술로 분석한 결과도 역시 사람들은 이러한 맥락과 브랜드에 더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맛은 하나의 기능 혹은 요소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총체적인 '경험'이다.


한국의 창의성과 미국의 창의성
저자는 미국 디자인 학교 교수이므로, 창의성에 관련하여 미국 디자인 학교 교수들에게 '창의성'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또 학생들에게 '자신이 교육받고 고무됐던 창의적 사고 체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해서 결과를 교차 검증했다고 한다. 이 흥미로운 결과는 꼭 책을 보시길 바란다. 아마 대부분 일반인이 생각하는 창의성과는 다를 것 같다. (책 내용을 통째로 옮겨 적고 싶지만... ㅎㅎㅎ) 정말 정말 흥미로운 부분은, 저자가 한국인이다 보니, 한국에서 디자인 교육을 받고 미국으로 유학온 학생들을 따로 더 깊이 조사한 결과였다. (p80) 살짝 언급하면, 한국에선 교수가 원하는 '정답'을 향한 '완벽함'이 중요하다고 한다.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의 디자인 '겸임'교수다)


소비자에게 혁신을 묻지 마라, 대신 '공감'하라
사용자 조사를 하다보면, 정말 사용자들이 자신들이 뭘 하고 있는지, 자신들이 뭘 원하는지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이 책(p104)에서는 시리얼 사례, 허만밀러의 에어론 의자 사례 등.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소비자들을 무시한다면 새로운 혁신이 성공하기 힘들다. 그들에게 자신들이 뭘 원하는지 묻는 대신 우리가 해야할 일은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이다.

진심으로 사용자에 공감했을 때 나오는 혁신으로 옥소 굿 그립(p119), 치타(p121), 탐스(p125) 등의 사례를 들고, 공감에서 더 나아가 사용자를 '힐링'하는 혁신을 제시하고 있다.


혁신에는 다중 시점이 필요하다
하나의 현상을 되도록 여러 각도에서 관찰하고 해석해야 한다. 그만큼 위험성이 크기 떄문이다.(p144) 이를 위하 우선 개개인이 융합형 인간이어야 하는데, IDEO CEO 팀 브라운이 설명한 T형 인간을 넘어, 저자는 H형 인간을 제시하고 있다. 깊은 전문성과 다양한 경험에, 깊은 '공감'을 추가한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피엑스디에서 최근 진행하여 Red Dot Best of Best 상을 수상한 병원 서비스 디자인 프로젝트 Smart Bedside Station에 대해 소개했다. 일반적인 병원은 대개 의사의 시각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져있는데, 피엑스디 인원들이 병원에 들어가서 환자의 경험을 하면서 알게된 놀라운 인사이트들을 병원의 의사들에게 소개했더니 상당히 신선하게 받아들이더라는 사례였다. 병원에 20년 이상 근무하면서도 환자에게 공감하는 완전한 다중 시점을 보기는 어렵다. 또한 병원에 도입되는 각종 새로운 IT 기기들이 성공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조건 중 하나는 간호사들로부터 호응이 있어야 한다는 점도 언급하였다. 간호사들의 시간을 절약해 주지 못 하는 서비스는 처음에 잠깐 뉴스에 나올 뿐 곧 사라지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듯, 병원의 서비스는 환자,의사,간호사 뿐 아니라 병원 경영자(원무과)등 다양한 사람들에 공감하는 다중 시점이 필요하다.


단순하되, 경험의 깊이를 담아라
책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디자인을 하던 사람이라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던 여러 가지 것들을 경영의 영역에 옮겨 놓은 느낌이다. 조 에린 교수는 이러한 디자인 사고와 디자인 프로세스를 경영자들이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혁신적인 디자인이 나오지 않는 것은 실무 디자이너들 때문이 아니라, 경영자들이 디자이너들에게 제대로된 '전략'을 설정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단순함을 추구하는 것도, 소비자는 '의미있는 단순함meaningful simplicity'을 좋아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한다.
혁신을 위한 디자인 능력이란 '무엇을 넣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빼느냐'에 대한 통찰력이다. (p172)
그러니까, 제품 기획이나 디자인을 본 경영자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슨 무슨 기능은 왜 안 들어갔지?'가 아니라, '이 기능은 왜 들어갔지? 본질과 거리가 있다면 이 기능은 빼'라고 이야기할 정도록 제품의 본질, 혹은 전략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핵심 경험Core Experience을 키우는 요소를 부각하면서 단순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CEO가 '시장이 이 제품에서 원하는 핵심 경험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통찰력을 갖는데서부터 의미 있는 단순함이 시작된다. 단순함이란 경험의 깊이를 없내는 것이 아니라 이를 훌륭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뒤로 감추는 것이다. (p174)


마무리
"아마 쉽게 금방 읽으실 거예요" 수줍어 하시면서 교수님께서는 자신의 책에 서명을 해서 주셨다. 말씀대로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이미 알고 있는 사례들도 있고, 또 새롭게 알게 되거나 좀 더 자세히 알게된 사례들도 있었다. 특히 마지막의 파타고니아 사례(p198)는 '우리 제품을 사지 마라'라는 광고에서 느껴지듯이 충격적이었다(궁금하신 분은 기사 참고). 친환경을 지향하는 이 아웃도어 패션 브랜드는 소비자들이 신제품을 사기 전에 먼저 이베이에서 중고 제품을 검색하도록 만든다. 어떻게든 새로운 제품을 많이 팔려고 하는 이 세상에서 이런 기업도 있다니...

또 교수님은 항상 CEO 들에게 디자인적 전략 경영을 역설한다고 하셨는데, 디자인 사고나 디자인 프로세스에 대해 익숙한 나이지만, 프로젝트가 아니라 회사 경영에서 이러한 실천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여러가지로 흥미로운 책이다.
[참고##디자인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