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역사 산책 2] 독일 바우하우스와 근대성

2014.03.26 01:09리뷰
by 문한별

서울대학교 디자인 학부 김민수 교수님께서 진행하는 '디자인 역사 산책' 강의의 두 번째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독일 바우하우스와 근대성이라는 주제로 당시 근대의 길목에서 바우하우스의 역할이 무엇이였는지를 알아 보았습니다. 더불어 바우하우스 구성원들이 공유했던 디자인 이념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우리 삶에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1주 : 디자인과 삶의 철학
2주 : 독일 바우하우스와 근대성
3주 : 1930 년대 식민지 근대 공간과 이상의 시
4주 : 이탈리아 디자인의 역사와 인본주의
5주 : 일본 디자인의 역사와 디자이너들
6주 : 한국 디자인의 역사와 과제들


우선 2회차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지난 시간에 진행한 '디자인과 삶의 철학' 강의 시 드렸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려주셨습니다. 당시 강의중에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를 반영한 제대로된 아이덴티티를 가진 디자인의 사례와 중요성을 말씀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얼마전에 발표한 평창 동계올림픽 로고는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질문을 드렸었습니다. 이에 대해 교수님께서는 본인이 생각하시는 평창 올림픽 로고의 문제점과 함께 UX에 대한 관점을 더하여 답변해 주셨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로고 (출처 : http://pyeongchang2018.com)


Q: "평창 동계올림픽 로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평창 동계올림픽의 로고가 UX와 UI에 몇가지 단서를 주는것 같습니다. UX는 인지적 교감영역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UX 디자인이라 하면 우리가 경험을 어떻게 디자인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사용자 경험이라는 것이 디자인을 하는 것에 있어서 독립변수로 작용할 수 없습니다. 경험이라는 것은 컨텐츠 영역에 들어가는 내용적인 측면입니다. 형태적인 것은 UI고 그것을 채우는 내용은 UX가 아닌가요? UX 디자인을 UI 디자인과 별개의 독자적인 영역으로 접근하면 평창 로고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을 망각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인들이 함께 참여하는 올림픽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커뮤니케이션을 더욱 보편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평창 로고) UI 차원에서 얘기했을때는 썩 좋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인이 이 로고를 평창의 'ㅍ'으로 읽을 가능성이 몇 퍼센트나 될까요? 주관적 관점으로는 세계와 소통할 수 없으며 이것은 공감대 형성이 전혀 안되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눈은 선택적이므로 한 번에 많은 정보를 다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역대 올림픽 로고들은 가장 먼저 눈에 지각되어야 할 요소의 우선순위를 레이어 개념으로 조절하고 있습니다. 반면 평창 올림픽의 로고는 그것마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위와 같은 답변과 함께 전달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면서 2회차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디자인을 공부해 본 적이 있다면 바우하우스는 분명 어디선가 보거나 들어 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만큼 바우하우스는 디자인 역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할 때 조형의 대한 이론과 역사를 배우면서 처음 접하였었는데, 그게 벌써 9년 전 일이니 기억에 남는 것은 아래와 같은 건물 이미지 뿐이였습니다.


데사우 국립바우하우스 (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87106931@N00/1432715400/)
바우하우스의 조감도 (출처 : http://docentedehistoria.blogspot.kr/)

이 건물은 현대식 건축 기법의 기본이 되는 커튼월 공법으로 지어졌습니다. 근대 이전의 건축물들은 육중하게 지면에서 쌓아 올린 방식이였으나, 바우하우스는 기둥으로 건물을 지지하고 높게 치솟는 현대 건축의 예고편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고전 건축은 앞과 뒤, 측면의 차이가 명백했으나 바우하우스는 3차원적으로 인지해야만 전체를 알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한, 이 건물과 함께 당대에 만들어진 제품과 형식들로부터 느껴지는 모던함과 같은 이미지만 생각나는게 전부였습니다. 이렇게 희미한 유년시절의 기억처럼 남아 있던 바우하우스에 대해 다시 돌아보고 보다 깊게 고민해 볼 수 있었던 이번 강의를 간략하게 요약해 드리고자 합니다.



1. 바우하우스를 왜 보아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바우하우스에 대해서 얘기할때 1925년경 이후 모호이너지(Laszlo Moholy-Nagy) 등에 의한 현대적인 이미지와 형식적인 측면을 기억합니다. 이처럼 바우하우스는 현대 디자인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상징적 존재로 남아 여전히 깊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나아가 알아야 할 것은 바우하우스의 이념적 측면입니다. 바우하우스가 실현하고자 했던 디자인 이념과 사회적 배경에서의 의의는 오늘날 한국 사회와 디자인이 고민해 보아야 할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시대적 상황
독일 사회는 산업, 군사적으로 막강한 국가 체계를 갖추고 있었고 국민들의 자긍심 또한 막대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독일 사회는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황제는 폐위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탄생하며, 치솟는 인플레이션 때문에 백만 마르크 단위의 화폐가 발행 되었으니 왠만한 생필품 하나 사려면 수레에 돈을 한가득 담아 가야하는 상황이였다고 합니다. 또한 정치적으로도 매우 혼란스러운 사회였습니다. 이런 사회를 수습하기 위해 나타난 자가 바로 히틀러였고, 사람들은 그런 독재에 기대게 되버리는 비틀어진 군중심리가 작용하던 때였습니다.



3. 발터 그로피우스 (Walter Gropius)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오직 새로운 예술만이 독일 사회를 수습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발터 그로피우스였습니다. 과학적 원리들을 기반으로 새로운 예술이 사회를 구원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입니다. 애초에 바우하우스의 설립은 순수 조형 교육만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닌 정치적 의도 또한 그 바탕에 있었던 것입니다.



4. 바우하우스
국립 바우하우스 선언문, 목판화 (출처 : http://www.bauhausmuseum.com/)


최초의 바우하우스는 1919년 바이마르에 설립되었고 그로피우스는 초대 학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당시 국립바이마르 바우하우스 설립 선언문에는 위와 같은 빛나는 고딕 성당 목판화가 담겨 있는데 이것은 바우하우스의 모든 조형예술을 통합하고자 하는 열망을 나타냅니다. 고딕 성당이 한 채 지어지기 위해서는 건축을 중심으로 모든 장인 기술이 통합되어야 하듯이, 바우하우스는 건축을 중심으로 회화, 조각, 타이포그래피, 그래픽, 공예 등의 모든 예술 형태를 통합하고 총체 예술로 나아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바우하우스는 이론을 실천으로 연결시킨 교육 기관이였습니다. 기초 조형을 통해 기본 원리를 가르치며 요소에서부터 전체를 만들어 갔으며, 생산 방식과 과학적 합리성에 기초한 기술 혁신과 체계를 통해 삶의 형태를 새롭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규칙을 만들고자 했으며 혼란된 사회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원칙이 필요하기 때문에 약간은 독단적이여도 체계를 잡고자 했던 것입니다.

"모든 고대사는 하나의 호수로 흘러들어 로마사를 이루고 근대사는 다시 로마사의 물줄기로부터 흐르기 시작했다." -랑케-

독일 역사가 랑케의 말처럼 교수님께서는 바우하우스 또한 다음과 같이 이해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19세기 이래 근대 디자인의 모든 움직임과 철학이 바우하우스에서 결집되고 20세기 현대 디자인은 다시 바우하우스의 물줄기로부터 흐르기 시작했다."



5. 우리에게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바우하우스는 오늘날 단순히 이미지적인 의미가 아니라 건축에서 일상생활용품, 타이포에 이르기까지 현대적 삶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념적 실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우하우스가 설정한 기능이 현대의 다양한 문화를 충족 시키기에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어떻게 소통하는가에 대한 기본 룰들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전달되고 어떻게 교감되고 있는가가 중요한 사항인 것입니다.

반면에 오늘날 한국의 디자인, 그 중에서 예를 들면 집의 풍경은 어떠할까요? 그리고 집을 소개하는 광고와 여러 건축 관련 박람회, 페어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과시적 소비와 졸부 취향에 기인하는 비현실적인 판타지들은 어떠한가요? 이것들이 실존적인 집의 요건을 반영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삶의 프로그램으로부터 진화되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디자인이 아니라 어디서 먹다 버린 것을 주어다 먹는 식의 디자인은 아닌지, 그리고 그런 디자인을 맹목적으로 분별없이 수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문화적 연속성을 도외시 하고 매일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 하면 이상하고 아름다운 것들만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내용을 어떻게 형식적인 그릇에 담아 전달할 것이며, 본질은 무엇인지, 어떻게 소통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꾸준히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강의를 마치셨습니다.
실존 감각을 가져라. 본질에 충실하라. 기본 쌓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이로부터 새로운 것을 제안하는 것이 공존하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


ⓒ 김민수,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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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ㅇ2014.04.02 17:07

    역대 올림픽 로고들을 보면 대부분 뜬구름 잡는 희안한 형상인데 평창은 ㅍㅊ 을 형상화하면서도 올림픽의 발상지인 그리스 신전 모양이거든요. 중의적으로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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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ㅎㅎ2014.04.03 16:57

      네 저도 역대 올림픽 로고들이 다 좋아 보이지는 않아서 말씀에 공감합니다.
      우리 것이니까 더 관심을 갖게 되고 더 좋은 것이길 바라는 마음인 것 같아요.

      보통 대륙별로 돌아가며 올림픽을 개최하죠. 개최국가의 역사, 전통문화, 정신을 올림픽정신과 어울어지도록 앰블럼에 반영했으면 좋겠고 시각언어로서 구두상 설명없이도 전세계사람들에게 핵심적인 의미는 직관적으로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평창올림픽의 로고가 그 부분에서 부족하다고 교수님은 느끼시는 것 같고, 저도 평창로고를 처음 보았을 때 비슷한 생각이 들고 말았네요.—;
      무엇보다 구성의 짜임새나 조형적인 완성도가 아쉬웠습니다.
      (그리스신전을 연상하는 사람들이 다소 있더군요. 우리와 그리스가 공동개최를 한다면 ㅍ자의 표현은 나름 괜찮은 접근일 것 같습니다. ㅎ)
      그런 의미에서 63년 도쿄올림픽 앰블럼은 지금봐도 약간 충격을 받게 됩니다. 일장기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동양적 간결함의 극단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오륜기를 전부 금색으로 처리하다니.. “일본에서 하는 올림픽이야! 오륜기의 오색과 의미정도는 다 알잖아! 엠블럼을 강조하려는데 오색이 방해된다! 그리고 우리는 왕조가 있는 국가야! " 하며 금색으로 밀어버린 것 같습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도 문명의 발상지라는 자부심을 드러내기 위해 한자 '글월 문'자를 역동적인 인간형으로 형상화하고 한자문화권의 붉은 낙관(하필 공산당 중국과도 어울림)과 검은색 붓글씨서체를 사용했는데 전세계사람 누가봐도 중국의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형상이 한자의 '글월 문'자라는 걸 전세계인들이 알 필요는 없죠. 적어도 중국의 형식을 빌어 역동적 인간형을 표현했다는 것은 바로 전달이 됩니다. 그것이 문명의 자부심을 드러내고 싶은 한자였다는 것은 '숨은 재미'인거죠.
      우리 평창올림픽의 앰블럼은 주제가 ‘한글과 눈모양의 ㅊ과 오륜색’ 인 것 같습니다. 전세계인에 한글의 형상임을 바로 전달하기엔 무리가 있어보입니다. '오륜기의 컬러와 눈결정 모양이 있다’는 무리없이 전달 될 것 같아요. 한글이었다 라는 것은 다소 '숨은 재미’에 가까운데 주제가 되었습니다. 베이징올림픽때 처럼 '우리만의 표현형식’이 없어 보여 아쉽니다. 한국에서 개최되는 세계적인 타이포그라피 컨퍼런스 앰블럼에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이미 결정된 앰블럼이라... 가타부타 비판도 좋지만 활용과 전달방식을 극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를 다같이 고민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