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께서는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지난 4주차 강의 (이탈리아 디자인의 역사와 인본주의) 시간에 소개해 주셨던 올리베티의 발렌타인 타자기의 실물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붉고 선명한 색상의 바디는 정열적인 페라리를 떠올리게 했고, Rubber소재로 된 케이스의 잠금장치는 사물에 사람의 인성과 관계성을 부여하려던 흔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이러한 제품 디자인과 지금의 UI, UX 디자인은 미디어 자체의 변화일 뿐 사람과 사물 사이의 관계성에 대한 고민의 차원은 서로 다르지 않으며 UI, UX 디자인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상기 시켜주셨습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일본이 개항 이후 어떤 전략을 갖고 그들의 미술과 디자인을 발전 시켜왔는지를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상징적인 일본 디자이너들과 그들의 작품을 통해서 일본의 형식적 틀을 볼 수 있었는데요, 이러한 형식적 틀이 어떠한 역사적 맥락을 통해 형성되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한국 사회와 정신은 시각 문화로서 어떤 측면에서 추구하고 발전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자각이 필요함을 느낀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아래부터는 내부 공유만 가능--
1. Japonism
17~18세기, 서구는 바로크 시대였으며 절대 권력과 돈의 맛을 처음으로 보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를 포함한 유럽의 각국들은 항해술의 발달로 원거리 무역을 하기 시작했으며, 일본도 이때부터 서구와 끊임없는 관계를 갖기 시작합니다.
<좌> The Geisha from Daly’s Theatre London, 1896
<우> ‘떠오르는 태양’(旭日) 주제의 옻칠 장식가구, 17~18C
사전에서 japanning이라고 검색하면 ‘옻칠하기’라고 나오는데, 이것은 일본이 오래 전부터 서구와 교역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1850년 미국, 유럽 각국들과 개항을 체결한 일본은 1868년에 메이지 시대를 열게 되고, 19세기 말 일본 미술은 ‘식산흥업’이라는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진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일본의 미술 수출품들은 화조
1), 초목, 일상 삶, 역사 풍속 등을 주제로 유럽인의 취향에 맞춰 이국적 정서에 호소하며 제작 되었고, 이러한 작품들을 서구인의 눈으로 본 오리엔탈리즘 취향을 일컬어 ‘Japonism’ 이라고 합니다. 이후 Japonism은 서구 아르누보 양식의 미술공예품 생산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1) 화조(花鳥) : 꽃과 새, 꽃과 새를 그린 그림.
2. 화혼양재 (和魂洋才)
'Tokyo, Form & Spirit' Exhibition. New York IBM Gallery, 1985.
1985년, 뉴욕 IBM Gallery에서 열린 Tokyo, Form & Spirit은 일본의 건축가, 패션, 그래픽 디자이너 등이 집대성하여 일본을 세계에 알린 전시입니다. 위 작품은 그때 전시된 작품 중 하나인데 자세히 보면 그림 속의 남자가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끈을 묶고 있는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화혼양재는 일본의 정신에 기초해 서양의 기법과 이치를 배운다는 일본의 근대전략입니다. 작품의 주제는 지극히 일본적이지만 이를 서양의 기법으로 표현하고 극화된 연출을 보여준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다음은 화혼양재 전략에서 행해진 또 다른 작업들입니다.
<좌> 야마시로 류이치, 도쿄국제판화 비엔날레 전시회 포스터, 1960.
<우> 이시오카 에이코. Parco를 위한 포스터, 1979.
왼쪽은 1960년, 도쿄국제판화 비엔날레의 전시 포스터 입니다. 일본의 상징적 요소로 많이 쓰이는 태양과 후지산을 기하학 도형으로 표현 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른쪽 사진은 이세이미야케의 옷을 입은 미국인 모델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서양은 동양을 입을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디자인 이면에 화혼양재가 담겨 있습니다.
3. 모더니즘의 태동
1923년, 일본 미술을 지배하던 화혼양재를 뒤집는 사건이 나타납니다. 당시, 관동대지진 발생 후 일본인들은 모든 것이 물거품 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반성과 자각을 하게 되고, 원리에 입각하여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하여 그래픽디자이너이자 교육자인 하라 히로무(原弘 1903 ~ 1986)를 중심으로 지금까지의 틀과는 다른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라 히로무는 28살에 얀치홀트의 비대칭타이포그라피를 번역하여 출간하였으며, 바우하우스 관련 전시 포스터 등을 디자인 하였습니다. 다음은 그의 작품들입니다.
4. 1945년 전후 일본의 모더니즘
다나카 잇코, 제8회 ‘노’ 공연포스터, 산케이 신문사 주최, 1961.
오른쪽은 공연 포스터로서, 실제 배우가 극중에 입고 나온 의상의 컬러를 활자에 담아내고 검은 바탕과의 관계로 극의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포스터에서는 활자 공간을 일본적 정체성을 담고 있는 상징적 공간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표현들이 화혼양재의 극화된 연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나카 잇코, ‘문자의 상상‘ 포스터, 1993.
앞서 본 일본의 우파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화혼양재 형식과 대치되는 것이 하라 히로무를 축으로 하는 모더니즘입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가메쿠라 유사쿠의 작업을 소개 드립니다.
가메쿠라 유사쿠, 도쿄올림픽 디자인, 1964.
<좌> Nikon Camera Ad., 1967.
<중> 오사카 엑스포, 1967.
<우> 원자력의 평화적사용, 1956.
이처럼 전후 일본의 1세대 디자이너들은 다양한 모습들을 하고 있으면서도, 전체를 추려 놓고 보면 화혼양재와 모더니즘이라는 두 가지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5. 또 다른 디자이너들
<좌> 사이토 신이치의 소설 <부찐고마의 여인> 1985.
<우> 파리 레자뜰리에 전시 포스터 “전통과 현대기술”, 1984.
5.1. 스기우라 고헤이
아트디렉터이자 북 디자이너이고, 울름조형대학의 초빙교수였던 그는 일본의 화혼양재와 모더니즘의 두 축과는 조금 다른 위치에 있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과학적 합리성과 동양적 정신세계간의 균형을 추구합니다. 1990년대 말에 출간한 우주론적인 형태의 원리를 나타내고 있는 ‘형태의 탄생’에 그의 사상과 정체성이 담겨 있습니다.
5.2. 요쿠 다다노리
<좌> “전후 문화의 궤적: 1945~1995”, 1995.
<우> “Tadanori Yokoo”, 1965.
서구디자인계에 가장 일본적인 디자이너로 소개된 요쿠 다다노리입니다. 그는 일본의 원조 팝아트 디자이너라 할 수 있으며, 그의 작품은 일본 대중문화의 전통과 통속성에 기초해 자아분열증에 걸린 전후 일본사회의 현실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5.3. 무라카미 다카시
캐릭터 ‘미스터 도브(Mr. DOB)’와 그 변형, 1993.
예술기업론이라는 책도 출간한 그는 오타쿠 문화를 패전 후 무능한 문화로 보고 이를 극복하고자 팝아트와 결합을 시도하였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의 일본 현대 예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방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의 그림을 잘 보면 캐릭터의 눈이 지글지글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돈 되는 것은 다 하겠다 작가의 욕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Tan Tan Bo>, 2001.
위 그림은 끊임없는 성장과 개발 만능주의에 기초해 게걸스럽게 먹고 토하는 현대 사회를 오락 삼아서 노는 작가의 자화상이라고 합니다. 교수님께서는 무라카미 다카시를 일본 오타쿠 문화를 미국식 네오팝아트와 결합하여 폭식적 욕망을 토해내는 끝없는 욕망의 쾌락 동산을 건설한 현대 예술의 부동산 개발업자라고 표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최근 작들은 무능한 문화의 극복을 넘어 예술의 전능을 국가주의로 세우려는 위험한 욕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