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에이전시의 색다른 시도 - 기술과의 결합

2015. 2. 5. 02:50GUI 가벼운 이야기
이 재용

지난 번 디자인 에이전시의 몰락 글에서 너무 우울한 이야기만 한 것 같아서, 디자인 에이전시의 다른 시도를 두세 가지 정도 소개하려고 한다. IOT 기술 개발과 결합한 에이전시 형태(이번 글)이고, 교육과 컨퍼런스 사업, 그리고 스타트업과의 협업/투자 모델이다.


일반적으로 디자인 에이전시라고 하면 대개 개발 조직없이 디자이너들이 모여 결과물을 내는 회사라고 생각했지만,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많은 웹(디지털) 에이전시들이 디자이너와 개발자를 함께 운영하여 결과물을 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여기서 '개발'이란 대개 순수한 소프트웨어 개발, 조금 더 좁혀서 말하자면 웹 개발에 국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형태가 발전하면서, 새로운 디자인-기술 협업 모델이 계속 나오고 있다. 먼저 과거 모델들부터 순서대로 조금 살펴보자.



1. Maya Design

미국의 유명 디자이너 레이먼드 로위의 명언, 디자인이란 'MAYA - Most Advanced Yet Acceptable'해야 한다는 말에서 영감을 얻은 회사 이름으로 카네기 멜론 대학의 3명의 교수가 함께 1989년에 설립하였다. 인지 심리학자인 피터 루카스, 산업 디자이너인 조셉 발레이, 컴퓨터 사이언티스트인 제임스 모리스, 이렇게 세 명의 교수는 피츠버그에 회사를 만들어 기술과 디자인, 인간에 대한 이해가 동시에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에이전시를 만들었다. 

이들의 모토는 'Taming the Complexity'인데, 우리말로 한다면, '복잡성 길들이기' 정도가 된다. 기술적으로 복잡하고 디자인으로도 어렵고, 인지 심리학적인 이해도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이리라.

CMU 디자인과 학생으로서 학교를 다닌 필자에게 조 발레이 교수는 매우 인상좋은 할아버지 같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http://maya.com/



2. TAT - The Astonishing Tribe

스웨덴 Malmo라는 도시에서 2003년에 설립한 TAT라는 회사는 설립 당시 "Design Loves Technology"라는 모토를 가지고, 디자이너, 예술가, 개발자가 함께 회사를 만들었다. 특히 휴대폰 UI에 집중하여 많은 글로벌 대기업과 협력하였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많이 집중시키는 UI를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블로그를 통해 발표함으로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블로그(http://www.tat.se/blog)를 통해 2010년 공개된 바 있는 아래 동영상은 아마 아련한 기억으로 한 번쯤은 다들 보지 않았을까 싶은데, 자신들의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영상으로 만들어 공개한 것으로서 유투브에서 400만뷰 정도를 기록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10년 블랙베리에 인수되어 현재 블랙베리의 UI를 담당하고 있다.

http://www.tat.se/about/


이 정도가 다소 전설적인 회사라면, 이제 새로운 회사들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3. KWAME Corp.

피엑스디에도 방문한 바 있는 Kwame Ferrelra가 설립한 "Design and Engineering"을 모토로 삼고 있다. 자신들의 사업 분야를 크리에이티브 컨설팅, 기술 컨설팅, 스타트업 인큐베이션으로 삼고, 디자인과 기술의 협업이 필요한 일을 대행하는 에이전시이다. 특이한 것은, (어쩌면 이 부류의 기업들에게는 매우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TAT와 유사하게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지 않은, 자기 스스로 필요한 기술과 상품을 만들어 먼저 제시하고 그것을 마케팅하는 사업을 많이 전개했다. 역으로 그 아이디어와 기술을 바탕으로 용역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공정 거래와 윤리적으로 생산된 부품만 사용하는 핸드폰 등이 그들의 제품이다.


2013/09/03 - 디지털 R&D 에이전시 Kwamecorp의 pxd방문


언제라도 서핑을 나갈 수 있는 사무실이 리스본에 있고, 런던과 샌프란시스코에도 오피스를 갖고 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Unlimited Holidays, 즉 휴가가 무제한이라고 한다. 우리 회사에도 언젠가는 꼭 도입하고 싶은 제도이다. 한국 회사와도 협업하며, 한국인도 근무하고 있다.

http://www.kwamecorp.com



4. Berg

Berg는 2005년 런던에 설립된 디자인 컨설턴시이다. 다양한 서비스를 하였고, 2012년에는 패스트 컴퍼니가 선정한 가장 혁신적인 기업 50에 들기도 했다. 2013년 Berg Cloud라는 이름의 하드웨어 클라우드를 만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돌아가는 최초의 제품으로 Little Printer를 제조하여 생산/판매하기 시작했다. 컨셉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피엑스디에서도 구입한 적이 있다. 그러던 작년 겨울, 지인으로부터 베르그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클라우드 사업으로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다고 블로그에 씌여있다. Little Printer는 2015년 3월까지만 운영하고, 전체 자산은 매각할 예정이라고 한다.


Cloudwash: the connected washing machine from Berg on Vimeo.


하지만 그 문화와 영향력은 지속될 것이다. 특히 베르그가 보여준 '클라우드 와시 Cloud Wash' 개념은 클라우드 가전 제품이 어떤 길을 가야하는지 보여준다.

http://bergcloud.com/case-studies/cloudwash



5. Artefact Group

2006년 Gavin Kelly와 Rob Girling이 시애틀에 설립한 아티팩트 그룹은 요즘 가장 주목받는 차세대 에이전시 중 하나이다. 21세기에 맞는 기술 제품과 서비스를 디자인+개발하되,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표로 한다. Understand-Design-Implement라는 간단한 프로세스로, Research, Strategy, Interaction Design, Industrial Design, Software Engineering 이렇게 5가지 종류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즉, 이들 역시 강력한 엔지니어링 그룹과 함께 'End-to-End' Product design and development service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고객으로 있다.

http://www.artefactgroup.com


Serenity: A Home OS with a Heart (출처:Artefact Group 홈페이지)



6. Agency of Trillions

세상의 컴퓨터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지면 어떻게 될까? 그 어마어마한 숫자가 트릴리언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곧 그 시대에 들어가고 있다. 만약 웹 기술이 웹 에이전시를 만들었다면, 이제 변화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컴퓨터, 그 세상을 위한 에이전시도 필요하지 않을까?

위 마야 디자인의 설립자들이 최근에 쓴 공저 'Trillions: Thriving in the Emerging Information Ecology' 책에서 따온 이름으로 마야의 투자를 받아 설립된 새로운 Hybrid 에이전시인 AOT는 현재 피츠버그, LA, 뉴욕에 사무실을 두고 있으며, 트릴리언즈 시대에서 필요한 마케팅과 전략을 도와줌과 동시에 스타트업/신규 제품 인큐베이팅을 하고 있다.

http://aot.co/





대체로 웹 에이전시 시절에는 디자인 표현을 증대시키는 기술로 내부에 두었다면 지금은 대등한 결합으로서 기술을 대하는 느낌이 든다. 이는 앱 시장의 발전함에 따라 웹 보다는 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해졌고, IoT등 하드웨어의 결합도 증가하여 더 넓은 영역의 기술이 필요해 진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너무 치열한 경쟁 후 이제 '혁신'이 짧은 기간의 단기 프로젝트로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디자인 사고(Design Thinking)나 린(Lean), 애자일(Agile) 방법론 등을 적용하려면 모두가 한 팀이 되어 일하는 환경이 필요한데, 디자인 에이전시로서 그러한 환경을 갖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에이전시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다음 글에서는 디자인 컨설턴시의 교육과 컨퍼런스 사업, 그리고 스타트업 지원 모델에 대해 써 보려고 한다.


[참고##디자인 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