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24. 07:50ㆍ리뷰
우리는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
철학과 인문학으로부터 업의 본질을 묻고 답하다
크리스티안 마두스베르그, 미켈 B. 라스무센 지음
The Moment of Clarity
Using the Human Sciences to Solve Your Toughest Business Problems
Christian Madsbjerg, Mikkel B. Rasmussen
기업 경영에서 철학과 인문학을 강조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 인문학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되는지 설명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 책은 '철학과 인문학으로부터 업의 본질을 묻고 답하다'라는 부제를 담고 있는데,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The Moment of Clarity)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얼마전 이 블로그에서 공개한 '레고가 밝혀낸 놀이의 본질'은 이 책의 5장에 나온 사례를 소개한 것인데, 그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 그만큼 우리가 '본질'에 대한 질문에 목마름을 갖고 있다는 뜻인 듯 하다. 이번 블로그에서는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을 간단히 정리해 보려고 한다.
거대한 시대의 변화는 해당 산업의 종사자들에게 처음에는 알수 없는 먹구름처럼 천천히 다가온다. 문득 작은 물기 같은 것이 목덜미에 느껴지지만, 곧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어느새 하늘을 올려다보면 하늘 전체가 순식간에 먹구름으로 뒤덮인 것을 보는 경험처럼, 우리가 처음 SK텔레콤의 의뢰를 받아 2005년에 핸드폰에서의 무선 인터넷(WAP) 사용에 관해 조사했을 때, 우리가 발견한 것은 핸드폰의 사용이 음성 중심에서 데이터 중심으로 이동하려는 아주 아주 초기의 미약한 신호였다. 그리고 시대는 아주 빠르게 변화해 버렸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에 직면하여, 기업의 임원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이라는 서론으로 시작한다. 레코드, 테이프, 비디오, CD가 차례로 사라졌듯이, 이제 유선전화는 사라져가고 있다. 노트북도 사라져가고 있다. 아마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방송국'이나 '케이블'을 통한 실시간 시청도 곧 사라질 것이다. 올림픽도 인기가 없어질 것이고, 노키아가 망했듯이, 굴지의 자동차 회사들도 곧 망할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변화의 시기에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소비자를 조사하지만, 그들이 소비자를 정말로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은 산업계가 갖고 있는 잘못된 '인간 행동 모형'에 근거한 설문 조사나 포커스 그룹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최근 나온 행동 경제학 등은, 인간이 충동적이며 비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진일보하였으나, 여전히 인간에게는 정체가 분명하고 쉽게 변하지 않는 선호가 존재한다고 전제한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도구와 큰 차이가 없다(p14)
대부분의 조사 방법들은 제대로 질문을 던지기만하면 소비자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실제 우리 인간의 행동과 결정은 의식하지도 않은 채 이루어진다.
"왜 이렇게 됐는지 도무지 모르겠어" 이것이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험, 선택, 결정의 실상이다. 그리고 이 책이 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그 도무지 모르겠는 어떤 영역, 즉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 그러기 위해서 그간 비즈니스 세계에 있었던 가설들의 결함을 찾아내고, 그 대안으로 진정한 인간 행동 이해가 가능하도록 해주는 인문학적 방법론들을 소개할 것이다. p16
"요가도 과연 스포츠일까요?"
대부분의 스포츠 용품 회사들이 전문 운동 선수들을 위해 제품을 만들던 것에서 출발하여, 대중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는 식으로 시장을 확대해 왔다. 이른바 엘리트 스포츠가 유행하던 과거에는, 뛰어난 선수들이 그 신발을 신는다는 것으로 마케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아마추어는 미숙한 프로 선수가 아니다. 공원을 달리기 하는 선수는 마라톤 선수가 되려는 사람이거나 마라톤 선수가 되려다 포기한 선수가 아니라, 그냥 달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수많은 비경쟁적인 '운동'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것이 오랜 동안 스포츠 용품 회사의 "남성 운동선수 중심 문화"에 젖어 있던 임원들에게는 결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 그들에게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요가도 과연 스포츠일까?"
'승리를 가져다 줄 성능'이 중요하지 않게 되는 작은 신호는 1990년대 후반부터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스포츠 용품 회사의 임원들은 2003년이 되어서야 이런 변화를 감지했다. 만약 요가도 스포츠라는 개념을 받아들였다면 '대다수 소비자가 승리를 목적으로하는 스포츠활동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신세계를 탐구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은 훌쩍 흘러, 2012년이 되자, 마침내 요가, 헬스 피트니스용 의류 시장 규모는 전체 스포츠용품 시장의 절반을 넘어섰고, 워킹, 조깅, 헬스용 운동화 시장은 두 자리 수의 증가세를 보이는 반면 농구, 테니스, 야구 운동화는 매년 눈에띄게 축소되었다. 조직화된 스포츠를 즐기는 인구보다 피트니스 강습을 받는 인구가 다섯배 더 많았고, 여성 소비자가 50%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p24)
50년전 스포츠 업계의 세 가지 동기는 '경쟁', '도전', '즐거움' 이었지만, 이제 사람들은 '건강', '체중 관리', '외모 관리' 때문에 운동을 한다.
디폴트 사고와 센스 메이킹
이 책에서는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가 기업들이 자신이 해 오던 방식에서 효율성을 추구하고 자원을 최적화하는데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위와 같이 소비자들이 변화하는 시기에는 섣불리 과거의 가설을 대입하여 최적화 하기 보다, 인문과학적 방법이 필요하다.
인간의 행동을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하고 축적해 온 철학, 역사학, 예술, 인류학 등의 학문적 배경을 활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문제해결법을 일컬어 우리 저자들은 센스메이킹 Sensemaking (상황 이해)이라 명명한다. p30
이 책을 읽다보면, 사실 저자들이 말하는 센스메이킹, 혹은 인문학적 이해 방법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사용자 경험을 연구하는 것이라, UX와 완전히 동일하다는 느낌이 든다. 또한 그 방법도 (p32) 감정 파악, 유물, 행동 관찰, 대화 등, UX 방법론과 정확히 일치한다.
디폴트 사고 (default thinking, 관성적 사고) |
센스메이킹 (sense making, 상황 이해) |
가설을 바탕에 둔 연구 | 실험적인 연구 |
'무엇을 얼마나'에 대한 답 | '왜?'에 대한 답 |
무슨 일이 벌어지며 과거엔 어땠는가를 탐구 | 무엇이 닥쳐올 것인가에 대한 탐구 |
불확실성이 적을 때의 문제해결법 | 불확실성이 클 때의 문제해결법 |
경성, 측정 가능한 근거 | 정량적인 근거 (정성적인...의 오역 아닐까? p34) |
정확성 추구 | 진실 추구 |
기존 접근 방식의 문제점들과 새로운 방법들
기존의 접근 방식들은 대개 논리적 실증주의와 디폴트 사고, 혹은 가설과 측정에 의한 과학적 경영 같은 것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1. 사람들은 합리적이며 충분한 정보에 따라 의사결정을 한다. 2. 모든 문제는 반복이며 내일도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다. 3. 모든 가설은 객관적이며 편향적이지 않다. 4. 숫자로 표시할 수 있는 것만이 진리다. 등의 잘못된 전제에 근거하여 과학적 경영을 하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창의성'에 열광하며 뭔가 특이한 것을 발견하려 하거나 브레인스토밍, 디자인 씽킹등 프로세스만 잘 만들면 창의적인 것이 나온다거나, 창의성은 신나고 재미있는 환경에서 나온다는 등의 창의성에 대한 오해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저자들은 수백 년에 걸친 인문과학의 자산으로부터 배워야한다고 주장한다.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대신, '결말을 열어두고 통찰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한다. (이거야 말로 UX 방법) 특히 저자들은 현상학(phenomenology)에 주목하는데,
현상학이 경영과학(합리적 추론)과 다른 점은 속성(properties)이 아닌 양상(aspects)을 다룬다는 점이다. 여성/남성 같은 속성이 아닌 여성성, 남성성 같은 측면을 다룬다. 경영과학은 미국인이 하루 몇 잔의 커피를 마시는지 다루지만, 현상학은 훌륭한 커피의 경험을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이 있는지 다룬다.
또한 일상의 경험을 낯설게 두고 관찰하기 위하여 민족지학(Ethnography)을 활용한다. 대상을 상세히 묘사하고 문화적 언어를 이해한다.마지막으로 귀추적 추론(abduction)을 활용한다. 퍼스는 귀추법, 즉 관찰로 시작해 그럴듯한 가설로 옮겨가는 방식만이 새로운 발상을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p153)
이 책에서는 5장에서 "재미있는 장난감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아이들에게 놀이란 무엇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으로 바꾸고 인문학적 관찰과 연구를 통해 레고를 혁신한 사례를 보여준다. 6장에서는 '장루 환자들은 자기 몸에 뚫린 구멍을 혐오한다'라는 일반적인 가설에서 출발하여 헤매다가, '환자의 몸은 모두 다르다'라는 근본적인 발견(명료함의 순간!)을 하고 제품을 혁신한 콜로플라스트의 사례를 다룬다. 7장에서는 인텔과 아디다스의 사례를 다루고 있다.
결론
저자들은 이 책의 한 줄 감상평은 이렇게 되면 족하다고 말한다.
'우리 회사를 안개에서 구출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게 우선이다.' p254
그리고 그러한 인문학적 통찰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하는 회사여야 하는가?'에 대해 깨닫게 되는 '명료함의 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참고 1
얼마전 공유한, [독후감] 창조적 혁신 전략 디자이노베이션 Design-Driven Innovation
에서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인간/문화를 해석하는 사람들(Interpreters)의 네트웍을 활용해 사회와 문화의 의미를 수집하고 해석하고 공유하는 활동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 담론을 만들어 내는 리서치 프로세스를 소개했다.
참고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