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4. 07:50ㆍUX 가벼운 이야기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거의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 빠르게 학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메인에 대한 기본 지식을 익히고, 인터뷰를 위해 관점을 설계하기 위한 이런 리서치를 '데스크 리서치'' 또는 '베이직 리서치'라고 합니다.
저는 작년 9월부터 pxd 교육사업팀에서 ‘초등학교 교사와 디자인씽킹’이라는 주제로 인턴사원 두 분과 함께 한 달간의 리서치를 진행한 경험이 있는데요. 이 경험은 누구에게 보고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온전히 우리 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기 위한 리서치였습니다. 이때 배운 것들이 리서치 경험이 많지 않은 학생이나 스타트업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프로젝트를 위해 리서치를 해야할 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글을 구상해 보았습니다. 필드 리서치에 대한 내용은 온라인 강의에 잘 정리되어 있어, 데스크 리서치에 대한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1. 데스크 리서치가 필요한 이유
처음 리서치를 시작할 때 제가 초등학교 교사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초등학생 때의 선생님에 대한 기억뿐이었습니다. 요즘 선생님들의 일과는 어떤지, 수업 준비는 어떻게 하시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교사에 대해 가장 빠르게 아는 방법은 현직 교사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이 상태로 인터뷰를 나가면 뻔하고 당연한 정보에 대한 이야기만 물어보다가 귀한 인터뷰 시간을 허비해버리기 쉽상입니다.
데스크 리서치는 정해진 시간에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2. 데스크 리서치, 언제까지?
이때 드는 의문은 “데스크 리서치를 언제까지 해야 하나?”입니다.
교육팀의 송영일 팀장님은 아래의 두가지를 말해주었습니다.
1) 사용자와 그 환경을 내 머리 속에 그릴 수 있을까
리서치 초기 제 머릿속에 있는 교사와 환경에 대한 이미지는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수업을 가르치는 장면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리서치를 해나가면서 제 스스로 교사가 수업 전 수업 준비를 어떻게 하는지도, 동료 교사들과 스터디를 조직해 수업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도, 1년에 필수적으로 연수를 가야 한다는 등의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렇게 제 머릿속에 있던 하나의 사진은 리서치가 쌓이다보면 하나의 짧은 비디오가 되어, 교사의 하루를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는 수준이 됩니다. 이런 과정을 모델링(Modeling, 좀 더 알고 싶으신 분은 이 포스트를 참조하세요)이라고 합니다.사실 사용자를 직접 만나기 전 데스크 리서치만을 통해 만들어본 모델링은 인터뷰 대상자의 현실과 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뭐라도 하나 알고 있어야 내가 틀린지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사는 수업을 준비할 때 교안을 작성하고 -> 수업 자료를 준비하고 -> 연습해보고 -> 실제로 교실에서 수업해본 후 -> 이 자료를 인디스쿨에서 다른 교사들과 공유한다”라고 제가 교사의 업무 프로세스에 대해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모델이 있어야, 실제 인터뷰에서 “교안은 대체로 학기초에만 작업하고, 인디스쿨에서 공유하는 경우는 몇몇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드물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제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모델을 수정하거나, 제가 만나는 사용자가 극단적 사용자(extreme user)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후 가설과 리서치 프레임 설계와도 연결됩니다.
2) 내가 이 상황에 몰입해서, 그들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가
처음 리서치를 시작할 때는 철저히 분리된 관점에서 관찰하듯 사용자를 바라봅니다. 아, 이렇게 업무를 처리하는구나. 아,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하는구나…와 같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사용자의 문제가 내 문제로 인식되는 때가 옵니다. 제가 교사는 아니지만, 교사가 겪고 있는 이 문제를 정말 해결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 데스크 리서치를 멈춰도 되는 순간인듯 합니다.3. 리서치는 나의 관점을 찾기 위한 것
리서치는 단순히 많이 “알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만의 관점(리서치 프레임)"을 확립하기 위해 하는 것이죠. 이러한 관점은 질문이 될 수도, 가설이 될 수도, 모델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관점이 있어야 인터뷰를 할 때 사용자가 하는 말을 그대로 듣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느 정도 판단해서 들을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관점을 기반으로 리서치 프레임을 만들어야 리서치 범위를 정할 수 있습니다. 데스크 리서치나 필드 리서치나 시간이 제한되어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뷰를 나가기 전까지 무작정 새로운 정보를 끊임없이 찾아내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한 프레임 내에서 정보의 내실을 다질 필요가 있습니다.
4. 리서치의 기본은 책과 다큐멘터리
데스크 리서치를 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아마 인터넷 검색일 것입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정보를 접하며 신기해하겠지만, 어느 순간 ‘내가 지금 뭘 알아보고 있는 거지?’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리서치 방향을 세우지 않고 무작정 리서치를 시작했을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이지요. 이렇게 헤매는 시기에 팀장님은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교사와 같은 직업의 역사가 깊은 분야에 대해 리서치할 때는 책과 다큐멘터리를 리서치의 시작으로 삼는 게 좋아요.”
1) 리서치 프레임 설계에 도움을 주는 책
전문가가 저술한 그 분야의 고전처럼 내려오는 책은 전문가의 사고방식/프레임을 이해하고 단기간에 리서치 프레임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책을 읽을 때는 정독이 아니라 “발췌독”을 해야 합니다. 몰입해서 읽다보면 책 한권 읽는데도 몇 시간씩 걸리지만, 목차를 중심으로 빠르게 책의 구조를 파악하고 그 중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만 보면 한 시간에 5-6권의 책도 볼 수 있습니다. 저희 팀은 데스크 리서치 기간 동안 3번 정도 회사 근처 대형서점에 가서 오랜 시간 책을 둘러본 뒤 더 깊이 참고할 필요가 있는 책만 구입해서 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2)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는 데 좋은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는 리서치 대상의 환경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좋은 소스입니다. 특히 시간도 오래 걸리고 대상자의 동의를 얻어내기 힘든 쉐도잉(Shadowing, 그림자처럼 대상자를 따라다니는 관찰기법)을 하지 않고도 그에 준하는 관찰을 할 수 있죠. 하지만 다큐멘터리 역시 만든 사람의 관점이 녹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리서치를 위해 다큐멘터리를 볼 때는 만든이의 관점을 따라가기 보다는 화면 구석구석을 철저하게 관찰하면서 나만의 리서치를 수행해야 합니다.이외에도 논문과 뉴스는 최신 트렌드/이슈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인터뷰를 하다보면 사실을 그다지 중요하거나 어려운 개념이 아닌데 내가 모르는 새로운 용어를 대상자가 써서 겁먹는 경우가 있는데요. 미리 요즘 그 분야에서 회자되고 있는 이슈와 새로운 용어(교사의 경우에는 혁신학교, 주제통합수업, 거꾸로교실 등이 있었습니다)를 공부하고 가면 오히려 대상자로부터 “이런 것까지 아세요?” 와 같은 반응과 신뢰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5. 멈춰야 할 때와 달릴 때 구분하기
대학교 때 팀프로젝트를 하다보면 몇 십장이 넘는 방대한 파일을 공유하지만 알맹이가 하나도 없는 리서치를 해오는 팀원이 있는가 하면, 단 10줄밖에 안되지만 발표슬라이드에 바로 써도 될만큼 명확한 내용으로 정리해오는 팀원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리서치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 학습하는 과정 자체에 매몰되어 ‘내가 뭘 알고 싶은 건지’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냉정하게 지금까지의 리서치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리서치 방향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저희 팀이 리서치를 할 때는 주기적으로 ‘리서치 방향 정리’라는 이름 하에 에버노트에 노트를 작성했는데, 기본적으로 1) 나의 질문 2) 주요 키워드 3) 관련 자료 리스트업 4) 정리한 데이터의 순서로 구성했습니다.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멈추는 15분을 아끼다보면 열심히 리서치한 4시간을 허비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5분 동안은 맘껏 불안해해야 합니다. 내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그러고 난 다음에는 의심없이, 맘껏 달리면 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