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24. 07:50ㆍpxd 다이어리 & 소소한 이야기
저는 마인크래프트 세대로부터 목격한 것들에 영감을 받았습니다.
얼마 전 Satya Nadella(Microsoft CEO)가 말한 이 한마디 때문에 글을 써서 나눈다.
왜냐면 마인크래프트 세대는 마이크로소프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게도 특히 소중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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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줄 요약: 모방추격형 산업 발전 모델에서 창조적 축적 지향 체제로 변화해야함이 자명한 상황에서, 마인크래프트 세대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체질 변화에 필요한 물리적 시간을 줄여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세대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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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적의 시간>
개념을 디자인(Conceptual design)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이것은 작년 9월 출판된 책 ‘축적의 시간'에서 우리나라 산업계가 해결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26명의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진들의 의견을 정리하여 나온 결론이다.
물론, 식상한 얘기다.
중요한 건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이다. 저자는 그 핵심 근본 원인을 ‘창조적 축적의 부재'로 꼽는다. 창조적 축적이란 말 그대로 창조의 과정 속에서 쌓이는 다양한 실패 경험의 유산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의 개념을 디자인하는 능력이 부족한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이 창조적 축적이 쌓이기 어려운 사회 체제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이번 글에서 다루려는 부분이다. 앞서 식상한 얘기라고 한 것처럼, 이런 맥락의 문제 진단은 예로 든 책 이외에도 얼마든지 많았다. 그에 따라 원인에 대한 분석도 유교 사상부터 개발도상국 시절 산업 발전 모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와 맥락으로 다루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체제 변화는 충분한 수준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이 글은 그러한 사회적 체질 변화에 필요한 물리적 시간을 줄여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세대에 관한 이야기이다.
1. 마인크래프트 세대(The Minecraft Generation)
지난 4월 뉴욕타임즈에서 동명의 기사로도 다루었던 이 단어는 오늘날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즐기며 자란 우리 아이들 세대를 뜻한다.
지난 2009년 출시된 마인크래프트는 디지털 시대의 레고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레고가 그랬듯 가상의 온라인 세계에서 네모난 블록을 쌓아 뭐든 만들 수 있으며, 레고가 그러지 못했듯 만드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지구 건너편의 다른 사람과도 함께 만들고, 함께 만든 세상을 또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스스로도 다른 사람이 만든 세상을 체험할 수도 있다. 바로 이러한 디지털 시대의 강점을 품에 안은 이 현대판 레고는 간편한 조작과 무한한 확장성 덕분에 테트리스·위스포츠에 이어 역사상 3번째로 많이 팔린 게임에 등극했고, 이미 전 세계 40여 개국 7000개 학급에서 코딩·자연과학·프로그래밍의 기초를 다질 수 있는 교육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마인크래프트를 운영하고 있는 회사가 바로 윈도우나 파워포인트, 액셀로 잘 알려진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라는 것이다. 사실, MS가 처음부터 개발한 건 아니고 2009년에 마인크래프트를 만든 Mojang AB라는 회사를 2조원에 인수하면서 현재의 운영주가 된 것인데, MS의 인수 의도를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던 당시에는 혹여나 게임이 변질될까 우려한 마인크래프트 유저들이 MS사에 직접 찾아가서 인수 반대 항의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AR Minecraft>
이제 인수 이후로 6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인수 의도는 몇몇 프로젝트를 통해 직접 드러났다. Hololens를 활용한 AR 마인크래프트, 인공지능 프로젝트 Malmo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번 글에서 다루려는 내용은 그보다 좀 더 근본적인 저의에 관한 것으로, 지난 10월 말 ‘Creator’s update’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윈도우 10 발표 행사에서 Satya Nadella(Microsoft CEO)가 직접 언급한 내용이다.
<Satya Nadella(Microsoft CEO)>
“ 저는 마인크래프트 세대로부터 목격한 것들에 영감을 받았습니다. 스스로를 단순한 게임 속 플레이어가 아닌, 자신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크리에이터(Creator)로서 바라보는 사람들말입니다. 컴퓨터와 컴퓨팅의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이 세대와 이 세대로부터 영감을 받는 모든 이들에 관해 생각합니다. 그것은 저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창조적 표현이며, 동시에 윈도우 10 개발에 있어 주요한 동기가 되어준 부분입니다. "
그렇다. 그들은 컴퓨팅 파워 활용의 토대가 되는 OS를 만드는 회사로서 그 쓰임새의 영감을 마인크래프트 세대가 컴퓨팅 파워를 활용하는 모습에서 얻었다는 것이다. Creator’s update에서 발표된 창조(Creating)의 문턱을 낮춰주는 3D 그림판과 3D 파워포인트, 공유(Sharing)의 문턱을 낮춰주는 온라인 3D 모델 공유 공간,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 Beam과 같은 것들은 모두 창조와 공유 활동을 돕는 도구로서 그 맥락에 분명히 맞닿아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돌아와서, 그렇다면 왜 이 마인크래프트 세대가 우리나라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창조적 축적의 부재-를 해결하는데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인지 이어서 이야기해보자.
2. 마인크래프트 환경과 창조적 축적 지향 사회 체제
우리나라 유소년기 교육 환경과 마인크래프트 환경
우리나라 유소년기 교육에서 특히 안타까운 점은 그 소중하고 중요한 시기에 나는 이기지만 우리는 지는
지금은 이기지만 결국엔 지는 경쟁을 배우게 된다는 점이다. 이 점이 특히 안타까운 이유는 바로 이러한 방식의 경쟁 체제 속에서만 길들여지는 것이 창조적 축적을 지향하는 사회 체제에 부적합한 면이 있다는 점 때문이다.
우리나라 유소년기에 이루어지는 교육 환경과 마인크래프트를 통해 겪게 되는 환경이 아이들에게 주는 경험이 어떻게 서로 상충하는지 비교하면 이전 세대와 달리 방과 후에라도 마인크래프트와 같은 환경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왜 다행인지 이해하는데 도움될 수 있다.
우리나라 유소년기 교육 환경에서 아이가 요구받는 태도는 주어진 환경에 대한 순응이다. 평가 기준은 절대자인 선생님이 세운 것을 따르며, 이 때 기준은 하나의 방향 위에 서는 것으로 친구와의 관계는 등수로서 매겨지고, 자연스럽게 친구는 경쟁자가 된다. 정해진 답에서 벗어나지 않을수록 더 높은 등수를 받게 되므로, 정해진 답에 의문을 품기보다는 비판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빠르게 답변하는 것이 미덕이 된다. 정해진 답을 그대로 답변하는 맥락에서 성공과 실패가 명확히 나뉘며 친구와는 경쟁하는 관계이므로 나의 실패는 곧 친구의 성공, 친구의 실패는 곧 나의 성공으로 연결된다. 심지어 학습의 동기는 주객이 전도되어 스스로가 아닌 부모님 혹은 선생님을 만족시키기 위함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어 스스로의 성장이 아니라 교수님이나 부모님을 만족시키기 위해 학점이라는 기준 위에 친구들과 경쟁하고, 그렇게 졸업한 대학생은 직장인이 되어 고객이 아니라 상사나 사장님을 만족시키기 위해 매출이라는 기준 위에 동료와 경쟁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게 된다.
반면에 마인크래프트를 통해 겪게 되는 환경에서 아이가 요구받는 태도는 주어진 환경에 대한 저항이다. 평가 기준을 세우는 절대자는 따로 없고 이해관계가 있는 다수에 의해 자연적으로 기준이 발생하고 평가받게 된다.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선생님은 따로 없으며, 대신 이전에 다른 친구들이 이루어놓은 다양한 창작 결과물들이 살아있는 선생님이 되어준다. 정해진 답이 따로 없고, 더 나은 결과물만이 있으며, 더 나은 결과물은 구성원을 유익하게 하므로 모두에게 유익한 것이 된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영향을 주고 받는 친구는 경쟁자가 아니라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드는 공동체로서 서로 공생하는 관계가 된다. 학습의 동기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에서 출발하며, 개인적으로는 ‘창작의 과정에서 스스로가 느끼는 즐거움’이 과정을 이끌며 다른 사람들과는 ‘만들어낸 결과물이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할 때 느끼는 보람’으로서 함께 결과를 누린다.
모방추격형 산업 발전 모델과 창조적 축적 지향 사회 체제
이러한 프레임은 그대로 ‘축적의 시간'에서 언급되는 -우리나라의 문제를 언급할 때 수년간 반복되어 언급된- 모방추격형 산업 발전 모델과 창조적 축적 지향 사회 체제에 대한 비교와도 연결된다.‘모방추격형 산업 발전 모델'은 말 그대로 앞선 누군가의 뒤를 추격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답은 이미 정해져 있으므로 과정에서 실패를 최소화해야 하며 이에 따라 더 빠르게 달리기 위해 일시적 총력 동원의 유량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게 된다. 따라서 이 모델에서 실패는 곧 비효율로 연결되므로 그것은 배제된다.
‘창조적 축적 지향 사회 체제’는 앞선 누군가를 쫓는게 아닌 스스로가 문제를 정의하고 답을 찾아나서야 하는 입장이다. 따라서 외부와 상관없이 스스로 나아가는 입장으로서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지식의 영역이므로 스스로 빠르게 실패하고 학습하여 다시 시도하는 과정을 축적해나가 장기적 경험 축적의 저량을 높이는 것이 경쟁력이 된다. 이 모델에서 실패는 어쩔 수 없이 수반되는 것으로 대신 효율적으로 실패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 된다.
정해진 답의 유무, 실패를 대하는 자세
앞서 말한 교육 환경과 산업 환경의 비교를 겹쳐 봤을 때 분명하게 반복되는 핵심 맥락이 있다. 바로 정해진 답의 유무와 이에 따른 실패를 대하는 자세의 차이이다. 이 맥락에서 산업계는 ‘답이 있던’ 시절을 지나 ‘답이 없는’ 시대를 이미 오래 전에 맞이했으므로 그것에 적합한 체제로 변화해야한다는 것이 ‘축적의 시간’의 결론이었다. 나아가 같은 맥락에서 산업계의 앞단이 되는 학계의 변화 방향에 있어 이에 호응하는 구조가 마인크래프트 환경이라는 점 역시 앞의 비교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3. 마인크래프트 세대에게 거는 기대
결국에 우리는 문제가 뭔지도 알고, 문제의 원인도 알고, 원인의 해결책도 안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이 잘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은 역시 해결책의 실행 때문일 것이다. 사회 전반이 함께 변화한다는 건 구성원 대다수의 공감과 실행을 함께 필요로 하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과 산업 모든 시기를 ‘답이 있던' 환경 속에서 살아온 윗 세대가 갑자기 ‘답이 없는' 상황에 유리한 체질로 변화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따라서 변화를 이루어낼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다음 세대의 몫인데, 안타깝게도 그 첫 단추가 되는 다음 세대의 교육을 역시 현재의 윗 세대가 만들게 되는 탓에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변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학계에서도 여전히 이 글과 같은 비슷비슷한 논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그 증상 중 하나다.
<We are all creators>
바로 이 점이 비록 학교에선 여전히 이전 세대의 ‘답이 정해진' 환경을 답습했지만, 학교 밖에서라도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환경을 경험할 수 있는 마인크래프트 세대(비단 마인크래프트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단순한 플레이어가 아닌 자신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크리에이터로서 여기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태계를 만들어나가는 Youtube, twitchTV, Beam, Sketchfab 등의 prosumer platform은 모두 해당된다)에게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기대를 거는 이유이다. 이들은 방과후에라도 창조적 축적 지향 체제를 윗세대의 교육이 만드는 왜곡없이 직접 경험을 통해 체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소중한 세대가 만들 변화에 도움은 되지 못할 망정 최소한 이러한 변화의 힘마저 꺾어 다른 나라에 뒤처지도록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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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1. 디자인 씽킹과의 연관성]
디자인 씽킹도 사실 창조적 축적 지향 체제의 맥락과 정확히 맞닿아있다.
<pxd에서 제작한 디자인 씽킹 교육용 툴킷 역시 마인크래프트에게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다>
디자인 씽킹 개념을 제안한 IDEO의 Tim Brown은 ‘사람은 누구나 디자이너'라고 말했는데, 사실 디자인 씽킹의 내용이 ‘축적의 시간'의 그것과 너무 닮아서 ‘창조적 축적 지향 체제를 이루려면 대한민국 사람은 누구나 디자이너처럼 사고해야 한다'라고 고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디자인 씽킹이 말하는 빠르게 실패하고 학습하여 다시 시도하는 과정이 ‘축적의 시간'에서 말하는 ‘창조적 축적'의 맥락과 그 궤를 정확히 같이 하기 때문이다.
[참고2. MS가 다시 언급한 컴퓨팅 파워의 활용 방향]
Creator를 위한 컴퓨팅 파워의 활용 방향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마이크로소프트가 처음한 얘기가 아니다. 사실 벌써 나온지 30년 가까이 되가는 이야기이다. 다음의, 1989년에 스티브 잡스가 Mac에 대해 이야기했던 인터뷰를 보자.
<1989년 4월 1일, Inc.지>
자, 앞서 말씀드린 부분으로 돌아가 보죠. 아시다시피 인간은 기본적으로 도구를 만듭니다. 컴퓨터는 우리가 이제까지 만든 도구 중에 제일 놀라운 도구이죠. 1970년대에 많이들 가졌던 깊은 통찰력은 그 도구를 개인에게 안겨다 주는 것의 중요성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를테면 세계에서 제일 강력한 컴퓨터를 만드는데 드는 똑같은 비용으로 1/1000만큼의 파워를 가진 컴퓨터 1,000대를 만들어서 1,000명의 손에 넘긴다면? 세상에서 제일 강력한 컴퓨터를 한 명이 쓰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을 겁니다.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창조적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툴을 만든 이조차 전혀 생각지 못 한 방법으로들 사용할 겁니다. 그리고 이 툴로 뭘 어떻게 하는지 알게 되면, 다른 999명도 그걸 함께 공유할 수 있어요.
흥미로운 점은 27년이 지난 지금에, 이와 같은 철학을 끌어올려 전면에 내세워서 다시 발표하는 회사가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아니라 경쟁사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점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회사와 상관없이 도메인 전반에서 추구되는 가치라면, 이는 곧 창조자(Creator)로서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이 Computing power의 발전 방향이자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부분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주는 증거가 아닐까.
[참고##디자인 씽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