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4. 16. 07:50ㆍUX 가벼운 이야기
흔히 고객 여정 지도(Customer Journey Map)를 그린 걸 보면, 고객이 서비스를 경험하게 되는 터치 포인트를 시간순으로 배열하고, 그에 따른 고객의 감정을 아래위로 그래프 그리는 선에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퍼소나별로 그리기도 하고, 각 터치 포인트에서 중요한 요소들이나 터치 포인트 별 경쟁사 비교들을 하기도 하지만 고객 여정 지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결정적 순간'을 찾아야 한다.
결정적 순간 Moment of Truth
Moment of Truth는 스페인의 투우 용어인 'Moment De La Verdad'를 영어로 옮긴 말인데, 투우사가 소의 급소를 찌르는 순간을 뜻한다. 달리 말하면, '피할 수 없는 순간' 혹은 '실패가 허용되지 않는 순간'을 말한다.
리차드 노만(R. Norman)은 스웨덴의 마케팅 학자인데 이 MOT라는 것을 서비스 품질관리에 처음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서비스에서 MOT라는 것은 고객이 기업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어떤 일면과 접촉을 하게 되는 그 순간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 종업원이 주는 서비스를 받는 그 순간
* 광고를 보는 그 순간
* 청구서를 받는 그 순간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 조직이나 품질에 대해 어떠한 인상을 받거나 사상을 지니게 되는 그 순간을 뜻한다.
출처: http://bigmarketer.tistory.com/11 [마케팅 공부하기]
이 개념을 1981년, 39살의 젊은 나이로 스칸디나비아 항공 사장이 된 얀 칼슨(Jan Carlzon)이 엄청난 적자의 회사를 기사회생시키는데 활용한 뒤, 동명의 책을 1987년에 내면서 유명해졌다.
결국, 우리가 고객 여정 지도에 터치 포인트를 정리하면서 찾아야 하는 건 무엇일까? 고객이 이 서비스냐 저 서비스냐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은 언제일까? 그걸 찾아야 한다.
1. 스칸디나비아 항공
스칸디나비아 항공(Scandinavian Airlines SAS)은 수많은 연구 결과 고객들이 항공사의 '서비스'를 평가하는 건 안전, 청결, 정시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고객들은 언제 어떻게 이 항공사의 서비스를 판단하게 되는 걸까? 당시 연구에 따르면 이 항공사 고객은 1천만 명 정도 되는데, 평균 5명의 항공사 직원을 만난다고 한다. 따라서 대략 1년에 5천만 번 정도의 '터치포인트'가 형성되는 셈이다. 한 번에 평균 15초 정도 지속되는데, 이 순간들이 항공사의 운명을 가른다고 한다. 항공사를 알아보고 표를 구입하고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전 과정에서 직접 직원을 만나는 순간이 중요하다.
그것은 항공사 서비스에 대한 판단은 고객이 처음 만나는 직원과의 첫 15초에서 결정된다. 예를 들어 그 15초 동안 직원 유니폼의 단정함, 혹은 쟁반(트레이)의 청결함 같은 것으로 그 항공사의 안전이나 청결 여부를 판단한다는 뜻이다.
박영택 교수의 기고문(한국어) http://www.feelground.com/article_04_19.html
2. 노드스트롬 백화점
시애틀에 본사를 두고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Nordstrom백화점은, 서비스에 있어서 서비스를 최종 전달하는 직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챘다. 매장 직원에게 좀 더 많은 권한을 주고, 그들이 판단하기에 적합하다면 언제든지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했다. 여러 가지 서비스 중에, 이 백화점의 결정적 순간은 '환불'이다. (아래는 2017년 환불정책이 다소 변화하기 전까지 내용이다)
아무 것도 따지지 않고 환불해 준다.
환불에 제한 기간도 없고, 어떤 상태의 제품이든, 어떤 이유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영수증이 없어도 되고, 세일 전에 샀다고 주장하면 (현재 세일 중이라도) 정가를 환불해 준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심지어 그들이 팔지 않는 물건도 환불해 준 사례가 있다.
1975년, 한 노인이 노드스트롬에 타이어를 반품하러 왔다. 하지만 노드스트롬에서는 타이어를 판매하고 있지 않았다. 당연히 타이어를 반품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판매사원은 즉석에서 타이어 값을 내주었다고 한다. 당시 노드스트롬은 타이어를 판매하던 노던 커머셜사로부터 알래스카에 있는 3개의 상점을 인수했을 시점인데, 판매사원은 그 상점에서 타이어를 산 고객이 노드스트롬에 반품요청을 했다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환한 미소와 함께 반품 요청을 처리해 주었다고 한다.
앞의 스칸디나비아 항공 CEO도 좀 더 좋은 품질의 서비스를 위해서는 고객을 직접 만나는 최전선 직원들의 권한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노드스트롬 백화점은 그 끝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들에게는 환불에 관한 한 전적인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 서비스 디자인에서 역시 고객을 직접 대하는 사람들의 권한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한데, 어떤 부분에서 확대해 줄 것인가? 는 이 '결정적 순간'을 발견하고 정의하는 것에 달려 있다.
3. 구글의 마이크로모먼츠
2015년 발표된 구글의 자료 Micro-Moments: Your Guide to Winning the Shift to Mobile에 의하면, 우리는 150번 이상 핸드폰을 열어 본다고 한다. 그런데 그 중, 우리가 '아 이런 걸 하고 싶다'고 하는 4개의 순간(I-want-to-know, I-want-to-go, I-want-to-do, I-want-to-buy)은 사용자의 의도(intent), 환경(context)과 즉시성(immediacy)이 결합된 순간이며, 구글에서는 이 순간을 마이크로모먼츠(micro-moments)라고 한다.
These micro-moments are critical touchpoints within today’s consumer journey, and when added together, they ultimately determine how that journey ends.
이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3가지 전략이 중요하다.
필요한 곳에 나타날 것. Be There.
사용자들이 필요로 하는 순간 (예를 들면 검색이라든지)에 자신의 브랜드가 노출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쓸모가 있을 것. Be Useful.
사용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연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빠르고 빈틈없을 것. Be Quick.
모바일 사용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 가고 싶어 하는 곳, 사고 싶어 하는 것을 빠르고 빈틈없이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마이크로' 모먼츠라고 부르는 것이다.
구글의 마이크로모먼츠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정보는 아래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https://www.thinkwithgoogle.com/marketing-resources/micro-moments/
4. P&G의 두 개의 결정적 순간
P&G의 래플리(A.G. Lafley) 회장은 자사의 제품이 두 개의 결정적 순간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나는 (First moment of truth)는 소비자가 매대에서 처음 제품을 접할 때이고, 또 하나는 (Second moment of truth)는 그 제품을 집에 가져와서 처음 쓸 때라는 것인데, 기존 판매 전략에서 중요한 점은 광고라든지 제품 이미지라든지 이런 것들도 중요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매대에서 제품을 볼 때, 이 순간 바로 이 제품을 살지 말지를 결정하게 되는 지점이 제일 중요하다고 한다. 따라서 매대에 어떻게 놓여있고, POP는 어떤 점을 강조하고 있고, 세일이나 가격은 어떻게 되어 있으며, 제품 포장에는 어떤 점이 강조되어있는지가 다른 어떤 순간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인데, 이를 위해 다양한 소비자 연구를 하고, 그 지점에서 승리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했다.
예를 들어 청소년 대상으로 생리대 제품을 만들 때,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나이라는 점을 감안, 언니처럼 보이는 연구원들이 지역에서 잠옷 파티를 열고, 거기에서 의견을 들은 뒤, 이들이 매대에서 너무 "생리대처럼" 생긴 생리대는 쑥스러워서 사기를 꺼린다는 점을 발견, 전혀 다른 형태의 패키지를 만들어 출시했다.
두 번째 제품의 첫 사용 순간이 중요하다. 전통적인 마케팅 관점에서 무시되어왔던 지점이고, 심지어 UX 디자이너나, 서비스 디자이너조차도 이를 구분하여 고민하는 사람이 드물다. 예를 들어 10년 전쯤 노트북 대부분은 첫 사용에서 매우 지루한 설정을 시키지만, 애플 노트북은 첫 사용에서 박스를 열고 부팅을 하는 것이 경이로운 경험이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로봇 청소기도 그런데, 가족들이 벼르고 벼른 로봇 청소기를 사서 처음 마룻바닥에 풀어놓고 시운전해 보는 시점을 "설계"하고 있는지? 아이들은 손뼉 치며 마루를 뛰어다니고, 엄마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볼 때, 자랑스럽게 박스에서 풀어서 시범을 보여주는 아버지 입장에선 자기가 우겨서 산 것이어서 잘 동작해야 하는데, 막상 처음 동작시켜보면 로봇 청소기는 바로 옆에 일부러 떨어뜨려 놓은 먼지는 외면하고 주변만 빙빙 돌면서 애간장만 태우지 먼지 자체는 치우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10분 뒤 모든 가족은 지쳐가고 마음속으로 '인공지능이라더니... 바보 아냐?'라는 생각을 하면서.
첫 번째 자동차의 키를 받아서 운전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자동차의 냄새며, 키의 모양새며 나머지 모든 것들은 기억나는데, 내 인생에서 이렇게 중요한 나의 첫 번째 차, 첫 번째 승차기에서 "자동차가 한 일"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자동차는 처음이든 두 번째든 아무런 차이 없이 쇳덩어리에 불과했다.
어쨌든 이토록 중요한 순간 두 가지, 매대에서 처음 만났을 때랑 사용을 위해 처음 만났을 때를 잘 설계하는 건 (물론 다른 순간도 잘 설계해야겠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P&G의 두 가지 순간에 대해서는 아래 책에 좀 더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시장을 통째로 바꾸는 게임 체인저 http://story.pxd.co.kr/12
결정적 순간의 중요성
당연히 모든 순간에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면 제일 좋을 것이라고 보통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기업의 자원은 유한한 것이므로 모든 것에 잘 한다는 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말 잘 해야 할 것에 집중하지 않음으로 인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칸디나비아 항공이나 노드스트롬 백화점 사례는 오프라인 서비스에서 언제 "결정적 순간"이 형성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집중해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전체 서비스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제품을 만들어 유통하는 경우, 여러 지점 가운데 제품이 매장에서 선택되는 순간이 매우 중요하고, 또 그것을 집에 가져가서 처음 사용해 보는 순간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P&G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 순간은 UX가 전통적으로 집중했던 부분이지만, '첫 번째 사용 순간'에 집중하는 경우는 부족했다.
구글의 마이크로모먼츠는 스마트폰으로 변화된 일상생활에서 어떤 순간에 어떻게 고객의 경험에 집중해야 성공적인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지, 온라인 서비스에서 "결정적 순간"에 대해 잘 설명하는 사례이다.
고객 여정 지도를 만드는 사람은 "왜 고객 여정 지도를 만드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단순히 보기 좋으니까, 프로세스에 있으니까 만들었다면 프로젝트 종료 후 순식간에 시야와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다. 고객의 여정을 살펴보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서비스를 차별화시킬 수 있는 (남들은 아예 몰랐거나 알았더라도 뚜렷하게 차별화하지 못한) "결정적 순간"을 발견했다면, 중급 디자이너로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