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 초청 강연 후기

2018. 2. 28. 07:50리뷰
알 수 없는 사용자

환풍기처럼 생긴 무인양품의 벽걸이 CD Player를 한 번쯤 본 기억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작년에 이 CD Player를 디자인한 일본의 산업 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후카사와 나오토(NAOTO FUKASAWA) 가 무인양품과 진행하고 있는 Found MUJI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것이 강연의 큰 주제였는데요, 그의 디자인 철학과 무인양품의 지향성을 깊이 있게 들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짧게나마 강연 내용을 공유합니다.


Affordance

후카사와는 Found MUJI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에 앞서, 자신의 디자인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요소를 설명했습니다. 그 중 첫 번째는 'Affordance’입니다.

Affordance는 UI 디자이너들에겐 익숙한 개념일 것 같습니다. 행동 유도성이라고 번역되는 Affordance는 특정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성질입니다. Affordance를 가진 디자인은 사용자가 딱히 사용법을 익히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자의 행동을 유도하는 힌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관에 우산꽂이를 만들려 합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우산꽂이를 만들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현관에 우산을 세워 놓을 때 무의식적으로 우산의 끝을 타일의 홈에 맞추어 세워 놓습니다. 그렇게 해야 우산이 잘 쓰러지지 않으니까요.


이런 무의식적인 행동에 맞추어 디자인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우산을 세워두도록 유도하는 Affordance가 있어야 합니다.

우산꽂이를 만들어야 한다면 저는 현관 바닥에 작은 홈을 파서 누구나 자연스럽게 우산을 세워두도록 할 겁니다.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을 잘 관찰하면 Affordance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후카사와는 지난 작업을 소개하며 Affordance에 대한 예시를 몇 가지 더 들어주었습니다.

무거운 짐이 있는데 우산까지 들고 다녀야 할 때, 우산 손잡이에 짐이 든 가방 손잡이를 걸쳐놓고 한숨 돌린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이런 행동을 자연스럽게 돕는 Affordance를 가진 우산입니다.


시계, 카드지갑, 열쇠같이 항상 지니고 다니는 물건들을 현관 근처 한군데에 함께 두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현관에 들어서서 물건들을 모두 내려둔 후 불을 켜는 행동을 한 번에 끝낼 수 있도록 램프에 트레이를 붙였습니다. 물건을 두고 자연스럽게 불을 켤 수 있도록 스위치 손잡이를 아래로 향하게 했습니다.


Outline

두 번째는 'Outline'입니다.

후카사와가 말하는 Outline은 사물과 환경 사이의 경계입니다. 환경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사물이 그 자체의 독특함으로 환경 속에서 두드러지기보다는, 그 환경에 맞는 자연스러운 형태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때 환경은 문화, 역사,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행동, 신체 등 여러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Outline은 행동을 유도하는 Affordance가 이러한 맥락들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설명하는 보다 확장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물과 환경의 Outline이 일치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조각나게 됩니다. 제가 하는 일은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사물의 Outline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후카사와는 Outline이라는 개념을 통해, 디자인은 만들어내기보다는 '찾아내고 발견하는' 행위에 가깝다고 설명합니다.


Found MUJI

후카사와는 자신의 철학을 디자인에 담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의 철학과 통하는 물건들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만들기보다는 찾아낸다’라는 그의 철학을 있는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활동은 "Found MUJI"라는 이름으로 후카사와와 MUJI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무인양품의 직원들이 세계 각지에서 오랫동안 사용돼 온 자연스럽고 편한 사용감을 가진 물건들을 수집하여 전시하고, 상품화시키기도 합니다.

중국의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등받이가 없는 나무 의자, 인도에서 오래전부터 손으로 만들어오고 있는 아름다운 패턴의 직물들, 프랑스 공공 기관에서 공문서를 보관하기 위해 만든 수공예 파일 박스.

'Found MUJI'가 찾아낸 물건들은 저마다의 자연스러움과 편리함으로, 오랜 기간 사용되어온 이유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싸리 빗자루, 목기, 옹기와 같은 물건들이 'Found MUJI’의 컬렉션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Found MUJI East Asia 전시 영상


마치면서

후카사와 나오토는 산업 디자이너이지만, 그의 철학은 그 어떤 디자인 분야라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디자인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환경, 맥락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유도하는 사물의 형태를 찾아내는 그의 디자인은, 사용자를 관찰하여 그에 맞는 가장 자연스러운 경험을 줄 수 있도록 하는 UX 디자인의 목적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디자인이란 행위는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고 이해하고 찾아내는 행위라는 것을 다시금 새겨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참고##국내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