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시 '책읽기를 말하다' 강연 후기

2018. 3. 19. 07:50pxd 다이어리 & 소소한 이야기
알 수 없는 사용자

새해 목표에 빠지면 아쉬운 것이 책 읽기인데요, 아무리 새해 목표로 잡고 마음을 다잡아도 좀처럼 어려운 것이 꾸준한 책 읽기인 것 같습니다.

책 읽기는 어릴 때부터 해온 익숙한 일인 것만 같은데 왜 꾸준히 하기 어려울까요. 책 읽기도 운동과 마찬가지로 매일 훈련해서 근육을 조금씩 붙여나가야 꾸준히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생소하게만 들립니다.

책 읽기 근육을 단련하는 노하우를 들을 수 있는 강연이 있다고 해서 다녀왔습니다.

다독가이자 작가이기도 한 장석주 작가님, 서민 기생충학 교수님, 김봉진 배달의민족 대표님의 책 읽기 노하우를 공유합니다.


자기 서재를 갖는다는 것의 의미

장석주 | 시인

내 세상을 확장하는 방법, 책 읽기

잉어의 한 종류인 코이는 독특한 특성이 있습니다. 코이는 수조에서 자라는 경우 최대 10cm 정도까지 자라지만 좀 더 넓은 수족관에서는 15~25cm까지, 강에서는 90~120cm 자라납니다. 어떤 환경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자랄 수 있는 정도가 크게 달라집니다.

환경에 따른 성장 가능성을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예시입니다. 장석주 작가님은 사람이 코이와 다른 점은 스스로 환경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지력'이라고 말합니다.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맞게 자랄 수밖에 없는 코이와 달리, 사람은 지력을 이용해 스스로 환경을 확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력을 기르는 법은 책 읽기입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삶과 세계를 통찰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고, 책을 많이 읽을수록 나의 세계가 확장됩니다.


무용지대용, 지적 생활의 욕구

무용지대용.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오히려 큰 쓸모가 있다’는 뜻으로 장자가 한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림, 음악처럼 생존을 위한 활동과는 거리가 먼 것들에 관심을 가집니다. 인문학 또한 생존의 필요에 부합하지 않는 잉여활동입니다.

거리의 인문학자로 불리는 얼 쇼리스는 미국의 재소자를 연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얼 쇼리스는 빈곤이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재소자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고 지적인 경험을 할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인문학을 배운 많은 재소자가 범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주체적 삶을 살게 되었고, 정신적 문제가 인생을 크게 좌우할 수 있다는 증명이 되었습니다.

일견 쓸모없어 보이는 지적 생활은 삶에 없어선 안 될 쓸모있는 활동입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장석주 작가님은 여러 베스트셀러를 출판한 출판사의 대표였습니다. 사업은 날로 확장되었지만 원하던 삶의 방식이 아니었기에 출판사를 차린 지 15년 되던 해 출판사를 접었고, 저자의 삶으로 인생 후반을 보내고 계십니다.

이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글을 쓴다는 것이 지적인 생활이고, 그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책 읽는 뇌, 글 쓰는 뇌

책 읽는 뇌는 필연적으로 책 쓰는 뇌로 진화합니다. 장석주 작가님은 책을 쓰기 위해 엄청난 양의 독서를 하면서 책 읽는 뇌로 변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8시간에서 10시간 정도 책을 읽고 쓰고, 매년 800~1000권의 책을 읽는다고 합니다. 작가님이 작년에 출간한 책이 9권, 올해만 10권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니 책 읽는 뇌의 위력이 새삼 놀랍습니다.


자기만의 서재를 가져라

책을 읽는 것은 자존감을 높이고 자아를 성찰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선 나만이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작가님은 '거실 한쪽에 10권만이라도 내가 좋아하고, 읽고 싶은 책들로 채우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이 작은 시작이 지적인 생활, 책이 주는 충만감을 누릴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서재를 갖는 것에서부터 지적 생활을 시작할 수 있고, 그로부터 자존감을 높이고 자기 삶을 돌아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힘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런 지적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절대 함부로 살지 않는다고 합니다.

거실 한쪽에 책을 읽고 사색할 수 있는 작은 탁자 하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책은 왜,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서민 | 단국대 기생충학 교수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

서민 교수님은 '마태우스’란 소설을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삐삐로 연재된 소설로 주목받았지만 크게 성공하진 못했다고 합니다. 이 실패 이후, 하루 두 편씩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지만, 막상 어떤 걸 써야 할지 막막함을 느꼈던 교수님은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글쓰기가 어렵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책을 읽어야 자기 생각이 만들어지고, 자기 생각이 있어야 글이 써진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로 많이 읽고 꾸준히 쓰는 습관을 쌓아나갔고, 지금은 많은 출판사의 러브콜을 받는 칼럼니스트입니다.


책의 혜택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책 읽기가 도움 되지 않는 건 아니지요. 서민 교수님이 생각하는 책 읽기가 주는 혜택은 크게 세 가지라고 합니다.


1. 공감 능력

갑질이 만연한 사회라는 것은 타인에 대한 공감이 부족한 사회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책 읽기는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여러 가지 경험을 들여다보게 해줌으로써 공감 능력을 길러줍니다.


2. 인내심

모든 것이 빠르게 나오고 소비되는 시대여서인지 점점 인내심이 부족한 사회가 되어갑니다. 인내심 부족은 사회를 망가뜨릴 수도 있는 생각보다 큰 문제입니다. 책이란 매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은 인내심을 길러줍니다.


3. 논리력

요즘 댓글 창에는 난독증이라는 말이 유독 많이 보입니다. 기사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댓글을 다는 사람들 때문인데요. 책 읽기는 텍스트 자체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논리적 사고능력의 부족을 메꿔줄 수 있습니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요?

서민 교수님은 빌 게이츠가 매년 50권의 책을 읽는다는 얘기를 하면서 청중 중 빌 게이츠보다 바쁜 사람이 있는지 물었는데요, 많은 사람이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지만 SNS 사용량은 하루 1시간가량이라고 합니다. 하루 1시간을 책 읽기로 보낸다면 어떨까요? 당장은 큰 차이가 없을 수 있어도 10년을 생각했을 때 매일 SNS 1시간과 책 읽기 1시간은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서민 교수님은 지하철로 이동 시에도 틈틈이, 심지어 걸어가면서도 책을 읽는다고 하시네요.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서민 교수님은 장르로 따지자면 소설을 가장 추천한다고 합니다. 소설은 공감 능력, 인내심, 논리력을 고루 가질 수 있게 해줍니다. 소설뿐 아니라 인문, 교양서, 자기계발서도 읽을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장르가 아니라 스스로 취향을 터득해나가는 일입니다. 내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스스로 취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직접 시도하고 많이 실패해 봐야 합니다. 중요한 건 어떤 책이든 나 스스로 고르는 것입니다.


자신의 취향을 만들어라

서민 교수님은 책 추천을 부탁하는 것은 남이 떠먹여 주기를 바라는 것이고, 그건 책을 지속해서 읽을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취향을 모르면 추천받은 책, 화제가 되는 책을 한 번 읽어보고 흥미가 없어 다시 읽지 않게 됩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될수록 점점 지속적인 책 읽기에서 멀어져가게 됩니다.

자신의 취향을 알면 유행과 상관없이 지속해서 독서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취향이 적립된 이후에 취향과 맞는 파워블로거를 찾아 참고하는 정도라면 의미 있는 추천이 될 수 있습니다.


이해 안 되는 책은 남는 게 없다

이해가 안 되는 어려운 책을 억지로 끝까지 읽는다 한들 남는 건 별로 없습니다. 이해가 되어야 비로소 피와 살이 되는 지식입니다. 책은 이전에 몰랐던 더 나은 삶에로의 길을 제시해 줍니다. 서민 교수님은 최근에도 책을 통해 이전에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었다며 그 경험을 말해주셨는데요, <며느리 사표>라는 책을 읽고 며느리의 봉양도 사표를 낼 수 있는 '노동’이라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책에서 얻은 것을 실천하자

책 읽기를 진정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책에서 얻은 지식을 실천하는 순간입니다. 결국, 책도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행해야 할 것들을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수단만 취하고 알맹이는 취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겠지요.

서민 교수님은 그렇기 때문에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고전은 수백 년간 많은 사람이 인생의 정답이라 생각해온 것이기 때문에 지속해서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습니다. 지금껏 읽혀오며 고전이라 불리는 것들은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책 잘 읽는 방법

김봉진 | 배달의 민족 대표

과시적 독서가

김봉진 대표팀은 어릴 때는 텍스트를 읽는 게 쿨하지 않다 생각했다고 하는데요. 창업을 하고 보니 명문대 출신의 스타트업 대표들이 많았고, 그들과 비교했을 때 지적인 이미지가 떨어진다고 생각해 그를 보완하는 방법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자신을 스스로 '과시적 독서가’라 부릅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SNS에 일주일에 한 권씩 읽고 있는 책을 올려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올리다 보니 다음 주에 올릴 것이 걱정돼서 일주일에 한 권씩 읽게 됐고, 이제 책을 올리지 않으면 주변에서 왜 올리지 않았는지 물어본다고 합니다.


독서를 배우다

김봉진 대표님은 서른 중반에 독서를 시작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빨리 독서의 비법을 알고 싶었다고 하는데요. 서점에서 책 읽기법 책들을 쭉 보고, 반복적인 내용을 적용해보았다고 합니다. 책 읽기에 정도는 없겠지만 독서를 배워보기를 권하며 직접 해보았던 구체적인 방법들을 공유해주셨습니다.


1. 책을 친구처럼 생각할 것

책을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어려운 선생님처럼 대하지 말고 친구처럼 대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배워가며 읽겠다는 압박감을 느끼지 않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과 같은 에세이는 굳이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됩니다. 끌리는 문장을 읽고 음미하고 생각하고,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다른 부분도 읽어보면 됩니다.


2. 책을 곁에 둘 것

김봉진 대표님은 읽고 있는 책은 책장에 꽂아두지 않고 책상 위나 침대 위에 늘어뜨려 놓는다고 합니다. 가방에는 꼭 책 두 권을 챙겨서 다니고요. 한 권만 들고 다녀도 좋지만 보통 책이 재미가 없으면 스마트폰을 켜게 되므로 책이 지루해지는 순간에 다른 책을 펼 수 있도록 두 권을 가지고 다닌다고 하시네요.


3. 동시에 여러 권을 읽을 것

책에 집중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김봉진 대표님 또한 책을 10분 정도 읽다 보면 집중력이 떨어져 고민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책을 읽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다른 책을 읽고, 또 집중력이 떨어지면 다른 책을 읽는 방법으로 극복했다고 합니다.


4. 두꺼운 책에 도전할 것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처럼 펼쳐볼 엄두도 안 나는 두꺼운 책들이 있죠. 김봉진 대표님은 두꺼운 책들을 어렵게 생각하거나 완벽하게 이해하려 하지 말고 '읽는 습관 들이기'에 이용해볼 것을 권했습니다. 두꺼운 책들은 읽다 보면 딴생각이 많이 나게 됩니다. 딴생각이 많이 나도 계속해서 읽고, 앞부분을 까먹어도 되돌아가 다시 읽지 않고 계속 읽다 보면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뿌듯함을 느끼게 될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 뿌듯함은 지속적인 책 읽기의 밑거름이 될 수 있고요.


5. 지식의 거름망을 촘촘하게 만들어 나갈 것

읽기 습관을 들여가며 책을 꾸준히 읽다 보면 반복적으로 보이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하나의 책에서뿐만 아니라 여러 책에서 계속 마주하게 되는 내용들이 생기게 되는 건데요. 김봉진 대표님은 이를 '지식의 거름망'이라 표현했습니다. 여러 권의 책을 읽다 보면 이 거름망이 촘촘해져 하나의 책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지식이 조금씩 쌓여가는 걸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도끼 같은 책을 찾아 읽자

책은 우리 안의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 프란츠 카프카

김봉진 대표님은 베스트셀러를 주로 읽지만, 그 사이 사이에 내 생각을 깨주는 도끼 같은 책들을 찾아 읽는다고 합니다. 이런 책은 보통 하버드 추천 도서 목록 같은 곳에서 찾는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런 도끼 같은 책은 읽기 어려운 책인 경우가 많습니다. 김봉진 대표님은 보통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나오는 해설서나 만화판을 먼저 읽고 원서를 읽는다고 합니다. 해설서를 읽으면 원서를 읽기 전에 편견이 생길 것을 우려하는 사람도 있지만, 안 읽는 것보다 편견을 갖고 읽는 게 낫다고 합니다.


다시, 책은 왜 읽을까?

김봉진 대표님은 책을 읽는 이유를 다시 강조하며 강의를 마무리했습니다.

책을 읽는 건 생각의 근육을 만들어주지만, 생각의 근육이 잘 만들어졌다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생각의 근육이 있으면 회복이 빠릅니다. 타고난 것보다 조금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습니다. 책 잘 읽고, 잘 사세요.


[참고##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