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6. 07:50ㆍUX 가벼운 이야기
필자가 다니는 직장인 pxd는 가로수길 초입에 위치해있다. 가로수길 주변에는 여러 종류의 음식점이 있지만, 막상 백반집이 별로 없다. 원두막 식당은 백반 불모지인 가로수길에서 한줄기 빛 같은 존재이다.
보통 원두막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무조건 20~30분 내로 식사를 마칠 수 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식사를 했다. 문득 '왜 이곳에서만큼은 빠른 속도로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인가?' 궁금해졌다. 바로 일하시는 직원분들을 관찰해봤다. 그리고 이 식당에서 이뤄지는 입장부터 퇴장까지의 프로세스를 정리해봤다.
원두막 식당에서 입장부터 퇴장까지 이뤄지는 단계는 다음과 같다. 보통 일반적인 식당에서 이뤄지는 단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 Step 1. 입장
- Step 2. 착석 & 주문
- Step 3. 기본 반찬 세팅
- Step 4. 메인 메뉴 세팅
- Step 5. 식사
- Step 6. 결제
- Step 7. 퇴장
1. 우선 식당에 입장을 하면 서빙 직원이 인원 체크에 따라 자리 안내를 한다.
2. 자리에 앉으면 물 서빙을 한다. 원두막 식당은 인원 체크 이후 별도의 주문 과정이 필요 없다. 메뉴는 백반 한 가지만 제공되며, 이는 매일 바뀐다. 즉 선택 과정이 없이 바로 메뉴 서빙이 가능하다.
3. 이후 1분 내로 기본 반찬과 밥이 바로 세팅된다. 반찬은 5종류로 동일하며, 매일매일 바뀐다. 반찬 세팅을 어떻게 하는지 관찰을 했다. 반찬 세팅 과정에 손이 많이 들어가는지 이때에 서빙 직원과 조리 직원이 함께 협업하여 반찬 세팅을 수행한다. 빨리 세팅되어야 하는 순간에 인력을 집중 투입하는 것이다.
밑반찬은 미리 조리된 상태로 제공되어 빠르게 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밑반찬 접시는 동일한 크기로 모듈화 되어있다. 밑반찬을 나를 때 쉽게 운반 가능한 형태인 쟁반으로 쉽게 나를 수 있다.
4. 밑반찬과 밥이 빠르게 세팅되면 이후부터는 식사가 가능하다. 이때 조리 직원은 메인 메뉴를 조리하기 시작한다. 메인 메뉴의 경우에도 사전에 1차 조리가 된 상태이며, 볶거나 데우기만 하면 되는 비교적 간단한 메뉴여서 조리 과정이 단순하다. 어떤 날에는 메인 메뉴 조리가 너무 빨라서 밑반찬과 동시에 메인 메뉴가 깔리는 경우도 있었다.
5. 이후 1분 내로 메인 메뉴가 세팅되며, 이후부터는 식사를 본격적으로 한다. 이때 반찬 리필을 하면 재빠르게 서빙 직원이 반찬 리필을 해 준다. 어떤 특정 메뉴를 골라 반찬 리필을 해달라고 하면 해당 메뉴를 리필해주고, 그냥 '리필해주세요'라고만 말해도 직원이 부족한 메뉴를 찾아 리필해준다.
6. 이런 흐름으로 식사는 20분 내외로 소요된다. 식사가 끝나면 결제를 한다. 결제의 경우에도 메뉴가 한 종류이기 때문에 뭘 먹었는지 굳이 물어보지 않고 카드를 건네기만 해도 결제를 해준다.
7. 결제 이후 식당을 나가면 전 과정이 끝나게 된다. 입장부터 퇴장까지 아무리 못해도 20~30분 정도면 식사가 가능하다.
이를 간략하게 Rapid journey map 형태로 보면 다음과 같다.
그렇다면 원두막 식당에서는 왜 빠른 속도로 식사가 가능한 것일까?
1. 프로세스가 잘 갖춰져 있다.
각 단계를 보면 알겠지만, 주문 그리고 기본 반찬 세팅부터 메인 메뉴 세팅 과정까지가 획기적으로 짧다. 어떤 때는 내가 자리에 앉는 속도보다 기본 반찬 세팅이 빠른 적도 있었다. 기본반찬이 나옴과 동시에 메인 메뉴 세팅이 된 적도 있었다. 이는 음식이 사전에 조리되어 담기만 하면 되도록 조리 프로세스가 갖춰졌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단계가 물 흘러가듯 진행이 된다.
2. 선택지를 하나만 제공하여 선택의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해당 식당은 메뉴를 한 개만 제공한다. 식당에서 메뉴 선택 과정이 오래 걸리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식당에서 제공하는 메뉴가 많으면 많을수록 고민의 시간이 길어진다. 반면에 원두막 식당은 선택지가 한 개 밖에 없다. 그래서 메뉴 선택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단일 메뉴이기 때문에 결제 순간에도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3. 직원이 효율적으로 일한다.
프로세스가 잘 갖춰져 있다 한들 직원이 신속하게 일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원두막 식당의 직원들은 매뉴얼대로 착착 움직인다. 오래 걸리는 기본 반찬 세팅 시간에 서빙 직원과 조리 직원이 협업하여 세팅을 수행한다. 그 외의 시간에도 직원 간의 업무 분배가 명확하고, 스위칭이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세팅 시간의 단순화는 전체 식사 시간을 줄이는데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직원이 재빠르게 일한다고 해서, 직원이 딱히 불친절하지도 않다. 애초에 이 식당에서 직원의 고급 응대를 기대하진 않지만 직원이 매너 없는 행동을 하진 않는다. 이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매너 없는 직원이 불쾌한 경험을 주기도 한다. 매번 줄 서서 먹는 다른 맛집 A의 경우 사람이 항상 많다. 그래서 줄을 설 때 이미 주문을 받고, 자리에 앉을 때 바로 조리된 요리가 나온다. 그 이후 식사를 하고 좀 오래 앉아있는다 싶으면 음료수를 서비스로 준다. 그때 음료수를 마시고 나가지 않으면 직원이 한 병을 더 주면서 나가라는 신호를 준다. 물론 치밀하게 설계된 식사 시간 단축 노하우겠지만, 나는 그 경험이 굉장히 불쾌했다. 식사 시간만큼은 여유 있고 싶은데 등 떠밀리듯이 밥을 먹고, 쫓겨나듯 퇴장하는 게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이런 사례로 보면 원두막 식당이 매너 없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회전율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원두막 식당에서는 주문과 기본 반찬 세팅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인 것이 결과적으로 식사 시간을 단축하는데 주 요인이 되었다. 기존 식당과 원두막 식당의 Journey 비교로 이러한 차이를 비교해 볼 수 있으며, 원두막 식당의 키포인트를 Rapid journey map 상에 표시해봤다.
원두막 식당은 잘 갖춰진 프로세스를 토대로 직원들이 효율적으로 일을 한다. 그리고 불필요한 선택 과정을 과감히 생략했다. 내가 하는 업무도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좀 더 생산성이 좋아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라도 주변에 매너 없는 행동을 하진 않았는지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가로수길에서 적당한 가격에 맛있고 빠르게 한식을 먹고 싶다면 원두막 식당을 추천한다.
*이 글은 위승용 uxdragon의 브런치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