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7. 07:50ㆍBlockchain UX 이야기
pxd UX리서치팀은 지난 17개월 동안 약 8건의 리서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20명 이상의 팬과 아티스트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블록체인이 만드는 팬덤의 진화' 시리즈를 통해 팬 활동이 블록체인 기술을 만나 그리는 새로운 팬 활동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Cycle 3] 팬클럽: 모집 ↔ 가입 및 활동
팬클럽 활동의 핵심은 연대감에 있습니다. 저희는 이것을 팬덤과 아티스트의 연대, 팬 간 연대 두 가지 관점으로 바라보려고 합니다.
3-1. 팬덤과 아티스트의 연대
먼저 팬덤과 아티스트의 연대는 공생하는 공간의 특성과, 이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소통 방식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WEB2: 정제되지 않은 여론이 오가는 팬덤 플랫폼
케이팝 팬덤은 아티스트와 팬 간 결속력이 독보적이라는 특징이 있는데요.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거나, 직접 목소리 내어 아티스트나 매니지먼트사에게 의견을 표출하기도 하죠. 이는 아티스트의 활동 방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아티스트와 팬의 소통을 플랫폼화 한 것이 위버스와 같은 ‘팬덤 플랫폼'입니다. 그리고 ’ 팬덤 플랫폼’은 이제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핵심 비즈니스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팬덤 플랫폼의 작동 구조를 살펴볼까요? 매니지먼트사는 팬덤 플랫폼에 아티스트를 ‘입점' 시킵니다. 팬은 플랫폼에 가입해 아티스트를 구독하고, 아티스트가 공유하는 일상에 반응하며 소통합니다. 매니지먼트사 측에서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제작한 콘텐츠나 굿즈, 멤버십 등 또한 플랫폼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아티스트의 공식 콘텐츠를 가장 빨리 받아보고, 구독/구매할 수 있는 곳이기에 팬덤 플랫폼에 가입하는 것은 팬 활동에는 필수적입니다. 이런 강력한 이점은 팬덤 플랫폼을 여러 국가와 다양한 온라인 채널에 분산돼 있는 팬덤을 일괄적으로 모을 힘을 가진 유일한 공간으로 만들어 줍니다.
전 세계의 수많은 팬이 한 공간에 모여 활동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A라는 아이돌 그룹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A 그룹의 국내 팬은 오로지 A 그룹만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A 그룹의 글로벌 팬은 다른 아이돌 그룹도 동시에 좋아하는 ‘멀티스탠'의 경향을 보입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간혹 서로 다른 의견으로 팬덤 내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팬 활동은 팬덤이 커질수록 다양한 사람이 섞이면서 재미 없어지는 부분도 있어요. 싸움도 늘어나고…머리채 잡힌다고 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피로해서 아예 눈팅만 하거나, 탈덕 고민도 하게 되더라고요.”
“앨범마다 컨셉이 너무 비슷해서 새로운 모습을 보고 싶다 얘기하고 싶어도, 다른 의견을 가진 팬들끼리 논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또 덕질 성향의 차이도 있을 텐데, 아티스트 성적에 기여하는 활동에 참여를 안 하면 커뮤니티에서 공개 저격 당하거나 소외당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한 데에 모인 모든 팬의 소통을 효율적으로 조정할 방법은 없기에 아티스트 게시글/라이브 스트리밍의 댓글창 등에서 종종 불편한 내용을 마주하곤 합니다. 이는 갈등/의견 차이로 불편함을 느끼는 팬 관점을 넘어서, 일부 팬의 견해가 팬덤 전체를 대변하는 의견으로 왜곡된 채 아티스트에게 전달돼 혼선을 빚을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내포합니다. 결국 팬덤 플랫폼은 아티스트가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으로 팬덤을 결집시키는 힘을 갖지만, 정제되지 않은 팬덤 여론이 여과 없이 아티스트에게도 전달될 수 있어 아티스트 ↔ 팬 쌍방 소통이 가능한 공간으로써 가진 상호발전적 잠재 가치를 퇴색시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WEB3: 선별된 항목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이루는 아티스트와의 진정한 협력
블록체인 기술과 결합한 팬덤 플랫폼에서의 소통은 모든 팬의 능동적인 참여를 요구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아이돌 그룹 TripleS의 팬덤 플랫폼 cosmo입니다. cosmos에서 팬은 ‘투표'를 통해 원하는 바를 아티스트에게 전달합니다. 아티스트에게 ‘투표’를 통해 직접적으로 원하는 바를 소통하고 있습니다.
TripleS의 첫 유닛그룹은 어떤 멤버로 구성할지, 타이틀 곡은 어떤 곡으로 선정할지, 이 곡에 맞는 스타일은 어떤 느낌일지에 대한 결정은 모두 Como 토큰을 활용한 블록체인 기반 투표를 거쳐 탄생했죠. Como는 편의점에서 Objekt라고 불리는 실물 포토 카드를 구매한 후, 포토 카드의 QR코드를 cosmo에서 스캔해 포토카드의 NFT 버전과 함께 수령할 수 있는 유틸리티 토큰입니다.
지금도 cosmo 앱에서는 자체 콘텐츠에서 다룰 곡은 무엇으로 할지, 새로 합류할 멤버의 예명은 어떤 이름으로 정할지, 응원봉 디자인 등 TripleS의 활동과 관련된 다양한 투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2024. 08. 04) 기준 가장 최근 5건의 투표는 평균 약 16.4만 개의 투표권 행사로 높은 참여율을 보이고 있죠. 일각에서는 Como 토큰의 획득이 실물 포토카드 구매를 통해서만 가능해, 즉 ‘찐팬'에 한해 cosmos 플랫폼 유입과 참여가 이뤄지는 구조를 갖춘 덕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로써 플랫폼 내에서 팬덤은 투표를 통해 의견 전달을 효율화했을 뿐 아니라, 아티스트의 제작 과정에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공식적으로 제공해 팬덤의 역할도 확장한 것이죠.
“팬은 전문가가 아니고, 스타도 본인의 생각이 있기 때문에 활동에 대한 의사 결정은 본인이 해야한다 생각하지만, 팬의 니즈를 파악해줬으면 하는 것은 있어요. 팬덤 내부 여론이 반영이 되어야 결국 덕질도 지속성이 생기는 거니까요.”
“모든 결정권을 팬들이 다 가져가면 기형적인 상황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부정적이지만, 아티스트나 소속사의 기획 방향에 진지하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 정도의 의사 결정은 팬으로서 좀 재밌을 것 같아요.”
팬 또한 실제로 효용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의견은 배제한 채로 팬덤의 의견을 전달하고, 함께 제작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성장을 이루는 결과까지 낳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팬↔아티스트 상생 구조를 이룰 수 있겠죠. 하지만 여전히 매니지먼트 사 측에서 제공하는 옵션에 한정된 선택과, 일상적이고 긴밀한 이야기를 주고받기에 부적합해 채팅/댓글 소통 형태를 갖춘 채널로 분산되는 점에 대한 균형은 맞춰가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3-2. 팬 간 연대
팬덤은 아티스트의 성공을 위해 함께 적극적으로 움직인다는 특성을 띱니다.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는 이러한 강한 연대를 지금보다 더 자생적으로 지속 가능한 생태계로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WEB2: 단방향적으로 이루어지는 팬의 지원 활동
‘서포트'에 대해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이는 팬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좋아하는 아티스트에게 선물을 보내는 행위를 말합니다. 명품 옷, 간식 등 제품 선물 외에도 버스나 지하철 역 등에 아티스트를 홍보하거나 축하하기 위한 광고 게시도 포함하죠. 또는 아티스트의 촬영/행사 장소에 도시락이나 밥차를 보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아티스트 서포트를 전문으로 하는 서포트 업체까지 생길 정도입니다.
서포트는 팬덤이 자발적으로 펼친다는 점에서 특별한 문화로 여겨집니다. 최근엔 선물 공세를 넘어 아티스트의 대외적인 이미지 증진을 위한 서포트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예컨대 팬덤이 모은 자금으로 아티스트 이름으로 기부를 하거나, 아티스트가 광고 모델로 활동하는 제품을 구매를 하는 방식처럼 말이죠.
이처럼 팬덤의 서포트는 점차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일방향적입니다. 한편 서포트 활동에 대한 아티스트의 감사는 인증샷 정도에서 그칩니다. 팬에게 실질적으로 돌아오는 보상은 없는 것이죠. 물론 팬이 대가를 바라고 아티스트를 지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WEB3: 지원 활동에 대한 보상을 얻는 팬덤
WEB3에서는 아티스트를 서포트하는 활동을 하는 팬도 좀 더 직접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인센티브 커뮤니티 플랫폼 메타비트가 있습니다. 메타비트는 플랫폼 안팎의 커뮤니티에 대한 기여도를 토큰화함으로써 팬이 아티스트 홍보 및 지원 활동을 통해 직접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합니다. 메타비트 플랫폼의 주요 기능, ‘샤라웃(shout-out)'은 팬이 직접 아티스트의 장점이나 특징을 공유하고 전파하면서 홍보와 마케팅 활동을 펼치는 것인데, 앱 내 게시물 작성 페이지에서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태그 하거나 멘션해 포스팅하면 되죠. 아티스트의 이미지 삽입,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SNS 링크 입력을 통한 스크랩, 또는 타 유저 게시물의 리포스팅 등 다양한 포맷의 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참여 리워드는 위클리 챌린지 순위에 따라 매주 정산됩니다. 획득한 리워드는 앱 내 마켓플레이스에서 아티스트 관련 NFT를 구매하거나, 아티스트의 음악 활동에 대한 NFT 드롭 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팬 활동을 통해 얻은 보상을 다시 팬 활동을 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티스트가 직접 팬과 함께 혜택을 누리며 공생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바로 Avenged Sevenfold라는 미국의 헤비메탈 밴드가 만든 Season pass라는 로열티 프로그램인데요. Avenged Sevenfold가 직접 운영하는 사이트에 들어가 암호화폐 지갑을 연결한 상태로 음원 스트리밍을 하거나, NFC가 태그 된 굿즈를 구매하는 등 팬 활동에 따라 포인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포인트는 일정 교환 비율에 따라 토큰으로 교환할 수 있으며, 추후 현금화도 가능합니다. 현금화를 하지 않고 누적한 포인트는 누적양에 따라 굿즈 할인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팬 활동을 많이 할수록 추후의 팬 활동에 유리해지는 것입니다.
WEB3에서의 팬 활동 서비스는 pxd 리서치팀이 ‘팬 활동 및 WEB3 팬 플랫폼 수용도 조사'에서 만난 팬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습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아티스트가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하는 걸 보면서 저의 충만함도 키워간다는 만족감이 커요. 지원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 보단 잘 되면 저도 아티스트도 행복하니까 잘되게 해주고 싶어요.”
먼저, 팬은 자신이 응원하는 아티스트에게 대외적인 성공을 안겨주기 위해 노력하며, 그 과정에서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 입니다. 특히 케이팝의 경우, 음원 차트/음악 방송 순위 등 대외적인 성공 지표 달성은 팬덤의 지원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아티스트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과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능동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WEB3 서비스에서 지속성 있게 활동하도록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저도 굿즈를 직접 만들어서 판매해본 적 있어요. 판매 수익이 모이면 생각보다 큰 금액인데, 금전적인 이익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왜냐면 그 돈으로 앨범을 사거나, 생일 카페를 열 때 쓰기 때문에 결국엔 내 아이돌에게 다시 돌려주는 거거든요.”
“팬으로서는 사실 공식샵 포인트로 보상을 받으면 베스트 일 것 같긴 해요. 어차피 앨범이든 굿즈든 또 살 텐데. 아니면 이벤트성으로 아티스트를 만나거나, 공연을 갈 수 있는 보상. '너 자리 한 자리 보장된다' 이런 것도 사실 현재는 어렵다 보니까.”
더불어 팬 활동을 통해 얻은 금전적 보상을 다시 팬 활동을 하는 데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기대하는 보상 또한 팬 활동에 다시 활용하기 용이한 형태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메타비트와 Season pass가 그렇듯 말입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홍보하고 지원하면서 아티스트의 성공에 기여하는 것을 넘어, 또 다른 팬 활동을 지속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WEB3로 해석한 팬 활동 서비스는 명확한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다만 이러한 선순환 구조가 서비스로서 잘 해석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글. 정윤영, 최하은 - UX 리서처
#4편에서는 세 번째 Cycle인 '비음원 콘텐츠: 발행 및 판매 ↔ 소비/탐색/공유'에 관한 내용이 다뤄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