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11. 03:31ㆍpxd 다이어리 & 소소한 이야기
담장이 있는 장소,
담장이 없는 장소.
느슨한 주제가 있는 게시판,
온동네 얘기가 있는 게시판.
느릿느릿 달리는 댓글,
허겁지겁 올라오는 글들.
생각이 담기고 이야기가 있는 글들,
글자만 있고 일반론만 되풀이하는 글들.
일상의 풍경을 예쁘게 담아 소소한 마음을 전하는 글들,
모래가루를 움켜잡고 후광을 좇는 링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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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일요
산책
회
올해 봄이 시작될 즈음 친구가 페이스북에 '일요산책회'라는 비공개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만나지 않는 산책회'라는 설명과 함께, 주변 친구들을 초대하고 주변 친구가 또 다른 친구를 초대하여 아직까지는 50명이 조금 되지 않는 소박한 그룹입니다. 이 그룹이 멋진 이유는 '만나지 않는 산책회'라는 말처럼 서로 만나지 않고 서로가 지내는 일상 혹은 산책 중 만나는 풍경을 여유있는 시간에 올리고, 여유있는 시간에 보거나 읽고, 여유있는 시간에 댓글을 달며 서로에게 여유를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서로 그 무언의 느낌을 인식하고 보여주고 싶은 아름다운 풍경들과 그 풍경에 담긴 이야기,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위의 글은 '일요산책회'를 통해 느낀점을 적은 것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페이스북을 하는 것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루하루의 타임라인은 점점 길어져가고,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겪은 특별한 이야기가 힘없는 파동이 되어 미적지근하게 저에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다보니 더이상 친구요청을 거절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고, 이런 저런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조용했던 담벼락이 어느 순간 공적인 공간이 되어버린 느낌이었습니다.
원치 않는 글들을 보아야 했고, 원치 않는 댓글도 받아야 했습니다. 일상에서의 느낌을 적은 저의 짤막한 글은, 누군가의 댓글로 갑자기 철학적인 가르침으로 승화됩니다. 사실 저에게 페이스북은 일상을 공유하는 곳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점점 사회적 이슈들을 논하고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외부 링크를 데려와 담벼락에 남겨놓았습니다. 친구들의 클릭 한번으로 제 담벼락에는 수많은 앱들의 가볍고 정형화된 정보들이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지루하고 마음이 불편한, 그냥 지나치는 것들이 많아집니다. 하지만 좋고 멋진, 알게 되어 정말 즐거운 것들도 많아집니다. 웹이 끝없이 펼쳐지며 그 안에 유익한 자료와 별 볼일 없는 자료가 늘어나듯, 페이스북 또한 그런 하나의 환경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점은, 그래도 사용자가 직접 생산한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점점 더, 페이스북이 웹 자체와 비슷해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수많은 이야기들, 각자의 모든 관심사들, 정보, 지식, 링크, 앱, 홍보, 거기에 개인적인 경험, 사진, 영상들. 이쯤 되면 소셜 네트워킹이 무엇이고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 무엇을 원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어쨌든 하나의 터가 있다면, 그 터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몫이니 페이스북 자체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의 이야기, 링크, 앱 같은 모든 흔적들이 혼재되어 보이고 그 양이 날이 갈수록 많아진다면, 사람들은 다시 깨끗한 터를 찾으러 다니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조금 더 적극적인 큐레이팅이 필요할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저에게 '일요산책회'는 이런 페이스북 안에서 가끔 몰래 꺼내보고 싶은 멋진 풍경과 같습니다. 담벼락에 가볍게 보이는 누군가의 멋진 경험을 부러워하기보다, 느슨하게 감싸진 울타리 안에서 쓰인 글과 사진을 읽으며 함께 공감하고 일상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죠. 조금은 가볍게, 느릿느릿한 커뮤니티를 참여하며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를 꺼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