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타자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05.08 [디자인 역사 산책 4] 이탈리아 디자인의 역사와 인본주의 by KAHYUN.
  2. 2012.06.18 최초의 마우스, 최초의 네비게이션, 최초의 애플 컴퓨터 by 이 재용
2014.05.08 01:00

[디자인 역사 산책 4] 이탈리아 디자인의 역사와 인본주의

4회 차 강연은 ‘이탈리아 디자인의 역사와 인본주의’ 라는 주제로 감성디자인을 대표하는 이탈리아로 디자인 여행을 떠났습니다. 페라리, 람보르기니를 탄생시킨 이탈리아 디자인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1주 : 디자인과 삶의 철학
2주 : 독일 바우하우스와 근대성
3주 : 1930년대 식민지 근대 공간과 이상의 시
4주 : 이탈리아 디자인의 역사와 인본주의
5주 : 일본 디자인의 역사와 디자이너들
6주 : 한국 디자인의 역사와 과제들

1. 이탈리아의 장인정신

이탈리아의 자동차 디자인은 와인과 비교되곤 합니다.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 지방에서는 매우 양질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부드럽고 세련된 맛이 특징인 ‘바르바레스코’, 묵직한 향과 고풍스러운 맛을 자랑하는 ‘바롤로’ 두 가지 와인이 피에몬테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피에몬테 지방은 와인 생산뿐 아니라 마차에서부터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장인을 일컫는 ‘카로체리아’ 가 밀집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피에몬테의 여성스러운 바르바레스코와 묵직한 느낌의 바롤로를 적절히 배합한 카로체리아로는 피닌파리나를 꼽을 수 있습니다. 피닌파리나는 페라리를 비롯하여 다양한 명차를 탄생시킨 카로체리아입니다.

피린파리나의 Cisitalia 202GT
출처 : http://www.made-in-italy.com/italian-design/news/italian-auto-design-exhibition-in-los-angeles

1947년에 생산된 사진 속의 피닌파리나의 자동차Cisitalia 202GT는 자동차로서 드물게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되어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단판 경량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이 자동차는 이전의 자동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가볍게 디자인되었습니다.


2. 이탈리아의 역사

Torino 올림픽 풍경과 엠블럼
참고 URL : https://www.youtube.com/watch?v=W5pMNgMuEds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개막 영상을 보시면 이탈리아의 역사를 잘 알 수 있습니다. 1933년대를 표현한 안무는 현대적인 이탈리아와 조화를 이루며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열정의 불꽃’ (Spark of passion)을 주제로 이탈리아의 열정, 역동성을 담아 이탈리아의 문화를 잘 담아 내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는 F1 경주용 자동차의 바퀴자국을 이용해 올림픽 오륜기를 그려냈습니다. 자동차의 엔진소리와 오륜기가 형상화 된 모습을 보면 대장장이의 장인정신이 연상시키며 대중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인간의 몸, 땀, 시간이 녹여진 이러한 퍼포먼스는 이탈리아의 삶에 대한 열정에서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삶에서 늘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고 삶 자체를 모든 촉각을 곤두세워 의식을 치르는 듯 한 과정에서 이탈리아 디자인이 발전 할 수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디자이너 쥬지아로가 디자인한 파스타를 보면 삶의 작은 일상까지도 신경 쓰는 이탈리아 디자인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젊은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베스파(Vespa) 스쿠터도 1946년 이탈리아에서 탄생했습니다. 로마의 휴일에 등장한 베스파 스쿠터는 영화의 인기와 함께 대중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습니다. 유선형의 몸체를 가지고 있는 베스파 스쿠터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이탈리아의 재건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로마의 휴일
출처 : www.stranitalia.com

이탈리아는 1861년 통일되기 전까지 북부와 남부로 국토가 분리되어 있다가 1870년부터1914년 사이에 근대국가 체제를 갖췄습니다. 그렇기때문에 19세기 말까지 이탈리아의 산업은 대부분 소규모 가내 수공업 형태로 유지했습니다. 예컨대 산업은 기껏해야 유리, 도자, 텍스타일과 같은 영역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1900년대에 비로소 철강산업이 발전하면서 조선, 해양 산업을 중심으로 산업이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는 후발 산업국가로써 급속한 근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프랑스의 아르누보 운동에 해당하는 이탈리아의 스틸레 리베르티운동이 발전했습니다. 아르누보란 단순히 장식을 위한 양식이 아니라 구조의 기능과 형태에 구조적인 요소로 장식을 곁들이는 양식을 말합니다. 즉, 스틸레 리베르티 운동은 전근대적인양식이 근대양식으로 발전해 나가는 중간과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에 따른 디자인이 발전함과 동시에 다른 쪽에서는 이탈리아의 전통 공예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는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모던 디자인으로써의 움직임과 동시에 전통을 지키는 운동이 함께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3. 이탈리아의 모더니즘
이탈리아의 모더니즘은 디자인뿐 만 아니라 예술 쪽에서도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의 미래파 작업은 모더니즘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래파의 예술가들은 근대 도시, 속도감을 화두로 던져 현대 도시의 모습을 그려내고자 했습니다. 패션 디자인에서는 자코모 발라가 의상 자체에 속도감을 나타내면서 옷의 본질에 대해서 새롭게 제시했습니다. 움베르니 보치오니도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신체의 변화를 조각에 잘 나타냈습니다.

자코모 발라 의상 스케치 : giacomoballaarthistoryproject.blogspot.com
움베르토 보치오니 조각 : m.busan.com

미국에서 헨리 포드가 보여줬던 대량 생산 체제의 모습을 이탈리아에서는 피아트가 보여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피아트의 대량 생산 체제로의 변화는 효율성을 중시한 자동차 산업의 모더니즘을 향한 첫 발걸음이었습니다. 1936년에 생산된 피아트사의 토폴리오(fiat 500) 자동차는 이탈리아 지형에 걸맞으면서도 스트림라인의 형태를 보여주면서 콤팩트한 미니카의 모습으로 디자인 된 가장 민주적인 자동차입니다.

1930년대 fiat 공장 모습 : www.lancisti.net
fiat 500(topolino) : www.mozartrents.com

피아트와 함께 올리베티도 이탈리아의 모더니즘을 성장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아드리아노 올리베티는 1920년대에 미국의 합리적인 경영 방식을 배워와 아버지가 세운 올리베티 회사를 업그레이드시켰습니다. 1930년대의 올리베티는 건축에서 타자기까지 모든 산업을 아우르는 토탈 디자인을 추구했습니다.

출처 : http://oztypewriter.blogspot.kr/


4. 노베첸토 운동
이탈리아 잡지 도무스지가 일으킨 노베첸토 운동은 오스트리아의 양식에서 영감을 얻은 전통을 기반으로한 신고전주의운동이었습니다. 노베첸토 운동은 피아트와 올리베티가 주도한 미국의 대량 생산 방식을 이탈리아역사, 문화를 통한 필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더니즘과 노베첸토 운동이 함께 나타나게 되면서 현대적이고 실용적인 느낌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적인 감각이 녹아 들게 된 것입니다. 노베첸토 운동을 통해 이탈리아는 자국의 역사를 토대로 끊임없이 발전시키면서 이탈리아 디자인만의 차별화를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두모오 광장
출처 : wonderfull-tourism.blogspot.com


5. 개별의 디자이너에게 끼친 영향
에토레 쏘트사스는 미국식의 대량 생산 체제를 이야기하고 있을 때 이탈리아 디자이너로서 산업 디자인의 폭동을 일으킨 디자이너입니다. 1959년에 올리베티사에서 디자인한 컴퓨터는 컴퓨터를 도서관 서가식으로 분리해 사람들이 컴퓨터 사이를 드나들 수 있도록 디자인해 사람과 기계 사이의 인터페이스를 고려했습니다. 또한 1969년 발렌타인 타자기를 보면 사람과 제품을 연결시키려는 에토레 쏘트사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플라스틱 외장 케이스가 안의 내용물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디자인되었고 케이스 자체를 받침대로 사용해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케이스 잠금부위가 고무로 되어있어 탄성을 이용해 사용자가 직관적으로 타자기를 보관할 수 있도록 고려했습니다.


올리베티사의 컴퓨터 : we-make-money-not-art.com
올리베티사발렌타인타자기 : www.ganzomag.com

에토레 쏘트사스는 재료와 사물의 본질을 건드린 타당한 이유를 가진 감성을 디자인했습니다. 또한 새로운 주거 형태를 제안하면서 인간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 디자이너입니다. 1980년에는 60대의 나이에 멤피스 그룹을 결성해 그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을 많이 선보였습니다. 현대사회에 대한 성찰과 비판을 담아내면서 70-80년대의 새로운 디자인으로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6. 결론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에토레 쏘트사스, 피닌파리나가 가장 중요시했던 원칙은 사람과 제품에 대한 ‘사랑과 헌신’ 입니다. 제품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디자인을 하는데 있어 열정과 사랑도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기술이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는 시대에 기술에 좌지우지되는 디자인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디자인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왜 필요한 것인지를 다시 되돌아 보아야 할 시점입니다. 만약 그런 열정과 사랑이 없다면 디자인은 현란한 잔재주에 불과합니다. UX 디자인 분야에서도 감각적인 잔기술로 연명하는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가 아닌 ‘디지털 장인’으로써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자신의 기량을 스스로 업그레이드하는 디자이너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 김민수, 2014
저작권 보호를 위해 위 강연 컨텐츠의 무단 사용 및 복제를 금합니다.
[참고##디자인역사산책##]

팀블로그 pxd Story 구독 방법  블로그 글은 각 개인의 생각이며 피엑스디와 다를 수 있습니다.


Trackback 1 Comment 0
Ad Test...
2012.06.18 10:43

최초의 마우스, 최초의 네비게이션, 최초의 애플 컴퓨터

최초의 마우스
잘 알려진대로, 1968년 12월 9일, 스탠포드의 더글라스 엥겔바트가 "디스플레이 시스템을 위한 x-y 위치 표시기"를 만들어 공개했다. 작은 나무 상자에 휠이 달려 있는 형태였고, 손에 쥐는 장치는 '마우스', 스크린의 커서는 '버그'라고 불렀다.(출처:조선일보)

Douglas Engelbart, Computer Mouse Creator, Visionary, Dies at 88


엥겔바트의 마우스는 1970년대 제록스 파크(Xerox PARC)에서 더 개발되다가, 애플에서 최초로 대량생산하게 된다.
1980년 애플은 IDEO에게 Lisa 컴퓨터를 위한 마우스를 디자인해달라고 했다. IDEO는 제작 비용은 더 낮추면서도 신뢰성 있는 포토트랜지스터를 이용한 볼마우스를 디자인하였다. (출처:IDEO)


최초의 애플컴퓨터
1976년 4월 1일에 설립되어 최초의 Apple-I 컴퓨터를 1976년 7월에 $666.66 에 출시하였다. 첫 컴퓨터는 케이스나 키보드 같은 것은 없이, 마더보드만 팔았다. (이 당시는 이것이 personal computer라고 간주되었다.) 1977년 4월 16일 키보드와 주변 기기 등을 갖춘 Apple II가 소개되기 전까지 단 200개를 팔았다고 한다. 애플1은 당시 컴퓨터 유통업을 하던 폴 테렐의 주문으로 개발됐다. 당시 테렐은 한 대당 500달러에 50대의 컴퓨터를 주문했고, 잡스와 워즈니악은 한 달도 안 돼 이 컴퓨터를 만들어 납품했다. 이후 두 창업자는 150대의 컴퓨터를 더 만들어 50대는 친구들에게, 100대는 컴퓨터 판매업자에게 팔았다. 현재 50대가 남아있는데, 그 중 판매 당시의 상태가 완벽하게 남아있는 한 대가 2010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2억7천만원에 팔렸다. 이들 중 정상 작동하는 것은 6대가 있는데, 그 중 한 대가 2012년 소더비 경매에서 4억 3천만원에 팔렸다. (출처:위키피디아, 조선일보, 조선일보)

[사진:주변 구성 요소가 그대로 보존된 애플-1. 포장 상자에는 스티브 잡스 부모님 주소가 씌여있고, 그가 고객에게 쓴 편지도 포함되어 있다. 뉴턴이 사과나무 밑에 앉아있는 최초의 애플 로고도 보인다. 출처:Chrisite's]

최초의 네비게이션
1920년대에 영국에서 제작된 세계 최초의 네비게이션(내비게이션,Navigation)은 손목에 차고 운전하면서 지도가 말려있는 나무 롤러를 돌리면 방향을 알 수 있다. 수집가 모리스 콜린스(Maurice Collins)가 런던 도서관에서 연 전시회를 통하여 소개되었다. (출처:조선일보)


최초의 웨어러블?(손목 계산기)
IT매체 기즈모도의 보도에 따르면 청나라 시기(1800년경)에 만들어진 이 초소형 주판 반지는 1.2cm길이에 폭은 0.7 cm이다. 단순히 모양만 주판이 아니라 실제로 계산도 할 수 있다. 너무 작아서 손가락으로 계산을 할 수 없고, 부유층 여성들이 머리핀 등으로 계산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출처: 나우뉴스)



최초의 타자기
1700년대 말부터 1800년대 중반까지 구미 전역에서 많은 발명가들이 서로 개발하고 채용하여 누가 진정한 발명자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처음 상업적으로 성공한 것은 1868년 크리스토퍼 쇼울즈 등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이 시기에 'Type-Writer'라는 이름으로 레밍턴에게 특허가 양도되었고, 이 사람들이 처음 만든 프로토타입에 QWERTY 키보드가 장착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1885년 아메리칸 언더우드 타자기. 흥미로운 건, 이 때 이미 @ 심볼이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 증명되지 않은 부분. 이 당시에는 SHIFT 키가 없어서 숫자 외의 기호 입력이 불가능해 보이네요)



최초의 스프레드시트

의미있는 기술적 진보는 그 이전에 이루어졌으나, 상업적으로 첫번째 성공하였고, 개인용 컴퓨터를 처음으로 장난감이 아닌 "쓸모있는 물건"으로 보이게 한 스프레드시트는 VisiCalc였다.
1979년에 Apple-II에서 출시되었고, 1981년에 IBM-PC에서 출시되었다. 이른바 IT 역사상 최초의 '킬러 앱(앱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그 앱이 동작하는 기계를 사고 싶어질 정도의 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출처:위키피디아)

이 앱은 지금도 IBM 호환 컴퓨터에서 실행시켜 볼 수 있다. 실제로 한 번 실행시켜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출처:Dan Bricklin's)

최초의 리모컨
1955년 제니스 일렉트로닉스(Zenith)에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유진 폴리가 개발한 '플래쉬-매틱'은 음량, 채널을 조정할 수 있는 최초의 리모컨이다. 빛을 이용했기 때문에 햇빛이 강한 날에는 오작동하기도 했지만,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다고 한다. 이 때문에 Couch Potato와 Channel Surfer란 신조어가 생겼다. 대신 광고가 나올 때마다 시청자들이 소리를 줄이는 바람에 광고주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고. 폴리는 초음파(1956년), 적외선(1980)을 이용한 모델도 만들었다. (출처:조선일보)

[사진:플래시-매틱. 출처:데일리메일]

최초의 진공청소기

원래 손으로 돌리는 것이 있긴 하지만(좀 더 엄밀한 역사 참고), 모터로 된 근대 진공청소기를 처음 만든 사람은 1901년 영국의 발명가 세실 부스(Cecil Booth)이다. 그는 의자에 먼지를 뿌린 뒤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손수건을 고정시켜놓은 후 입으로 공기를 빨아들이는 실험을 하여 흡입식 진공청소기를 개발하였다. 그러나 세실 부스가 처음 발명한 흡입식 진공청소기는 지금처럼 조그마한 청소기가 아니고 마차에 펌프를 장치한 거대한 기계였다. 진공청소기의 크기를 현재 가정에서 사용하는 크기 정도로 줄인 사람은 미국인 제임스 스팽글러(James Spangler)이다.

늘 기침에 시달리던 그는 1907년 먼지를 빨아들이는 휴대용 진공청소기를 발명했으나 그것을 상용화시키지는 못했다. 제임스 스팽글러가 발명한 진공청소기를 상용화 시킨 것은 그에게 진공청소기의 특허권을 사들인 친척 윌리엄 후버(William Hoover)였다. 1908년부터 윌리엄 후버에 의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간 진공청소기는 발전을 거듭해 오늘날의 진공청소기가 되었다. (Upright형의 유래)

한편 191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생산된 산업용 청소기는 병원이나 산업 현장에서 사용하는 14Kg의 무거운 형태였는데, 1921년 스웨덴 가전그룹 일렉트로룩스에서 최초로 가정용 진공청소기 '모델5'를 개발해 보급했다. 무거운 진공청소기를 쉽게 끌고 다니도록 썰매 다리를 달았다고 한다(canister형의 유래).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보급되기 시작.

1984년 제임스 다이슨이 최초로 원심분리 방식의 청소기를 개발하여 먼지 봉투 제거.
1998년 독일 가전 밀레는 산업용 먼지제거 필터인 헤파 필터를 처음으로 가정용 청소기에 적용.
2003년 일렉트로룩스는 세계 최초 로봇 청소기 '트릴로바이트' 출시.(출처:디지털타임즈,위키피디아)



최초의 수도
기원전 312년 로마의 정치인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는 물을 편리하게 이용하기 위해 수도를 만들었다. 총 길이 16.6Km중에서 16.5Km가 지하 구간이었는데, 전쟁을 대비하고 평시에도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지하에 만든 것이었다. 이를 '아피아 수도(Acqua Appia)'라고 불렀다.

최초의 냉장고
BC 4세기부터 이란에서는 야크찰(Yakhchal)이라는 원뿔형 저장고가 있었는데 섭씨 40도가 넘는 사막에서도 얼음을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중국에선 춘추전국시대부터 한겨울 산과 강에서 얼음을 떼어다 보관하고 있었고,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3대 유리왕 때 이미 얼음 저장 창고가 있었다한다.(출처:중앙일보)

가정용 냉장고는 1913년 시카고에서 처음 생산했고, 1926년 제너럴 일렉트릭(GE)에서 압축기를 이용한 냉장고를, 그리고 1939년에 오늘날 사용하는 냉장실과 냉동실이 구분된 냉장고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 LG전자(금성사)가 처음 생산했다(출처:네이트 지식)

맥가이버 칼
기원 후 201년-300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칼은 야외 생활에 필요한 작은 도구들이 모여 있어 Swiss Army Knife를 연상시킨다. 높이 88 mm, 길이 155 mm이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피츠윌리엄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출처:조선일보)


수세식 화장실
기원전 26세기경 인더스 문명권의 하라파와 모헨조다로 도시, 또 기원전 18세기경 크레타 섬의 그노소스 궁전에서도 수세식 변기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현대적 의미의 수세식 변기를 발명한 사람은 존 해링턴(1561~1612)인데, 1596년에 두 개를 만들어 자신이 하나 쓰고, 리치먼드 왕궁에 하나를 설치했다. 널리 보급된 것은 2세기 후로 1778년 조지프 브라마가 밸브를 개선하여 상업적으로 성공하였다.(출처:조선일보)


최초의 금전등록기

미국 로체스터대학교 스티븐 랜즈버그 교수 연구에 따르면 술집 운영자였던 제임스 리티가 1879년 세계 최초로 금전등록기를 개발하면서부터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손님들이 내고 간 돈을 '슬쩍'하는 직원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던 리티는 거래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금전등록기를 개발하고 이를 '청렴한 출납원(incorruptible cashier)'이라 이름 붙였다. 가격을 1달러라고 하는 대신 99센트라고 하면 항상 1센트를 거슬러 주기 위해 금전등록기를 열어야만 했고, 거래 기록이 남기 때문에 종업원들이 훔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1887년 미국에서 5400대 정도 있었는데 1890년엔 미 전역에 1만6395대나 보급됐다.
단수가격(odd pricing) 정책이라 불리는 이 방식은 소비자들이 한 단계 낮은 첫 자리로 더 싸게 기억하는 효과도 있었다.(출처:조선일보)


최초의 전화기

아마 더 이전에도 이런 식의 전화기를 사용했을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박물관에 남아있는 전화기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1200년전의 전화기라니까 말이다.
약 23미터의 면 줄을 가진 이 전화기는 북부 페루의 치무(Chimu) 제국의 것으로 추정된다. 잉카와 마찬가지로 치무도 매우 권위적인 사회였으므로, 소수의 엘리트, 아마도 성직자들에 의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보안상의 이유로 직접 만날 수 없는 최고 권위자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을까 정도가 유일한 설명이다. (출처:스미스소니언잡지)

참고 : 너무나 익숙한 것들의 첫 등장 순간들 (애플컴퓨터, 지멘스 핸드폰,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즈, HP 랩탑 등)

[참고##UI 역사##]



팀블로그 pxd Story 구독 방법  블로그 글은 각 개인의 생각이며 피엑스디와 다를 수 있습니다.


Trackback 0 Comment 0
Ad T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