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적정기술 그리고 하루 1달러 생활에서 벗어나는 법

2012. 6. 27. 10:28리뷰
이 재용

원제: Out of poverty: what works when traditional approaches fall
저자: Paul Polak
번역: 박슬기

이 책은 매우 논리적인 이야기로 가득차 있으나, 그 관점의 탁월함에 흥분하고, 인류애의 발현에 감동받아 눈가가 젖은 채로 계속 읽게 된다.

이 책은 폴락이 개발도상국의 소농 3,000명 이상과 나눈 길고 긴 대화를 바탕으로 한다. 생존을 위해 일하는 재능 있고 고집 센 이들 기업가로부터 폴락이 얻은 지식은 그가 설립한 IDE의 운영 원칙이 되었고, 이를 통해 하루 1달러로 살아가는 1,700만 명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었다. p337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 특히 디자인 교육을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보고,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시켜야할 책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전 세계 디자이너의 90%가 부유한 상위 10%의 수요를 충족시킬 제품을 개발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디자인 혁명을 통해 이런 말도 안 되는 비율을 뒤집고 소외된 90%의 소비자에게 다가가야 한다.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고 자전거라도 살 수 있기를 꿈꾸는 반면, 디자이너들은 우아한 형태의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일한다. p107-108

그렇다. 내가 만드는 모든 디자인이 우리 나라의 중산층 이상을 위한 것이라면,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부유한 상위 10%를 위한 것이고, 내가 가르친 모든 학생들도 그들을 위한 디자인을 하고 있다. 꼭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모든 디자이너들이 동일한 목표(더 비싸고 더 우아한!)를 갖는다는 것은 너무 불행한 일이다. 지금보다 더 많은 디자이너들이 다양한 소득 수준에서의 삶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해야하며, 필자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의 매력은 이러한 '도덕적 당위'를 이용하거나, '죄책감'을 이용하여 기부를 이끌어내고, 그 기부를 무상으로 줌으로서 기부하는 사람에게 성공적으로 면죄부는 주지만 실질적으로 기부받는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데는 실패하는 국제 구호의 모델을 비판한다는데 있다.

그는 빈곤 퇴치에 관한 3가지 허구에서(p066),

1. 기부를 통해 빈곤을 퇴치할 수 있다.
2. 경제 성장이 지속되면 빈곤이 사라질 것이다.
3. 대기업이 빈곤을 없애줄 것이다.

이렇게 세 가지를 들면서 책 곳곳에서 왜 기부가 사람들의 삶을 망치는가를 증명하고 있다. 국제 구호 기금이 들어올 때는 해당 정부를 통해서 80%이상이 들어오는데 효율적으로 사용되기 보다는 정권의 연장을 위해서 대규모 토목 공사 같은 곳에 사용되고, 그 사이 많은 관리들을 부정부패로 사리를 취하며,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 놓는데 실패한다. 설령 직접적으로 무언가가 설치된다하더라도, 그 보조금이 떠나버리고 나면 그들의 삶은 원래대로 돌아가는게 아니라 더 나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가난한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이되, 그것을 사서 투자하면 소득이 두 배 이상 증가될 수 있는 다양한 농기구, 시설, 비료 등을 제공하여, 자기 자신의 힘으로 소득을 늘리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시장의 기능을 이용하자는 것이고, 그들을 '동정'하고 도와주어야 할 대상이라기 보다는 '비즈니스'의 소비자로 보자고 주장한다. 무상으로 화장실을 설치해주면 1-2년 내에 엉망이 되어 버리지만, 개별 가정이 살 수 있는 저렴한 변기를 팔면, 각자 알뜰하게 몇 년간 사용하여 위생이 더 개선된다는 것이다.

후진국에서 어려운 것은 기술 개발이다. 왜냐하면 누군가 좋은 것을 만들면 만들수록 더 빨리 베끼기 때문에 아무도 기술 개발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국제 기구의 도움(디자이너의 도움)은 이런 곳에 쓰여야 한다. 페달식으로 밟는 펌프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그것을 현지 업체가 생산하도록 하며, 현지 사람들을 통해 판매하면, 700개의 생산업체가, 2000개의 판매자가, 그리고 50만 가구의 농가 소득이 두 배가 되도록 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홍보하기 위하여 영화를 만들고, 마케팅을 하는 것은 개별 생산자가 하기 어렵고, 그 마케팅 비용이 제품에 전가되면 가격 상승 요인이 되므로 이런 부분을 국제 기구의 도움을 통해서 해결한다. 다시 정리하면, 기술 개발과 마케팅에 도움을 주되, 생산, 판매, 구매는 모두 현지 사람들이 하게 하는 방식이다. 농부들이 쉽게 대출을 받아서 사도록하는 마이크로크레딧도 필요하다. 아울러 증대된 생산물을 쉽게 판매할 수 있는 시장(판로)도 필요하다. 이런 부분을 국제 기금이 맡는다.

이렇게 페달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자, 현지 대통령이 대통령 공약으로 수십만개를 공짜로 나누어 주겠다고 약속해 버렸다. 그러니 사람들은 공짜로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안 사고 버티기 시작했다. 자생적으로 생긴 생산업체와 판매업체는 모두 망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당선되고 난 다음 그는 수천개를 공급했을 뿐이었다. 이렇듯 '공짜' 혹은 '기부'는 모든 것을 망친다.

그의 디자인 원칙은 꼭 이렇게 특수한 분야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현장으로 가라' '당사자와 대화하라' '문제의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라' 등은 모두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contextual design 혹은 user centered design과 똑같다. 이것이 모든 디자이너, 혹은 문제 해결자들이 이 책을 읽어봐야하는 이유이다.

물론 많은 성과를 내었지만 저자가 이야기하는 '시장 논리에 의한 문제 해결'이 모든 것의 답은 되지 못 할 것이다. 비판의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결론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1.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충분한 돈이 없기 때문이다.
2. 저렴한 농기구,시설,비료 등을 이용하면 훨씬 큰 돈을 벌 수 있다.
이 단순한 사실을 아는데 25년이 걸렸다. p033

빈곤의 문제는 빈곤 그 자체이며,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아주 단순한 방법(정보의 유통)을 통해 벗어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보건,주거,교육,인권,환경 등 모든 문제가 함께 해결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벗어날 충분한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다. 이것이 그가 25년간 깨달은 것이고, 이 책을 통해 너무나도 생생하게 전달되는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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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듯 중요한 2008년도 책이 이제서야 (2012년 6월 8일) 번역되어 나왔다는 점이 안타깝지만 이제서라도 나왔으니 다행이다. 저자가 좀 더 그림이나 사진을 많이 사용했다면 디자이너들이 흥미를 더 가졌을 법하다. 번역은 대체로 편안한데, 다만 번역자가 단위(도량형)에 조금 더 일관성을 주었어야 했던 것 같다. 책의 특성상 숫자가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너무 다양한 단위를 사용하니 좀 정신이 없었다.

[링크]
* 디자인 혁명: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 (D-Rev: Design for other 90%) http://www.d-rev.org/
* VentureSquare:로컬에게 모든 적정기술은 유익한걸까 by 민용환 2012-06-08
* The UN Today:적정기술과 디자인 카테고리 by 김정태 (매우 유용!@@ 적정기술 전문가라 할 수 있을 듯)
* 10 Cases of Appropriate Technology
* Appropedia:Highlighted Projects
* E3Empower (실리콘밸리의 적정기술 한국인 그룹)
* 적정기술 거래소 (Kopernik Korea)

[도서]
*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 스미소니언 연구소 저.
* 적정기술이란 무엇인가? 김정태,홍성욱 저
* 인간 중심의 기술 적정기술과의 만남 김정태, 김주헌, 정인애, 하재웅, 한재윤 저

* 아래는 기억에 남는 대목 ------------------
지구상 인구의 절반은 하루 4달러 미만으로 살아간다. 나머지 절반인 우리는 이 책을 읽어야 한다. by 데이비드 캘리 IDEO 회장의 추천사 폴 폴락. "적정기술 그리고 하루 1달러 생활에서 벗어나는 법"

1.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충분한 돈이 없기 때문이다.
2. 저렴한 농기구,시설,비료 등을 이용하면 훨씬 큰 돈을 벌 수 있다.
이 단순한 사실을 아는데 25년이 걸렸다. p033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디자인 원칙 p037.
1. 현장으로 가라
2.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와 대화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귀울이라
3. 문제가 발생하는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라
4. 크게 생각하고 크게 행동하라
5. 아이처럼 생각하라
6. 뻔한 방법을 찾고 실행하라
7. 누군가 이미 발명했다면 다시 할 필요가 없다
8. 측정과 확장이 가능한 접근법을 취하라 (적어도 100만명의 삶을 눈에 띄게 개선하는 방법을 찾아라)
9. 구체적인 목표 원가 및 가격을 설정하라
10. 실용적인 3개년 계획을 따르라
11. 고객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배워라
12.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다른 사람 생각에 흔들리지 마라

빈곤 퇴치에 관한 3가지 허구 p066.
1. 기부를 통해 빈곤을 퇴치할 수 있다.
2. 경제 성장이 지속되면 빈곤이 사라질 것이다.
3. 대기업이 빈곤을 없애줄 것이다.

전 세계 디자이너의 90%가 부유한 상위 10%의 수요를 충족시킬 제품을 개발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디자인 혁명을 통해 이런 말도 안 되는 비율을 뒤집고 소외된 90%의 소비자에게 다가가야 한다.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고 자전거라도 살 수 있기를 꿈꾸는 반면, 디자이너들은 우아한 형태의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일한다.
디자이너들이 좀 더 세련되고, 효율적이고 내구성 있는 제품을 만들어낼수록 가격은 올라간다. 물론 돈이 있는 사람들은 높은 가격도 기꺼이 낼 능력과 용의가 있다. 반면, 개발도상국의 빈곤층은 수적으로 도시 부유층보다 20배다 많은데도 불구하고 불과 몇 페니를 가지고 수백 가지의 필수품을 사야 한다. 이들은 가격을 위해 질은 어느 정도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시중에는 이들의 수요를 맞춰줄 상품이 없다.
현대 디자이너가 하는 일이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과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이 분야에 입문하는 사람들도 잘 알고 있다. p107-108

개발 원조 단체가 무상으로 화장실을 설치하지만 아무도 청소를 하지 않아서 대개 얼마 되지 않아 끔찍한 상태가 되곤 한다. 하지만 IDE가 베트남의 민간 작업장을 통해 저렴하고 질 좋은 변기를 농촌 소비자들에게 공급하자 이들은 보조금 지원 없이도 변기를 사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굉장한 반응에 식수 및 위생전문가들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빈민들이 변기를 사는 데 기꺼이 돈을 쓸지 모른다는 생각은 개발원조분야에서는 극단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실상은 하루 1달러로 사는 가정 다수가, 특히 소득이 창출되었을 때, 수동펌프와 변기를 보조금 없이 정당한 시작가격에 살 용의와 능력이 있다.  p 271

다행인 것은, 학생들 스스로 이런 현실을 바꿔가기 위해 교수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스탠퍼드 경영대학의 짐 패텔 교수는 스탠퍼드 디자인 학교의 '초저가 제품 디자인' 수업을 처음 구상한 사람이다. 그가 말한 바로는, 10년 전만 해도 일반적으로 스탠퍼드 MBA 코스를 밟으러 오는 학생들은 '빌 게이츠가 되는 법을 알려주세요'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이제는 학생들이 '세상을 변화시킬 방법을 알려주세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p 296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일은 소외된 90%를 위하여, 디자인하고 가르치는 일이다. p303

[참고##사회공공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