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일상의 경험, 알라딘 중고서점

2014. 2. 20. 00:14pxd 다이어리 & 소소한 이야기
Sungi Kim

'소소한 이야기'는 pxd생활을 하면서 떠오르는 소소한 생각이나 소소한 아이디어들을 풀어 놓는 공간입니다.

얼마 전, 동네에 알라딘 중고서점이 생긴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인터넷 뉴스와 페이스북을 통해 존재를 알게 되고, 강남역 근처에서 한번 지나친 뒤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벌써 동네에 생겨있었어요.

동네에는 일반 서점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정말 오랫동안 큰 동네의 모든 수요를 담당하던 서점, 또 하나는 몇 년 전 생긴 쇼핑몰 안의 서점입니다. 쇼핑몰 안의 서점은 다른 공간들과 트여있어 왠지 정이 가지 않고, 어렸을 때부터 가던 서점에는 가끔씩만 가는 정도였죠. 그 서점은 약간 어둡고 정적인 분위기가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터줏대감처럼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사람들이 오는 것을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 심투룽한 표정의 인테리어입니다. 그리고 알라딘 중고서점이 생겼습니다. 그 곳을 다녀온 감상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적당히 활기차고 풍부한 공간의 느낌입니다
알라딘 중고서점은 내려가는 계단부터 밝고 활기찼습니다. 세심하게 작가들의 얼굴과 이름, 메시지를 담은 벽과 밝은 불빛은, 세 번이나 꺾어 내려가는 계단이지만 계단의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습니다. 대신 그 곳을 향해 가는 즐거움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서점 내부는 반짝반짝합니다. 아주 주관적이고 순간적인 느낌으로는, 적당한 사람들이 둘러보고 있으며 적당한 사람들이 앉아 책을 읽고 있습니다. 저도 딱 적당히 저 무리 속에 합류하면 될 것 같습니다.

  

내부는 아주 큰 공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풍부한 깊이의 공간감이 느껴집니다. 입구 바로 옆 긴 계산대 공간, 그리고 반대쪽에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깊이 들어간 작고 편안해보이는 공간이 있습니다. 정면의 좌우는 두 계단 정도 높이 차이를 둔 바닥의 단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또 정면에서 꺾어 안쪽으로 뻗어있는 공간은 슬쩍 존재감을 나타내며 생각보다 넓을 공간에 대한 기대를 만들어 줍니다.

무엇보다, 공간을 채우고 있는 책장들은 부피감이 적고 깔끔하게 정돈된 책들이 꽂혀있어서 손님들의 보물찾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입니다. 두근두근. 책장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기억 속의 다른 서점의 책장들은 상대적으로 무겁게 공간을 감싸고 있는 느낌이 들고 책도 책장에 조심조심 들어가 있습니다. 대신 알라딘 중고서점의 책장은 책들을 강조하기 위해 얇고 가볍게 존재를 숨기려는 모습입니다. 
  



두 번째는 책장에 꽂힌 책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흥미로움입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책을 분류하는 방식은 크게는 일반 서점과 다르지 않지만 특색있는 분류들이 있습니다. 서점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고객이 방금 팔고 간 책', 고객이 방금 전 읽던 책' 코너는 마치 도서관에 목적없이 갔을 때, 도서관에 새로 들어온 책들을 임시로 놓는 책장을 보는 것처럼 둘러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서점의 신간,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중고서점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중요한 흥미요소core attraction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더불어, 하나하나 누군가 읽었을 책이라고 각인이 되니 눈길을 쉽게 돌리지 못하겠습니다.



세 번째, 이 곳에서 가장 멋지고 태어나서 처음 접한 경험은, 여러 권이 있는 같은 책을 고를 때입니다
책의 색깔이 약간 다르고 군데군데 따로 꽂혀있습니다. 한 권을 고르니 책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궁금하여 다른 책을 꺼내보니 세월의 흔적이 눈으로 보입니다. 그러다가 책의 맨 뒷 부분을 보니 1판 24쇄. 색이 다른 책을 꺼내보니 1판 1쇄. 또 다른 책은 1판 32쇄.

'와, 몇 쇄를 골라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해 본적은 없었습니다. 양장본을 고를지 무선제본을 고를지 고민을 한 적은 있어도, 몇 쇄를 고를지 고민을 한 적은 태어나서 한번도 없었거든요. 깨끗한 32쇄를 살까, 세월의 흔적이 있는 1쇄를 살까? 참 어렵지 않으면서도 어려운, 즐거운 고민입니다. 게다가 제가 꺼내 본 책들의 가격은 같았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책의 가격도 참 착합니다
오래 된 책은 1000원 짜리도 있습니다. 제가 고른 것들 중 4000원이 넘는 책은 없습니다. 엄청난 문화 충격이죠. 제가 먹는 점심 밥값이면 책을 몇 권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가격으로 책을 살 수 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책의 분야는 조금 한정적이지만 이 정도면 카페에서 쉬는 대신, 가끔 와서 구경하다가 소설이나 수필집 한두권 사는 것도 같은 돈에 유익한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공간입니다. 공감하시나요?
저는 기존의 서점, 도서관과는 확실히 다른 공간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입구에 테이크아웃 커피를 보관해두는 곳이 있는 것만 봐도 일반 서점과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훨씬 더 편안하다고 해야할까요? 책을 사기 위해 가는 곳이 아니라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쉬면서 책을 둘러볼 수 있는 곳으로 느껴졌습니다. 책이라고 하면 으레 무언가 얻기 위한 딱딱한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사실 그렇지만은 않죠. 여기에 있는 책들은 그런 이미지에서 살짝 풀어진채로, 여기저기 정돈이 덜 된 느낌으로, 부담없이 꺼내어 보고 꽂아두면 될 것 같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다른 동네의 지점들도 비슷한 컨셉으로 각자의 공간에 맞게 꾸며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요. 영화에서나 보던, 이미지로만 보던 편안하고 멋진 인테리어의 서점이 여기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전 헌책방 세대가 아니라 이전의 중고서점을 이용하는 행태나 중고서점의 가치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인터넷 뉴스들을 보면 알라딘 중고서점이 기존 헌책방과 지역 서점들을 위협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데요. 그건 사용자들의 입장은 생각해보지 않고 기존 상업 종사자들의 입장을 비약해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보고 나서 책을 더 많이 좋아하게 되었고, 사게 되었거든요.

사실 막상 가보면 대단할 것 없는데 예찬을 해서 광고 같습니다만 저에게는 문화충격이었거든요 ^^; 이상, 짧고 가벼운 일상의 경험을 마칩니다 :)

[참고## 일상의 UX##]